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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국내 인권소식

국립국어원에 평등한 사랑, '같은 사랑'을 요구하는 권예하 씨를 만나다!

by 행성인 2014. 4. 30.

인터뷰 한 사람: 종원, 한빛(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인터뷰 받은 사람: 권예하(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4학년)

 

최근 국립국어원이 보수 기독교계의 압력에 굴복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랑’, ‘연애’, ‘애정’의 뜻풀이를 이성애로 다시 한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2012년 말에 “이성애 중심적 언어가 성소수자 차별을 낳는다”는 대학생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표준국어대사전의 ‘사랑’에 대한 뜻풀이를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에서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꾼 바 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항의가 벌어지자 국립국어원은 2014년 1월 말에 뜻풀이 재개정을 통해 사랑을 다시 이성애로 한정해 버렸다.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혐오에 타협한 것이다. 새로 바뀐 반인권적인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사랑’, ‘연애’, ‘애정’의 뜻은 다음과 같다.


사랑「4」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연애「5」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

애정「2」남녀 간에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012년에 국민신문고를 통해서 사랑의 정의를 바꾸자고 제안을 해 변화를 이끌어 냈던 대학생 중 한 명인 권예하 씨는 최근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서 국립국어원의 결정에 깊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그는 이번에 바뀐 사전 정의가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고, 언어를 바꾸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한수진의 SBS 전망대] "'사랑'의 사전적 정의, 성소수자들에 차별" 바로가기

 

활동 계기, 배경, 현재 상황 등에 관한 이야기는 권예하 씨가 4월 초에 ‘프레시안’에 직접 기고한 글에 잘 나와 있다.

[기고] 우리가 '이성애적' 사랑 뜻 바꾸자한 이유는… 쟁취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이뤄낼, 같은 ‘사랑’ 바로가기



<이성애중심적인 단어로 돌아간 '사랑'을 보다 평등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을 위해 만들어진 트위터 계정도 존재한다. 

트위터 ‘같은사랑’ @lgbtloveko 바로가기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이 직접 권예하 씨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인터뷰는 경희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권예하 씨는 2012년에 시민교육 수업에서 조별 활동을 통해 표준국어대사전의 성중립적인 개정까지 이끌어 내셨는데, 언어에서 기인하는 차별에 대한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요?

 

사실 이런 문제의식은 우리 사회에서 예전부터 있어 왔어요.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대학생네트워크(이하 앰대)’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죠. 저희 학교에서 이 사건을 시민교육 수업의 성과로서 이야기하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서 저희 얘기가 부각됐지만요. 그해 6월 퀴어문화축제 때 앰대가 ‘결혼’과 ‘가족정상성’의 의미에 대해서 캠페인도 했었거든요. 저희도 오프라인에서 서명 운동을 할 때에는 앰대의 서명 용지를 받아서 했어요. 이런 문제의식이 이미 제기되고 있었으니까 오프라인 서명으로 연대 활동을 한 거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연인’, ‘연애’ 같은 단어들의 뜻풀이 개정 운동을 온라인에서 중점적으로 하자고 했고, 시민교육 수업에 연계했던 것이죠.

 

문제의식은 같지만, 결혼이나 가족권은 사법적인 이슈고, 또 굉장히 큰 이슈잖아요. ‘사랑’이라는 단어는 좀 더 미세하고, 쉽고 유연하게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거라서, 제가 느끼기에는 그 부분이 먼저 변하기 쉬웠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렇죠. 아무래도 ‘가족’, ‘결혼’이라는 정의가 바뀌는 것보다는 그 쪽이 좀 더 수월했죠. 저희는 원래 시민교육 수업 때 언어 사용 판례 같은 걸 조사해 봤었어요. 트랜스젠더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 사건에서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자’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강간죄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한 단계 낮은 죄가 부여된 사례가 있더라고요. 대법원에서 뒤집힌 판례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단어들의 정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구체적으로 나아가서 무슨 단어의 정의를 바꾸어야 할지 고민했고요. 우리가 법을 바꾸자고 덤벼들 것이냐, 그런 이야기를 쭉 하다가 인식과 제도적 변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너무 큰 것 같아서 그걸 줄이고 줄이고 하다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만 하자, 좀 더 큰 변화를 위해서는 오프라인에서 연대 활동을 하고, 온라인에서는 이걸 하자, 이렇게 된 거죠.

