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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동성애 혐오

“왜 희생자를 기억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인가?” - 스티븐 스프링클 교수 강연회

by 행성인 2013. 10. 22.


조나단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10월 15일 화요일, 섬돌 향린교회에서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의 스티븐 스프링클 교수의 강연회가 열렸다. 스티븐 스프링클 교수는 성소수자 혐오 범죄에 희생당한 14명의 이야기를 담은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의 저자로, 이번에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공식 강연 주제명은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 - 성소수자 혐오범죄에 대한 통찰, 그리고 그 구조적 문제를 말한다’ 였다. 그러나 실제 강연 주제로 스티븐 스프링클 교수는 ‘내 아이를 잊지 말아라 - 성소수자 혐오범죄로 희생된 사람을 기억하는 게 왜 정의로운 일인가’를 내세웠다. 한국에 강연을 간다고 하자, 희생자였던 15살의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강연 제목으로 해달라며 부탁한 말이었다고 한다. 


강연회장은 약 7~80명의 사람들로 꽉 들어차서 자리가 비좁을 정도로 그 열기가 높았다. 강남순 동(同) 대학교수가 순차 통역을 맡았다. 한국어로 옮김에 있어서 낯설법한 용어는 부연설명을 하거나 용어의 정의를 내리는 등 통역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서로를 댄싱 파트너라고 일컬으며 강연자, 통역자, 참석자가 함께 유기적으로 어울리며 고민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스티븐 스프링클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의도살인과 같은 강력범죄의 이야기는 청자의 삶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강력하게 몰두시키기 마련인데, 듣는 과정에서 청자가 살인 피해자가 자신이 될 수도 있었음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자기자신으로 재탄생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소수자 혐오 범죄도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가? 자신이 당하지 않을 수 있을 법한 살인(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닐 경우)에도 같은 강력한 끌림을 주는가? 이것이 그의 첫 질문이었다. 교수는 그렇다고 단언한다. 당장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흑인, 노예, 유대인의 혐오범죄 사례가 결국 인류 보편적으로 동감하며 애도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듯, 성소수자 혐오 범죄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사건과 이야기가 주변 사람의 눈을 뜨이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스프링클 교수가 인터뷰한 사람 중, 혐오 범죄 피해자 매튜 셰퍼드 사건을 담당한 수사반장 오멜리는 사건을 맡기 전에 굉장한 호모포비아였다고 한다. 그러나 끔찍하게 살해당한 현장을 접하고 “눈이 떠졌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생각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인권운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매튜 셰퍼드를 단지 숫자에 불과한 희생자 중 하나가 아니라 실제 내 친구, 가족과 같은 진짜 사람으로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혐오범죄는 그저 비극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끔찍한 부정의를 알리는 계기가 됨으로써 사람을 변화시킨다.


상황을 더 비극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존재한다. 혐오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이성애적,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아오면서 차별 행위와 혐오 범죄 행위를 정의를 행한 일이라고 정당화하는 경우다. 특히 종교가 여기에서 강력한 기제로 작동한다. 혐오 범죄 중 열에 아홉은 종교적인 신념을 기반으로 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이에 맞서는 신앙 공동체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성소수자들이 과거와 달리 신앙 공동체를 떠나지 않으며 비난이 와도 물러서지 않고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주변 교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커밍아웃한 신앙인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신앙공동체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성소수자가 직접 자신들의 신앙 공동체를 꾸리기도 한다. 지역의 모든 교회들이 성소수자 혐오범죄에 희생당한 피해자의 장례식을 치르기를 거부하자, 이에 부조리를 느낀 사람들이 성소수자들도 포용하는 교회를 세우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런 과정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퀴어적으로 서로를 보살피는 공동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희생자들은 단지 비극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라 이야기의 등장인물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다시 불행이 반복되지 않고 불행을 넘어서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고 다시 살아난다고 스프링클 교수는 믿는다. 그래서 혐오 범죄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움직임은 모든 사람이 존엄성을 가지고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듣는 청자의 선함을 밖으로 드러나게 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4월에 진행했던 육우당 추모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육우당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세상이 아닌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죽은지 10년이 지난 올해 많은 사람들이 대한문 앞에 모여,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 하면서 육우당의 고민을 계속 이어가는 자리를 가졌다. 그것은 누군가의 비극적인 죽음을 떠올리는 행동만이 아니라 그를 추모하며 그의 고민들을 다시 생생하게 살리는 자리였다.


강연 중인 강남순 교수(왼쪽)와 스티븐 스프링클 교수(오른쪽)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은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문제가 더 많이 불거져 있고 혐오 범죄의 수는 적은데 그 차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교수의 말에 따르면 공식적인 커밍아웃한 사람의 수가 적어 혐오범죄 피해자의 수가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도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 사람이 증가하면서 혐오 범죄가 늘었다고 한다.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적은 까닭은 사회적으로 밝히기에 위험이 크기 때문인데, 이 경우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된 죄책감 때문에 자살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혐오 범죄와 자살 모두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세상이 만들어낸 비극임을 교수는 지적했다. 


스프링클 교수는 시종일관 동성애혐오가 인종차별이나 나치즘과 마찬가지로 역사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냈다. 교수의 낙관적인 믿음을 마냥 믿고 싶다. 비록 미국의 사례더라도 그의 책이,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사람의 선함을 깨워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퀴어적인 공동체가 더 많이 생겨날 수 있는 바탕이 되길 바란다. 한국에서 그의 책이 출간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

스티븐 스프링클 지음, 황용연 옮김, 알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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