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단숨

 

붉은 커튼, 닳은 의자, 두꺼운 사진집, 나무 창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카페 구석구석 오래된 담배 냄새가 배어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테이블에서 글을 쓰면서 담배를 피울 수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유독 예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었다. 기타 줄을 퉁기면서, 스케치를 하면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내뱉은 하얀 날숨에는 각자의 꿈이 한 모금 씩 담겨있었다. 그러니까 그 꿈들이 카페 구석구석마다 진하게 스며들어서, 내 꿈도 한 번 뱉어보고자 담배를 더 피워 댔던 거다. 나는.

 

처음 담배를 피웠던 곳도 카페였다. 열다섯 살, 여중에 다니던 때였다. 우연히 짝이 되어 친해지게 된 아이는 여자 친구가 있다고 고백해왔다. 그렇게 어느 날 기어이 학원을 땡땡이치고 그 아이의 손에 이끌려 한 카페로 빨려 들어갔다.

 

친구. 내가 난생처음으로 가 본 카페의 이름이다. 가냘픈 팔이 드러나는 하얀 민소매, 귀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피어싱, 무척 붉은 입술을 가진 30대 중반의 게이가 그곳의 사장이었다. 카페 주 고객들은 중고등학생들이었고, 그 게이 사장은 가냘픈 손가락으로 학생들에게 은밀히 담배를 팔았다. 물론 너네 이제 좀 끊어라라는 훈계도 잊지 않았다.

 

그 온정 어린 지원에 힘입어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담배를 피웠다. 앞사람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연기를 뿜고, 칼칼한 목을 달래 줄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시고, 또 연기를 뿜고, 옆자리에 앉은 애랑 뽀뽀를 하고……. 매일같이 집, 학원, 학교를 반복하던 나에게 그곳은 별천지와 다름없었다. 그때의 받은 충격을 부족 생활하던 원주민을 갑자기 클럽에 밀어 넣었을 때의 것과 비교할 법 할까? 정말이지, 옳고 그름을 미처 생각할 새도 없이 폐 속으로 훅 밀려들어 온 담배연기에 취했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난 그날 여자랑 사귀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다.

 

카페 친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친구들이 그랬듯이, 나도 나의 친구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짝사랑 수렁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핑계처럼담배를 피게 되었다. 카페 친구에 앉아서, 친구를 짝사랑하는 아픔을 다른 친구들에게 영웅담처럼 토로하며, 담배연기를 토해내며, 세상이 온통 무너진 것 마냥, 내 고통이 제일 아픈 고통인 것 마냥, 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 교복 셔츠, 머리카락, 신발 안에 숨겨진 양말까지 짝사랑의 아픔이 베여들었다.

 

2,100원 하던 담배는 이제 4,500원으로 값이 껑충 뛰었다. 짝사랑의 아픔은 이미 오래전에 다 토했고, 그 게이 사장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간간이 궁금하다. 나를 친구에 데려갔던 그 친구는 작년 여름 결혼해 조만간 아이를 낳을 예정이다. 그리고 서른의 문턱에 선 나는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심정으로 글을 토해낸다.

 

 

다시 붉은 커튼, 닳은 의자, 두꺼운 사진집, 나무 창살. 기타 줄이 퉁겨지는 소리, 도화지에 연필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 속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아른거리는 타인의 담배 연기를 바라본다. 아득히 먼 하늘을 향해 굴뚝의 연기는 희뿌연 증기를 내뿜고, 오른 담뱃값만큼 성큼 뒤로 멀어진 달콤한 나날들이 꿈에게 어서 오라며 재촉한다.

햇살만이 요란한 한 낯의 카페에서 나는 박제되지 않은 꿈의 밑그림을 그린다.

담배는 오늘은 피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입이 달다.

 

 

 

주황

흘러가며 쌓여가는 시와 분의 이야기

 

어렸을 때는 444분을 참 싫어했다. 사사사. 꼭 죽어죽어죽어.. 이런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이 무슨 시계의 장난인지 학원이 끝나고 딱 시계만 보면 무조건 여김 없이 4:44. 싫었다. 나만 죽기 싫어서 너도 나도 다 알려주고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 본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알려줄 땐 절대 보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1분이 지나면 승리의 미소를 지었던 기억도 난다.

