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내 주변엔 성소수자가 없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피식 웃음이 난다. 없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 존재하지 않기에 존엄도 권리도 없는 존재들. 차별의 출발은 배제와 비가시화다.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살면서 장애인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사실 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이사장님이 지체장애인이었다. 휠체어를 탔기에 우리 학교에는 4층 건물 전체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긴 경사로가 있었다. 그곳을 뛰어다니다 혼난 적도 있다. 어찌보면 휠체어 접근성이 보장된 아주 좋은 학교를 다닌 셈이다. 그리고 같은 학년에 다리에 보조장구를 하고 목발을 사용하는 친구도 있었다. 친하지는 않았다. 스무 살이 넘도록 장애인 친구를 둔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본 존재들은 없는 취급 당했다. 대학에서 교양수업이 많이 열린 6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수업을 갈 때마다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장애인들이 그 건물을 사용할 수 없어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2000년대 초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장애인의 존재가 뇌리에 각인된 사건이었다. 휠체어에서 내려 마포대교를 건너는 장면의 적나라함을 잊을 수 없다. 나의 몸과 다른 몸들이 투쟁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시각적인 다름은 (다른 한편에서) 차이를 말하는 성소수자로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낯설고 고통스러운 느낌과 더불어 다르다는 것을 감출 수 없는 상태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뒤섞였다. 성소수자 중에 장애인이 있고, 장애인 중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행성인 사무실이 이사할때마다 휠체어접근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인 내게 장애인의 존재가 보인다는 사실은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부대끼는 것과 같다. 한 집에서 사람과 영혼이 서로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소동이 일어나는 영화 속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만나고 보고, 이야기 나눠야 한다.

얼마 전 JTBC에서 방영된 <선암여고 탐정단>이라는 드라마에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 대한 괴롭힘을 다루면서 동성 키스신이 등장했다.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이들은 그 장면이 불건전하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재빠르게 심의에 들어갔다. 심의위원들은 동성애혐오 발언을 쏟아냈는데 그 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성소수자, 안타깝다. 그들의 인권을 침해할 생각은 없다. 다수와 다른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다 생각하지만,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전 동성연애에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다.”(함귀용 방송통신심의위원) 편견과 차별로 얼룩진 발언 속에 “장애”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동성애가 질병 목록에서 삭제된 것이 오래 전이니 발언자의 무지를 탓할 수 있다.  동성애자를 장애인 취급해서 심기가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장애를 앓는 사람에 대해 ‘안타깝다’면서 연민하듯 구는 태도다. 여기에는 장애인에게 덧씌워진 동정과 시혜가, 성소수자들을 옭아매는 혐오의 굴레가 응축돼 있다. 결국 발화자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성)행위로 전락시키고, 그 행위에는 ‘적극 반대’함으로써 스스로의 도덕률을 구축한다. 더불어 도덕적 자장 위에 장애와 자신을 구분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상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성소수자들은 지독한 편견과 억압, 또 그에 맞선 저항 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발전시켜왔다. 과거 성소수자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한 주장들 중에는 병리적인 관점에서 스스로를 호소한 목소리가 있었고,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거스르는 행동이 자신들을 인정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존재 자체가 비윤리적이라고 취급 받는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사회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동정과 시혜를 거부하고 권리를 위해 싸우는 장애인 운동은 이런 맥락에서 성소수자 운동에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육우당을 비롯하여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 친구들을 추모하는 4월은 장애인 동지들을 추모하고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회의 배제와 차별에 투쟁을 집중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행성인은 2004년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필두로 장애인 운동과 다양한 만남과 연대의 자리를 가져왔다. 그 사이 장애인 운동은 성소수자 운동의 든든한 벗이 되어주었다. 서울시청 점거 농성 당시에는 가장 먼저 달려와 목소리를 같이하고 물품을 후원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행성인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공동행동과 함께 육우당 추모문화제를 주최한다. 일련의 취지 아래 최근에는 회원들과 함께 장애인권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로를 알아가며 관계맺는 시도 속에 연대는 굳건해질 것이다.

‘화목한 이성애 가정의 근면한 비장애인 백인 남성’ 같은 이미지가 모두에게 인간다움의 기준이 되는 상태야 말로 거짓이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장애인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사회에서 저항과 연대는 함께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교육이다. 함께 살기 위해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에 연대하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5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에 함께합니다~!


4월 20일은 정부가 만든 ‘장애인의 날’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장애인들은 수많은 차별과 억압,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의 일상화 속에서 기본적인 삶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고통 받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날은 여전히 시혜와 동정으로 치장되어 장애인의 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날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을 통해 철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2002년부터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하 420공동투쟁단)을 구성하고, ‘420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라는 기치 아래 새로운 저항의 흐름을 조직하고 실천적 민중연대투쟁을 펼쳤습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꾸준히 420공동투쟁단에 참여하고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연대해 왔습니다. 행성인 회원 여러분, 혐오에 맞선 저항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올해는 더욱 적극적으로 420공동투쟁에 연대합시다.

 


함께할 수 있는 것들!
- 회원 교육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장애인권교육에 참여해 장애인 차별과 인권에 대해 함께 공부해요!
- 2015년 420장애인권위원 – 장애인권리보장법 입법청원인이 되어주세요! 5천 원 이상 기금을 내고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을 지지하고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지지하는 실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및 문화제, 제1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등 다양한 실천과 행사에 참석해요!

 


주요 일정
3월 26일(목) 1시, 보신각, 최옥란, 최정환 열사 정신계승 빈민대회
3월 26일(목) 2시, 보신각, ‘가자 총투쟁으로!’ 420공동투쟁단 투쟁선포식 및 11회 전국장애인대회 및 행진
4월 3일(금) 7시, 회원교육 ‘출발! 장애인권여행’
4월 8~11일(수~토), 서울시청 시민플라자 및 바스락홀, 제1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http://www.420sdff.com/) “차별에 저항하라! 세상을 바꾸는 법”
4월 19일(일) 마로니에 공원, 420 전야제(부스 행사 및 문화제)
4월 20일(월) 서울역, 420 결의대회
4월 25일(토) 광화문 해치마당, 청소년성소수자 故육우당 12주기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성소수자들을 기억하는 추모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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