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현(알바노조 전 위원장)


2015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일터와 성소수자를 연결시켜 인식하게 된 건. 그 전에도 알바를 했지만, 그 전에도 성소수자 의제에 대해 알았지만(그리고 내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지만), 이 둘이 연결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가 활동하고 있는 알바노조에서 한 조합원이 일터에서 커밍아웃 당해 해고당한 일이 있었고, 이 사건을 통해 ‘일터에서도’ 성소수자 차별이 심각하구나 깨닫게 됐다.

당시, 마음 한 켠에 계속해서 뭔지 모를 감정이 남아있었다. 아마 부끄러움인 것 같다. 2014년,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맥도날드에서 해고된 이후로 나는 계속해서 알바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당시 맥도날드를 상대로 한 싸움에 집중하느라 나 스스로 아웃팅으로 인한 부당해고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론 계속해서 상처의 기억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그들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농담에 상처받고.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는 모습들을 자꾸 마주하게 되고. 분위기를 망칠까 봐 지적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화가 나고. 같이 알바노조 활동을 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자연스레 나를, 내 주변을 고민하게 됐다. ‘일터’와 ‘성소수자’를 함께 고민해야 문제가 해결됨을 느꼈다. 11월 22일에 열렸던 성소수자노동자 인터뷰 사업 결과 발표회인 '나, 성소수자 노동자 - 두 번째 이야기'에 참석했다.


행사를 시작하며 참여한 모두는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약속을 했다. 평등한 행성인을 만들기 위한 시작으로 다같이 약속문을 읽으며 우리의 지향점을 다시 생각했고, 실천을 다짐했다. 사소해 보일지라도 이렇게 스스로 되새기고 다같이 다짐하는 것이 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날 모임 장소가 휠체어 접근성이 있는 곳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약속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약속 이후엔 ‘커밍아웃’, ‘젠더’, ‘불안’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모리님의 인터뷰 사업 전체 설명, 6명의 인터뷰어의 각자 진행했던 인터뷰이에 대한 발제가 있었다. 마지막으론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이야기 중,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을 안겨준 건 ‘커밍아웃’이다. 나는 나에 대해서 어떠한 규정을 짓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를 운동권으로,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는 것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무엇으로 규정되면 낙인이 찍히고 단절된다고 생각했다. 운동권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는 것이 그래서 무서웠다. 올 봄, 엄마가 나에게 성소수자냐고 물었을 때도 애매한 웃음으로(무엇으로 규정되는 것에 대한 무서움과 더불어 아직 성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과정인 이유도 있지만) 넘겼다. 그래서 나에게 커밍아웃은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다른 관점을 접했다. 커밍아웃은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와 연결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그전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나의 애인에게 연락해주는 것. 성별정정 이전의 삶이 삭제되지 않게 해주는 것. 순간의 해프닝이 아닌, 사회적 관계 맺기로서의 커밍아웃을 고민하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커밍아웃은 두렵다. 아직도 대부분의 일터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못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차별을 견뎌내야 하고, 커밍아웃을 해야만 직장 내 일상 대화에 어울릴 수 있는 차별을 견뎌내야 한다. 특히나 위계적인 일터에서,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일터에서, 소수자 혐오가 팽배한 일터에서, 남성중심적인 일터에서의 커밍아웃은 몹시나 많은 위험을 부담하게끔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날 행성인에 가입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번엔 얼버무리지 말고, 가족에게 행성인에 가입했다고 당당히 말해야지. 불편한 농담에 당당히 지적하고, 나아가 불편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노력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운동에서 성소수자 의제를 더욱 확대해나가는데 함께 해야지.

올해 알바노조가 가맹되어있는 IUF(국제식품연맹) 총회에서는 창립 이후 처음으로 성소수자 회의를 열었다. 일터에서의 성소수자 의제에 대해 각국의 상황을 공유하고 앞으로 함께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프리카의 어느 한 국가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웃팅을 당해 해고당한 노동자가 있었다. 사장의 명분은 ‘면접과정에서 솔직하지 않아서’이었다. 노동조합에서 싸웠고, 결국 법원에서 부당해고임을 인정받았다. 우리는 이 승리의 경험을 기억해 다음 승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렇게 성소수자노동자들이 소통을 하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에 인터뷰집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집이 과거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우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터뷰이 한 분 한 분의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집에서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집이 널리널리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주변에 많은 홍보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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