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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동성애 혐오

키스해링전시는 가능? 동성애자 인권행사는 불허? -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이상한 소마미술관 출입원칙!

by 행성인 2010. 8. 5.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키스 해링(KEITH HARING) 전시회에 7월10일까지 2만 명 정도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가족과 연인이 즐기는 문화데이트로 각광을 받고 있는 키스 해링 전시회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9월5일까지 계속될 것이다. 2만 명이 다녀가기 하루 전 7월9일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도 올림픽공원을 찾았다. 하지만 키스 해링 전시회 근처도 가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불청객 다루듯이 우리 앞을 가로막던 이들도 있었다. 바로 국민체육진흥공단 직원과 관계자들이었다.





7월9일. 올림픽공원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아침 10시. 8호선 몽촌토성역에 내렸다. 지하철을 나오자 황량한 공원입구가 바로 보였다. 그 전날까지 기자회견문을 준비하느라 충분한 잠을 청하지 못해서인지 몰라도 지하굴속에서 바깥세상을 맞이하자마자 순간 어지러웠다.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헷갈렸지만 저기 먼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건물 하나가 보였다. 오늘 내가 찾아 갈 국민체육진흥공단이었다. 경륜이나 복권 때문에 들어봤을 이 공공기관 앞에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한적한 공원 안에서 유치원생들은 호돌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산책 나온 분들은 그늘에서 쉬고 계셨다. 20명 안팎에 사람들이 모이자 우리는 ‘동성애자 인권행사 불허한 국민체육진흥공단 규탄한다’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펼쳤다. 아쉽게도 기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각자의 역할대로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동안 공단 앞을 지키고 있는 경비 노동자들께서 우리 앞을 가로 막아 섰다. 그리고 관계자들로 보이는 분들이 아침부터 일은 하지 않고 문 앞에 나와 우리와 경비노동자들이 실랑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송파경찰서 관계자까지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우리의 기자회견을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진보적인 크리스천들도 함께했고 이들의 발언 대부분은 기자회견조차 마음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개탄했다. 기자회견을 짧게 마치고 항의서한을 공단 이사장에게 전달하기위해 건물 앞으로 향했다.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다시 막아섰다. 소마미술관 큐레이터까지 나서 유감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소마미술관 사용을 불허한 책임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취재를 하러 온 기자에게 매달려 자신들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실랑이 끝에 우리는 항의서한을 그들에게 전달하고서 불쾌하고 불편했던 올림픽공원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올림픽공원은 고요했다. 





6월28일. 주한미국대사관 자료정보센터

2010년 6월 28일 주한 미국 대사관 자료정보센터에서 미국 외교부 내 동성애자 모임(GLIFAA, Gays and Lesbians in Foreign Affairs Agencies) 주한 미국대사관 지부가 주최한 동성애자 인권 강연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홍석천 씨를 비롯해 100여명의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과 대학생들이 초청받았다. 애초 이 행사는 키스 해링 전시가 열리고 있는 소마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초청장은 물론 언론사에 배포하는 보도 자료에도 행사 장소는 소마미술관이었다. 하지만 주최 측은 행사개최 불과 3일전인 6월 25일에 소마미술관을 관리하고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부터 행사개최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이유는 바로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국가기관으로서 이미지가 걱정되고” “한국에서는 아직 동성애 인권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참석자들이 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허가해 줄 수 있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패트릭 리네한 공보참사관이 행사장에서 장소대여 협의 과정에서 동성애 혐오적인 발언이 있었다는 것을 직접 언급하였으며 이 내용은 행사에 참석했던 인권활동가들도 들었고 6월30일 동아일보 기사로도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질의서에 대한 답변으로 장소대여의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점만을 운운하며 최대한 행사개최를 위해 협조했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전달했다. 6월30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는 소마미술관을 "협의했던 관계자가 그런(동성애 차별적인) 발언을 했을 수는 있어도 공단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었다."고 말한 것처럼 공단 내부에선 협의당사자의 발언과 공단의 책임을 철저히 분리시키려 한다. 결국 모든 책임을 행사를 주관한 GLIFAA에 넘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임 있는 행동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앞장서야 할 GLIFAA 역시 특별한 확인서 작성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동성애혐오적인 발언을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했다는 점은 굉장히 큰 문제이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정작 그 발언을 들었다고 하는 GLIFAA에선 특별한 조치가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아니 자신들의 직접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뒷짐 지고 있는 꼴이란 다른 나라에 와서 형식적인 인권행사를 왜 개최하려고 했는지 의심마저 들게 한다. 정작 들은 사람은 있는데 말한 사람이 없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성소수자 인권단체 10여개가 참여하고 있는 연대체)은 사과요구를 국민체육진흥공단 측에 다시 전달하였고 키스 해링 전시회를 주관하는 재단에도 입장을 발표해달라는 요구서를 보낼 예정이다. 쉬운 싸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국민체육진흥공단 측의 공개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다.


키스 해링에 딸린 수식어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가 동성애자이자 유명한 에이즈 운동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그림은 롯데백화점 쇼핑백에서 접할 수 있을 만큼 친숙하지만 그에 대한 중요한 소개 글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만약 키스 해링이 살아 있었다면, 한국에서 열린 자신의 전시회장을 다녀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과연 웃고 있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정욜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