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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동성애 혐오

“동성애 치료”가 “희망”이 되지 않는 날이 온다면

by 행성인 2013. 9. 5.

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그 때 저는 정말 위험한 시기를 보냈어요. 저를 상담하던 치료사가 저를 동성친구를 좋아해서 에이즈에 걸려서 몸이 아픈 거라며, 기도원으로 보냈거든요. 그 기도원에서는, 저에게서 악령을 쫓는다며 여럿이서 저를 때리기도 하고, 정화 의식을 한다며 제 손발을 묶은 채로 저를 물 속에 쳐박기도 했었죠. 나중에 저는 그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훨씬 나중에서야 그 일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너무도 괴로워했었죠."

- 무지개행동 ‘이반스쿨’ 프로젝트 "모교에 보내는 편지" 중.


얼마 전, 미국의 가장 큰 동성애 전환치료 단체였던 엑소더스 인터내셔널(Exodus International)이 성소수자들에게 사과문을 남기며 37년의 역사를 접고 문을 닫았다. 이 단체의 대표인 알란 챔버스(Alan Chambers)는 “많은 이들이 경험해야 했던, 상처와 고통,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끼며 보내야 했던 시간”에 대해 사과했으며, “성적지향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홍보하고, 성소수자의 부모에게 낙인을 가하는 회복 이론(reparative theories)을 홍보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아내와 자식이 있지만, 그 스스로도 게이였던 그는 또한 “지금도 여전히 동성에게 끌린다[각주:1]”고 인정하기도 했다.


엑소더스 인터내셔널 대표 알란 챔버스(오른쪽)와 그의 아내(왼쪽)



동성애 치료, “전환치료”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란, 개인의 성적 지향을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바꾸기 위해 행해지는 비과학적인(pseudo-scientific) 치료행위를 말한다. 우리는 이 단어 속의 ‘치료’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치료’라는 말을 쓰기 위해선 먼저 동성애가 ‘질병’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질병이라고?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는 그 공식 진단 매뉴얼인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각주:2], 2판(DSM II)>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을 삭제했다. 이러한 결정은 과학적인 문헌 조사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상의를 거쳤고, 동성애가 정신 질환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의견 일치에 따른 것이었다고 미국정신의학회는 밝히고 있다[각주:3]. 이후 1990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고, 이날을 기념해 매년 5월 17일을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로 정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미국정신의학회와 미국심리학회는 소위 ‘전환치료’로 불리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이제까지 성적지향을 ‘전환’ 할 수 있다거나 그러한 치료가 정신/심리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어떠한 신뢰할 수 있는 연구도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오히려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고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각주:4]. 미국정신의학회는 1998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환치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회복 치료’나 ‘전환 치료’와 같은, 동성애가 그 자체로서 정신 장애라는 가정 또는 환자가 그/녀의 동성애적 지향성을 바꿔야 한다는 가정에 기반한 어떠한 정신의학적 치료에도 반대합니다.”



한국에도 있다


전환치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있다. 이 분야에서 유명한 이요나 목사는 ‘성교육상담센터 홀리라이프’라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동성애가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을 퍼트리고 있다. 본인의 카페에서 “요나짱”이라는 끼스러운 아이디를 이용하는 그는 사실 엑소더스의 알란 챔버스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예전에 게이였던” 사람이다. 그는 심지어 잘나가는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 사장이었는데, 어머니가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계기로 ‘성경적 삶’을 걷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자신의 성적지향 때문에(정확히는 자신의 성적지향에 대한 사회의 시선 때문이지만) 부모가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그의 불행은 분명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겪는 불행과 다르지 않다. 불쌍한 사람이긴 한 것이다.


이요나 목사


그러나 그가 최근 진행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동정심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얼마 전 그는 러시아의 그것과 똑같은 “비윤리적 성문화 선전교육 금지법”을 제안하며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이요나 목사의 카페에 들어가서 그가 적어놓은 글을 보고 있으면 이건 뭐 동성애혐오라기보단 그저 성억압이 극에 달한 경우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카페의 카테고리 중엔 “성과의 전쟁”이라는 카테고리도 있을 정도다. 


이요나 목사의 망상과는 달리 동성애자이면서도 깊은 신앙심을 유지할 수 있다. 성소수자이면서도 오히려 더욱 깊은 신앙심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미 한국에도 성소수자 인권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교회와 성당이 존재한다. 사실 동성애자가 기독교를 믿는 것은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성경은 그 시대적 해석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 마련이다. 성경에는 동성애를 죄악시 하는 구절이 딱 열 구절 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는 구절은 이보다 훨씬 많고, 여성의 출산과 월경 모두 죄라는 구절 또한 존재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새우와 랍스터 같은 갑각류도 먹어선 안되고, 결혼했을 때 아내가 처녀가 아니라면 때려 죽여야 한다. 얼마 전 동인련의 한 회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성경에 동성애 관련 구절이 딱 열 구절, 부자 되지 말라는 구절이 천 구절이 넘는데, 제가 다녔던 교회의 목사는 매일같이 ‘부자되세요’를 외치곤 했어요."



혐오세력의 주장으로서의 전환치료


이성애자로의 “전환 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동성애 혐오 세력의 핵심 주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주요 정신의학회와 심리상담학회가 모두 동성애가 정신병이 아니며, 전환치료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도, 이들에겐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이들은 이에 대해 “반론”을 주장하고 있기도 한데, 동성애가 질병 목록에서 빠지게 된 것은 동성애자들이 로비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 웃긴 게, 동성애자들이 돈이 많아봐야 교회가 갖고 있는 돈만큼 많을까? 이런 중대한 사안에 대해 교회는 로비를 안 했던 걸까?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이렇듯 억지주장을 하면서까지 이들이 “전환치료”의 가능성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이성애자로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은 동성애자의 모든 권리 주장을 부숴버릴 만큼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될 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이성애자가 되지 않은 것은 네 책임이니 국민의 혈세로 성소수자 권리 보장해 달라는 말은 하지 말라” 따위의 주장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동성애자로 선택하건 이성애자로 선택하건 간에, 본인 인생을 백배 쯤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일이다.