 

조금 더 컸을 땐 4:44를 여전히 싫어하긴 했지만 12:12, 11:11, 10:10, 1:11 처럼 같은 숫자들이 시와 분 속에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옆에 친구를 내리치며 호들갑을 떨게 됐었다. 다 알다시피 같은 숫자들이 떠있으면 마법의 시간!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는 시간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 누가 제일 먼저 퍼뜨린 건진 모르겠지만 정말 사랑스런 분인 걸로. 1분 동안은 서로 웃음 지으며 너도 나도 참 행복했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생각한단건지, 아니면 엄마든 아빠든 옆에 있는 친구 놈이든 상관없이 누가 그냥 내 생각만 하면 그 숫자가 보이는 건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여전히 같은 숫자들의 등장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그보다 조금 더 커서는 몇 시 18분을 참 좋아했었다. 조금 더 나아가서 28분도 참 좋아했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한테 시간을 물을 때 이 숫자가 등장해주면 아주 맛깔스럽게 알려드렸다 - 18이나 28이나 중간에 ''을 강조해주면 아주 맛깔스러워진다. 일부러 숫자를 읽고 좀 쉬었다가 ''을 나중에 읽기도 하면서 많이 웃었었다.

 

그리고 모든 시와 분들이 주는 기쁨들이 덜 해져 갈때 예전과는 다른 이유로 2:22을 참 좋아했다. 왜냐고? 222분은 마치 222일 같았고 222일은 '' 배우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배우다. 참고로 팬클럽 회원으로 등록하기도 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녀 다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유일무이한 배우다. (민망하다) 펜클럽 내에선 그 배우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0타임"이라고 부른다. (민망하다) 아무튼 이렇게 나중에는 아끼는 사람들의 생년월일이 운 좋게 보일 때 그 일분이 참 행복하게 되더라. (끝까지 민망하다)

 

그렇지만 요즘들어 내가 하루 종일 제일 보고 싶은 시간은 222분이 아닌! 818분이다. 같은 숫자가 등장해서? 아니면 맛깔난 숫자가 나와서? 다 틀렸다.

818일은 근 1년간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생일이다. 매일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그 시간! 특히, 굉장히 산만하고 바쁜 와중에 문득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을 켰는데 딱! 그 시간일 때가 가장 행복하고 반갑다. 그럴 때는 항상 캡쳐를 해서 모아두고 있다. 18분이 19분이 될 동안 물끄러미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 생각을 한다. 지금 무얼 하고 있을지, 그 사람도 내 시간을 발견하면 나처럼 기쁠지 등등의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곧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1분의 시간은 1분 안에 담을 수 없는 더 많은 이야기 또한 담고 있다. 잠깐 있었던 이별의 시간동안에는 매일 잠이 오질 않아 일찍 눈이 떠져서 그녀의 시간이 될 동안 핸드폰을 붙잡고 울기도 했었고 다시 그녀와 만나게 되고 나서는 벅찬 그 마음에 며칠 동안 일부러 그녀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행복해하기도 했었다. 1분의 시간은 1시간 반 거리의 그녀와 나를 함께 있게 한다.

 

시와 분, 시간은 1초든 1분이든 1시간이든 우리를 웃음 짓게 한다. 식상한 그림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시계가 똑딱똑딱 가면 갈수록 우리가 만나는 "시간"들은 많아지고 다양해지며 쌓여간다. 그리고 어떤 시간들 속에서 살아왔든지 간에 마지막 시간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반드시 웃음 짓던 날들만을 기억하며 웃음 지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흘러가기도 하며 쌓여가기도 한다. 아픔들은 흘러가고 미소들은 쌓여간다. 그렇게 우리는 쌓인 기억들 속에서 웃고 있을 것이다.

 

 

 

노랑

혁명과 어떤 행위 AB의 관계에 대해서

 

- 법적인 규제가 있다.

- 공공장소에서 행할 시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다.

- 그래서 자꾸 음지로 숨어들게 된다.

-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이 행위는 위험하다.

- 이 행위를 행하는 자들에 대한 편견은 무궁무진하며

- 그래서 그러한지 몰라도 이 행위로부터 벗어난 자들에 대한 간증이 끊이지 않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행위를 인정해주는 온정론자들도 상당하다.

-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용기 혹은 호기 탑재자들까지 있다.

- 죽음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행위다.

