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함께 살 수 있을까!

Posted at 2008.10.30 12:56// Posted in HIV/AIDS
>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 '너, 나, 우리 랑' 10월 호 

 

"우리도 생명을 연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죽어야 합니까?, 약이 버젓이 있는데도 왜 죽어야만 합니까? 에이즈 감염인들도 생명을 연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 10월7일 서울 대치동 로슈(다국적 제약회사) 건물 앞에서 한 에이즈 감염인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이 날은 '푸제온'이라는 필수 에이즈 치료제를 타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에 공급하지 않고 있는 다국적 제약기업 로슈를 상대로 벌인 국제적인 항의시위의 마지막 날이었다. 프랑스 Act Up Paris(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 권력해방을 위한 에이즈 연대)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이번 국제공동행동에는 프랑스, 태국, 미국, 한국의 에이즈 감염인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하였다.

국내, 국외 많은 단체들이 이번 국제 공동행동에 함께했다 _ 촬영 : 동인련



비싸서 못 먹는 약은, 약이 아니라 독


로슈가 생산하는 푸제온은 이전 HIV 약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의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으로서 한국 식약청은 2004년 5월 승인하였다. 하지만 로슈는 정부와의 약가 협상 실패를 이유로 푸제온 공급을 현재까지 거부하고 있다. 로슈가 요구하는 약가는 연간 2천 2백만원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인 나라에서 그에 버금가는 약가를 요구하는 것은 그 누구의 상식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가격은 이미 한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HIV 치료제 중 가장 비싼 약제의 두 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살아가는 감염인의 경우 푸제온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는 푸제온이 반드시 필요했던 환자였다. 하지만 그는 약값은 고사하고 에이즈 감염인 쉼터에서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로 지내고 있다. 한국에 공급되는 치료제는 모두 내성이 생겨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가 공급되지 않으면 면역수치를 쉽게 올리지 못한다. 푸제온은 그에게 삶은 연장시켜주는 유일한 치료제였지만 로슈는 그 약을 공급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외국의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겨우 위독한 순간을 모면했다. 하지만 한쪽 눈은 실명했고,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허가까지 받은 약이 한국에 있어도 그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접근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일상생활마저 하지 못할 정도의 몸 상태가 된 것이다. 과연 누구의 탓이란 말인가. 정부 역시 엄청난 약가를 불러내고 배짱을 부리고 있는 기업을 통제할 방법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필수약제로 등재해 놓은 것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기업이나 국가 모두 에이즈 감염인의 건강권을 내팽기고 있다.


의약품 접근권은 특히 에이즈 환자들에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아래 시장경제 속에서 의약품은 상품으로서 취급받는다. 그 상품에 접근할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몸이 아파도 약을 만지고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제한받는다. 공급과 수요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약기업은 약을 공급하지 않고, 정부는 시장경제를 들먹이며 기업을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사이 환자들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10월1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전 세계 로슈 규탄 국제공동행동에 참여한 에이즈 감염인, 활동가들은 로슈과 한국 정부를 규탄하며 '푸제온을 당장 공급하라!'로 요구하였다.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들의 외침은 아직 미약할 수 있어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들춰내는 운동으로 성장하기 위한 한 발에 떼기 시작했다.



Living Together : 함께 살기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가 바로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를 퍼트리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참 지겹도록 들어왔던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에이즈 감염경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분리해 나가려 참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감염경로(혈액, 정액, 질분비액 등)가 명확한 질병이다 보니 존재를 의미하는 동성애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말이다. 또한 게이들의 사생활까지 애써 들춰내며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공포심도 ‘우리는 그렇지 않다’라는 추상적인 답만을 가지고 싸워왔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제는 접근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조차 게이 감염인을 ‘벅차게 놀아서 저렇게 됐지, 콘돔을 사용하지 그랬어’ 하며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개인의 도덕성을 강조하며 ‘너 네들 때문에 우리가 욕먹는다’ 라는 식의 말을 들을 때면 정말 말문이 막힌다. 과연 이 말이 누구에게 이로울 지 생각해 볼 문제다!


