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10월 28일,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서울대학교 공인인권법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2012년 한국 성 소수자 인권의 현주소”라는 학술대회에 다녀왔습니다. 대부분 판사, 법대 교수, 법원 상임연구원 등 무서운(?) 사람들이었지만 아는 얼굴도 많았습니다. 100명 가량이 참석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나영정 연구원(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김선일 판사(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장), 이준일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성소수자의 법제와 현실에 대한 발표와, 한가람 변호사(희망을 만드는 법), 홍춘의 교수(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지원 판사(서울가정법원)의 지정토론, 마지막으로 종합토론으로 진행됐습니다.


학술대회는 나영정 연구원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20년이 되어가지만 법제도적 성과는 많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는 말로 시작됐습니다. 성소수자의 정의, 단어들, 역사를 간단히 이야기 하고 성소수자가 ‘성적오염자’로 환원되는 현실,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에서 포섭되거나 배제되는 시민의 범주가 무엇인지 묻고, 성소수자 당사자 운동을 넘어선 인간성과 시민의 정의를 묻고 재정의하는 운동의 일부로서 성소수자 운동을 바라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가족주의와 혼인의 법제도, 기존의 가족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동성애자(또는 동성결혼), 그래서 성소수자들이  ‘반역자’로 인식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법원에 성별변경을 신청할 때 의료계의 진단서나 감정서, 부모의 동의서, 결혼 상태가 아닐 것, 미성년의 자녀가 없을 것, 생식능력이 없을 것 등의 조건이 사실상 요구되고 있고, 트랜스젠더의 불안정한 고용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요구사항(대학병원의 진단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성전환수술)들이 많다고 합니다.

영화 <친구사이?>, 인터넷 사이트 <엑스존>,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와 <빌리티스의 딸들>, 토크쇼 <XY그녀>에 대한 반응으로 커밍아웃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 성전환자성별변경 특별법, 차별금지법, 서울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개입했던 경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성소수자는 가족구성권, 주거권, 교육권, 건강권, 노동권, 혐오에 기반한 폭력, 군대, 형사 절차, 수용시설에서 차별과 배제를 당하고 있으며, 나의 신분증이 나를 증명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불법인간’이자 ‘불법체류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음으로 김선일 판사는 외국의 성전환 관련 입법 역사와 한국 성소수자 관련 판례의 역사를, 이준일 교수는 트랜스젠더의 성별변경, 동성결혼(또는 동반자관계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관한 외국법의 동향을 통계적인 수치와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지정토론에서 한가람 변호사는 현장에서 느끼는 경험과 함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관한 현행 법령, 예규, 조례와 사법절차에 대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군대에서 성소수자가 ‘관심 사병’으로 ‘관리’ 받는 것이 실제로는 많은 인권침해를 일으키고 있고, 트랜스젠더의 경우 다수의 트랜스젠더가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성별정정에서 ‘인감이 날인된’ 부모의 동의서를 요구하기도 하며, 심지어 ‘탈의한 상태의 전신사진’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홍춘의 교수는 김선일 판사의 발표에 대한 토론으로 성별정정 허가요건, 차별금지 특별법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일반적인 차별 금지 특별법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등의 질문을 해주셨고,

마지막으로 정지원 판사는 이준일 교수의 발표에 대해 동성혼, 바람직한 동성결혼 형태, 배우자 또는 미성년 자녀가 있는 사람의 성별정정, 성소수자 문제 해결에서 사회통념과 중심질서라는 준거의 타당성 여부, 성별 정정에서 성전환 수술의 필요성 여부, ‘계간’죄 처벌의 타당성 여부, 동성애의 청소년 유해성 여부에 대해 법 해석의 관점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합토론에서는 학술대회에 참여한 모두가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해 국민 대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준일 교수는 “성소수자는 다수가 될 수 없는 ‘절대적 소수자’로, 다수의 인식이 바뀌길 기다리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나영정 연구원은 “모든 법이 다수의 합의를 거친 것은 아니며, 단지 오랜 시간 유지된 법이 권위를 갖게 된 것일 뿐”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성소수자처럼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법적극주의(법해석과 판결에 있어서 법문언에만 그치치 않고 정치적 목표나 사회정의 실현 등을 염두에 둔 적극적 법형성 내지 법창조를 강조하는 태도 - 위키백과)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에 대해 이준일 교수는 “성소수자 문제는 사법적극주의를 이야기할 만한 문제가 아니며, 그저 입법을 하면 될 문제”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또 성별정정에 대한 판결에서 ‘성전환증’이라는 의료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과, 군형법 제92조의 ‘계간’ 조항이 성소수자 문제가 아닌 성범죄의 측면에서 다뤄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학회에서 전 주눅이 들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지만, 사법계와 법학계에서 성소수자 이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또 생각보다 법은 해석하기 나름이며,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사법의 영역과 학문의 영역, 사회 운동의 영역에서 서로 해야 할 일이 나뉘어져 있고, 이번 학술 대회에는 상대적으로 참석이 저조했던(어쩌면 모든 게 정치일지도 모르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도 할 일이 많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부터 희망을 걸고 있었던 사법적극주의의 꿈이 산산조각 나긴 했지만, 오히려 성소수자 이슈가 별 문제가 아니며, 그저 입법을 하면 되는 문제라는 이준일 교수님의 말이 와 닿기도 합니다. 활동가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아무래도 전 계속 운동판에 있어야 하나 봅니다.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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