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물, 불, 나무, 돌 (레즈비언 에세이 LETSSAY)
달(月) : 저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이름 석 자 마저 나에게 맞춘 듯, 내가 좋아하는 글자로만 이름 지어진 그런 여자가 있다. "달" 이라는 잘 어울리는 가명까지 선택했지만, 가명을 쓰는 게 슬프리만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달. 둥그런 달처럼 빛나는 그녀, 달. 내 사랑하는 여자는 달이다. 짝사랑은 아니다. 나는 달을 사랑하고 달 역시 나를 사랑해주니까. 그렇다고 연인관계도 아니다. 달은 남자친구가 있었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단 한 번도 우리는 사귄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으니까. 우리는 자매도, 친척도 아니다. 서로 사랑하는 친구일 뿐 이다.
악연. 새 학교 새학년 새 학기 첫날. 아이러니컬하게도 주중의 마지막, 금요일이던 그날. 달은 내게 말했다. 너랑 악연이 좀 있었지? 나는 멋쩍게 웃었다. 사실 그 악연은 끝나지 않은 듯 했다. 나는 달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달이 처음 만나던 사 년 전 그 때부터, 이미 달은 나와 달랐었다. 달은 똑똑하고 노래를 잘하고 착했으며, 웃음이 많고 장난기가 있었다. 그해 비해 나는 장난이라는 명목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시커먼 거짓말을 내뱉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팠다. 그리고 곯아버린 과육을 도려내는 손처럼, 달은 매정했다. 어쩌면 내가 매정했을 수 도 있다. 어쨌든 그 때의 달과 나는 악연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곯아버린 과육이었고, 달은 순수한 손이었다. 착한사람이라고 해서 곯은 과일을 먹지 않는다. 달 역시 그랬다.
삼년사이에 나는 삼십 센티가 가깝게 자랐고, 나를 욕하는 사람을 미워할 수 있게 되었으며, 화내는 법 역시 배웠다. 새 학교 새학년 새 학기 첫날, 달은 그 때 처럼 똑똑하고 노래를 잘하고 착하며, 웃음이 많고 장난기 있는 눈빛으로 앉아있었다. 나는 다시 곯아버렸다.
나는 곯은걸 들키지 않기 위해 도망쳤다. 그런데 학원친구의 입에서, 중학교 동창의 SNS에서, 우연히 만난 옛 친구의 핸드폰에서, 밥을 같이 먹는 사이의 친구의 손에서 달이 나타났다. 어쩌면 내가 달을 너무 의식한 탓도 있었겠지만, 달은 그렇게 내게 나타났다. 나는 결국 달에게 내가 곯은 과일임을 고백했다. 어서 나를 내쳐달라고, 난 곯아버려 먹을 수 가 없다고. 그리고 그 무구한 손은 다시 나를 내치려 왔다. 나는 매정함을 기다렸다. 그런데 손은, 아니 달은 나를 따사로이 대해주었다. 악연은 과거일 뿐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쩌면 느렸을 수 도 있다. 하교 시간은 달랐지만, 하굣길은 언제나 달의 목소리로 가득차있었다. 달의 목소리는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내가 또다시 달을 떠올릴 때, 달은 종종 별 빛 아래 있었다. 차가운 버스정류장 의자는 그날따라 편안했고, 달과 나는 느릿느릿한 버스를 몇 대나 놓쳤다. 아파트촌의 밤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달과 나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배차간격은 8분이었지만, 그날의 배차간격은 8초였다. 핸드폰이 몇 번을 울리고 나서야 달은 나를 배웅했다. 그 후에도 나는 그 버스정류장 앞에서면, 달을 떠올리곤 한다.
가끔 계속 달과 내가 악연으로 이루어진 존재였다면, 하고 생각해본다. 중학교 동창, 나와 닮기로 소문난 남자애, 무척이나 좋아하는 학원친구들에게도 너무도 소중한 달이다. 몇 번이고 짝이 되고, 같은 조가 되고, 심지어 번호순서대로 앉힌 음악실 자리마저 붙은, 그런 달이다. 달과 악연이 계속 있었다면, 고등학교의 삼분의 일, 어쩌면 그 이상과 그 이전의 과거까지 망쳐졌을지도 모른다. 달은 나에게 그렇게 큰 존재가 되었다.
