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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렛세이LETSSAY

[LETSSAY] 6월의 렛세이

by 행성인 2015. 6. 19.

렛세이어 빨강
차쨩


목소리만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희미하고 뿌연 사진으로 기억하고 있다. 단발과 컷트머리 사이의 애매한 경계, 은색 안경, 쭉 뻗은 콧대와 오밀조밀한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167.5라고 했다. 한사코 쩜오를 강조했다. 자기는 얼굴이 못생겨서 내세울게 키밖에 없다며. 하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 본 적이 없으니 그녀의 키가 정말 167.5인지 알 길이 없다. 그녀가 말을 할 때는 어떤 몸짓을 취하는지, 어떤 향수를 쓰는 지, 심지어 그녀의 진짜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다. 낮고 깊게 울리는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너 참 예쁠 것 같아,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녀를 만난 것은 한 채팅 사이트였다. 23살 차쨩이예요. 왜 차쨩인가요. 성이 차씨라서 차쨩이예요, 일본에서는 애칭의 의미로 ‘쨩’을 붙이곤 하잖아요. 그럼 저는 당신을 애정해야만 하겠네요. 그래주면 고맙죠. 그래도 언니라고 부를까요? 아뇨, 차쨩이라고 불러주세요.

 
   자정이 넘으면 내 방에는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방문을 꼭 닫고, 커튼도 꼼꼼하게 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어김없이 낮은 목소리. 오늘도 차챵의 목소리가 참 좋아요. 목소리 좋다고 해 준거 네가 처음이야. 나는 전화기를 더 꼭, 귀에 붙인다. 달팽이관 속으로 넣어버리고 싶다. 아니, 그녀의 목소리를 고막 안 쪽 가장 깊은 곳에 감춰놓고 싶다. 오랜 배멀미 끝에 겨우 육지에 막 닿은 것처럼 흔들거리던 마음이 겨우 잠잠해진다. 자장가처럼 심호흡이 밀려온다. 차쨩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른해져요. 나는 벽을 매만진다. 찹찹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온다. 전화기 너머에서 희미하게 그녀가 웃는다. 다시 쿵쾅쿵쾅. 요동친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대략 300km. 버스로 4시간이 걸린다. 절실히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열여덟의 나에게 그 거리는 너무나도 먼 거리였다. 만나서 차쨩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나도 만나서 너를 안아보고 싶어. 그녀의 팔이 내 어깨에 감기는 것만 같다. 너의 가슴은 분명 보드랍겠지. 가슴이 간질간질. 네 살결은 분명 보송보송하게 잘 마른 이불 같을 거야. 나의 모든 살갗이 부르르르 떨린다. 그녀의 목소리 톤이 너무 낮기 때문 일거야. 차쨩, 하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후후, 하고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한 낮에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 그녀는 직장에, 낮 시간에는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미친척하고 만나러 갈까, 시외버스터미널 코앞까지 가서 고민했었지만, 나는 그녀가 구체적으로 무슨 동 몇 번지에 사는지 알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와 통화할 수 있는 밤을 기다렸다. 늘 3-4시를 훌쩍 넘겨 잠들었다. 때로는 아침 해를 보기도 했다.

   보름 정도의 밤이 지났을까. 서로를 소개하는 것도, 접점 없는 서로의 일상을 상상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내 몸에게 내뱉는 말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지금 브래지어 후크를 풀어, 가슴을 만져봐, 손을 점점 아래로 내리는 거야, 허리를 쓸어내리면서, 좀 더 아래까지 가보자. 내가 만진다고 상상해봐.

     팬티에 손을 댄 그 순간 벙벙해 질 정도로 주변이 적막했다. 허공을 멍하니 주시하던 눈이 초점을 찾아가며 휙휙 돌았다. 꼭 닫아 잠근 방문, 달빛조차 들어올 수 없게 꼼꼼하게 쳐 놓은 커튼, 차가운 벽, 오로지 내 숨결만 묻어 있는 이불,

 
   푸르스름한 액정화면에서 통화시간만 바삐 늘어가고 있었다. 전화기는 쉴 새 없이 농도 짙은 말들을 흘려보냈다. 「차쨩」 글자만 도드라져있다.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언어들이 주인을 잃고 맴돌고 있었다. 차쨩, 날숨에 섞어 나지막하게 내보냈다. 이름은 소리 없이 산산이 흩어졌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기는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해서 내보냈다. 나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리고 그녀와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과 오랜 통화를 하면서 간간히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녀가 떠올랐다. 내 손으로 나를 만지게 했던, 벙벙한 시간을 선물해 줬던 사람. 차쨩.