-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한낱 패션 or 유행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 허나 당사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지금 나열한 문장들은 어떤 행위 AB에 대해서 필자가 발견한 공통점들이다. 더 적을 수 있었지만 더 나열하다 보면 이번 글에는 쓸 말이 없어서 이렇게 때우려는구나..’ 라는 얼토당토 않는 오해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내포한다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저 정도의 기술에서 끝냈지만 저 정도의 공통분모만으로 필자의 가슴은 설렘과 기대로 요동치고 있다. 어떤 행위 AB 사이의 교집합이 저리 크다면 어떤 행위 AB의 행위자들 간에 상당한 동질감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는 AB 그룹 간의 규합이 가능해질 수 있으며, 따라서 AB 그룹이 똘똘 뭉쳐 이 고압적이고도 위압적인 체제에 대한 연합 혁명 전선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적인 예측이 그리 가망 없는 뻘소리가 아니란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긍정적 예측의 또 다른 이유로는 어떤 행위 AB의 행위자들이 처한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을 들 수 있다. 왜 우리의 행위가 이렇게 부당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의 자유를 대체 어떤 놈들이 강탈해갔단 말인가? 와 같은 분개에 찬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물론 물리적으로 진짜 큰 소리로 들리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무심한 듯, 자기는 AB의 행위자가 전혀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은, 뻔뻔한 표정으로 일상을 살아내고 있지만 동지로서 필자는 감지할 수 있다. 우리에게 분노와 체념은 고유의 체취와도 같으니까. 그러나 모든 혁명은 그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는가? 분노, 그리고 약간의 체념, 더 약간의 희망으로부터 말이다. 중요한 건 성냥 하나다. 우리의 가슴에 묻혀진 반항심에 불을 붙일 단 하나의 성냥. 그리고 일단 불이 붙으면 누구도 돌이킬 수 없다. 과거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기 전까진. 그러니 우리를 억압하는 너희들이여, 마땅히 긴장 타시어라.

 

이 급진적인 격문에 영감을 준 장면은 어느 오후, 볕 좋은 한 카페에서 발생했다. 여느 때처럼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광합성을 즐기고 있던 필자는 카페 한 켠에 유리창으로 분리돼 있던 흡연석에 눈이 갔고, 버젓이 붙어 있는 ‘NO SMOKING’과 직면하게 된다. 노 스모킹? 노 스모킹이라니? 흡연석인데 흡연을 하지 말라면 대체 어디서 흡연을 하란 말인가? 그때 창밖으로 익숙한 흰 연기가 스쳐갔고, 몇 명의 아저씨들이 이미 넉넉히 추레한 몰골을 하고 있음에도 한층 더 추레한 포즈로 담배를 빨고 있었다. 그제야 창에 붙은 공고문이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xx일 부로 이 건물은 금연 건물로 솰라솰라... 라는. 그때부터였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더러운 쓰레기통 옆에서, 냄새 나는 화장실 입구에서 니코틴을 충전하고 있는 그들을 목격하게 된 것은. 그리고 그들을 보며 필자의 마음속에 올라오는 측은함이란 감정을 지켜보며, 공자님이었던가 맹자님이었던가, 측은지심이라는 것은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온다는 고리타분한 고전의 한 대목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들과 나는 다르지 않다. 다수의 쾌한 기분을 위해 욕구를 절제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점에서, 그 취급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한다는 부분에서, 그런 취급을 습관적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소수자라는 측면에서.

 

그래서 필자는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카페 앞에서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시냐고, 전 현재 여자와 연애하고 있는 여자인데, 아무래도 당신과 나, 그러니까 우리는 사회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으니 함께 거리로 나가 손에 짱돌을 들고 이 사회를 타도해보지 않겠냐고.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뭐든 가능하지 않겠냐고.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한바탕 연설을 늘어놓고는 호기롭게 손을 내민 필자를 벙찐 눈빛으로 보던 남자, 이 무슨 돛대 씹어 먹는 소리냐는 듯 캬-악 퉤, 침을 뱉고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재차 피우기 시작했다. 졸지에 투명인간이 된 필자는 지루한 일상의 얼굴로 심드렁히 가려던 길을 갔다.

 

비약적인 주장과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점철된 이 글을 마치면서, 그럼에도 난 혁명을 상상한다.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 내가 사랑에 있어서 소수자라면 너는 담배로 인해 소수자이며, 그대는 인종으로 인해, 누구는 돈과 지위로 인해 소수자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일상과 터부, 편견을 비껴놓고 서로가 투명한 눈으로 서로를 보게 될 때, 서로의 안에 있는 고독과 고뇌를 느끼고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때, 혁명은 시작되는 것 아닐까.

