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1일, 이화여대에서 2회째를 맞는 LGBT 인권 포럼이 열렸다. 포럼은 지역에 기반한 LGBT운동의 가능성과 전망,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 성소수자 정치 등 3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특히 내가 사회를 맡은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 어디로 가야 할까?’는 최근 들어 다시 가시화 되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에 대해서 각 단체의 활동과 개인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소중한 자리였다. 국내의 성소수자 단체들이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서로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특정 단체에서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이슈에 대해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포럼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포럼은 각 단체가 어떻게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을 해왔는지에 대한 발제부터 시작했다. 한국성적소수자 문화 인권센터의 리인,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Rateen의 진기,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은찬, 친구사이의 기호씨가 나와 각 단체가 지금까지 해왔던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들려주었다. 이를 통해, 10대 여성 이반들을 대상으로 한 퀴어뱅, 이반놀이터, 무지개학교 놀토반, 장학회 사업 등 각 단체의 특색이 드러나는 활동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네 명의 발제가 끝난 후에 토론이 계속됐다. 토론에서는 주로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 청소년 성매매, 청소년 ‘신분’ 자체의 취약점, 그리고 그 안에서는 깰 수 없는 악순환의 구조(청소년이기 때문에 돈을 벌기 어렵고, 그래서 성매매에 좀 더 빠지기 쉽고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발제자들, 플로어 토론에서 발언한 사람들, 그리고 사회를 보던 내가 함께 공감했던 이야기는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의 취약점’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것들이 뭘 알겠어.’라는 나이에 대한 편견에서부터 인권 활동에서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의 입지, 재정 지원의 열악함, 기존 활동의 명맥 상실 등 굵직굵직한 걸림돌들이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을 가로막고 있었다. 또 현재의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이나 안정적인 이론 등이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활동을 하거나 성과를 내고, 다시 그것으로 재정 지원을 받기가 매우 애매한 상황이었다. 청소년이어서, 성소수자여서 받는 이중의 억압은 기존의 성소수자 운동보다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활동가들이 함께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청소년 시기에 접하면 그렇게 된다.’라는 것과 ‘동성애는 이상한 것’이라는 식의 다층적 편견들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이 해결해야할 과제였다.
나 개인으로서도 1년 넘게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을 해오면서 느낀 점이 참 많았다. 학교 문제, 가족 문제, 생활 문제, 친구 문제, 진로 문제 등 ‘청소년’이라는 정체성과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단순치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함께 끌고 가면 그 속도가 굉장히 느리고, 그렇다고 하나만 가지고 가자니 하나의 이슈만으로 운동을 해서는 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늘 모든 이슈를 느리게 안고 갔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안타까운 점이 참 많았다.
두발자유화 문제는 ‘청소년’이라는 정체성 자체에 포커스가 맞추어지지만-사실 그 정체성보다는 나이와 질서에 대한 쪽으로 맞추어지는 경우가 더 많지만-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는 ‘나이가 어리고’ ‘정체성 확립이 덜 됐고’ ‘자기 결정을 확실하게 할 수 없는’ ‘아직은 미숙한 존재’라는 청소년 정체성이 늘 먼저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이 갖는 특성 때문에 동성애는 계속 금기시 되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일찍 깨닫는 청소년의 숫자는 분명 과거에 비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에만 발목 잡혀 성소수자 이슈와 청소년 이슈를 접목시키지 않는 것은 시대적 낙오를 낳게 된다. 결국 청소년 성소수자는 ‘없는 존재’로 분해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그 시기를 거쳐 지금까지 왔을 텐데 말이다.
포럼을 통해, 지금까지 활동을 통해 느낀 것이 있다. 지금 청소년 신분인 성소수자 아무개도, 청소년 시기를 지난 누군가도, 그리고 나에게도 계속 해주고 싶은 말. 아무리 지겨워도 결국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인련에서 활동을 하다가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에 집중하게 되면서 계속 날 막히게 했던 고민은 ‘과연 탈출구가 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저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가면서 계속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것이 불안했다. 공격받는 지점이든 이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든 두 정체성이 만나 만들어 내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 보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지금껏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고민은 충분히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청소년’ 성소수자도 아니고 청소년 ‘성소수자’도 아니고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어디로 가야하냐고? 글쎄, 처음 같이 가는 길이라면 어디로 가든 거기가 또 길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물론 엄밀히 말해 처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Anima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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