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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감염인과 비감염인 사이에 HIV/AIDS예방약이 미치는 영향?

by 행성인 2014. 10. 15.

 

 

웅(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9월 동인련 HIV/AIDS인권팀의 월례세미나 주제는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관계였다. 관계는 인권팀이 항상 고민해온 문제였다. 한편으로 관계를 구성하는 제도와 문화, 이슈들을 정리해보면서 고민을 구체화해보자는 요구가 있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예방약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입장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일환으로 진행된 세미나는 그간 나온 자료와 텍스트들을 정리하며 타임라인을 그리고 비교분석을 통해 한국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작업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준비하는 동안 이혁상감독의 제안으로 마침 한국에 체류 중인 제이슨박님을 만나 PrEP을 비롯, 흑역사와 미국 현지 이슈를 들을 수 있었다. (신경과학자 제이슨박님은 2000년대 중반부터 동인지와 허핑턴 포스트 등을 통해 미국 내 LGBT와 에이즈이슈를 소개해왔다. 다시 한 번 두 분께 감사를.) 이 글은 자료정리와 더불어, 세미나에 참여한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되었다.

 

 

푸른 알약, 트루바다

 

푸른 알약, 트루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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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PrEP(Pre-Exposure Prophylaxis)에 관한 논의들이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다. PrEP을 직역하면 '노출 전 예방약' 정도 된다. 간단히 소개하면 기존 HIV/AIDS 치료제 트루바다(Truvada)가 예방기능까지 있다는 것이다. 꾸준히 복용하면 콘돔 없는 섹스처럼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에도 감염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임상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되었는데, 2012년 미국 FDA는 트루바다를 예방약으로 승인했다. 약의 효능은 대강 이렇다. 매일 이 약을 복용하면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올 환경에 감염될 가능성이 0에 가깝다. 기존 시판된 약제 중에서는 부작용도 가장 적은 편이다. 순서는 다르지만 노출된 뒤에 약을 먹는 예방(치료?)법도 있다. 이 경우도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이건 PEP이라고 부른다. ‘사후 예방약정도 되겠다) 약장수 같은 말이지만 정말 그렇단다.

 

자료를 정리하며 눈길을 끌었던 점은 국내에 PrEP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HIV/AIDS예방약에 대한 이야기는 초기 소수 연구자+비평가들의 트위터와 동인지, 의학기사를 통해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다. 그래봐야 선진문물을 향유하거나 관심도가 남다른 이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정보였기에 에이즈라고 하면 동성애와 콘돔만 떠올리던 한국에서는 생소한 가십정도로 취급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국내 인권운동 진영에서도 관심을 갖고 언급된다. 한 인권운동가는 몇 달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국 보건부와 WHO에서 가이드라인을 내고 몇몇 집단들에 예방약을 권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각주:1] 아직은 국제사회에서 예방약을 권장하는 단계인데다, 국내에서도 해외 동향을 훑고 모니터링 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현재 PrEP이 유통되는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몇 년 전만 해도 PrEP에이즈무좀약처럼 새로운 임상실험의 놀라운 결과들 중 하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쟁취해야할 대상이 되었고, 이제는 일정부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한때 게이포르노배우이자 포르노업주인 마이클 루카스가 이에 관한 글들을 기고했던가 하면, 80년대 정부에 질병연구 투자를 종용했던 액트 업이 올해 초에는 예방약 보급 확대를 주장하며 시위를 했다는 뉴스가 전달되기도 했다. 미국은 강산이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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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야 예방약이 상용화되고 감염인들이 권장수치에 가까운 건강을 유지하며 관계의 안전망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미국의 에이즈 커뮤니티 이슈는 감염인들이 고립된 집단을 구성하며 자조적인 자긍심을 키웠던 일명 ‘poz’문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poz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00년대 후반이다. 이들을 처음 소개한 미술비평가 임근준과 제이슨박은 집단의 다소 폐쇄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사용되는 언어를 정리하거나, 구성원들의 외관을 관상학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집단의 특이성을 설명한다.[각주:2] 가령 약의 부작용이 얼굴에 드러나고, 약물 복용과 자기관리를 통해 근육질의 신체가 부자연스럽게 섞여있는 모습이 질병당사자의 전형적인 인상이라는 식이다. 다분히 일반화된 묘사는 고립된 하위문화의 성격을 반영한다. 여기에 감염인을 따라다니며 위험한성관계를 즐기는 비감염인을 일컫는 버그체이서’(bug chaser)라든지, 콘돔 없이 항문에 사정하는 브리딩’(breeding) 같은 은어들은 poz커뮤니티의 성격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자신을 poz로 호명하고, 바이오헤저드(biohazard) 문신을 몸에 새기는 행위는 감염인으로서 스스로를 공표하는 행위이자,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제스처이기도 하다.