렛세이어 주황
​거짓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수업 잘 끝났어? 잘 끝났지. 근데, 우리 이번 주말에 보기로 한 거 맞지? 연극은 파토 났고... 걷자고 했었나? 그래, 그러기로 했잖아. 미안미안~ 오전이었나? 아니 아니, 오후다! 그치! 응, 토요일 오후 만나서 저녁 먹고, 자전거도 탈까? 그래 그래~ 재미있겠다 그치, 그럼 광교를 또 갈까? 호수공원? 응응! 거기만한 곳이 없잖아. 좋죠~ 날도 좋았으면 좋겠다."

  문이 살짝 열려있는 틈으로 그녀가 왔다갔다하는 기척이 느껴진다. 기척이 잘 느껴질 때면 소리를 더 높여 애정을 담아 전화 너머 그에게 말한다. 조곤조곤조곤조곤-

  그리고 더이상 "얘깃거리"가 떨어졌을 때, 전화를 "끊고는" 핸드폰을 한다. 그녀는 들어오지를 않는다.

  '이쯤이면 들어와야 하는데...'
  나가보니 건너편 방 침대 위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다. 

  "안 오고 뭐해?" 
  "너 전화통화 하길래 피해 있던 거잖아." 
  "다 끝났어, 들어와." 
  "...누구랑 했는데?" 
  "그 사람." 
  그 사람이라고만 말했는데 그녀의 표정이 굳는다. 이미 누군지 알아차렸다는 걸 의미한다. 아니, 물어보기 전부터 그녀는 누군지 다 알고 있었다. 확인 사살이랄까. 아니, 엄밀하게 하자면 확인자살 이려나.

  방으로 돌아왔다.
둘이 나란히 누워있지만 마음도 생각도 하나에 묶여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어서 이 침묵을 깨고 대화의 주도권과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싶다.

  그녀는 질투라는 감정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왜 아무 말도 않아?" 
  "......." 
  "있지, 같이 저번에 호수공원 갔다고 했잖아? 근데 거기 진짜 너무 좋더라고. 이번에 또 가기로 했어." 
  "......." 
  "처음 손잡았는데 손도 되게 커. 키 큰 사람은 처음인데 역시 키가 크면 손도 큰가 봐. 잡을 때 느낌이 좋아." 
  "알겠으니까 그만 얘기해." 
  ".......왜 그러는데?" 
  "나랑 같이 있을 때 그 사람 얘기 하지 마" 
  "......너가 만나지 말라고 하면 만나지 않을게." 
  "...난.... 너한테 누굴 만나라 마라 할 자격 없는 거 같아." 
  "너가 만나지 말라고 하면 만나지 않을게.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
  "...응? 말해봐 어서. 만나지 말까? 그 사람?" 
  "그 사람이 더 좋아, 내가 더 좋아?" 
  "그 사람이 더 좋으면...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널 계속 만나겠니?" 
  이내 이불 속으로 얼굴을 묻고 날 끌어안는다.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 사람..." 
  됐다.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봄에 헤어지자 했을 때는 무작정 잡았었다. 나중에 호감이 생기면 나를 버려도 좋으니 지금은 나와 함께하자고 무작정 그렇게. 나의 세상이 흔들렸던 그 때, 그 진부하기 짝이 없던 이별노래들의 가사들이 피부 속으로 날 옭아맸던 그 때의 난, 그래도 용감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땐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무작정 매달릴 수 있었다, 용감할 수 있었다.
​  근데 이번엔 아니었다.

  남자가 있었다, 그녀에게. 그것도 내가 그녈 알기도 전에 그녀와 손을 맞잡고 걸었던 시간들이 있는 사람. 남자라는 사실도 괴로웠지만 '전'이라는 타이틀이 그렇게 대단한 파워를 발휘할 줄이야. 내가 그녀를 몰랐던 그녀의 시간들 속에서 그녀의 옆이 잠깐이라지만 그 사람의 자리였다는 게 이렇게나 날 무기력하게 할 줄 전혀 몰랐다. 그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내가 그녀 옆에 있을 땐 내가 "그 남자"보다 우월했다.