어휘가 부족한 탓에 종종 앞뒤가 맞지 않는 나의 말을, 달은 시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쓰게 되었고, 몇 주 동안 달을 시 속에 옮겼다. 나는 그 시로 상을 받았다. 달은 책 사이에 끼어있는 자신의 초상을 보고 기뻐했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이 시 속에 나오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너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인 것 같다고. 너의 구원자이자 너의 원동력일거라고. 나는 그 말을 달에게 하지 않았다. 달이 알아주길 바라며 더 많은 시를 썼다. 나는 달을 사랑했다. 달에게 나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
달은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었다. 스치는 손끝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달에게 물었다. 왜 더 이상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느냐고. 달은 당연한 것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달에게 나는 당연한 존재가 되었다. 달과 나는 서로 사랑한다.
언젠가 한 친구에게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백한날, 그 친구는 말했다. 달은 안 돼. 왜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알고 있었다. 왜 달은 안 된다고 하는지. 나는 달을 여자로써 사랑하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나는 친구로써 달을 사랑할 뿐이라고. 그 친구는 내 말을 이해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나에게는 달이라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레즈비언이 사랑하는 여자, 하지만 친구. 나에게 친구로써의 사랑과 여자로써의 사랑의 차이를 깨닫게 해준 내 사랑하는 달. 좁은 동네라서 그런지 인연들이 얽히고 섥혀 친해질 수밖에 없었던 달. 늦은 밤 느닷없이 달을 떠올린다.
불(火) : 헛된 꿈
무지개를 실제로 보기 전에 나는 무지개를 그릴 줄 알았다. 빨주노초파남보 둥근 선을 죽죽 그어내면 그게 무지개였다. 두 눈으로 하늘에 흐리멍덩하게 떠 있는 무지개를 처음 보았을 때 조금 실망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색깔 사이의 구분도 애매하고, 있긴 한데 확실히 있는지, 없는지,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나마도 곧 사라지는 그런, 실망스러운 매력이 가득한 것이어서.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본 무지개는 하늘에 있든지, 분수 언저리에 있든지, 교회 위에 떠있든지 간에, 그냥, 그냥 그랬다.
무지개는 헛된 꿈이란다. 읽기 교과서가 그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그대로 받아썼다. 여기서 무지개의 의미는 헛된 꿈. 미끈미끈해서 쓰는 감촉이 나빴던 교과서에 연필로 꾹꾹 눌러썼다. 헛된 꿈. 기다란 문제집에 있는 3점짜리 주관식 문제들도 무지개의 의미는 헛된 꿈이라고 했다. 1교시 국어시험에 나왔던 문제에 나는 그렇게 썼다. 무지개의 의미는 헛된 꿈이라고. 주입식 교육의 효과는 무서웠다. 그 후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아, 저것은 헛된 꿈이로구나. 좇아가지 말지어다.
그러고 몇 년 후, 내가 좀 더 컸을 때, 같이 놀던 친구들이 무지개는 동성애를 뜻한다고 그랬다.. 내가 인정하지 않아도, 이미 오래전에 정해진 거라고 그랬다. 그리고 그 후로는 무지개 색을 볼 때마다 속이 뜨끔뜨끔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됐다. 가슴팍에 무지개 모양이 그려진 티셔츠를 옷장에 처박으면서 생각했다. 웃기시네, 무지개가 왜 동성애야. 다양성 좋아하네. 이건 무지개처럼 예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머리에 빗물하고 눈물만 차서 모든 일에 항상 감정적이었던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동성애를 의미하는 무지개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가 차이가 있는 것을 알지만, 그런 사소한 차이점 사람들은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무지개는 동성애다. 그리고 나는 혼자 찔려서 빨주노초파남보만 봐도 도망간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참 잘 만들었다. 내게는 그렇다. 밥 준다고 종치면 침을 질질 흘렸던 개 마냥, 무지개는 헛된 꿈이라고 외우고 외웠던 내게는 그렇다. 희멀건 하게 둥둥 떠 있는 저 빨주노초파남보는 헛된 꿈이고, 동성애이며, 내가 보고 혼자 찔려하는 것이다. 당당하게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왜 저렇게 예쁘게 만들었을까. 현실은 아닌데. 현실은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하지도 밝지도 다양하지도 않은데.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무지개는 헛된 꿈이니까, 하고 속으로 되뇐다.
