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겨울, 수혈과정 중 HIV에 감염 되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정부는 적십자사에 감염인 등 법정전염병 병력자의 개인 정보를 넘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당시 감염인은 물론 인권, 보건의료, 성소수자 단체들이 함께 모여 감염인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해당 정책에 대해 반대하였다. 그 연장선에서 2006년 2월 ‘혈액사고, 감염인의 잘못인가?’라는 주제로 법정전염병 병력자의 정보제공의 문제점을 다룬 공개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 토론회 통해 반복해서 발생하는 혈액사고를 과연 감염인들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 있는지, 그 의문에 도전하고자 했다. “수혈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염 사고는 감염인 탓이 아니라 사후 관리를 올바르게 하지 않는 정부와 적십자사의 책임”이라고 말이다. 한국에서 HIV 검사는 의무검사가 아니다. 자발적인 검사일 뿐이다. 정부는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통해 자신의 HIV 여부를 확인한다고 했지만 좋은 목적으로 헌혈에 임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HIV 양성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태라면 충분히 혈액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좀 더 중요한 것은 헌혈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자의적인 기준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수혈이 이루어질 수 있게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병력정보를 적십자사에 넘기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하기 위한 활동이 있을 때 동인련 사무실에서 몇 번의 회의가 열린 바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동인련 활동가들은 토론회를 함께 준비하면서 어떤 감성으로 이 운동에 참여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 당시 느낌은 동인련이 HIV/AIDS 이슈에 접근하는데 있어 단지 콘돔을 나눠주며 열심히 예방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HIV/AIDS 문제를 매우 진보적으로 해석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의미는 무엇일까? 성소수자 운동 진영 내에서 에이즈가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아니 마주치기 싫은 문제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HIV는 동성애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니 우릴 공격하지 말아달라는 정도의 외침이랄까! 하지만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성소수자의 차별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 바로 동인련의 입장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 동인련을 만났을 때 나는 감염인이 아니었다. 제대로 말하자면 몰랐었다. 그러나 2006년 2월 토론회 때부터 감염인의 입장에서 동인련을 만나게 되었다. 동인련이 HIV/AIDS에 대해 가지는 관점을 좀 더 가깝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2006년과 2007년에 개최된 성소수자 진보 포럼에서였다. 포럼주제, 전시, 문화행사 등 많은 시간과 공간을 배려해 감염인에게 열어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경험은 2006년부터 벌어진 에이즈예방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을 통해서이다. 2년간의 끈질긴 투쟁의 한복판에서 역시 동인련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작업을 감염인과 함께 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에이즈예방법은 많은 개정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제 내가 주되게 활동하고 있는 카노스(한국HIV/AIDS감염인연대) 활동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카노스는 2002년 10월 UNDP(유엔개발계획)의 지원으로 설립되었고 에이즈 감염인 스스로의 자긍심을 높이고 여러 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인권침해를 극복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에이즈에 대한 편견의 벽은 여전히 높고 감염인 스스로도 자긍심을 찾아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감염인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엔 아직 미약하다. 그래서 연대가 강력히 요구된다. 그래도 참 잘한 것이 앞서 언급된 활동들에 카노스가 비켜서지 않고 최선두에서 활동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이쯤에서 던지는 질문 한 가지. 동인련의 회원들은 카노스와의 연대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단순히 불쌍한 감염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정도인가 아니면 험악하게 살아가는 감염인의 삶을 간접경험하며 ‘저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라는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것인가. 과연 어떤 의미로 감염인에게 다가서고 있는지 진실된 고민을 해주었으면 한다.
2008년 10월,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와 질긴 인연의 사슬을 매듭지으려는 투쟁이 진행되었다. 10월 7일 로슈 규탄 국제행동에도 동인련은 함께 있었다. 2004년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은 필수 약제로 등재되었으나 로슈는 약값이 이윤에 맞지 않는다며 공급을 중단하고 있다. 그래서 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윤가브리엘처럼 내성이 생긴 환자들을 죽음 직전 까지 몰고 가지 않았던가? 약은 감염인에게 생명과도 같다. 단순히 감기약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약이 없으면 예전처럼 자신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힘들다. 약이 있어도 쓸 수 없는 현실. 이것이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감염인들의 현주소이다.
처절한 현장에서 감염인의 가족이 되고 있는 동인련에 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2008년 초 카노스 후원의 밤에서 동인련에 감사패(누아상-단체부분)을 선사했었다. 상을 수상하기 전 밤새 떨렸다는 사무국장의 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아마 그 떨림은 동인련이 아직도 순수하게 감염인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카노스와 동인련. 그 연대의 깃발은 지금도 휘날리고 있다. 우리는 좀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감염인 인권 문제에 다가서기를 바란다. 그 다가섬의 공간 안에 분명 동인련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정영진 _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KA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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