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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줄탁동시>를 둘러싼 서구의 욕망과 한국의 퀴어영화

by 행성인 2012. 4. 9.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김경태

 

이 글은 김경묵 감독의 <줄탁동시>(2012)에 관한 글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거나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독해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줄탁동시>가 촉발한 한국 퀴어영화에 대한 단상과 제언 정도가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영화 텍스트 자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그 대신 이 영화를 둘러싼 서구의 욕망과 한국 퀴어영화의 위상을 일별할 것이다.

김경묵 감독이 약관의 나이에 연출한 첫 장편영화 <얼굴없는 것들>(2005)은 당시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작품들 중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를 ‘일말의 상상력도 없는 헤프닝’이라고 폄훼했고, 반면에 다른 평론가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영화를 옹호하며 아직 어린 감독의 미래에 더 큰 기대를 걸었다. 사실 나는 그 어떤 판단을 내리기도 조심스러웠다. 솔직히 말해, 여러 해외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이 부여하는 아우라와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오는 희귀한 국산 퀴어영화라는 사실로 인한 보호본능 때문에 가능하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게이 포르노의 세례를 받은 <얼굴없는 것들>은 분명 기존의 어떤 퀴어영화도 교집합이 없는 낯선 스타일의 영화로 분명 곱씹어볼 가치는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내가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은 감독의 영화감독으로서의 천부적 재능이었다. 그렇다. 그의 첫 장편은 치기와 재능, 그 사이 어딘가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감독에 대한 판단을 차기작으로 미뤄뒀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청계천의 개>(2007)가 시네마디지털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나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결국,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 영화에는 아직 영화를 많이 보고 또 많이 배워야할 20대 초반의 나이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낯간지러운 직설화법의 난무로 <얼굴없는 것들>의 치기어린 실험정신마저 퇴보한 느낌이었고, 또 실제로 그만큼의 주목을 끌지도 못했다. 그렇게 나는 그에 대해 큰 기대를 걸지 않기로 했다.



그 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내놓은 <줄탁동시>가 한국 장편영화로는 유일하게 베를린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을 내린 것일까? 감독이 그동안 절치부심해서 제목처럼 껍질을 깨고 나온 것일까? 일단,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전작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졌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한 축인, 유부남을 사랑한 소년의 내적 갈등은 <얼굴없는 것들>에 이어 반복되며 그 틀 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감독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것은 의도된 반복이니 인정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문제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줄줄이 이어지는 재현 전략이다.

여기서 잠시 김경묵 감독의 멘토인 세계적인 게이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의 역할을 짚고 넘어가겠다. 그는 아시아 영화 전문가로서, 홍콩의 관금붕에서부터 중국의 추이 즈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게이 감독들을 국제 영화제에 소개해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근 예술영화계에서 가장 핫한 아이콘으로 떠오른 태국의 게이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역시 무명시절에 가졌던 토니 레인즈와의 설레는 첫 만남을 술회하기도 했다. 그런 아시아 게이감독들의 대부인 그가 <얼굴없는 것들>에 찬사를 보내며 김경묵 감독의 멘토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그해 영화 주간지 <씨네21>에서 국내외 영화 전문가들을 상대로 최근 10년 간 나온 전세계 영화 중 최고의 작품 열 편을 선정해달라는 설문에 당당히 <얼굴없는 것들>을 올렸을 정도였으니까.

또한 그는 한국 최초의 남성 동성애 장편영화로 기록된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1995)의 탄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서동진을 중심으로 한 동성애자인권운동 진영에서는 이 영화의 왜곡된 동성애자 재현에 분노했고, 토니 레인즈는 이에 반박하며 끝까지 이 영화를 옹호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시각에 경도되어 있던 시대에 <내일로 흐르는 강>이 가지고 있던 한계는 너무나 명확했다. 그래도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척박했던 성소수자 재현의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은 사실 이 영화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 속 어이없는 ‘주먹 키스’를 한국적 특수성이 투영된 무척 기발한 재현 전략으로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지금까지 수백 편의 퀴어영화를 봤지만 그 어디에도 주먹 키스는 없었다.) 바로 토니 레인즈가 매혹되었던 부분도, 서구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그런 한국만의 고유한 재현들이었다. 참고로, 그는 후에 나온 <로드무비>에도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었다.