 

이들은 레드리본의 관용과 인정 대신 죽음을 초래하는 문란함과 같이 에이즈에 부여되었던 부정적 수사를 그대로 전유했다. 의식적으로 질병의 위험을 끌어안은 이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말인 즉 세이프섹스가 족쇄처럼 강조되는 비감염인의 처지보다는 감염을 걱정할 필요 없는 감염인의 섹스가 세이프섹스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물론 전파예방 뿐 아니라 기타 성병예방 및 건강관리를 위해 세이프섹스는 감염인에게도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것은 공중보건이나 감염인의 건강보다도 자족적인 감염인 문화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다.

 

 

 

 

(위)트레져 아일랜드 미디어 사의 작품표지 일부. 98년 게이들의 베어백을 내세운 작품들은 표지에도 poz언어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아래) poz & proud 바이오해저드 문신

 

 

다른 성별과 성정체성, 성적지향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물론 반도의 게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poz라던지 베어백(bareback: 노콘돔 섹스를 일컫는다) 섹스문화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게이들에게도 체감하는 변화는 있을진대, 게이포르노에 클리셰처럼 등장했던 콘돔이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게이포르노씬의 일부 매니악한 코너에서만 눈에 띄었던 베어백포르노는 현재 대세를 이루며 콘돔을 사용해온 전통과 노콘돔의 금기를 밀어내고 있다. 그것도 초기엔 섹스어필과 거리가 있는 배우들이 등장해 질병의 이미지를 잔뜩 풍기며 오만가지 방중술을 구사했더랬다. 몸에 새긴 문신만 보더라도 가늠할 수 있는 이들의 벌거벗은 몸이 인터넷을 통해 모니터에 펼쳐지는 풍경은, poz문화가 어떻게 바깥으로 가시화되고 상품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하지만 치료제 개발로 부작용이 줄어들고 예방약이 상용화된 최근에 이르면 다양한 체형과 외모와 나이대의 생짜물건들이 토렌트를 달구며 외장하드를 채운다. 베어백에 스며있던 질병의 향수는 잊은 지 오래다. 제제가 없던 것도 아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포르노 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2년 12월부터 남성배우들의 콘돔착용이 의무화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캘리포니아주 포르노밸리의 침체만 초래했을 뿐, 업체들은 제작사를 옮겨 지금까지도 열심히 베어백포르노를 생산하고 있다.  

 

무엇이 변화를 가져온 걸까. 분명 노콘돔섹스의 쾌감에 대한 욕망은 무시할 수 없는 수요의 원천이다. 하지만 관객의 욕구에 응하기 위해서는 에이즈위기 이후 지속적인 의약품개발과 보급, 그리고 인식변화가 저변에 깔려 있어야 함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많은 배우들이 예방약을 먹고 꾸준히 검사를 하겠지만, 감염인일지라도 치료약 잘 챙겨 먹고 건강관리 잘 하면 바이러스 수치를 제로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변화를 추동한다. HIV감염이 감염된 당신의 잘못이라고 비난했던 신자유주의적 관점의 책임론은 이제 감염인의 자기계발로 코드 전환한 셈이다. (관리하는) ‘건강한 감염인과의 성관계가 검사와 예방에 신경 쓰지 않는 무분별한 비감염인과의 관계보다 안전할 수 있다는 뉴스도 나오는 마당에,[각주:3]당신은 감염인과 섹스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은 적어도 위의 그린라이트앞에서는 철지난 내용처럼 들린다.

 

제이슨박의 글 제목을 빌린다면, 건강한 감염인들이 노콘돔 섹스를 향유하고 비감염인조차 poz집단을 선망하며 감염인과의 관계에 몸을 던지는 행위는 말 그대로 HIV ‘페티시에 가깝다.[각주:4] 하지만 위험한 경계를 향유하는데 의학적, 경제적 맥락을 무시할 수는 없다. 감염인 자긍심은 90년대 중반 칵테일요법 이후 에이즈가 만성질환이 되는 의학적 성과 아래 안정적인 경제력과 사회적 기반을 바탕으로 나름의 가시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배경에 기반한다. 말인 즉 저소득층, 청소년, 유색인종 감염인들에게 poz문화는 향유하기에 거리가 있다.