물(水:) : 마지막 편지
난 편지를 자주 쓰는 편이 아니다. 내가 편지를 쓰는 건 학생회나 동아리의 직속 후배, 그리고 정말 친한 친구의 생일 때와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에는 학기말이라 시간이 좀 여유롭기도 하고, 또 조금 있으면 겨울 방학이라서 친구들과 오랫동안 못 볼 테니, 반 친구들과 중학교 때 친했던 몇 명의 친구들에게 쓰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한 이런 특별한 날 이외에도 난 편지를 쓴다. 내가 간간히 쓰곤 하는 일기장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가 되고, 가끔은 일기장을 넘어서 진짜 편지지에 편지를 써 아무 때나 주기도 한다. 역시 편지의 좋은 점은 ‘직접 대면하지 않고 말로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
난 편지로 첫사랑에게 고백했었고, 문자라는 수단을 빌려 mms로 장문의 편지로 두 번째 고백을 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두 번 모두 문자로 나를 거절했었다. 편지, 하자 갑자기 그녀가 떠오르는 이유는 이번 주에는 그녀의 생일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그녀의 생일 때 나는 교보문고의 핫트랙스에서 그녀가 좋아할만한 것들을 골라 담았다. 가격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녀와 내가 사이가 좋을 때는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그녀에게 받은 정신적인 성숙이 더 커서 그 정도는 아깝지 않았다. 물건들을 다 고른 후에는 고심해서 편지지를 골랐다. 작년에 나는 그녀와 나의 관계를 확실하게 갈무리 짓고 싶었다. 그리고 편지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이번 편지는 앞선 두 번의 편지의 끄트머리였고, 힘 빠진 발버둥이었으며 그러면서도, 어리석은 희망을 담고 있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텐데. 그 옛날의 관계가.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녀와 길거리에서 마주칠 때 그녀가 나를 무시하면서 지나치고, 난 그녀의 뒤를 하염없이 눈으로 좇는 그런 사이는 싫었다. 서로 인사하거나, 아니면 서로 무시하거나. 난 결과가 후자로 나올 것임을 뻔히 알고 있었는데도 전자(前者)가 나오기를 희망하며 편지를 썼다. 거짓말이 가미되긴 했지만.
‘난 이제 널 친구, 그 이상으로 더 이상 좋아하진 않아. 그냥 너랑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어.’ 라고.
그녀를 사랑하는 게 나 자신 같아서,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녀를 사랑해야만 했다. 짝사랑의 끝(아니, 그녀는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으니 외사랑의 끝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 듯하다.)은 그랬다.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그녀의 정체성이 나인 것 마냥. 그렇게 굴었었다. 그리고 편지는 나에게 있어 그 악연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아마도 편지의 마지막 말에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썼던 것 같다. ‘내일 네 생일 날, 시간이 되면 6시쯤에 네 집 앞 정자에서 만나자. 10시까지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그녀와의 관계가 잘 풀리기를 원했지만, 그녀가 나오지 않을 확률이 50%, 그리고 나오더라도 그녀가 나를 매몰차게 거절할 확률이 50%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편지를 쓰는 내내 울었었다. 다시는 내가 그녀에게 편지를 전해줄 수 없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 5년간의 관계가 고작 글자들의 집합체를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아쉬워서. 우리가 친했을 때 더 많은 편지를 써줄 걸. 처음 고백했을 때처럼, 스프링 노트 한 권을 가득히 채워서 건네주었던 그 편지처럼. 나는 언제나 현재에 서서 과거를 바라보고 미련스럽게도 후회한다. 우리의 앞길이 보이는 미래로는 가기보다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끊임없는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새겨 말하며 종이에 힘주어 글씨를 채웠다.