  ​그녀와 헤어져 있던 많았고 길었던 밤들 중 어느 한 날, 그녀와 간신히 카톡을 몇 마디 나눌 수 있게 돼서 밤이 깊도록 핸드폰을 붙잡고 놓지 못했던 날이 있었다. 답장은 뜸했지만 다른 그 어느 때보다 카톡의 "1"이 사라지는 게 그리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러다가 1시간, 2시간 답장이 안 올 때면 내 몸은 침대 깊숙이 그리고 더 깊숙이 저 깊숙한 곳까지 집어 삼켜지곤 했다. ...' 그녀가 그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다.' 눈이 감겨도 자지 못했고 자고 싶어도 잠들 수 없었다.

  그 헤어짐의 날 들, 나는 어떠했는가. 그냥 머리가 주우욱하고 녹아 내려서 끈적끈적 질척질척 온 몸이 차례차례 눌러 붙는 기분.
  그렇게 악몽 같은 3주가 지났을까. 나의 공포감과 나의 싸이코적인 상상력은 나의 '남자'를 만들어 냈고 그녀가 그를 만날 때마다 나도 얼굴도 모르는 '나의 남자'를 만났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알고 있어야 했다.

  그녀는 그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지만 난 일부러 '나의 그 사람'에 대해 떠들었다. 종알종알 사랑을 가득 담아. 더 현실적이게. 그래서 나도 그 '현실의 나래' 안에서만큼은 고통 받지 않을 수 있게.
  그리고 거짓말이 늘어날수록 난 점점 비루해졌고 비참해졌으며 누더기를 걸친 거짓말 찌질이가 되어갔다.

  그렇지만 그 대답이면 되었다. 그녀가 헤어짐 이후로 뱉었던 말들 중 나에게 여전히 감정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첫 한마디'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는 얼마든지 괜찮았다. 내가 비참하고 비루한 거짓말 찌질이여도. 그녀의 마음이, 그녀의 옆자리가 다시 나의 것이, 나의 위치가 될 수 있다면야. 나는 광인들의 교황이라도 되어 나의 에스메랄다에게 물 한 방울을 구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렛세이어 노랑
어떤 날의 일기


  비가 온다. 교내는 고요하다. 침묵이 잔뜩 배어있는 이런 시간이 좋다. 말은 없되, 자연은 있는, 영속할 것들만 존재하는 시간은 의식하지 못하는 새 내 안의 에너지를 충전시킨다. 언어는 무력하다. 그래서 치열해야 한다. 예전부터 미미한 것들의 생존방식은 그것뿐이었다.


  근래엔 돈을 아껴쓴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오고(싸주는 건 엄마지만)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 커피도 일회용을 먹거나 캔커피를 마신다. 난 집에서 매달 삼십만원의 용돈을 받는데, 전화요금과 책값, 옷값 등은 엄마의 카드에서 나가니 이 돈은 순수히 식대와 잡비라고 할 수 있다. 외출을 줄이고 술을 줄이니 한 달에 십오만원 정도 쓰는 듯하다. 쓸 데가 있어 모으곤 있는데 그 쓸 데가 정말 쓸 만한 데인지 의문이다.


  캔커피를 사러 가다, 오랜만에 카페를 가자. 싱싱한 커피를 마셔보자 싶었다. 아이스 라떼 한 잔요. 시럽 넣어드릴까요? 네. 3800원입니다. 나긋한 그녀의 말투가 마음에 든다. 과하지 않다. 과하게 친절하지도 않고, 과하게 불친절하지도 않고. 자기 업무를 다하는 성실한 말투. 그녀가 커피를 내리는 사이 난 텅 빈 카페를 둘러본다. 수업 시간이라 그런지 카페엔 나뿐이다. 창가에 앉아 밖을 본다. 전깃줄에 알알이 맺힌 빗방울, 빵가루를 나르는 트럭 아저씨,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 일상의 꺼풀을 벗겨내면 비일상이 있다. 그 급작스런 비일상이 날 들뜨게 한다.