내 아이의 행복


문제는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성소수자와 성소수자의 가족들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날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다. 이성애자로 살면서 “정상적인” 사람들이 갖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아마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내 경우에도 그랬다. 가족들이 내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고 난 후,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과연 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지의 문제였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행복할 수 없다”였고, 의사인 누나가 “동성애가 서른 살 쯤 되면 대부분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궤변을 늘어 놓으면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일단 조용히 살라는 식으로 날 회유했다. 그 후 일 년 반 동안 나는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았고, 부모님이 동인련에 후원을 시작하면서 화해하게 됐다. 지금도 내 아버지는 내가 이성애자가 되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성소수자 인권단체를 후원하면서 동시에 전환치료를 믿는 건 무슨 조화냐는 내 질문에 아빠는 이렇게 답했다.


“(전환치료에 대한) 1%의 희망도 버릴 수 없다는 것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부모로서 그런 욕심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선천적 장애인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힘든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제한되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문제는 사회에 성소수자의 권리가 얼마나 신장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지 동성애 그 자체가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이상 동성애를 “치료”해서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에서 전환치료 단체가 문을 닫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미국은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가 살기에 점점 더 좋은 곳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더 이상 전환치료를 찾아 엑소더스 같은 곳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동성애자로 살아도 이성애자로 사는 것 만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동성애 혐오 세력들은 동성애자들이 “불행한 삶”을 산다는 사실을 동성애를 반대하는 주요 근거로 내세우곤 한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이 사회적 차별에 노출되어 있고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불행한 삶을 산다는 것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좀 더 신장시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순 있어도 동성애 자체를 반대하는 근거가 될 순 없다. 이러한 동성애 혐오 세력들의 주장은 마치,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하는 것이지 성폭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과 같고, 여성 인턴이 성추행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더 이상 여성 인턴을 뽑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동성애자여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있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라는 말이다.



전환치료가 중단되어야 하는 이유


미국심리학회는 전환치료의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주요 정신건강 기관들은 성적 지향을 바꾸기 위한 치료에 대해 공식적인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성적 지향을 바꾸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치료(종종 회복치료 또는 전환치료라고 불리는)가 안전하다거나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갖춘 어떠한 연구결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전환치료를 주창하는 것은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며 이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라나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들에게 특히 쉽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환치료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그것은 동성애자인 것이, 그리고 동성애자로서 겪어야 하는 모든 아픔이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또한 전환치료는 성소수자에게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자괴감을 강요하고, 성소수자의 부모에게도 낙인을 부여한다. 나는 이요나 목사가 겪은 불행이 매우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했던 것과 똑같은 억압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이요나 목사의 모습이 더 불쌍하고 화가 난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한 걸까. 얼마 전 무지개행동 이반스쿨팀에게 사연을 보내 준 한 성소수자의 이야기는, 이 나라에서 전환치료가 성소수자에게 얼마나 심각한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때 저는 정말 위험한 시기를 보냈어요. 저를 상담하던 치료사가 저를 동성친구를 좋아해서 에이즈에 걸려서 몸이 아픈 거라며, 기도원으로 보냈거든요. 그 기도원에서는, 저에게서 악령을 쫓는다며 여럿이서 저를 때리기도 하고, 정화 의식을 한다며 제 손발을 묶은 채로 저를 물 속에 쳐박기도 했었죠. 나중에 저는 그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훨씬 나중에서야 그 일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너무도 괴로워했었죠."

- 무지개행동 ‘이반스쿨’ 프로젝트 "모교에 보내는 편지" 중.


미국에서는 동성애자의 존재가 제법 오래전부터 가시화된 만큼 전환치료의 역사 또한 오래된 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전기 충격 요법과 같은 잔인한 방법들이 “치료”라는 이름 아래 행해졌는데,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 캘리포니아 주와 뉴저지 주에선 심한 정신 장애, 자살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전환치료의 위험성을 우려하며 아예 전환치료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뉴욕 주 등 미국의 다른 곳에서도 전환치료 금지법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의 교회와 각종 기도원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았던가.



세계 최대 전환치료 단체 ‘엑소더스 인터내셔널’ 해산의 교훈


사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될 수 있는지는 동성애자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확신하기 어렵다. 연구하기도 그리 쉬운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환치료” 단체의 대표가, 성경과 전환치료에 대해 그토록 강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 “지금도 여전히 동성에게 끌린다”고 인정했다는 것이야말로, 전환치료의 허위성을 가장 잘 증명해주는 사건이 아닐까. 


동성애자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더 이상 헛된 희망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동성애자가 이성애자 만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고민해본다면, 더 쉽게 자식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소수자의 가족으로서 자식의 권리를 위해 함께 힘쓴다면, 언젠간 “동성애 치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동성애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테니 말이다. 


  1. http://edition.cnn.com/2013/06/20/us/exodus-international-shutdown/?hpt=hp_t2 [본문으로]
  2.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은 미국 정신의학 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출판하는 서적으로, 정신질환의 진단에 있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본문으로]
  3. http://www.psychiatry.org/mental-health/people/lgbt-sexual-orientation [본문으로]
  4. http://www.apa.org/helpcenter/sexual-orientation.aspx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