내가 염려하는 점은 토니 레인즈의 시선에 담겨 있을 수도 있는 일말의 오리엔탈리즘이다. 서양의 백인 지식인인 그가 동양에서 진기한 퀴어 재현을 발굴해내어 박물관에 전시하듯 해외영화제를 통해 서구에 소개하려는 욕망에 스며있을 불경함 말이다. 아시아에서 새로운 게이 시네아스트를 자신이 찾아내야만 한다는 강박에 영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잠시 망각하는 것은 아닐까. 무수한 영화의 결점들에 너무나 관대해진 채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것은 아닐까. 영화 다음에 욕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영화에 늘 선행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 욕망의 덫에 운좋게(?) 김경묵 감독이 걸려든 것은 아닐까.

다시 <줄탁동시>로 돌아오자. 이 영화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설화와 몽환적인 사운드, 지아 장커의 노래방, 왕가위의 독무 등이 모두 담겨있는 종합선물세트이다. 서구 영화제가 군침을 흘리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아시아 시네아스트들에 대한 과잉된 모방은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 표층을 떠다닌다. 이처럼 과한 식탐이 초래한 소화불량은 통일성 있는 호흡으로 영화의 주제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적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감독은 그동안 너무 많은 영화를 보며 너무 열심히 공부를 했나보다. 그 지나친 열정이, 아니면 누군가의 지나친 독려가 이번에는 오히려 자신만의 스타일을 이끌어내는 데 독이 되어버렸다.

사실 <줄탁동시>는 해외영화제에서 환영받는 것에 비해 국내에서의 관심이 그리 크지 않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이 영화에 상영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종로의 기적>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서구 영화제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이를 통해 서구 영화계의 지식인들에게 소비되는 동양의 퀴어영화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프랑스의 영화잡지 <<꺄이에 뒤 시네마>>는 그의 영화가 분명 아피찻퐁의 자장 안에 있다고 단호하게 명시한다. 아피찻퐁을 위시한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경향 속에 김경묵 감독의 영화를 묶어 두려는 서구의 욕망은 뚜렷하다. 우리는 그 욕망에 별 반성 없이 쉽게 편승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영화를 둘러싼 담론의 지형도, 혹은 논란의 형국은 안타깝게도 그런 ‘서구가 욕망하는 성소수자 재현 전략 추구’의 타당성이 아니라 ‘성기 노출에 따른 제한상영가 판정(으로 인한 암묵적인 동성애 차별)’에 한정되어 버렸다. <줄탁동시>는 단순히 성기를 노출하는 <박쥐>가 아니라 오랄섹스하는 장면이 발기된 성기와 함께 그대로 노출되어 제한상영가를 받은 <천국의 전쟁>이나 <숏버스>의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친구사이?>가 받은 청소년관람불가의 부당함과 같은 맥락에서 <줄탁동시>를 동성애 차별로 놓는 것도 무리수이다. 우리는 그런 ‘피해의식’ 때문에 정말 경계해야할 것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낱 나무일뿐이다. 감독에게 더 시급한 태도는 숲을 보는 혜안을 갖는 것이다.

고백컨대, 나는 김경묵 감독의 영화 중에서 최고는 그의 첫 단편영화인 <나와 인형놀이>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후의 작품들은 이 영화의 초라한 변주일 뿐이다. 분명 그는 발군의 실력을 뽐내는 천재적인 영화감독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배운 것을 그대로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학습력, 혹은 본능적인 감각만큼은 타고났다. 그래서 아직 20대인 그의 미래가 밝을 수 있는 이유이다. 다만 그가 서구의 욕망을 무작정 좇기보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끊임없이 의심하며 반성하는 자세를 잊지 않길 바란다. 이는 김경묵 감독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퀴어영화를 만드는 모든 감독들에게 감히 용기내어 건네고 싶은 제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