 

사실 우리나라처럼 사전을 국가가 편찬하는 데가 별로 없어요. 미국만 해도 여러 사전이 있고요. 우리나라는 언어 연구도 많이 경직돼 있고, 또 국립국어원 자체에 대해 반대하시는 교수님들도 많이 계세요. 국가에서 언어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로 다른 나라들에서 정의되거나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언어에 대해 훨씬 강력한 제재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표준어를 국가가 정하는 거잖아요. ‘이게 표준이야, 이게 정상이야’라고요.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캠페인을 벌이셨잖아요. 온라인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게 아니니까 악플로 끝나고 말지만, 길거리에서 캠페인을 하면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되는데, 혹시 화나는 일들도 있었어요?

 

조원들과 함께 시청, 청계천 쪽에 나가서 오프라인 캠페인을 했었어요. 그때 헌혈 자원봉사 하시는 분이 잘 보지도 않고 그냥 서명해 주시겠다는 거예요. 그 분이 서명을 하는 동안에 캠페인에 대해 설명을 해 드렸는데, 설명을 들으시더니 “동성애를 반대하면 서명 안 해도 돼요?”라고 물어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안 하셔도 된다고 했는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갑자기 주변에 있던 어떤 여자분을 부르더니 “야, 너 같은 레즈들 서명하래”라고 하면서 장난을 치고 희화화하시더라고요.

 

장난 받은 친구 반응은 어땠어요?

 

“아니거든, 뭐야”라고 하시면서 그냥 장난으로 끝났어요. 결국 두 분 다 서명은 안 하고 가셨죠. 오히려 옆에서 같이 자원봉사 하던 남자분이 되게 당황해 하면서 “야, 그만해”라고 하시더니 서명을 해 주셨죠.

 

“너 같은 레즈들…” 이런 말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처음엔 ‘뭐, 저런…’ 이런 생각이 들다가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진짜 저런 얘기를 하네’라고 생각하고 넘겼어요.

 

재미있는 경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2012년에 시청 앞에서 집회가 있을 때 서명판을 네 개 정도 들고 나갔거든요. 노동 단체, 대학생 단체들에 돌리면 “뭐야, 뭐야?”하면서 호기심 많이 가져 주시고 서명도 많이 하는 분위기였어요. 특히 청년 단체들은 한 번 돌리면 서명된 종이가 몇 장씩 오더라고요.

 

청년들이 서명 참여율이 제일 높았네요?

 

그렇죠.

 

그런데 서명 운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잘은 모르지만 좋은 일이겠거니 하고 기계적으로 서명만 하고 실질적으로 이슈에 대해서는 관심을 안 가질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올해 국립국어원이 정의를 다시 바꾸고 나서 우리가 제일 집중해야겠다 싶은 게 언론에 많이 알려야겠다는 거였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얼마 전에 국립국어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을 때는, 거기가 주택가라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서 영어로 적힌 피켓을 보신 분들은 그냥 지나치더라고요. 그런데 할머니 두 분께서 주의 깊게 보시더니 “요즘에는 할머니 작가들도 동성애 이야기 쓰는데 뭐 어때. 이거는 국립국어원이 잘못했네”라고 말씀하셨죠.

 

2014년 4월 2일 국립국어원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1인 시위를 벌인 권예하 씨

 

인권에 대해 생각만 하거나 인터넷에 댓글 달기는 쉬워도 직접 행동으로 나서긴 쉽지 않은데, 조별 과제로 그치지 않고 이렇게 행동하게 만든 개인적인 경험이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이런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원래 있었어요.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2011년에 여성주의 소모임을 하게 됐죠. 2012년에는 경희대에서 여성주의 실천소모임 ‘리얼퍼플’ 세미나를 맡아서 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총여학생회장을 하고 있었고요.

 

여성주의적인 관심에서 출발을 하신 거네요?

 

처음에는 내 경험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여성주의부터 시작을 하게 됐어요. 학교에서 학생 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면서 사례들을 배운 것도 있고요. 그런 게 컸던 것 같아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인상 깊었던, 영감을 받은 사건들이 있었던 건가요?

 

영감을 받았다기보다는, 여성주의 담론을 보면 성차별이 구조적이고, 사회가 기존 권력의 맥락에서 작용하고, 성이라는 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이잖아요. 나의 갈증이 일부분 해소가 되는 거죠. 이성애중심적인 가치관도 남성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나오고, 재생산되고, 이런 걸 보면서 ‘아, 이런 거구나. 단순히 이성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구조로 작용하는구나’ 이런 게 재미있었어요. 무엇보다 여성주의 소모임에 가서 언니들을 만나면 어디 가서 쉽게 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의 캠페인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세월호 사고와 관련하여 애도의 표현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적극적인 캠페인은 멈췄어요. 공론화를 준비해야 하는데, 시민 단체들이 할 수 있는 일들도 있겠지만, 교수님들께도 성명서나 광고를 낼 수 있도록 제안을 드렸어요. 시민교육 수업의 일환으로 벌인 캠페인이었고, 교수님들도 지지를 많이 해 주셨거든요. 국립국어원이 재개정을 했을 때도 교수님들이 잘못된 거라고 많이 말씀하셨고요. 학내에서 하든지 공고를 내서 프로젝트 식으로 하든지 역량을 보고 판단해야 될 것 같아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의 고리를 강화하는 방법인 거네요?