 

에이즈위기가 마무리된 직후, 감염인 자긍심이 생소하게 인식되고 게이들의 콘돔 없는 섹스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논쟁적이었던 상황 속에서 베어백섹스는 학문적 관점에서 다소 추상적으로 의미부여 되었다. 레오 베르사니(Leo Bersani) 같은 이론가들은 콘돔 없는 섹스, 몸 안에 가림막없이 뿌려지는 정액에 탈주체의 윤리를 부여하기도 했다. 부연하면 위험을 부담할 만큼 나를 던지고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소 과장된 해석의 바탕에는 에이즈가 가져온 트라우마의 역사가 있다. 에이즈위기로 한 도시에서만 수만 명의 게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세계시장의 확대로 지역커뮤니티가 와해된 이후, 관계는 경계로, 커뮤니티의 결실은 상실로 급반전한 것이다. 커뮤니티에 대한 향수는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97년 뉴욕에서 결성된 섹스 패닉(Sex Panic) 같은 과격한 이들은 인정에 호소하는 일부일처제 결혼운동의 논리를 반대하며 난잡한섹스를 잃어버린 커뮤니티를 회복할 수 있는 전략으로 삼고 급진적 정치 행위로 해석하고 실천할 것을 주장했다. 일련의 배경 위에서 poz는 커뮤니티 회복의 고립된 판본을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예방약과 치료약이 일정 수준에 오른 지금에 와서는 베어백도, poz문화도 (아웃사이더로서의) ‘엣지를 잃었다는 것이 최근의 평이다. 참고로 현재 운영되는 파즈닷컴(http://www.poz.com/) 홈페이지는 감염인들의 건강한 삶 전반을 아우르는 건전한커뮤니티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

 

 

3

 

 

 

truvada whore 티셔츠

 

 

예방약이 보급되어 콘돔 없는 섹스가 어렵지 않게 수행되는 풍경은 80년대 초중반 세이프섹스를 독려하기 위해 콘돔에 섹시한 의미를 부여한 것과 상반된다. 하지만 예방약에 대해서도 보급 초기에는 논쟁이 많았다고 한다. 반대하는 이들은 기존 방식대로 예방하고 관리하면 될 것을 굳이 돈 주고 약을 찾아 먹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주장해오고 있다. 차라리 감염인들에게 의약품 접근권을 높이고 세이프섹스와 검사를 포함한 인식개선 캠페인에 비중을 두는 것이 예방약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경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판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예방약을 찾는 이들은 ‘truvada whore’이라 비난받기도 했다. 예방약 먹고 문란하게 섹스하는 애들이란 뜻이다. 근데 정작 당사자들은 비하적인 호칭을 전유하여 아예 티셔츠에 새겨 넣고 다닌다. 비판에 거리낄 것이 없다는 자신만만한 태도에는 예방과 치료가 보장하는 건강한 삶이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기본적인 자원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의약품 접근권이 높아지고 수많은 건강관리 프로그램들이 산재한 미국에서는 질병을 숨기기보다 드러냄으로써 관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필요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마인드가 미덕이 된듯하다. 이는 그간 커뮤니티 내에서 에이즈를 쉬쉬하며 질병당사자를 음지로 밀어 넣고 분리의 대상으로 만들어 질병당사자로 하여금 자기검열의 낙인을 씌운 한국과는 상반된다. 하지만 미국이라고 모든 베어백섹스와 마약주사들이 에이즈로부터 구원되는 건 아니다. ()보험제도가 굳건한 미국에서 예방과 치료, 검진을 아우르는 의료접근권은 모두에게 주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사회 내부 인종 간, 계층 간 갭이 질병에 대한 예방과 지원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HIV/AIDS는 감염률 높은 유색인종과 빈곤층의 문제로 초점이 맞춰진지 오래다. 현재 미국의 에이즈운동은 예방약 보급부터 치료장벽 완화, 콘돔사용의 독려와 정보 접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호들이 생산되고 있으며, 이들은 에이즈를 둘러싼 상이한 관점과 상황들을 교차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은 어떤가. 사실 한국에서 트루바다는 감염인 치료제로서 보험이 적용되고 있지만, 예방약으로는 보급되지 않는 실정이다. 예방목적으로 보험이 적용되는 경우는 임신 중인 감염인, 감염인 산모로부터 태어난 신생아, HIV에 노출된 의료종사자, 감염인의 배우자로 한정된다.