편지에는 말하지 못하는 수만 가지의 감정이 한 글자, 한 글자에 녹아들어간다. 비록 이제는 그녀의 인연 리스트에서 지워졌지만, 그래도 만약 그녀가 훗날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는다면, 또는 쓰게 된다면.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무(木) : 나는 나입니다.
누군가 만일 내게 어렸을 때 단 한 번이라도, 성소수자에 대하여 제대로 알려줬더라면, 내가 좀 더 편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치관이 매우 보수적인 편이었지만 단 한 가지만큼은 남달리 개방적이었다. 사랑. 그것에 대해서만큼은 달랐다. 그게 남다르다고 생각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언제였더라. 트랜스 젠더가 한창 이슈가 되고, MTF 언니들의 결혼 소식을 뉴스로 접하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집에서 언니들에 대해 욕을 하더니, 언니들의 부모님이 아닌 언니들 배우자의 부모님을 걱정하고, 배우자에 대해서 욕을 늘어놓았다. “저 xx는 무슨 생각인거야? 알고는 하는 거야? 속아서 하는 결혼 아냐? 잠자리는? 저거 호모야?” 그래서 내가 옆에서 그랬다. “자기들이 사랑한다는 데 무슨 상관이에요? 저 사람들 부모님은 이해를 해주시는 거고, 저 사람 동성애자 아니에요. 어찌됐든 여자 남잔데 무슨 동성애자야.” 그랬더니 부모님이 나도 호모냐면서, 그런 거면 집 나갈 생각부터 하라고, 호적 파버릴 거라면서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그때 나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과 나의 가치관은 아예 다르다는 것을.
그 때 당시 내가 성소수자에 대해 아는 것은 트랜스 젠더와 동성애자가 전부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처럼 동성애자는 이성을 전혀 만나본 이력이 없을 것이라고만 생각해서,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선도를 서고 있는데, 항상 나에게 삐뚤한 모습으로 지도를 받고 정을 쌓았던 녀석이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녀석이 내게 물었다. “내가 쓰레기라서 안 되는 거에요? 아니면 내가 여자라서 안 되는 거에요?” 내가 단 칼에 대답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에게 꽤나 큰 기대와 상처가 되었을 텐데.. “너 쓰레기 아냐, 임마. 여자라서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여자인 게 중요한 게 아냐. 지금 중요한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니가 아니라는 것이고, 니가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를 동경한다는 거야.” 그런 해프닝이 있은 후 그 녀석은 강제전학을 가버렸고, 그 아이의 말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할 여유 없이 넘어가버리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학생회에 들게 되었는데, 내 직속부장의 언니가 유달리 다른 태도로 나를 대했다. ‘뭐지?’ 그녀의 유달리 따스한 태도, 잦은 스킨십. 평소의 나 같았으면 질겁하고 도망을 쳤을 태도인데, 그러지 않는 내 자신이 신기했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 밤이 되면, 서로의 외로움과 고민을 늘어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바뀌고 그녀와 대화를 나눈 지도 어언 한 달쯤 되어갔을 때, 나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고 하더니 ‘바이’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그게 뭔지 모르는 나는 무엇이냐 물었고,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여자와 남자를 모두 사랑하는 것.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어투로 그게 왜 고백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충격을 먹은 듯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대답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성별이 무슨 상관이냐고. 국제결혼이랑 다를 바 없는 것 아니냐고. 그녀와 그 대화를 나눈 후 한참이 지나서야 소위 말하는 ‘멘붕’에 빠졌다. 그녀가 바이여서가 아니라, 내가 바이인 것 같아서. 그녀가 이야기하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녀에게서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첨엔 그렇게 물음표, 혼란으로 시작해서 그 감정을 확신하기까지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어느 순간 그녀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다가도 그녀 얼굴만 보면 기분이 좋아서 헤실 거리고, 괜히 그녀가 있을 것 같아서 학생회실에 일도 없으면서 자주 들리고, 그녀의 교실에 틈틈이 찾아가고. 먹을 게 생기면 그녀 얼굴가고.생각나서 그녀에게 뛰어가 건네주고 도망치는 내 모습은... 흡사 학교 선배를 좋아하는 여중생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소녀 같은 내 모습은 스스로도 적응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지만, 나의 그런 차이는 내 친구들마저도 하나둘 느끼고 있었다. 연애라도 하는 거냐며 찔러대는 친구들의 물음에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내 모습이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단둘이 학교에 남게 되었고, 그녀와 나의 특별하고 아주 소중한 시간이 생긴 것이었다. 