마당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페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캐롤>은 1950년대 호황기 미국에 사는 레즈비언들의 사랑을 다룬다. ⓒ cgv 아트하우스
페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캐롤>은 1950년대 호황기 미국에 사는 레즈비언들의 사랑을 다룬다. 전쟁과 맞물린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기술의 발전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풍족함을 누리던 때, 주인공 캐롤은 백화점에서 만난 테레즈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녀는 어둑한 식당의 한편에서 테레즈를 유혹하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대도시의 고즈넉한 외곽 지역을 돌며 애정을 나눈다.
은밀함과 도피로 가득한 이야기. 나는 <캐롤>이 참으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람을 마치고 극장을 나온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주인공 캐롤이 자신의 성적 지향 때문에 사회와 갈등을 빚는 부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따금 게이들을 비롯해 성소수자들의 공간으로 알려진 종로와 이태원을 찾곤 한다. 성소수자들을 위한 클럽과 술집으로 밀집된 거리를 지나면 종종 아는 얼굴들을 마주치곤 한다. 아니 꼭 그렇지 않아도 그 거리에서는 포옹을 하거나 짧은 입맞춤을 나누는 동성애자들을 간간이 마주할 수 있다. 이곳은 우리의 공간이라는 안락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정작 그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그 모습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날 밤, 그 거리에서 성소수자로 존재했던 사람들은 개인으로 흩어져 대부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성애자로 여겨지며 일상을 살아간다. 우연히 이른 낮에 같은 거리를 걷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밤에 목격했던 그 모습들이 꿈 같다고 생각했다. 마치 자욱한 연기 같은 모호함, 그것이 우리가 사회에서 지니는 존재감이다.
대선 화두로 떠올랐던 '성소수자'의 존재
그러니까 내가 캐롤과 테레즈가 영화에서 행복하던 순간조차 씁쓸함을 느꼈던 것은 그 위에 나의 현실이 겹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정한 권력자가 퇴출되고 저항이 승리하고 세상이 좋아졌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의 싸움이 끝이 났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이 좋아지든 나빠지든, 어떤 면에서 달라진 것 없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어느 쪽이 더 나쁠까. 사회가 망가질 때는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힘들고, 사람들이 '이제는 정의가 바로 서 더 이상 외칠 구호가 없다'고 말할 때는 괴리감 때문에 고통스럽다. 아마 후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금 성소수자들이 겪는 괴로움일 것이다. 새벽이 지나고 해가 떴다는데 내 방에만 볕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이 모두 부정적이고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냐면 그렇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직은 후보이던 시절, 그는 대선 TV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발언을 했고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이에 무지개 깃발(성소수자를 상징하는 깃발로 총 여섯 개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을 들고 항의 시위를 펼쳤다. 커다란 깃발만을 든 채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이던 사람의 코앞까지 걸어가 성소수자의 권리를 외친 것이다.
당시 내가 커밍아웃을 했던 사람들은 내게 놀라움을 표했다. 심지어 나도 그랬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무지개 깃발을 든 시위대와 문 대통령의 사진이 올라 갔다. 사람들은 저게 무슨 일인지 질문했고 성소수자는 이후 상당 시간 동안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물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도 많긴 했다.
더디지만 어둠 속에서도 변화는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살면서 내가 처음으로 본, 성소수자의 존재가 단시간에 극적으로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풍문과 혐오를 뒤섞은 사건•사고 기사가 아니라 당당하게 우리의 권리를 외치는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활동의 영향인지 올해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활동이 확장되는 모양새를 띄었다.
서울과 대구에서만 열리던 퀴어문화축제는 이번 해 제주와 부산에서도 열렸고 내년에는 전주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개최가 될 예정이다. 또 퍼레이드가 아직 열리지 않은 지역을 돌며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알리는 행사 '퀴어 라이브' 역시도 올해 광주와 춘천, 대전과 울산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전국에 걸쳐 여러 성소수자 공동체들이 어깨를 함께하고 연대를 나눈 뜻깊은 자리였다.
여기에 정권 교체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인권위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주요 국정과제로 채택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했으며 성소수자 차별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나 성소수자 차별 발언과 차별금지법 반대로 논란을 일으켰던 최이우 인권위원의 후임으로 장애여성공감의 배복주 대표가 임명된 것도 매우 큰 성과였다.
배복주 위원은 장애•여성•소수자 관련 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이 때문에 인권위의 진보적 정책안들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사람들은 예상하고 있다. 또한 군형법 92조의 6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뜻을 모은 국회의원이 늘어난 것도 올해의 성과라고 할만하다.
아직 남은 싸움, 직시하되 비관하지 말자
하지만 소기의 성취에 비하자면 명보다 암이 짙은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 할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가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했지만 여전히 군대 내 성소수자 차별과 인권탄압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100대 국정과제에서 제외되었다.
청와대가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소극적인 모양새를 보이니 주요 정부 부처와 지역자치단체 또한 여기에 편승했다. 부산과 제주 퀴어문화축제는 개최 준비 과정에서 혐오 세력의 반대와 이를 의식한 지자체의 처분 탓에 장소 선정에 애를 먹었다. 성소수자 여성들의 운동회인 '제 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 역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동대문구의 대관 불가 입장을 마주했고 결국 개최조차 되지 못했다. 성소수자들은 더 많은 교류와 가시화 행사가 필요한데 이를 실행할 공간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우려할 만한 사건은 여성가족부에서 터졌다. 여가부는 얼마 전 양성평등 정책 기본계획에 기재된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양성평등'과 혼용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이것이 '반(反) 동성애 단체'들과 반 여성주의 진영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이들은 여가부의 성평등 정책공청회에 난입해 행사 진행을 파행시켰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시위와 반대를 이어왔다. 성평등이 다양한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 간의 평등을 의미해 동성애•동성혼을 합법화할 의도가 있다는 게 주요 이유다.
가장 인권적이고 평등한 젠더 정책을 추진해야 할 여가부가 되레 혐오의 목소리에 굴복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사태다. 고위 정부 부처가 전례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이렇듯 성소수자 공동체를 중심으로 보다 진전된 사회를 향한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혐오라는 거대한 텐트 아래에 반인권 세력들이 규합하고 정부를 비롯한 공권력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는 일들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오히려 혐오세력이 몸집을 불리고 퇴행적 성취물을 지속적으로 쌓아간다는 점에서 상황은 심각하다.
2017년의 마지막 성소수자들이 받은 메시지는 '그대로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이다. 여기에 대해 더 할 말은 없다. 내년에도 해야 할 싸움이 많을 것이다. 기운을 챙겨 놓기를 바란다. 직시하되 비관하지는 말자.
※편집자 주: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공동 게재 되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86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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