 

국가가 관리하는 의료보험제도 아래 예방약이 어떻게 지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접근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한 달 복용치가 수천달러를 호가하는 부담도 있는데다 당장 수요와 대상을 파악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국가가 예방약을 제공하는 것이 공적으로 베어백섹스를 인정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이 안전하지 않은 섹스를 부추긴다는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예방약을 보급해야할까?’ 라는 질문은 생각만큼 넘어서기 쉽지 않다. 미국에서도 PrEP시행 초기 AHF(AIDS Healthcare Foundation) 대표 마이클 웨인슈타인(Michael Weinstein)이 트루바다를 파티 약’(party drug)이라고 평가절하해서 격론이 일었던 일화가 있는데, 이는 게이커뮤니티 뿐 아니라 에이즈 운동진영 안에서도 논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방약 제공은 사보험이 제도화된 미국에서나 가능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서비스대상이 제한적인 미국에서 의약품제공은 하나의 보험 옵션으로 상품화되어있다. 트루바다를 생산하는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사의 경우 현재 프로모션 차원에서 자기부담금을 대신 지급하거나 일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예방약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홍보한다. 사보험제도에서도 예방약이 두루 보급되는 것처럼 들리겠으나, 예방약 지원경로가 사보험과 제약회사의 프로모션에 의존하는 경향을 안정적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민되는 건 에이즈 환자들을 받아줄 요양병원이 없는 한국의 극악한 환경에서 예방약 이야기가 어떻게 소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다. 에이즈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정부의 행정 관료들은 국내 감염인이 일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수요문제를 핑계 삼아 형평성을 운운하며 서비스 제공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감염인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에는 여전히 에이즈가 죽을병이라는 오랜 낙인이 박혀있다.

 

최근에는 그간 에이즈에 귀를 닫고 쉬쉬해온 국내 게이커뮤니티가 예방약 이슈에 대해서는 귀 기울이고 있다는 비판도 들린다. 얄밉지만 여기에는 다음의 항변도 가능하다. 미국과 달리 남한의 게이들에게는 에이즈 위기로 수만 명의 친구를 잃었던 트라우마가 없는데다 파괴된커뮤니티조차 없기에 옛 커뮤니티에 향수를 갖고 되살려야 한다는 투쟁의 의지를 가질 조건이 부재했음은 물론, 질병을 입에 올릴 일도 비교적 드물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에이즈위기는 외부로부터 전래된 낙인이었다. 특정 지역에 게이업소가 모이고 만남의 채널들이 형성되는 가운데 에이즈는 틈입해왔다. 관계를 지지할 기반이 빈약한 가운데 에이즈는 소문과 괴담으로, 공포로 쉬쉬되었고 감염된 이들은 자연스레 집단에서 탈락되었다. 그러던 중 바다건너 들려오는 푸른 알약의 소식은 자신들의 성정체성에 주홍글씨처럼 낙인찍혀있던 질병의 위험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요술램프로 받아들여진다. 다분히 일반화된 위의 레퍼토리는 적어도 에이즈를 나 몰라라 배제해온 커뮤니티의 뿌리 깊은 무책임과 은폐를 설명할 수 있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책임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생각해보자. 많은 게이들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콘돔 없는 섹스를 하자는 제안을 어렵지 않게 하거나 듣지 않아왔던가. 이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의 감염사실을 밝히거나 감염여부를 묻는 것 역시 관계를 갖는데 벽처럼 인식되곤 한다. 그런 가운데 예방약의 소식은 적어도 귀찮은 상황들을 만들지 않으면서 쾌감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예방을 포함한) 의약품의 개발과 보급이 질병의 무게를 덜고 에이즈에 대한 무거운 인식을 덜어줄 계기가 되리라 기대할 수도 있겠다. 물론 에이즈에 대한 의학적 성과들이 많이 알려질수록 위험부담은 반감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되고 보급된다고 해서 수십 년 간 각인되어온 에이즈의 부정적인 의미들이 순식간에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단적으로 에이즈에 대해 한국의 의료보험은 미국에 비해 보다 나은 의약품접근조건을 제공한다. 하지만 감염인에 대한 인식에 있어 한국이 미국보다 낫다고 평가하는 이는 없다. 문제는 일정 수준에 다다른 치료기술과 질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에이즈는 만성질환이지만, 죽을병이라는 공격은 아직도 유효하다.