학교의 구석, 인적이 드문 곳에 둘이 앉아있다, 그녀에게 나의 첫 키스를 빼앗겼다. 첫 키스하면 달콤하다. 행복하다던 말. 알 것 같에게 뛰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랑 했기에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었던 것었던 것었던그녀에게 왜 했냐고 하니, 자신은 나에게 마음이 있는데, 내가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자꾸 스스로가 상처하는는다며, 반응이 궁금해서 해봤다고 그랬다. 나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와의 크고 작은 추억을 만들어가다, 그녀가 내 친구와 사랑에 빠져서 나의 뜨거웠던 사랑은 가슴 쓰린 짝사랑으로 간직한 채 1년여의 시간을 더 보내고 나서야 겨우 잊을 수 있었다. 왜였을까. 그녀를 사랑한 이후 내 눈에는 남자는 들어오지 않았고, 이상형을 떠올려 봐도 여자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녀와의 사랑을 돌이켜보니, 그게 나의 진짜 첫사랑이었구나 싶다. 남자를 만날 때 좋아했던 감정과 그녀를 좋아했던 감정을 정말 하늘과의 땅 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확실히 달랐다. 왠지 그걸 12년지기 단짝 친구에게 말하지 않는 건 거짓말 같아서 얼굴을 볼 때마다 죄책감 같은 걸 가지고 있었는데, 며칠을 고민하다 끝내 말을 했더니,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며 웃어 넘겨 버렸다. 다행이구나 하고 넘어가다가 다른 한 사람이 생각나 그 사람에게 말을 했더니 막 화를 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의 반응에 지레 겁을 먹었는데 그 사람이 내게 화를 낸 것은 전혀 다른 포인트였다. 내가 동성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걸 말하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았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는 것이었다. 눈물이 박한 나였지만,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너무 고마워서. 너무 미안해서. 내가 너무 한심해서.
고등학교 상담실에 남겨놓은 번호로 가끔 후배들이 연락을 한다. 언니는 힘들지 않았어요? 언니는 행복해요? 언니는 후회하지 않아요? 그러면 나는 녀석들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 힘들지만, 행복하고, 적어도 이 문제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이것 덕에 더 좋은 인연을 만나고, 내 인생에 가까워진 것 같아서 편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럼 아이들이 다시 묻는다. 언니 진짜 이반 맞아요? 그럼 난 잘은 모르지만 여자를 사랑했고, 현재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은 확실하다고. 마지막엔 늘 얘기한다. 우리는 퀴어기 전에 여자이고, 여자이기 전에 그저 꿈 많은 학생이고, 학생이기 전에 그냥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잊지말아야한다고. 주변에서 뭐라고 한 들. 내 인생 내가 사는 거라고. 그저 나는 나일뿐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내가 노멀이 아님을 자각하고 나는 2년이라는 시간동안 나 자신을 양성애자 혹은 범성애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냈었다. 그러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자각한 것은 고작 두어 달 전의 일이다. 나는 잘 몰랐다. 남자에 관심이 뜸해진 것은 그저 남자랑 너무 허물없이 지내서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물어봤다. 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난 그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없었다. 단 하나.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여자이고, 앞으로 사랑할 사람도 여자란 것을. 그간 남자를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퍼즐 조각이 맞추어졌다. 나는 다시 태어날 때 성별을 정할 수 있다면 남자라고 택하겠지만, 남자로써의 삶을 지금부터 살아가게 해준다고 해도 오케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 나는 여자로서 여자를 사랑하는 거니까.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 이유는 그저 내 여자를 보호하고, 내 여자가 나를 숨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랄까. 여자로서 여자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레즈비언이고.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인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 만은 변치 않는다. 나는 나라는 것. 내가 그 어떤 누구를 사랑한다 해도 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돌(金) :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 있다면 바로- 작은 반발이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그 말 속에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전제 하에 두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처럼 타인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타인을,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걸까. 도대체 어떻게 타인을 사랑하라 말하는 걸까.
