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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노동

<빵과 장미> - 남성이 아닌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by 행성인 2017. 6. 27.

이드(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빵과 장미> (2000)
감독: 켄 로치
주연: 필라르 파디야, 애드리언 브로디

영화 정보: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3623

 

행성인 내 팀별 행사는 거의 3년 만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다. 상영회 참여자가 한 10명 정도일줄 알고 여유롭게 참여했는데, 30명 가까이 오셔서 놀라웠다. 퀴어의 주요 키워드가 사랑과 만남만이 아니라, 평생 노동자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기도 하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영화는 멕시코 국경을 넘어서 미국 LA에서 밀입국자로 살아가는 유색 여성 이주 노동자 ’마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밀입국 브로커에게 ‘자연스레 납치’되어 성폭력의 상황을 기지로 넘어가는 ‘마야’ 의 모습부터 시작하는 영화를 보자니, ‘불편함’을 예고 받은 것 같아 긴장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층 빌딩 내의 청소노동자로 살아가게된 주인공 ‘마야’는, 주변 동료들의 인권 침해 상황을 보며 생각이 깊어진다. 그러다 노동 운동가 ‘샘’을 만나게 되면서 노조 결사의 자유, 임금 협상, 부당해고 복직 등의 집회시위를 통해서 결국 요구안 타결을 이뤄내게 된다.

 

줄거기를 축약했을 뿐인데도 ‘마야’에게 놓여진 험난함이 느껴지는 이 영화에서- 몇몇 기억나는 장면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을 나누어보았으면 한다.

 

#1 밀입국 이후 예정대로 원가족에게 인계되지 않고 납치, 감금하여 성폭력의 상황에 놓이게 된 장면
: 원가족을 만날 생각에 힘든 여정을 참아왔을 ‘마야’를 자연스럽게 납치, 감금한 남성 브로커들은 누가 ‘마야’를 ‘가지게’ 될지 동전으로 정한다. 그 공간에 ‘마야’가 함께 타고 있었다. 나라면 이 상황 자체에 압도 당하여 패닉이 왔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배당된’ 브로커와 한공간에 있던 ‘마야’는 기지를 발휘하여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순서가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강간 및 신체적 폭력으로 곧장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도망 장면이었다. 가해자를 ‘골탕먹이는 장면’으로 묘사가 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을 순간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괴로워졌다. 지정성별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나 또한 실제로 성추행을 겪고도 고소를 할 수 었었던 경험이 있기에 내 일처럼 느껴졌다.

 

#2 미국에서 친언니의 소개로 얻게된 첫 직장에서 남성 근로 매니저로부터 조건부로 월급을 내놓으라고 강요당하는 장면
: 백인 남성 근로자여도 임금 갈취 협박을 당했을까 싶지만, 묘하게도 ‘마야’가 일하게된 청소 노동자 그룹엔 모두 유색인종이거나 이주민이었다. 아마 비슷한 협박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더 놀랍게도 남성 근로 담당자 또한 유색인종이다) ‘마야’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임금 갈취 협박의 부당함에 변호하지 못할거란 계산이 없었다면, 그 상황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또한 이 직장이 아니면 구직이 요원한 ‘마야’는 정말로 별다른 방법이 없었는지 이후로 대응하는 장면이 나오진 않는다.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자신의 노동 대가를 갈취 당하고 있을까.

 

3년 전 IVLP프로그램차 미국에 처음 방문했을 때, 같이 갔던 친구가 “숙소에 있는 청소 노동자가 다 유색인종인거 알아?”라고 말했을 때의 충격이 생각났다. 그리고 한 명의 사람이 조국을 떠나 노동해야만 하는 현실이, ‘헬조선’에 사는 나에게도 아주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현재를 갈아서 미래를 가까스로 만드는 삶을 견디는 모멸감.


* 2017년 주 40시간, 주휴수당을 포함한 최저월급은 1,352,230원이다.
(http://www.alba.co.kr/serviceGuide/minimumWage.asp)

* 한국일보가 1~7일 전국 대학생 34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5월 한 달 동안 실제로 지출한 내역과 수입 내역을 물었다. 그 결과 대학생들은 지난 한 달 소비지출 금액은 117만6,000원(등록금 제외)에 달했다. 흔히 비정규직 노동자 월 수입이라는 88만원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는 것이다. 응답자 10명 중 7명 이상(71.6%)은 이러한 생활비가 “부담스럽다”(매우 부담 22.9%, 다소 부담 48.7%)고 답했다.
(http://hankookilbo.com/m/v/5004e4e1a05e4bdfb64409d0f3eabaff)

 

#3 시각장애가 있는 중년 여성 노동자가 당일 해고되는 모습을 보고 ‘마야’과 애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 근무시각에 지각을 했고 시각 보조 기구를 챙겨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즉각 해고되는 장면에서 해고 당사자가 “잘못했어요. 전 일을 해야해요”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일대일이 아닌 다른 직원이 있는 휴게실 앞에서 진행되었는데, ’마야’의 애인이 “저건 아니야.. 우리 어머니 연배잖아”라고 한다. 최근 대학교 내의 청소 노동자의 근로처우 증진을 지지하는 대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다. ‘청소 노동자’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노동자가 ‘내 원가족’뻘이라고 생각한다면 서로의 거리는 급격히 가까워진다. ‘너는 나다’가 되는 장면이 아름다웠다. 그 후 실제로 해고 노동자의 복직도 함께 요구하는 노조 파업에 돌입하게된다.