 

 

 

초록

한 줄의 고교시절

 

첫 대학 생활을 며칠 앞둔 새내기로서 고등학교 시절을 정리해보라면, 단 하나의 사건으로 모두 설명이 된다. 고삼, 어느 봄의 그 일. 어느 국어시간, 샛노란 수능특강을 펼쳤던 그 날, 그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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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꽃

-최두석

 

새벽 시내 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수능특강에 이 시가 실렸다. 독서B 수업시간에는 현대 시와 고전 소설을 배운다. 월요일 독서B 시간에는 성탄제와 성에꽃에 대해 수업했다. 성탄제, 하면 중학교 삼학년 때의 어느 날이 생각난다. 교과서 삽화의 매끌한 감촉도, 서늘게 다가오는 감상도 생생하게 살아온다. 좋다. 그런 좋은 감상으로 성탄제를 배웠다. 다음장으로 넘기자 성에꽃이 나왔다. 서정적인 목소리로 훑었으면 좋았겠지만, 교사는 쨍쨍한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벌써 꾸벅꾸벅 졸고있는 학생들이 나오는 까닭이다. 교실 뒤에 서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키다리 책상을 마련해 놓았지만, 세 개 뿐인 까닭에 몸이 느린 학생들은 조는 수 밖에 없다.교사는 교단에 선다. 너희는 모르겠지만, 하고 시작된 말은 성에꽃이 왜 버스창문에 피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교사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깔고 시를 한번 더 읽는다. 새벽 시내 버스는, 교사가 다시 입을 떼었을 때, 나는 펜을 들고 필기거리를 기다리게 되었다. 교사는 응당 그럴 듯한 이야기들을 내뱉는다. 나는 묵묵히 필기를 한다. 아무 말이 없다는 것은 동의의 의미를 담고있다. 수업은 이어진다. 이윽고 시의 마지막 구절에 닿는다. 지금은 면회조차 금지된 친구여. 교사는 설명한다. 시가 쓰여지던 시대를, 교도소에 갇힌 친구를. 나는 의문을 가진다. 뜬금없이 친구라는 존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아무 의미도 설명도 없이 등장한다, 그러고는 사라진다. 의문은 의심이 된다. 시를 다시 읽는다. 더 부드러운 해석을 해본다.

 

성에꽃 한 잎 지우고-성에꽃은 자신의 소명을 다해 사는 소시민들이다. 소시민을 바라보며 성에꽃이라 말하던 화자는, 성에꽃을 한 잎 지운다. 소시민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다른 시상으로의 전개다.

이마를 대고 본다.-이마를 유리창에 댄다. 눈 앞에 더 이상 버스에 탄 승객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아마 눈에 어리는 것은 버스에 비친 자신의 얼굴 뿐일 것이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새벽 시내버스를 타야하는 노동자인 자신의 얼굴은 푸석하다. 얼굴이 깨끗히 비치지는 않을 유리창에 푸석하다는 것이 드러날 정도로 오래 비춰본다. 자아성찰의 시간이다.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이 친구가 과연 '타인'인 친구일까. 나는 다른 해석을 해본다. 친구는 과거의 자신이라고. 화자는 과거 열정적으로 사회운동을 했었으나, 지금은 어떠한 이유로 노동자가 되었다. 자신의 소명인 사회운동을 그만 두고 일자리로 내몰렸다.그런 화자는, 소명을 다해 살아가는 소시민들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스스로가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살고있는 까닭이다. 화자의 소명은 사회운동이다. 이미 노동자가 되어버린 화자에게, 사회운동의 열정은 이미 멀리 떠나버린 어느 젊은 날의 일일 뿐이다.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다가갈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화자의 자아는 분리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노동자인 화자와 사회운동의 열정을 가진 화자. 마지막으로 나는 친구여, 하고 친구, 그러니까 열정을 가진 자신을 부르는 부분을 보았다. 자아가 분리된 화자는 떨어져나간 자아를 부른다. 거리감이 좁혀졌다는 의미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떨어져나가 있지만, 다시 합일 될 수 도 있다는 근거를 던져주는 것이다. 소명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흡이 아름다운 성에꽃이 되는 것을 보며, 화자 스스로도 잃어버렸던 자아를 성찰로서 되찾으려 하는 것이다.

