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부터 25일까지 고려대학교에서는 ‘다함께’가 주최한 ‘맑시즘 2010’이 열렸다. 그리고 예년과 다름없이 동인련의 많은 회원들이 이 행사에 참석했다. ‘예년과 다름없이’ 참여했지만, 올해 우리에게 맑시즘은 예년과는 사뭇 다른 좀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방영되면서 성소수자를 향한 이해의 시선이 전보다 한층 늘어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 또한 그만큼 거세어졌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뜨거워져서 일까? 온몸을 핥고 지나가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는 날이었음에도 동성애 강연이 있었던 강의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60명 정원의 강의실에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의 사람들이 찾아왔기 때문에 일부 참가자들은 안타깝게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강연은 “누가 왜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가.”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발제를 맡은 이경 활동가는 동성애 혐오에서 비롯된 범죄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의 문을 열었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살해당해야만 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새삼 동성애 혐오의 심각성에 대해 재고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혐오범죄의 사례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상, 우리에게도 혐오범죄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강연을 듣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라는 천박한 카피를 앞세운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신문광고가 맴돌았다. 그리고 그것이 예고하는 암울한 미래가 손에 잡힐 듯이 그려지고 있었다.
한편, 이경 활동가는 이 강연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한국에서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가장 큰 세력은 보수 기독교 단체들임을 적시했다. 또한 지난 2003년 동성애자 청소년이었던 故 육우당을 자살로 몰고 갔던 사건으로부터 시작해 그동안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저질러온 만행을 이날 강연에서 폭로하였다. ‘동성애는 죄이지만, 동성애자는 사랑한다’며 위선을 일삼는 이들의 지난 폭력의 역사를 가만히 듣고 있다보니 분노와 서글픔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이 끔찍한 차별의 고리를 어떻게든 끊어내야 한다는 절박한 외침이 가슴속에서 끓어올랐다.
이경 활동가는 최근 동성결혼금지법안을 둘러싼 미국 성소수자 인권운동 진영과 흑인 커뮤니티의 갈등을 예로 소개하며 같은 소수자끼리의 반목은 결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이날 강연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전적으로 동의할 만한 주장이었다. 우리들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고, 불신하고, 힘을 모으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차별을 만들어 내고 지속시키고 싶어 하는 자들이 원하는 바일 것임에 분명하다.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을 끝장내길 원한다면, 그걸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외받는 이들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투쟁해야 한다는 이경 활동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제가 끝난 뒤, 질문과 주장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해도 있었고, 망설임도 있었으며, 용감한 고백과 확신에 찬 자신감들이 토론장 안을 떠돌았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소년과 성인. 혹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의견과 의문들을 가슴 속에 품고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들이 가슴 속에 품고 돌아간 갖가지 중요한, 혹은 중요하지 않은 의견과 의문의 씨앗들이 머지않아 희망을 싹 틔우게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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