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다. 에이즈 예방과 감염인 인권을 위해 제정한 전 세계적인 ‘기념일’인 셈이다. HIV/AIDS 문제가 결코 가볍게 다루어질 문제가 아님에도 ‘기념일’이라 언급한 것은 이 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이즈의 날’ 정부행사가 너무나 기만적이게도 ‘기념일’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염인의 인권은 손톱만큼도 증진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노고를 치하하는 상을 주고, 잘했다고 박수치는 일들이 이 날 12월 1일,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이 날 행사를 주최했던 이들은 다국적 제약회사가 에이즈 치료제를 독점하고 공급하지 않아 감염인들이 죽어나가는 것에 대해 뒷짐 지고 구경만 하던 이들이었다.
사실, 이러한 정부행사가 비단 올해에만 ‘그들만의 잔치’였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이제껏 이 행사장에 에이즈의 날의 주체인 감염인들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진입하는 것조차 금지되어왔다.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정부의 기만적인 움직임에 반대하는 의미로 12월 1일을 ‘에이즈의 날’이 아닌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로 명명하고 독자적인 활동들을 3회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12월 1일 광화문의 서울 역사박물관 앞에서 감염인 인권 증진에 뜻을 같이하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날씨였지만,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 준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감염인과 비감염인들이 함께 모인 우리들은 모두 준비된 가면을 쓰고서 이 사회에서 가면 속에 갇힌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에이즈 감염인들을 대변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섰다. 때문에 우리에게 쏟아지는 비 따위가 장애물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 모질고 거친 차별을 이겨내고 있는 감염인들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한낱 물방울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에서 에이즈 감염이 발견된 지 23년 만에 감염인의 이름으로 당당히 거리로 나섰다. 서울역사박물관에 기록되어도 좋을,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진 출처 _ 민중언론 참세상 (이정원 기자)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의 짧은 집회를 마치고, 우리는 본격적인 행진을 시작하였다. 광화문 네거리로 우리 행렬의 선두였던 꽃마차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우리는 소리 높여 감염인에 대한 인권과 치료접근권 보장을 주장했으며, 자본의 논리로 치료제 공급을 거부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광화문 하늘 위로 쏘아 올렸다.
사람들의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나는 한국 사회에서 에이즈 감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때때로 마주치는 혐오 섞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으며, 그것을 온전히 혼자서 이겨내야만 한다는 사회의 강박적 강요가 내 안에서부터 뒤틀리듯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함께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그 당당함 덕분에 나는, 외면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선전물을 나누어주면서,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작은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혼자서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이 위대한 역사가 외롭게 숨어 지내고 있을 감염인들에게 목격된다면, 그들에게 당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져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사진 출처 _ 민중언론 참세상 (이정원 기자)
프레스센터 앞까지 행진한 우리는 그곳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정부행사장으로 진입하였다. 다른 해와는 달리, 감염인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행사장 안까지 무리 없이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칫 지난번처럼 행사장에 들어서는 것 자체를 저지당해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긴장감을 조금도 늦출 수는 없었다. 그런 우리의 긴장감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 휘황찬란한 행사장 안에는 고상하게 예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표정으로 착석해 있었다. 오직 몇몇 기자들만이 사진기를 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우리는 숨을 죽이고 그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개회사로 행사가 시작되고 실망스럽게도 그녀로부터 보건복지부장관이 불참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국민의례를 거부한 채, 자리에 앉아있던 우리는 그 소식에 잠시 넋을 놓고 있어야만 했다. 혼란스러움과 실망감, 분노가 뒤섞인 알 수 없는 감정이 덮쳐왔다. 누군가에게는 생명과도 같이 중요한 어떤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바빠서 제칠 수 있는 그토록 가볍고 하찮은 자리가 될 수도 있음을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한 감정적 혼란은 빠르게 수습할수록 좋은 것이었다. 우리는 예정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의 주장이 담긴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시작하였다. 질병관리본부장의 감염인 인권 운운하는 공허한 연설이 장내에 퍼져나가는 동안, 우리는 차별적인 감염인 인권 정책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저마다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우리를 향했고, 우리는 더욱 굳은 표정으로 단상 앞의 위선자들을 응시했다.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하였다.
식순에 의해, 드디어 감염인 발언 차례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들 단상으로 올라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주장을 펼쳐보였다. 무작정 살포하는 콘돔보다, 감염인 인권증진이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에이즈 예방책임을 주장하는 감염인의 목소리가 장내를 가득 메우는 동안 우리는 팔이 아파오는 것도 모르고 피켓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놀란 표정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편처럼 눈앞에 떠다녔고, 잠시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느끼자 어느새 발언이 끝나 있었다. 우리의 천사,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감염인인 그는 있는 힘껏 소리 내어 장내의 사람들을 향해, 아니, 어쩌면 차별과 서러움이 가득한 이 세상일지도 모르는 그곳, 어딘가를 향해 그는 힘겹게 외치기 시작하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인권 없는 에이즈의 날 필요 없다!! 감염인 인권을 보장하라!!”
“에이즈 감염인은 꽃보다 아름답다!! 함부로 꺾지도 짓밟지도 말라!!”
해와 _ 동성애자인권연대 걸음[거: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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