 

시민교육 차원에서도 하고. 그리고 이런 거 좋잖아요. 어느 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우리가 배운 문학은 이런 게 아니다”라고 연대 성명을 낸다든지. 이렇게 몇 군데가 같이 하면 공론화가 될 것 같아요.

 

대학뿐만 아니라 상상 가능한 모든 단체로 연대의 범위를 많이 넓혀 보고 싶어요. 지난번에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거든요. 오히려 이번 기회에 많이 알려져서 좋은 점도 있죠. 국립국어원의 자충수랄까요. (웃음) 공론화가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관심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단어 정의가 다시 바뀌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힘의 논리로 뒤집힌 거잖아요. 국립국어원이 아무리 사회를 반영한다고 해도 쉽게 내리는 결정은 아니에요. 특히나 성소수자 관련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의 리스크가 있는 행동이었는데, 워낙 혐오 세력이 권력적으로 강하잖아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런 혐오 세력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나요?

 

단체 이름들을 전부 기억해 놓진 않아요. 결국 모두 교회를 기반으로 극우 보수 성향을 띠고 있죠. 논리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배포물들이 정말 비슷해요. ‘하나의 혐오 세력’이라는 말로 표현이 된다고 생각해요. 정말 무서웠던 게, 2012년에 단어 정의에 관한 네이버 기사가 뜨자마자 댓글이 700개 정도 달렸었거든요. 그 중에서 ‘대학생이 500명 서명을 받아서 바꿨어? 그럼 우리가 1000명 넘게 받아서 바꿔 버리면 되지’ 이런 댓글이 있었어요. 그런 분들이 돈과 인력도 있고, 조직적이고, 또 맹목적인 데가 있어서 굉장히 결집이 잘 되거든요.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수도 있어요. 물론 희망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요.

 

저는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성과가 공론화라고 생각해요. ‘단어 정의가 원래 이랬는데 바뀌었어? 그런데 또 바뀌었네? 굳이 바꿔야 되나? 이건 좀 아니지’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게 하면 좋겠어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서 사회 인식에 영향을 주는 거네요?

 

그렇죠.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순간 끝이잖아요. 그래서 과도한 것은 하고 싶지 않아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고 싶어요.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일동 웃음)

 

학교 내에서 성소수자가 아닌 학생들이 이런 이슈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보이고 있고,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느껴지나요?

 

이게 개별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인생을 살면서 너도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소수자다?

 

그렇죠. 그리고 이런 분명한 원칙이 있어요.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자유지만, 어떤 이론이나 원리를 다른 이에게 강요할 순 없다. 그건 폭력이다. 특히 종교계 친구들을 만나면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종교적인) 믿음 때문에 동성애에 대해 찬성할 순 없지만 혐오나 폭력은 더 나쁜 것이기 때문에 서명을 해 주는 친구도 있었거든요.

 

저는 동성애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내 가치관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너희들을 배척할 거야”라고 하는 거랑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너의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지”라고 하는 거는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혐오하는 사람이랑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랑은 구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어휴, 편협해”라고 비난하지 않는 거죠. 그 분들 나름대로 믿음이 있는 거니까요.

 

최소한의 선을 찾는 거네요?

 

사회에서 같이 구성원으로 지낼 수 있는 최소한의 선, 사회적 합의로서 최소한의 선을 긋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치관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폭력, 혐오, 배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성소수자뿐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연대라든지 장애인에 대한 연대라든지,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계층에 대한 연대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혐오에 대한 반대’로서의 연대가 훨씬 더 큰 주제고, 필요한 주제라는 거네요?

 

그렇죠. 이런 고리 속에서 다른 단체들과 연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내내 공론화, 상호 존중, 공감,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 권예하 씨는 마지막으로 국립국어원의 ‘사랑’ 뜻풀이 재개정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권예하 씨와 함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오는 5월 14일까지 청원 운동을 진행한 뒤 국제 동성애·성전환 혐오 반대의 날(IDAHO) 주간에 청원서를 국립국어원에 전달할 예정이다. 아바즈(Avaaz)에서 진행되고 있는 청원 운동에 동참하려면 밑의 이미지를 클릭하면 된다.


아바즈(Avaaz)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랑'의 뜻풀이 재개정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