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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HIV/AIDS와 건강권 - 성적지향 + HIV/AIDS에 따른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

by 행성인 2014. 7. 17.

 

 

혜민(HIV/AIDS인권팀)

 

 

1. 건강권이란 무엇인가?

 

건강은 계급, 성별, 인종 그리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건강 불평등은 사회 정의의 기본적인 주제일 뿐만 아니라, 전체 인구의 건강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들을 밝혀 내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해 사람이 죽고 병든다는 것을 밝힌 실증 자료들이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소득, 학력, 거주 지역, 비정규직 등과 같은 직업상태, 노동 환경 등이 중요(김창엽, 2013)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불평등 또는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 건강권[1]

 

‘건강권’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개념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그 개념이 명확하고 사회적으로 이해가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유엔의 사회권 규약 제12조에서 건강권은 “성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누릴 권리(the right to the highest attainable standard of physical and mental health)”라고 표현되었다. 여기서 제시된 건강권의 의미가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한국적 맥락에서의 건강권에 대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김창엽(2013)은 건강과 인권의 관계에 대해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로, 인권이 침해됨으로써 건강에 폐해가 발생한다. 둘째로 의료나 공중보건 정책, 사업, 프로그램 등에서 인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이 곧 인권이다. 건강과 인권의 세 가지 관계에 따라서 본문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인권으로서의 건강권이 HIV/AIDS, 그리고 성적지향과 HIV/AIDS가 합쳐질 때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차별’과 연관시켜 이야기하고자 한다.

 

 

2.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2]

 

“불평등은 상처를 준다. 차별은 건강에 해롭다.”

 

차별이 건강에 해로운지를 탐구하는 것은 우리 몸과 몸의 정치가 어떻게 관련을 맺고, 서로 얽히면서 인구집단에서 건강과 질병 그리고 안녕(well-being)을 구현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는 인종 또는 민족(Race/Ethnicity) 간에 나타나는 경제적인 격차가 이들의 건강 불평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과거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오늘날에는 인종/민족뿐만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연령 등 다른 형태의 차별에서 비롯된 건강 결과를 설명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2-1. HIV/AIDS에 따른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오늘날 에이즈는 그 원인과 전파기전이 의학적으로 규명되었고, 혈액 한 방울만으로도 감염 여부를 알 수 있게 되어 진단도 용이해졌다. 또한 최근 치료법 또한 발달되고 있어, 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라 만성질환처럼 충분한 관리를 통해서 이겨나갈 수 있는 질병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에이즈에 대한 사회와 일반인의 인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이 또한 부정적으로 여겨진다(김소영, et al., 2008). 이러한 환경 속에서 HIV 감염인은 질병의 치료적인 부분보다 사회적인 고립과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질병관리본부, 2009).

 

 

에이즈 낙인은 에이즈를 이유로 PL(People living with HIV/AIDS)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태도의 문제이고, PL을 차별하는 것은 HIV 감염을 이유로 당사자의 권리를 부정하거나 제한하는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은 이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만족스런 삶을 누릴 수 없도록 한다(윤인진, 2000). 뿐만 아니라 PL에게 있어서 낙인은 의료 접근성을 낮추는 요인이 되기도 하며, 이로 인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받지 못하게 되어 치료 효과를 낮추기도 한다(Calvert C, et al., 2013; Shacham E, et al., 2014). 또한 HIV 낙인과 우울 증상은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 순응도와 바이러스 반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염증(inflammation)을 가속화시키며,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Calvert C, et al., 2013).

 

 

현재까지 HIV 감염인 또는 에이즈 환자의 연구에 대해서는 생명과학 분야, 즉 질병 치료분야의 연구가 활발했다. 하지만 PL의 가족 또는 친구와의 관계, 커뮤니티 활동 여부 등의 사회적 건강과 건강권 및 인권의 관점에서 진행된 연구가 부족하다.