애인 있으세요? 돌아보지도 않고 묻는다. 때마침 멈추는 커피머신. 예상대로의 침묵이 흐른다.
- 네? 저요?

그제야 그녀를 돌아본다. 피식, 웃음이 난다.

- 그럼 또 누가 있어요?
- 아... 그쵸... 잠시만요. 우선..

  그녀는 황급히 우유곽을 뜯어 우유를 잔에 붓는다. 어머, 어뜨케... 우유를 흘린 것을 보니 내 질문에 꽤 당황한 모양이다. 약간 슬퍼진다. 진짜 애인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으려던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이렇듯 멋진 세계 안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팠던 것이고, 그래서 어떤 질문을 던진 것이고, 그 질문이 하필 애인 있느냐란 문장이었던 것인데, 명백히 클리셰적인 상황으로 흘러가고만 것이다. 그 상황을 바로 잡으려 난 다시...
- 커피 나왔습니다.
  창가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간다. 스트로우의 비닐을 벗겨 컵에 꽂은 뒤 싱긋, 그녀에게 미소를 짓는다. 수고하세요. 네, 또 오세요.

  질문은 질문되지 않았다. 카페 입구를 나서며 깊숙이 라떼 한 모금을 빨아본다. 나긋한 그녀의 말투가 그리워져 카페 안을 돌아본다. 가만히 중얼거려본다. 애인 있으세요? 진짜 한 번 던져볼 걸 그랬나. 어떤 식으로든 꽤 볼 만한 전개가 됐을 텐데.

  몸을 돌려 가려던 길을 간다. 충분해, 라고 생각한다. 내일 난 그 카페에 가지 않을 것이고 어쩜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할 테지만. 삶의 어떤 조각들은 자체로 충분하다. 굳이 그러모아 대륙을 만들지 않아도.



렛세이어 초록
희뿌연 담배 연기 너머의 그림자


  잘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있는 힘껏 긁어와 팔아먹는 일은 자제해야겠거니 생각했지만, 주제 단어를 던져놓으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기억들을 어쩌리. 오늘도 환상이라는 단어에 어느 기억을 짜맞춰본다.


  작년 봄이던가 재작년 가을이던가 하던 날. 홍대 앞 걷고싶은 거리 끄트머리에는 공원이 하나 있다. 유치원과 경찰서 사이에 버티고 선 그 공원. 언제나 기억이라는 것은 흐리게 남아 끊임없이 왜곡되고 재창조 될 따름이지마는 그 환상처럼 남은 그림자를 잊을 수는 없다. 담배 세 개비, 십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존재하고는 홀연히 사라진 그 사람. 벤치 끄트머리에 다리를 꼬고 걸터 앉아있던 그녀. 매끈한 허벅지를 타고 내려가는 블랙진은 부드러운 종아리를 거쳐 가는 발목에 맞닿아서야 깔끔히 떨어지고, 허리를 타고 미끄러지는 하얀 와이셔츠는 가슴을 예쁘게 감싸고 있었다. 약간 헐렁한 듯 접어 걷은 소매를 따라가면 새까만 매니큐어가 칠해진 희고 가지런한 손가락이 나타난다. 그 대로 다시 돌아가 어깨선을 타면, 조그만 얼굴 끝 냉정해보이는 그 턱선이며 조그만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온다. 화장품을 잔뜩 칠했을 법 한 화사한 얼굴에는 뜬금없이 검정 뿔테 안경이 그려져있다. 그리고 앞머리 없이 넘긴 검은 긴 생머리. 아무 용건이 없는 게 용건이라는 듯 무감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그 사람. 그 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 나 역시 아무 용건이 없는 게 용건이던 터, 그녀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녀는 조그만 손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말보로 레드. 특이 사항이 있다면 팩담배였다는 점? 그 때라고 흡연자가 아니었던 건 아니지만, 그 때 팩담배를 처음 봤다. 그녀는 조그맣게 뜯은 구멍으로 마치 그녀의 손가락인양 희고 가지런하고 가느다랗게 빛나는 담배를 물어꺼냈다. 숙인 고개를 들자 입에 물린 하얀 담뱃대가 햇빛을 반사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매끄러운 검은색 손톱 역시 빛을 반사해내고 있었다. 동작마저 손에 가려질 만큼 아주 작은 라이터를 쓰는지 손이 한 번 스쳐지나가자 그 빛나는 담뱃대에 불이 붙었다.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이제야 무언가 기억났다는 듯 급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평소 습관대로, 아주 천천히. 하지만 그녀는 정말 빠르게 담배를 피웠다. 내가 한 대를 다 피웠을 때 두 개째의 반을 돌파했으니까. 나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슬쩍슬쩍 시선을 보냈다. 혹시나 들키면……한 순간 그녀를 흘끗 봤을 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담배를 의식하는 듯 했다. 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 그녀가 공원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걸 탐탁찮게 보는 사람의 한 유형으로 나를 오해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녀가 보라는 듯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두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 모습을 슬쩍 본 그녀는 아, 하는 표정을 짓고는 마지막, 세 개배째에 불을 붙였다. 공원 안에 담배연기가 매캐하게 차올랐다. 내가 침을 탁, 하고 뱉었다. 그녀가 다리의 꼰 방향을 바꿨다. 어떤 남자가 와서 다른 벤치에 앉더니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바람에 공원 모래가 섞였다. 그리고 그녀는 곳 왼손에 소중히 쥐고 있던 팩 담배를 그 조그만 손가방에 넣고는 유유히 공원을 떠났다.


