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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무지개 간담회〉 - 뻔한 후기

by 행성인 2014. 11. 11.

소유 (동성애자인권연대)

 

 

 

 

10월 15일에 있었던 '세월호 무지개 간담회'는 기다리던 일정이었다. 이름 그대로 세월호 유가족과 성소수자들이 만나는 자리이다. 유족분들이 직접 나오시고 또 무지개행동 주최라기에 여러 단체에서 온 분들로 발디딜 틈 없을 거라 예상했는데, 빈 자리들이 없지 않았다. 패널로는 대책위 유가족 네 분이 나오셨다. 간담회에 앞서 세월호에 관한 영상 두 편이 상영되고, 유가족 분들이 소개와 함께 사고 당시의 상황, 현재까지의 경과, 심경 등을 이어서 이야기 해 주셨다. 익히 알거나 짐작이 가는 내용이고 영상도 어쩌면 뻔한 것이지만 사고 이후 화면이 유족분들의 발걸음을 따라갈 때 이미 불꺼진 홀 안에는 젖은 기침과 코 훔치는 소리 그리고 눈가 매만지는 손짓들로 가득했다. 생각컨대 집회가 계속될수록 눈시울 적시는 상황이 적어졌던 것은 상황이 변해서이지 사고에 무덤덤해져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간담회가 단지 눈물을 쏟기 위해서 만들어진 자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왜 무지개 깃발을 걸고 만나야 했을까? 어쩌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연대하는 상황에서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일수도 있다. 게다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성소수자 '인권에 반대'하는 자들과 상당수 일치한다는 것, 그리고 단식하던 유민아빠의 이혼을 문제삼는동안 드러난 이들의 '정상 가족'에 대한 단견이 성소수자들을 공격하는 논리와 맞닿아있다는 것 정도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이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이 자리에서 있을 ‘위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들, 그것도 극히 괴로운 방식으로 이별을 겪은 분들에게 스스로 큰 고통 없이 자라왔다고 얘기하는 내가 위로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서울광장의 무대 앞에 유가족분들이 있고 거기서 얼마 되지 않은 자리에 무지개깃발이 나부끼고 연대를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일방적인 지지에 가까웠을 것이다. 물론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하는 것은 모두가 직접 당사자이다. 여기서 누가 어느 쪽으로 주었네 받았네 하는 것은 마치 집회 무대에서 와주신 분들로 이름이 호명되지 않은 것에 섭섭해하는 것 만큼이나 편협한 일이다. 하지만 저분들이 무지개 깃발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무척 방어적이 되어서 기본적으론 보수적인 것이 당연하지, 그리고 저분들에게 그걸 당장 기대하거나 요구할수는 없어, 라고 떨쳐내버렸던 것 같다.

 

그러니 뒤이은 행진이 피곤했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평소 낯익은 사람들 앞에서조차 자기 의견을 말하기 힘들어하는 내가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소리도 높이는 건 아군이 가득해서였다. 다른 깃발 아래서와는 달리 유독 무지개 깃발에서만은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느라 마치 서로 다른 두 곳의 투쟁에 동시에 결합하는 것 같은 피로가 있었던 것이다. 혹 그런 거리감이 이날 참여자가 적었던 원인 중 하나였던 건 아닐까? 기억들은 마음 한켠에 쌓이기 마련이다. 마치 줄곧 모르고 지내다가 성소수자의 정신건강 통계를 볼 때서야 새삼스러워지는 자신의 우울 병력, 혹은 평상시 이성애자로의 패싱이 너무 익숙해 아무렇지 않다가도 오픈한 사람들을 접하곤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자신의 욕구처럼, 나는 간담회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드러내고 이해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적잖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다행히도 그런 나의 기대는 소중한 기억들로 되돌아왔다. 유족분들을 향해 이어진 지지와 공감의 말들 다음 이어진 '어떤 자리인지 알고 오셨죠?' 라는 재치있는 사회자의 질문에 다들 웃음보가 터졌던 기억, '여러분이 원하는 세상에 대해 듣고 싶다'며 먼저 다가와주신 그들, 그리고 성정체성과 장애라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세상에 대해 잘 이야기해주신 참가자분들 사이에 서툰 교감이 오갔고 그 대화에서 보인 가능성이 고스란히 힘이 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만큼 많이 오가진 않아 아쉬웠지만, 서로에게 무척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처음으로 어렵게 내민 손길이라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한편으론 이 자리가 만들어지기 전 대책위 분들이 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적 고려와 고정관념이 얽힌 참가자들에 대한 예상을 솔직하게 들려주실 때는 상황이 이해되는 지라 그 진심이 고마웠다. 그리고 한편으론 주변의 다른 이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할 때도 화를 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청하려는 태도를 보였던가 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평소, 주위에 오랜 기간 활동한 분들을 볼 때 따라갈 수 없다고 느꼈는데, 그 이유는 언제나 마음가짐 때문이었을 것이다.

 

너무 개인적인 말이지만, 아마 다음 집회 때는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일 것 같은 기분에 조금 들떠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절대적인 공감과 거창한 지지 선언이 아닌 이런 교감들이 조금 더 너의 일을 나의 일로 만들고,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교감의 자리가 다른 많은 사람들과도 더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그래서 모두가 바라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자리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