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퀴어들의 노동 읽기] 소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에서 노동 관련 이슈를 읽고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함께 읽고 고민해 볼 만한 노동 관련 뉴스를 소개합니다. 이번 편은 다소 긴 분량으로 인해 웹진에 게시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랜드 홈페이지에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도 이랜드 브랜드였어?’ 홈페이지에는 인기 아이돌 그룹의 광고모델 사진이 걸려 있네요. ‘블랙기업 이랜드 CF 거절’과 같은 헤드라인을 보고 싶군요.
#이랜드불매
이미지 출처: 이랜드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이랜드파크는 2015년 10월 1일부터 2016년 9월 30일까지 총 44,360명의 근로자에게 임금과 수당 83억 7,2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신용평가 ‘이랜드 그룹 분석보고서’에 의하면 2013~2015년 3년간 이랜드파크 영업이익은 총 100억 원입니다. 임금체불로 돈 버는 기업인 셈입니다. 1월 24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용 정의당 서울시당 정책위원장은 “이랜드파크에서 체불한 알바노동자의 84억 임금 중 서울 지역 노동자 임금이 27억 5,000만 원 정도인데 이 금액이 발표에서는 빠져있고, 20시간만 연장 근무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100시간, 160시간까지 연장 근무하는 실태를 봤을 때 체불임금은 947억 원이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이랜드파크만이 아닙니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2016년 임금체불 추산액이 무려 1조 4,286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은 26일 국회 당정협의에서 "상습적, 고의적 (임금)체불에 대해선 (검찰과 협조해) 엄정히 구속 수사토록 해 사회의 고의적 위법에는 관용이 없다는 원칙을 확립해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매년 이런 식으로 말하지만, 체불액이 연간 1,000억 원 이상 급증하는 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선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일본이 20년 넘는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일본경제전문미디어를 표방하는 프레스맨의 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임금체불액 규모는 일본의 31배, 임금체불근로자는 7.4배, 1인당 체불액은 24.6배입니다. 경기악화는 임금체불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는 임금체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국기업문화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방증합니다.
임금체불은 뉴스 기사에서나 보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저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임금체불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지난 하반기에 일했던 병원에서 성추행 상사에게 굽실거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당했습니다. 그 후에 입금된 임금이 생각보다 너무 적은 것 같아서 인근 노동복지센터에 찾아갔습니다. 해당월의 임금을 일할 계산한 방식에 따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 만근수당을 제외한 금액이 실제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한 최저임금에 미달하고 연차수당도 지급하지 않아 체불임금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의 꼼수는 매주 65.5시간인 근로시간을 근로계약서에 명시하지 않고,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임금을 산정한 것입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근로계약서를 봤을 때는 문제가 없는 근로계약서처럼 보였고, 체불임금을 받는 데 관건은 근로시간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의 꼼수가 가능했던 것은, 제가 임금 계산을 스스로 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임금을 계산할 줄도 모르는데 제가 받을 임금이 부당한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셈을 배운 적 없는 아이에게 계산원이 일부러 거스름돈을 잘못 주더라도 아이는 속은 줄도 모르겠지요.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2008년부터 임금노동을 해 왔으면서 이번 사건을 겪고 또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다시 들여다보기까지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지급방법, 소정근로시간(휴게시간), 휴일, 연차유급휴가, 취업의 장소와 종사업무, 단시간 근로자의 경우 근로일 및 근로일별 근로시간이 근로계약서 서면 명시 및 명시된 서면 교부 대상 사항이라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 찾아갔던 노동복지센터와 체불액 계산이 맞는지 다른 곳에서도 확인해보라는 권유로 찾아간 노동권익센터, 그리고 권리구제지원을 위해 찾아간 노무사까지 세 번의 상담을 통해 산정된 체불액 계산금액이 다 달랐습니다. 계산할 줄도 모르고, 관련법도 잘 몰랐던 저는 그때마다 해주시는 말씀이 맞는 줄 알고 그런가 보다 해야 했습니다. 저는 담당 노무사가 진정접수한 체불임금의 100%를 받아냈지만, 그 사건 이후 시민노동법률학교 노동법 강좌를 듣고, 서울시에서 발행한 〈서울시민 노동권리 수첩〉과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펴낸 〈일하는 서울시민을 위한 노동법률 이야기〉를 읽고 나니 체불액을 더 받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지만, 진작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 원망과 분노가 밀려옵니다.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임금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생계수단인 노동자로 살아가는데, 어째서 의무교육에서는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요? 어떤 사람들은 임금체불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고, 신용을 잃고, 떳떳하기 어렵고, 눈치를 봅니다. 비합리적 소비를 하고, 휴대폰이 정지되고, 차비가 없어 걸어가야 하고, 병원에 가지 못합니다. 자존심을 다치고,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존엄을 지키기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매스컴에서는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온갖 가십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째서 생존과 존엄을 위해 꼭 필요한 정보들은 전달되지 못하는/않는 걸까요?
병원에서 임금체불을 위해서 쓴 꼼수는 저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근로계약서에 문제가 있으니 차후 양산될 피해자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근로감독관이 시정명령을 내리게 되는지 또 저와 같은 피해를 당한 동일 사업장 내의 모든 동료도 당연히, 자연히 피해액을 구제받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관련법을 잘 모르는 제가 생각하기엔 그것이 상식적인 것 같은데, 담당 노무사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습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임금체불하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가 되는 구조를, 법이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다소 가깝게 지냈지만, 퇴사 후 연락한 적이 없는 동료 몇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체불액을 받으라고 할까 고민했습니다. 채 석 달도 일하지 않은 저에게, 야금야금 근로시간에서 누락된 시간이 모이니 실근무일 14.5일에 해당하는 시간이 되었고, 체불액은 월급의 절반에 가까웠습니다. 그 당연한 몫이 권리를 다투는 이에게만 돌아간다니…
그런데 말입니다, 노동조합이 있다면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직접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각개전투로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조합원 모두가 투쟁의 성과를 나누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노조조직률은 10.2%로 OECD 평균인 27.8%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고, 29개 회원국 가운데 네 번째로 낮으며, 60%를 웃도는 북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한참 낮습니다. 행성인에서 공동체 상영회를 했던 지보이스 다큐멘터리 <위켄즈>에도 나온 이 노랫말을 아시나요? “우린 더 행복해져야 해요.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우리의 권리를 알고, 연대로써 지킵시다. 함께 이 문화와 법을 바꾸어 나가요. 광장에 나갑시다. 행동하는 성소수자가 세상을 바꾼다!
#2월 25일_민중총궐기
이 주의 기사: [주간동아] 사상 최고 1조4000억 원 임금체불로 돈 버는 기업들 - 체불액 30% 벌금 내면 끝…턱없이 부족한 근로감독관, 체불기업 명단 공개도 실효성 의문 (2017.01.04, 1070호) 박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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