 그녀는 내가 모르는 사람. 하지만 환상이 아닌 실존인물. 내게 환상을, 뿔테안경과 하얀 셔츠와 가느다란 손가락, 팩담배라는 "판타지"를 쥐어주고 간 사람이었다.



렛세이어 파랑
지금조차도


  새빨간 공기 방울이 솟아오르고 터지길 반복했다. 기포가 터지면서 빨간 양념 국물이 손등에 작게 튀었다. 알싸하고 따가운 열기가 순간 느껴졌지만 빠른 시간 안에 사라졌다. 음식이 다 익기를 기다리며 냄비 안의 소우주를 응시했다. 그 소우주가 용암 같다고 생각할 무렵 sns상으로만 아는 친하지만 가깝진 않은 친구의 문자가 알림을 울렸다. 이거 너야? 하는 두 단어와 함께 온 사진은 한 성소수자 친목 사이트의 캡처 화면이었다. 연락바람_ 이라는 말과 함께 연락처와 잘 나온 사진을 올린 게시글은 한창 여기저기 찔러보고 다니던 고등학생 때 썼던 것이었다. 어떻게 찾았냐는 내 답장에 자세한 검색 경로와 어서 지우는 게 좋겠다는 말이 다시 돌아왔다. 흑역사를 들켰다는 기분에 나는 옆에 앉은 사람이 볼세라 휴대폰 화면을 비스듬히 잡고 게시글을 찾아 삭제했다. 그것은 아마 매운 음식을 단숨에 들이켰을 때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친구 커플이 헤어졌다. 20대 초반이지만 동거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서로에게 지극정성이던 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좋은 부모가 될 사람들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여자아이는 그들이 함께 입은 것과 먹은 것과 간곳의 사진을 sns에 매일 올렸다. 나는 그녀가 참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 그녀의 sns에는 남자아이에 대한 욕설과 울분에 찬 단어들이 빼곡히 올라왔다. 남자아이가 한 인터넷 사이트에 연락할 여자 구함, 이라면서 자신의 사진과 연락처를 남긴 게시글이 여자아이의 눈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게시글이 쓰인 시기는 그들이 한창 꽃놀이를 다니던 시기였다. 변명인지 해명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는 남자아이와 끝을 선언하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슬프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내 이름을, 전화번호를, 메일 계정을, 아이디 등을 강박적으로 검색해 보았다. 어렸을 때는 분명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내 사진과 업적이 나오는 사람이 될 거야!'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내 흔적 한 톨이라도 어딘가에 흘렸을까봐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지우고, 지우고, 외로움에 싸지른 게시글들을 보고 후회하고, 지우고, 또 지우고 남김없이 지운 뒤 혹여나 미처 보지 못한 잔해가 있을까봐 찾고 또 찾는다.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은 과거의 내가 외롭고 어리석었기 때문이고, 지금의 나도 절박하고 어리석기 때문이다. 지난 흔적은 지금과 미래에 불필요하고 부끄러운 것이며, 지금의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숨겨야한다. 하지만 그것은 남기어 숨기는 것이 아니라 지워서 숨기는 부질없는 것이다.