* 고려대/최저임금 1만 원 및 비정규직 처우개선 플래시몹 http://news1.kr/photos/view/?2482976
* 전북대/'청소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전북대 사람들' (온·오프라인 서명 도합 4,500명)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268359#cb

 

#4 같이 근무하던 언니의 배신과, 자신의 최초 고용이 성상납으로 이루어졌음을 알고 ‘마야’가 오열하는 장면
: 파업이 진행될수록, 내부고발이 이루어지면서 노조내 분위기가 다소 혼란스러워진다. 집회시위의 주동자를 밀고한 이가 ‘마야’ 언니라는 주장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언니와 함께 사는 집에 가서 ‘마야’가 아주 당당하게 “왜 배신했냐”고 따지자 언니 또한 태연하게 “파트너 간병비가 당장 필요한데 못할 게 무어냐”고 항변한다. 그리고 이어서 “네 일자리도 그 근로 매니저에게 성상납해서 만든거다.”, “집이 어려울 때 미국에 홀로 와서 성판매를 해서 생활비를 보탠걸 알고 있느냐. 그 돈이 어디서 났겠냐”는 언니의 울음 섞인 고백에 ‘마야’는 충격에 빠진다. 여기서 자발적, 비자발적 성판매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생계를 위한 근로를 찾는 와중에 성판매를 ‘선택’하게되는 여러 요인들을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그리고 구매자가 사라지고 판매자만 낙인 찍히는 성판매 구조에 대해서도 더 이상 성판매 당사자의 일로 환원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5 오랜 시간 파업한 노동자들이 거리 퍼레이드를 하고 빌딩 점거를 하며 구호를 외치는 장면
: 3번 장면 이후 ‘마야’는 백인 노동 운동가 ‘샘’에게 자문을 구하여 사내 노조원들과 함께 정당한 근로처우를 요구하는 집회시위에 돌입한다. 노조원들 사이에서도 부당해고의 두려움으로 이견이 있긴하나, 결국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한다.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사측을 압박하기 시작하다가, 영화의 후반부쯤으로 다다랐을땐 빗자루와 피켓을 함께 든 노동자들이 근무처 빌딩을 향해 걸어오며 함께 구호를 외친다. (여기서 백인 노동 운동가 ‘샘’의 비중이 다소 있는 편이지만, 잠재된 노동권익을 인식시켜 준것이지 그의  시혜성을 통해 계몽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무장 경찰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빌딩 로비를 점거 하며 함께 구호를 외치는 단결력이 참 멋져보였다. 혼자라면 그 광경이 가능했을까? 함께하는 믿는 동료가 있고, 전략을 제공하는 운동가가 있었고, 법률 자문으로 그들을 보호한 이들이 있었기에 유색인종 이민 노동자 노조의 파업 요구안이 가결되는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마야’의 범죄사실이 탄로나면서 본국인 멕시코로 추방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송되는 ‘마야’를 뛰면서 인사하는 언니의 모습은 영화의 첫 장면과 일치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의 나에게 주어진 현실
: 한평생 노동자로 살아온 원가족 밑에서 자라온 나 역시도 오랜 시간 서비스 노동자로 살아왔다. 젠더이분법이 견고하게 작동되는 사회인지라- 입술을 새빨갛게 칠하라고 꾸밈 노동을 강요받고, 여긴 안경 쓴 사람은 고용하지 않는다 하고, 지정성별 여성이란 이유로 남성과는 다른 유니폼을 입는 등 ‘나다움’을 드러내며 일해본적이 없었다. 딱 하나 있었다면 영국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에서의 경험인데, 매장내 직원이 타투를 하건, 피어싱을 하건, 염색을 하건, 커밍아웃을 하건 상관없는 곳이었다. (매년 퀴퍼 트럭, 부스에 참여하는 기업이니 젠더표현의 자유를 열어놓는건 당연할지도.)

 

그럼 무얼하나? 늘 최저시급이었는걸. 그건 정직원이어도, 백화점에서 일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근로계약서 작성시 노조 결성을 하지 않겠다는 사인까지 여러 번 해왔다. 예상대로 그 계약서는 늘 하청업체에서 작성한 것이었다. 대외적으로는 KT에서 일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하청업체가 독박을 쓴다. 올해 초까지 나는 한 번도 노조에 가입해보지 않은 상태로 빈곤과 압박을 느끼며 근무해왔다. 월급 즈음이 되어서 월세를 ‘뜯기고’, 생활비를 충당하고 이러저러한 납부를 하고나면 저금을 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오늘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 다음 달이 불투명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첫 파트타임 일을 하던 2006년의 법정최저시급은 3,100원이었고 2017년인 현재 6,470원이다. 11년 동안 고작 3,370원이 오른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0,000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김종인 위원의 말에 따르면, “최저가구를 2~3인으로 잡았을 때 월평균 가구생계비는 2016년 기준으로 2~3백만 원대이며, 시급 1만 원이 실현되더라도 월급으로는 주 40시간 기준으로 209만 원”이기에 이는 불합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한다.

 

* 최저임금 1만원, 정부의지만 있으면 가능 http://www.ytn.co.kr/_ln/0102_201706161616284002

개인의 노동 활동 참여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여유로운 일상을 위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의 시대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함께 용기를 내어 더 나은 세상을 그려보았으면 한다.

 

<청년노동자와 대학생들이 청와대에 요구합니다!>
-청년•대학생 최저임금 1만원 선언 (개인, 단체)
-6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고, 청와대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6월 30일, 하던 일을 멈추고 사회적총파업에 함께합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GFJ67rJiGGDjFGDa07E7oqirMVqMZ4YUXAdbUyqI2iZEp5A/viewform?c=0&w=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