나는 내가 너무 좋아. 나는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 나는 사는 게 너무 행복해. 전생에 아마 나는 이 세상, 이 우주를 구한 영웅이었을 거야. 나는 항상 그렇게 말해왔다. 그렇게 믿어왔다. 나는 내 스스로가 너무 좋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행복했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보통의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인 줄 알았고, 그 속에서 만족을 느꼈으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안도해왔었다. 그런데 그것이 한순간에 거짓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복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서, 처음 부모님께 내가 레즈비언이라 커밍아웃 했을 때도 권사님이신 할머니께 동성애이라 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도 동생에게 언니 애인은 여자라 이야기를 했을 때도눬 애인들에게 내가 바로 레즈라고 말을 꺼냈을 때에도 별 다른 것 동성애그저 그렇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를 평소처럼 대해줬다. 그들의 반응은 반응은마디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반응이라나는 항상 바보처럼 당황했다. <아니, 뭐. 그렇다고.>
그래서 나는 여태까지 내 스스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내 스스로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나의 있는 그대로를 봐주었고,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좋아할 수 있었다. 내가 이성애자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정면으로 부딪쳐야만 했다. 처음으로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생각을 해버리고야 말았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처음 사귀었던 친구, 나와 가장 잘 맞는 친구.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는 기독교의 아이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교회만 다니는 정도였다면 그래도 내가 조금 안심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그냥 교회만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꿈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정도였다.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 말이다.
동성애에 대한 그 아이의 생각은 지독할 정도로 확고했다. 어쩌다가, 정말로 어쩌다가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을 때에 그녀의 얼굴은 기분 나쁘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일그러지고는 했고, 그녀는 항상 동성애는 죄라고 말을 했다. 자신의 눈앞에 그 ‘동성애자’가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채로,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아이가 싫지가 않았다. 그 아이가 호모포비아라는 점을 제외하고 난다면 나하고는 너무나도 잘 맞는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배려심이 깊고 상냥했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러면서도 노는 것이 즐거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똘끼가 충만한 아이었다. 나는 그녀가 좋았다. 친구로서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나와 같은 존재’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도, 차마 그녀를 싫어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싫어할 수 없는 마음과, 호모포비아가 싫은 마음은 내 마음 속에서 뒤엉키다가 결국에는 자기 비하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왜 레즈비언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넸다. 나는 왜 다른 애들과 같이 평범한 아이가 아닌 걸까. 나는 왜 소수자로 태어난 것일까. 그런 생각이 끝도 없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레즈비언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앞에서 괴롭지 않았을 텐데. 그녀를 속이고 있다는 괴로움에 매일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었을 텐데. 처음으로 이런 내가 싫어졌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 있다면 바로- 작은 반발이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그 말 속에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전제 하에 두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처럼 타인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타인을,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걸까. 도대체 어떻게 타인을 사랑하라 말하는 걸까.
나는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앞에 서면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아이의 앞에 서면 나는 항상 뻔한 거짓말을 하면서 거짓으로 웃고 있어야만 했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을 수도 없었다. 그런 내가 싫었다. 내 애인은 당연히 남자야. 그런 거짓말을 할 때마다 애인에게도 그저 한 없이 미안했고, 그렇게 말해야만 하는 상황도 싫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가 그 아이를 대할 때의 모든 행동과 말이 어색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앞에 서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녀가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들, 교회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내 앞에서 늘어놓을 때마다 그저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나는 분명히 그녀를 좋아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녀를 어떻게 좋아하면 좋을지, 계속 친구로서 있어도 괜찮은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그녀와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은. 가슴이 답답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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