 

 

2-2. 성적지향 + HIV/AIDS에 따른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 관련 연구

 

 

 

본 연구는 사회심리적인 건강상의 문제(마약 사용, 우울, 파트너 폭력, 어린시절 성폭력 피해)가 MSM에게 HIV감염 위험을 얼마나 더 높이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연구 결과, 제시된 4가지 사회심리적인 건강상의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는 MSM일수록 위험한 성적 행동(안전하지 않은 항문 성교 등)과 HIV 감염에 있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저자는 현재까지 MSM에게 있어서 AIDS 예방은 성적인 위험에만 과도하게 초점이 맞추어져 왔음을 비판하고, MSM에게 있어서 사회심리적인 건강상의 문제는 그들의 건강권으로써 중요할 뿐만 아니라 HIV 감염의 위험도 높이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따라서 HIV 감염을 예방하는데 있어서 MSM의 성적 위험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좀 더 큰 범위의 사회심리적 건강 문제를 다루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한다.


 

“에이즈의 경우, 수치스러움자책감으로 이어지는데 이 치욕에는 전혀 모호한 면이 없다. “왜 하필 나야?”라고 궁금해하는 에이즈 환자는 없다. … 에이즈는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듯한 미지의 불행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알려진 대부분의 경우에 따르면, 어떤 ‘위험 집단’, 즉 일종의 부랑자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에이즈에 걸린다고 정확히 알려져 있다. 에이즈는 이웃, 직장 동료, 가족, 친구 등에게 알려지지 않을 수 있었던 그 누군가의 정체성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즉, 에이즈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입증해 준다. 미국에서 에이즈가 등장했던 초기 당시 가장 극심하게 에이즈에 걸린 위험 집단 가운데에서도 특히 동성애자들이 이런 위험 집단으로 지목됐는데, 이들은 환자로서 격리됐을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학대와 괴롭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 『은유로서의 질병』152p (수잔 손택, 2002)

 

 

게이인 PL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중의 낙인과 편견, 차별을 받는 존재 중의 하나이다. 이들이 겪는 이러한 부정적 사회 경험이 그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게이가 겪는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PL이 겪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합한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위의 연구에서 제시한 사회심리적 건강상의 문제 또한 이러한 사회적 낙인, 차별과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따라서 게이인 PL의 건강권을 위해 현재까지 이루어진 논의와는 달리, 건강권의 관점에서 좀 더 폭넓은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3. 나가며

 

PL의 건강에 대해서는 지극히 생물학적이고 의학적 틀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 왔다. 특히, 건강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개인주의 패러다임과 상담이나 약물과 같은 치료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료 패러다임, 그리고 근원이 아니라 현상을 문제 삼는 ‘결과’ 패러다임과 같은 이 3중의 ‘개인주의-의료-결과’ 패러다임에 기반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PL의 건강 상 문제의 뿌리를 향한 구조적 통합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적, 심리적, 생물학적인 요인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몸, 그리고 건강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HIV/AIDS, 특히 성적 지향과 HIV/AIDS가 합쳐졌을 때의 건강을 통합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PL의 건강을 위해서는 의학뿐만 아니라 경제, 교육, 노동, 법률, 환경, 주택, 복지 분야 등이 함께 협력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력을 통해 PL이 살아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그들의 건강을 향상시키고, 더불어 PL의 건강권뿐만 아니라 교육권, 노동권, 주거권 등을 모두 포괄하는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PL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PL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론으로 발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4. 참고문헌

 

김소영, et al. "일반인의 에이즈에 대한 지식 및 태도." Journal of Korean Society for Health Education and Promotion 25.4 (2008).

김창엽. 2013. “건강과 인권 - 한국적 상황과 전망”. 보건학논집 50권 2호.

윤인진(2000). 소수 차별의 매커니즘. 계간 사회비평 제 25호.

질병관리본부. 2009. “에이즈 환자의 생활 및 지원실태조사”

Berkman, Lisa F., and Ichiro Kawachi, eds. 2000. “Social epidemiology.”

Calvert, Clara, & Ronsmans, Carine. 2013. “The contribution of HIV to pregnancy-related mortality: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IDS (London, England), 27(10), 1631.

Shacham, Enbal, Rosenburg, Neal, Önen, Nur F, Donovan, Michael F, & Overton, E Turner. 2014. “Persistent HIV-related stigma among an outpatient US clinic popul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STD & AIDS, 0956462414533318.

 


 


 

[1] 김창엽(2013). “건강과 인권 - 한국적 상황과 전망”의 내용을 요약정리하였음.

[2] Berkman, Lisa F., and Ichiro Kawachi, eds.(2000). “Social epidemiology”을 요약정리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