 

나는 해석을 했다. 글로 나열하니 길어 보이지만, 생각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어 좀 한다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내 해석들을 말했다. 그네들은 또 무슨 논리적인 헛소리를 하려느냐고 반응하며 다가왔지만, 해석을 들은 후에는 내 의심을 옮겨 가지게 되었다. 어느 한 친구는 독서B 교사에게 질문을 하자고 했다. 나는 썩 내키지 않았다. 친구의 거듭된 요청에, 같이 교무실을 찾았다.

교사는 의자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나와 친구는 다음 시간을 기약했다. 그 다음 시간, 교사는 쉬는 시간이 끝나고서야 교무실에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했다. 교사는 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 해석도 있겠구나, 틀리지 않다. 맞다. 그리고 교사는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는 입시 준비하는 입장이니까,? 문학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해석은 좋지만, 전문가들이 써놓은 대로 하자 그냥. 입시잖아, 입시. 교사, 아니 선생님은 조금 씁쓰름하게 웃었다. 나와 친구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질문을 요청한 친구도 직접 했던 나도 들어주었던 선생님도 모두들 다 알고있었다. 질문을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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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 그 날 이후로 국어 수업을 듣지 않았다. 그게 내 모든 고교시절이었다.




파랑

, , 페티쉬

 

누구나 한 가지 정도의 (또는 그 이상의) 페티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도 손에 페티쉬를 가지고 있다. 얼마 전 학교 선배와 이야기 나눈 핸드포르노 이야기를 하다보면 각자가 손 페티쉬를 가지고 있지만 그 포인트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뼈를 좋아한다.

 

시각장애인들은 이렇게 손목뼈로 사람을 구분한대, 신기하지?”

 

처음 만났던 날, 피자를 그릇에 담아 옮기던 날 보더니 그녀가 손목을 달라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건네준 손목. 평소 연필만 쥐고 있던 터라 내 손인데도 불구하고 정면으로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오래 피아노를 쳐서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을 부드럽게 타고 내려가다 보면, 우선 어린 시절 하도 손가락을 많이 꺾어서 울룩해진 마디가 있다. 마디와 손을 연결해주는 관절, 계속 부드럽게 그 곡선을 타다보면 동그랗게 튀어나온 손목뼈가 만져진다. 그 부분. 손목뼈가 만져지기 직전 살짝 패인 살을 꾸욱 눌러보다가 바깥쪽으로 손가락을 돌려서 뼈 부근을 빙빙 둘러 만져본다. 모양을 느낄 수 있다. 일종의 새로운 지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손, 손목의 뼈에 꽂혀버리고 말았다.

손에 힘을 주면, 불끈하고 일어나는 힘줄들보다도 검지, 중지, 약지 아래의 긴뼈들이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것이 섹시하다. 거기에 손목이 말라서 손목뼈까지 도드라지게 보이면 그 때는 모든 조건에 만족해 버리는 것이다.

 

학교 선배는 손의 쓰임이 좋다고 했다. 손으로 어떤 특정한 몸짓을 할 때. 예를 들어서, 찻잔의 손잡이를 옴큼하게 그러쥐고 있거나, 물병 뚜껑 위에 손바닥을 얹은 채 손목부터 부드럽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릴 때 그만큼 섹시한 것이 없다고 했다. 손짓, 손놀림. 과격하지 않고 최대한 우아하게. 우리가 너무 직선에만 익숙해진 움직임을 하고 있다면, 그 특정한 손짓, 쓰임은 부드럽고 곡선으로 움직이며 유려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한다. 가늘고, , 뼈대가 가지런히 잡혀 예쁜 손으로 그런 움직임까지 보여준다면 그거야말로 포르노라고 선배와 나는 얘기했다. 손만으로도 포르노를 찍을 배우는 충분하다고.

 

난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을 좋아한다. 첫째로 그녀를 좋아하니까 그녀의 신체인 손을 만지는 걸 좋아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매력을 갖춘 손이기에 더욱 좋아한다. 그러니까, 핸드포르노를 찍기가 가능한 손이다. 가늘고 여리여리한 손으로 펜을 쥐고 그림을 그릴 때,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펜 끝을 이동하며 손목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 야했다. 유난히 마른 팔, 그리고 손목이 손끝을 떨구느라 툭하니 꺾여 있을 때,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손가락들에서부터 산의 정상처럼 솟아있는 손목뼈까지. 무엇 하나 시선에 방해되는 것은 없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서, 그게 그렇게 있어야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었고 인위적이지 않았다. 우아했다. 그에 반해서 퉁퉁한 손가락에 자리 잡고 있는 내 뼈들을 보자니, 어쩌면 이래서 페티쉬를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몰라, 하고 스스로에게 납득 당한다. 덕분에 손이 가진 미학을 알 수 있게 됐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나쁘지 않다고 다른 방향으로 한 번 더 자신을 납득시켰다. 게다가 레즈비언이 손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닌가? 하고 당위의 문제까지 끌어와 본다. 손은 페티쉬를 가지라고 만들어진 부위라니까.