 눈조차 뜨기 힘든 지는 태양 빛은 내 살갗을 달구고 건너편에 앉은 언니의 머리칼도 달구어 붉게 했다. 나는 잠시 내가 담배를 태우는 것인지 해가 나를 태우는 것인지 혼동했다. 언니가 여기와 함께 물었다. 너는 남자와 여자를 둘 다 사귀었는데, 무엇이 다르니?  둘 다 똑같아. 그녀의 머리카락이 붉어 보였다. 하지만 남자애들이 훨씬 더 찌질한 것 같아. 걔 맨날 내 휴대폰 몰라 검사하거든.  나도 웃고 언니도 웃고 담배 연기도 함께 흔들렸다.


  인터넷 사이트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이건 나지만, 나는 아닐 것이다. 전에 쓰던 메일 계정을 다시 검색했다. 얼마 전에도 했지만 다시 해야 할 것 같았다. 모든 검색 사이트와 검색 결과의 모든 페이지를 강박적으로 훑어 내리는 내가 있었다. 새로 만드는 계정은, 바로바로 흔적을 지워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나도 다름없이 찌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전혀 다를 것이 없음에 조소했다. 나는 내가 여자도 사랑할 수 있어 그 넓은 사랑의 영역이 당연하고 당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지 않다. 동시에 너무나 부끄럽지도 않다. 타인은 숨기를 나를 보고 욕할 자격이 없다. 나를 지켜보는 것이, 타인이기 때문에.



렛세이어 남색


​  일 년이 지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고 떠난 지 일 년이 지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긴밀한 사이로 자리매김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나보다는 너에게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음을 안다.

   너는 힘들었다.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자가 아닌 남자를 사귀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릴 수 있다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나 불편해하던 머리를 길렀다. 어색하지만 화장을 했다. 치마를 입었다. 이쪽의 세계는 고개를 돌리면 사실 금방 묻혀서 보이지 않는 곳이었고, 너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다시금 눈을 뜨면 금세 다시 보이는 것들을 외면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고, 귀를 막았고, 고통스러워했다. 보고 싶었고, 듣고 싶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너에게는 잃을 것이 많았다. 너는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성가신 존재였다. 눈을 감아도 빛은 빨갛게 잔상이 남는다. 나는 그런 잔상 같은 존재였다고 지난 시간 동안 생각했다. 두려움을 자꾸만 상기시켰고, 너를 질리게 만들었고, 너는 실제로 분노하는 듯 했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 동안 생각했다.

 
   지난 주말, 너는 나를 보고 누웠다. 가끔은 천장을 보다가 다시 나를 보고, 내 손을 잡았고, 때로는 나를 안았다. 일 년 동안, 네가 눈을 뜨고, 귀를 열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을 안다. 너는 여성주의를 공부했고, 퀴어 이론을 공부했고, 연극을 관람했고, 많은 시간 동안 생각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나와 화해하고 저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보냈다. 자신의 부모님과 종교관을 거스르는 것만큼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은 없다. 일종의 너를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세계니까, 네가 그 앞에서 좌절하더라도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비난할 수도, 넌 결국 겁쟁이야, 라는 그런 원망도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그 앞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너는 이겨내고자 했다. 그리고 결국 ‘친구’라는 말을 포기했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에서 “우리 반지 같이 끼자.”로 변화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고민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이 아주 오랜 시간, 너의 밤에 찾아왔을 거다.

 
  지금도 너는 이겨내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너는 내가 네 자신이 누군가를 마음 깊이 신경 쓰고 아낄 수 있음을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너 자신이 이루고 부정해 왔던 세계, 너를 이루는 요소를 보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라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앞서 너라는 사람의 역사에 있어 무척 의미 깊은 사람이라고 내게 말한다.

  너는 이제 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무척 잘 어울린다. 바지를 입기도 한다. 검은 슬랙스는 무척 잘 어울린다. 얇은 손목에는 커다란 시계를 찼다. 무척 잘 어울린다. ‘우리’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도, 너도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에게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지금에도, 앞으로도 가지게 된다.

 
   너에게 계속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 그렇게 생각한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자학하지 않는다. 열심히 살게 됐다.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잘 살고 싶었다. 조그만 집에서 단 둘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만큼 좋은 삶은 없을 것 같다.

