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에 다녀왔다.

Posted at 2014.09.10 21:56// Posted in HIV/AIDS


빠이롯뜨 (익명, 동성애자인권연대)



보건소에 다녀왔다. HIV/AIDS 감염 검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평생 처음으로 받아보는 HIV/AIDS 감염 검사. 1층의 접수대에 “에이즈 익명 검사는 2층에서 접수합니다”라고 적혀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HIV 검사 하러 왔는데요” 라고 말하니 오른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거기서 다시 한번 HIV 검사를 하러 왔다고 하니 실명 검사를 하면 다른 성병 검사도 함께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냥 HIV 검사만 하면 된다고 했고 드디어 검사를 하러 들어갔다. 


내 피를 뽑을 사람은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 여성이었다.

“익명으로 하신다구요?”라고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했다.

몇 살인지, 감염이 의심되는 게 언제쯤인지 물어봐서 대답했다. 전화번호도 물어봤다.

“번호를 안 알려주셔도 되지만 혹시 감염이 되면 좀 더 빨리 알려드릴 수 있어요.”


개인정보가 더 이상 개인정보가 아닌 시대에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면 이게 무슨 익명 검사인가 싶었지만 어차피 감염이 되면 감염인 등록을 해야 정부 보조를 받을 수 있을 테니 알려줬다. 내 전화번호를 적고 있는 차트에는 그 전에 검사를 받은 사람들의 목록이 있었는데 힐끔 보니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주먹 꽉 쥐세요.”

“네?”

“주먹, 주먹.”

피를 뽑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요즘 이런 팔찌가 유행인가봐요?”

“네.. 뭐 이건 작년에 산 거긴 한데 요즘 많이들 하더라구요.”

“우리 아들은 지금 군대에 있는데, 휴가 나와서 이런 팔찌를 끼고 다니더라구요.”


피를 뽑고 있을 때 한 젊은 남성이 들어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내 피를 뽑던 사람이 물었다.

“아, 저 HIV 검사하러 왔는데요.”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런 식으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안 좋은 거긴 한데, 그냥 딱 봐도 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말투, 옷차림, 외모.


피를 다 뽑고 나자 주사기의 바늘을 부숴서 통에 넣었다. 내 이름 대신 183번이라는 숫자와 보건소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작은 종이 조각을 받았다.

“일 주일 뒤에 이 번호로 전화하시면 돼요. 아무 이상이 없으면 저희 쪽에서 먼저 전화를 안 할 거예요. 전화가 안 가는 게 좋은 거예요~”

오 분 동안 피 뽑은 자리를 솜으로 누르고 있으라고 하길래 나는 옆에 있는 소파로 자리를 옮겼고, 아까 들어왔던 다른 남성이 다음 검사를 받는 걸 지켜봤다. 피를 뽑는 여성은 웃으며 아까와 똑같은 말을 했다.

“아무 전화도 안 오는 게 좋은 거예요.”


충분히 지혈이 된 것 같아 보건소에서 나오는데, 아까 본 그 청년이 떠오르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검사 받으러 오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게이들은 참 검사도 잘 받으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즈를 퍼트린다는 혐의와 에이즈에 걸릴 수도 있다는 공포를 동시에 느껴야 한다는 게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나는 HIV 감염 초기 증상(급성 HIV 증후군)을 알고 있었고, 내게 그런 증상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사실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그래도 한 번 검사는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간 것이었는데, 검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검색을 해보니 감염이 되어도 초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전 애인이 나랑 자고 난 뒤에 갑자기 폐렴에 걸렸다고 했는데, 혹시 그게 나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걸 난 아직도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으로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결국 보건소에서 전화는 오지 않았다. 하루가 더 지나고 나서 확인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HIV 익명검사 결과 확인하려고 전화했는데요. 183번이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물 다섯이요.”

“네, 이상 없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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