 

에이즈에 대한 이중적 관점 위에서 감염인의 삶은 모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건강한 감염인들은 이미 자신의 감염사실을 숨긴 채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 맺을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런 관계들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질병을 드러낼 경우 이들이 겨우 지속해온 사회활동과 친밀한 관계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질병에 대한 혐오가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관계를 단절할 뿐 아니라, (자신의 질병을 숨기는) 건강한 감염인과 에이즈환자의 분리 또한 재생산하리라는 것이다. 일례로 2012년부터 질병관리본부의 에이즈 바로 알기캠페인은 건강한 감염인을 강조하기 위해 에이즈환자와 HIV감염인을 구분한다. 건강한 감염인은 관리만 잘하면 바이러스 수치도 제로를 유지할 수 있으며, 면역력이 낮아져 합병증을 가질 일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구호는 에이즈환자에 대한 요양병원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는 담당기관의 방관을 스스로 노출한다. 건강한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관계회복이라는 아름다운 그림 뒤에 에이즈환자가 분리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한국사회에서 에이즈예방약 이슈가 품은 맹점이기도 하다.

   

 

  질병관리본부의 <에이즈 바로알기>(2012) 캠페인

 

 

아무리 이슈가 뜨거울 지라도 아직 에이즈예방약은 먼 나라 천조국의 이야기다. 예방과 치료가 가능해지더라도 불필요한 위험과 낙인의 역사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질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질병당사자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기반이 부재하는 현실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당장 우리가 물심양면으로 질병당사자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력한다면 내 안의 에이즈혐오는 벗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신중하되 경계하지 않으며, 조심하되 혐오하지 않는 태도야 말로 서로의 삶을 지지하며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노력들을 이야기해보자. 너와 나의 금요일은 다르지 않을 테니-

 

 

 

 

 

 

 

 

 

 

 

<너와 나의 불금은 다르지 않아>

이번 살롱 드 에이즈에 나온 구호다.

 

 

 

: 해외사례들을 주로 소개하는 텍스트 구성에도 불구하고, 세미나에서는 한국 게이커뮤니티 관점의 고민들이 많이 나왔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마무리는 서툴렀다. 하지만 어쩌랴. 세미나의 결론들이란 대개 원대한 그림 위에서 깨알 같은 경험과 의견을 나누며 큰 방향을 노정하고 싱겁게 수습되기 마련인 것을. 많은 고민들이 정리된 세미나였고, 새로운 활동을 고민할 필요성도 절감했다. 우리와 깊은 이야기와 활동을 원한다면 HIV/AIDS인권팀의 문을 두드려주시라. 다리 팔 벌려 환영하겠다.

 

 

 

 

 

 

 

  1. 지난 5월 14일 미국 보건부가 발표한 PrEP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링크: http://www.cdc.gov/hiv/pdf/PrEPguidelines2014.pdf, WHO가 핵심 인구 집단에 대해 HIV 감염, 진단, 치료, 돌봄에 관한 전체 가이드라인을 낸 소식은 링크: http://www.who.int/hiv/en/ 를 참고하기 바란다. 후자의 경우 “MSM에게 있어 통합적 HIV 예방 조치들 내에서 PrEP가 추가적 예방 조치로 권고될 수 있다.”는 문항이 새로 추가되었다. 위의 소식들은 토리님이 SNS에 공유해주었다. [본문으로]
  2. 여기서 참고한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임근준, 《현대미술, 그 미적 성취의 기록: 전후 거장에서 21세기 신예까지》, <6강 에이즈 시대의 미술>, 아트 앤 스터디 강의록 中 ‘괴상한 문화의 등장, 파즈 앤 프라우드 이슈’/ 제이슨 박. “Poz & Proud.” DT2(2008). [본문으로]
  3. 위의 기사는 2013년 5월 23일자 Daily Xtra에 From 'hazardous' to hot으로 기고된 바 있다. 해외 LGBT소식 블로그 Mitr 에서 번역된 기사를 읽어볼 수 있다. (링크: http://mitr.tistory.com/536) [본문으로]
  4. 정확한 글의 제목은 'HIV페티시스트의 고백' 이다. 《DT3: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2013)에 수록되어있다. 저자는 “특정한 물리적 대상이나 상황에서 성적인 각성을 얻는 것”이라는 페티시즘의 정의를 빌어 위의 경우 뿐 아니라 HIV/AIDS공포증 또한 페티시즘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