지난 해 HIV/AIDS 관련 연구 차 일본에 다녀온 한 게이 감염인이 나에게 의미심장한 포스터 하나를 주었다. 지금도 방 문 앞에서 자랑스럽게 걸려있는 그 포스터는 게이 감염인 공동체에서 발행한 것으로 비감염인 게이들을 파티가 열리는 게이바로 초청한 포스터다. “Real Living Together" 가 파티의 제목이고 부제로 ”이 거리에는 HIV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이 포스터를 처음 받았을 때는  ‘한국에서 이런 파티는 불가능 하겠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무슨 연유에서 이 생각이 먼저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반시티나 게이커뮤니티에서 들어왔던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 많은 고민들을 해 왔다. 사실 이 고민은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고 언제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게이 감염인들의 삶 속에서 동성애라는 존재와 에이즈라는 질병이 어떤 의미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보조식품을 찾고, 때에 따라 지정된 병원에 가서 면역수치 검사를 봤지만 자신의 이반친구들에게조차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질병. 소문에 소문을 거쳐 전혀 알지 못한 제3자가 에이즈라는 질병을 알았을 때 느끼는 공포감. 사랑조차 쉽게 얘기하지 못하고, 찜질방/사우나를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커뮤니티에서 뭇매를 맞기 일 수다. 함께 살기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80년대 초반 전 세계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이름 모를 질병으로 죽어나가고 있을 당시 동성애 운동은 친구와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면서도 질병의 이름조차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정치권을 향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부가 말하는 순결보다 안전한 성행위(Safe Sex)를 말했고, 에이즈 치료제의 개발을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도 ‘성적인 문란함’에 대해 논쟁이 존재하였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찜질방, 사우나 등을 이용하지 말자는 캠페인도 시도되곤 했다. 이런 캠페인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것은 바로 커뮤니티의 ‘억울함’ 때문이었다. 왜 우리가 죽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존재했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족을 구성해 성적 행위를 함께 나눌 수 있기도 하고, 안전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면 하루에 100명을 만나든, 1년에 1명을 만나든 상관없는데 마치 정부가 성적 도덕심을 강조하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통제하려 든다는 생각이 오히려 강했던 것이다.


누구든 우리들의 프라이버시 -특히 성적관계에 있어-를 간섭하고 통제할 수 없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문란함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에이즈라는 질병의 공포심을 앞세워 통제하려한다면 이제 ‘그렇지 않다’라는 수동적 태도보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라는 식의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커뮤니티 역시 도덕적 잣대를 똑 같은 기준으로 적용하기보다, 그들을 어떻게 포용하고 능동적 대응을 함께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문란함은 형체 없는 추상에 가깝고, 누구의 기준인지 몰라도 성관계 횟수에 대한 제한도 없다. 막연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문란함에 대해 당당히 맞설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에이즈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우리에게 모텔비 한번 준 적 없는 정부가 문란함을 논할 자격이 된단 말인가


많은 장벽들이 놓여있지만 한국에서 비감염인, 감염인 게이들이 함께 모여 어울릴 수 있는 파티가 개최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면 이제부터 시작해보면 된다. 가장 작은 행동으로는 주변에 감염인 친구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친구들과 어울릴 때마다 에이즈에 대해 편견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커밍아웃으로 그동안 알아왔던 이반친구가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성적관계 여부와 같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대한 질문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감염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비난받거나 왕따를 당하게 된다면 ‘적극적인 방어’만큼 최선의 방법은 없다.

좀 더 가능하다면, 감염인들의 현실에 눈을 돌리도록 하자. 그것은 종로3가 낙원동 한 귀퉁이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내 친구 삶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약이 제때 수급되고 있는지.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고 있는지. 그 관심이 단지 질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약이 제대로 수급되지 않는 현실과 맞서 싸우는 공간까지 나올 수 있고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한 현실에 함께 분노한다면 우리들이 포옹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빠르게 단축될 수 있을 것이다.


12월1일 : “너의 얼굴을 보여줘”


12월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이 날은 1988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보건장관회의에 참가한 148개국이 에이즈 예방을 위한 정보교환, 교육홍보, 인권존중을 강조한 '런던선언'이 채택되면서 제정되었다. 한국에서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등이 HIV/AIDS 감염인이 처해있는 현실을 배제한 채 1회성 홍보행사 및 정부 직원의 상주기 행사를 세계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정부가 세계에이즈의 날을 기념할 자격이 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왜곡된 정보와 오해를 확산시켜왔고, HIV/AIDS 감염인들을 시한폭탄과도 같은 감시대상으로만 간주해 왔다. 또한 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 예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은 외면한 채 허공에 대고 에이즈 예방만 말하고 있다. 반면 감염인들은 인권증진의 필수요건인 치료조차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세계에이즈의 날을 감염인 인권의 날로!
매해 에이즈의 날, 감염인 단체와 인권단체 등은 여러 주제로
기자회견 등 행사를 개최해왔다.


다행스럽게도 올 해 에이즈의 날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풍성한 활동들이 기획되고 있다. HIV/AIDS 감염인들의 치료 접근권 확보를 주요 활동 목표로 두고 토론회와 문화제 등, 로슈와 정부에 맞선 다양한 활동들이 현재 준비 중이다. 그 중에 백미는 1,201명의 감염인과 지지자들의 페이스 선언이 아닐까 한다. 페이스 선언은 단지 얼굴뿐 만이 아니라 자기 신체의 일부를 드러내며 지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감염인들의 얼굴은 늘 모자이크 처리되어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지만 지지자들의 페이스를 레드리본으로 형상화하여 에이즈 감염인들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알린다는 계획이다. 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을 뛰어넘는 다양한 활동들이 전개될 예정이다. 성적지향을 뛰어넘어 감염인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멋진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기 바란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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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31 22:47 신고 [Edit/Del] [Reply]
    블로그로 담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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