   아침, 내 옆에서 함께 눈을 뜬 너를 본다. 그리고 이런 아침을 맞이할 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서로의 앞에 놓여있기를 바란다.



렛세이어 보라
이보다 더 무서울 수 없는.


 진동이 울리고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가 뜰 때마다, 먹먹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 순간은 정말로 피하고 싶다. 하지만 피할 수가 없다. 중요한 전화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받고 싶지 않다. 숨이 턱 막히고 인생의 즐거움이 가신 채 나는 불안에 떨어야 한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으면 될 것을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사실 내가 진동을 무서워하는 건 가족들 때문이다. 나는 가족들의 전화가 무섭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자주 연락하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게 당연한데, 그런 것들이 오히려 무섭게 느껴진다.

엄마, 아빠와 전화하는 시간은 내게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특히 엄마랑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심한 위압감을 느낀다. 엄마는 뭐든지 일방적으로 지시하듯 이야기한다. 대화 주제도 한정적이다. 밥은 먹었느냐, 별일 없느냐, 공부는 잘 되느냐. 이것 말고는 딱히 깊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아빠나 오빠와는 대화가 조금 통하지만, 부담스러운 건 여전하다. 가장 가까운 사이가 가족이라는데 우리는 남보다 더 먼 사이 같다.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매번 겉도는 대화. 이제 싫증이 난다. 도대체 우린 왜 그러는 걸까. 반가움으로 시작해서 다툼으로 끝나는 우리 가족의 전화. 그런 시간들이 싫었기에 전화하는 시간이 두려웠던 건 아닐까.

 어버이날, 부모님의 가슴에 직접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해도 전화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전화기를 붙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전화할까, 말까.’ 버튼을 누르다가 지우고 또 다시 망설이고, 전화하면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고민하며 포스트잇에다 대화 내용을 썼다가 뜯어버리고.... 똑같은 행동만 계속 반복하다가 결국 전화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금요일이니까 회식도 있으실 테고 그러면 피곤하니까 내 전화 받을 시간도 없을 것이고.....

  그로부터 며칠 뒤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보나마나 가스요금 계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전화하지 않았던 게 마음에 걸렸다. 아빠가 기분 상하신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의외로 아빠는 반가워하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자주 전화 드릴걸. 괜히 후회스러워졌다.

 아빠와 전화통화를 마치고 무심코 벽에 걸어둔 달력을 보았다. 그런데 달력의 날짜가 음력 3월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갑자기 무언가가 머릿속을 푹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이 아빠 생신이다. 아뿔싸.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전화를 자주해서 서로의 안부를 물어봐야 했는데, 가족들의 안부에 무관심할 정도로 혼자만의 생각에 지나치게 빠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그동안 내가 나만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해볼까. 아니다, 지금은 늦은 밤이니 전화하면 가족들이 당황할 거다. 어떻게 할지 또 다시 생각만 하다가 잠들고 말았다.

  모든 것이 잠든 그날 밤, 머릿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원래 전화가 오면 번호가 하나 떠야 하는데 세 개나 떠 있다. 나는 그 번호들을 알고 있다. 뒷자리 번호가 동일한 걸 보니 내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전화일 것이다. 어떻게든 전화를 끊어보려 강제종료 버튼을 눌렀지만 눌러지지 않고, 2분이 훨씬 지났음에도 진동이 계속 울리고 있다. 전화를 받으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혼자서 세 명을 어떻게 상대하지....

   침대 속에서도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렛세이어 분홍
나와 엄마, 타인과 타인.


  엄마와 나 사이에는 골이 존재한다. 넓게 벌어져 있는 골이 아니라, 아주 좁은, 아주 가는 골이라서 나도 엄마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런 골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골은 내가 최근에 들어서야 겨우 인식할 수 있었을 정도로 좁지만, 또 결코 메워질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할지라도 그 골은, 넓어지진 않겠지만 얕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행동 하나, 하나에까지.

  엄마는 언제나 나를 학생처럼 대했다. 화가 났을 때는 더욱, 내 앞에서 선생님이 되셨다.

  나와 엄마 사이의 문제는 그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를 남처럼 대했다. 남처럼, 친한 사이라면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아주 사소한 것도 엄마를 배려했고, 눈치를 봤다. 엄마 또한 나를 남처럼 대했다. 내가 잘 한 것, 내가 잘 못한 것,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마치 선생님처럼 칭찬했고, 마치 선생님처럼 혼냈다. 나와 엄마는 남이었다. 그냥 조금 더 친한, 조금 더 오래 지낸, 하지만 결코 서로 맞지는 않는. 그런 남.

  “난 네게 몇 개뿐이 제재를 걸지 않는다고 생각해. 고작 1년을 더 못 참아? 뭐가 그렇게, 죽고 싶을 정도로 감옥 같다고 느끼는지 이해가 안 돼.”

  글쎄, 통금시간이 7시라는 거? 12시가 되면 자러 들어가야 한다는 거? 친구네 집에서는 잘 수 없고, 친구 또한 집에 들여보내지 못한다는 거? 핸드폰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 분명 몇 개 되지 않는 규칙들이고, 이미 오랜 시간동안 지켜온 규칙들이니 1년 더 못 지킬 것도 없는 규칙들이다. 그런데 나는 뭐가 그렇게 답답했을까.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 우리 엄마는 내게 성적에 관한 것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규칙만 잘 지키면 자유롭게 해줬는데.

  언젠가 아빠가 내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데 뭐가 그리 불만이냐고, 내가 처음으로 엄마한테 소리 질렀던 날, 아빠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런 거였다. 우리 엄마나 아빠는 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모르고 있는 거였다. 하긴, 상담 선생님과 2년 가까이 상담을 해서야 나도 내게 어떤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는데, 아무리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나는 내가 엄마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2년 동안의 상담으로 알았고, 그제야 엄마께 내 의견을 내세우기 시작했는데, 나의 엄마는 언젠가 내가 당신께 소리를 질렀던 그날과 똑같이,

  “너 연극하니?”
 
  하고,
  한 마디를 내뱉으셨다.
  그 때와 다른 것은 내가 엄마의 그 말에 반박을 했다는 것 뿐,

  “엄마는 왜 내가 화를 내면 항상 연극하느냐고 물으세요? 제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세요? 절 제대로 안 보고 계신 거 아니에요?”
  “너, 지금 감정이 과잉 됐잖아.”
  “화가 났는데, 당연히 감정이 과잉되죠.”
  “그럼, 평소에 나를 지지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너는 가짜인거야? 평소에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데?”

  변한 것은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 날 제대로 보고 있지 않던 게 아니냐고 물은 나의 질문에 저런 질문으로 답을 하실지 상상조차 못했기에.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역시 나는 나의 엄마를 불쌍하다고 여기고 있었기에, 그것을 차마 엄마께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기에.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 후에, 엄마는 다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쓸데없는 건 됐고, 그래서 나한테 요구하는 게 뭐야?”

  원하는 게 뭐야.
  불만이 뭐야.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엄마는 애초에, 처음부터, 나와 어떤 대화를 하려던 게 아니라는 걸, 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볼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내가 당신께 화를 내는 이유가 뭔지, 엄마는 애초에, 처음부터,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선생님이 하는 일이란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규칙을 어겼을 때 제재를 하고 화를 내는 것이지, 그 아이의 근본적인 문제를 고쳐주는 것이 아니니까. 그건 상담사가 할 일이지 선생님이 할 일은 아니니까.

  나의 엄마는 항상,
  내 앞에선 선생님이셨다.


  “근데, 너희 엄마는 불쌍하고, 너는 안 불쌍해?”
  “ㅡ씨는 불쌍하지 않은가요?”

  모르겠다.

  나는 엄마께서 왜 저렇게 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나보다도 우리 엄마가 훨씬 불쌍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외에는 달리 뭐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내가 엄마를 불쌍히 여기고 있는 시점에서 나와 엄마의 사이가, 그 사이의 골이 메워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도, 그것을 깨달았어도 어쩔 수가 없다.

  나부터가 이러니까, 나와 엄마는 언제까지나 남으로 있는 거겠지.

  나와 엄마 사이의 골은 아마, 평생이 가도, 넓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얕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결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랑'은 퀴어 에세이 블로그 LETSSAY의 글들을 기고받아 연재합니다. LETSSAY 블로그에서 더 많은 에세이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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