남색

덧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주황빛 조명은 강하지만 조그마한 크기였다. 바로 아래 앉은 우리 둘은 콧잔등으로 그 조명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순간 얼굴이 겹쳐보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독백을 했다. 독백이었지만 들었으면 하는 상대는 정해져있었다. 언니와도 여기 이러고 앉아있었는데. 그것은 그 순간 가장 강렬히 떠오르면서도 가장 하여서는 안 되는 읊조림이었다. 맞은편에 앉아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내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모히또가 담긴 술잔은 성배가 되었다. 나를 보고 있는 애인은 어둠에 파묻힌 신부님이 되었다. 나는 고해성사를 하고 있는 불쌍한 어린양이 된 기분으로 말하였다. 너랑 여기 와보고 싶었어. 그것은 너를 앞에 두고 지나간 이를 떠올린 것에 대한 황급한 사죄의 말이었다. 내 순진한 연인은 그 말을 듣고는 행복하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짠 하자. 들어 올린 술잔에 반사된 조명은 파편이 되어 나를 후벼 팠다. 그것이 또 나를 후려치는 채찍 같아 나는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지껄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말해서 보내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지난 기억을 덮는 새로운 기억이 되기를 바라면서.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데이트의 행선지를 주로 내가 정했기 때문에, 종종 그렇게 기억에 새겨진 장소를 다시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곳들을 피해 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곳을 그 손을 잡고 누비었다. 기억은 늪이 되어서, 알아차리고 나면 이미 깊게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너와 이곳에 있었는데, 라는 생각과 그러한 생각이 지금 옆에 있는 이에 대한 큰 실례라는 생각은 손쓸 새도 없이 함께 끈적거리는 늪이 되어 나를 잡아먹는다. 그러면 나는 그 진흙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보고 싶어서, 떠오르는 아무 말이나 주절주절 내뱉는다. 말에 깃드는 언령이 내 구원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러면서도 나는, 팔짱을 끼고 청계천을 걸으면서도, 조명에 반짝이는 광화문 거리를 보면서도, 붐비는 대형 서점에 가서도,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보고 술집을 가서도, 자주 갔었던 학교 근처 카페를 가면서도 과거를 회상했다. 기념일 날 홍대 거리에 가서도, 항상 찾던 영화관에 가서도, 그 건물 뒷문에서 담배를 피면서도 추억이라 하기 싫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서있었다.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몸은 붙어있어도 머리로는 다른 이를 생각한다는 것은 몹시 기분 나쁜 일이었기에 그만두려고 하였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이어서, 그래서 슬펐다.

 

모두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 언젠가 만났던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빨아들인 숨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뱉은 숨이라고 생각하면 숨 쉬는 일이 그렇게 달수가 없다고. 나는 잠깐 잠깐 숨을 멈춘다. 그 공간에서 함께 들이쉬고 내뱉었던 숨결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 나를 맞이할까봐, 잠깐씩 숨을 멈추고 내 손을 잡은 연인을 바라본다. 그리고 웃으면서 아무 말이나 주절거린다. 나는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장소에서 늪에 빠지지 않게 허우적거리며 새로운 시간과 숨과 말들을 덧칠해야하는가.

 



보라

어머니와의 관계와 성적지향

 

어느 날 웹서핑을 하는데 눈에 띠는 글이 있었다. ‘동성애자의 사주팔자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교회에 다니지만 사주팔자에도 나름 관심이 있었던 나는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글을 읽게 되었다. 사주팔자도 사주팔자지만 동성애자의 사주팔자라니. 다른 누군가도 아닌 동성애자의 사주란 어떤지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글을 읽다 살짝 거슬리는 문장을 발견했다.

 

여자는 어릴 때 아버지의 폭력을 보면서 어머니에게 연민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경우,

그리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과하게 받은 경우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높다.’

 

동성애자는 후천적인 게 아니라 선천적이라는 결론이 난 지 언제인데 아직도 그런 구시대적인 발언을 하는지. 사주 관련 내용을 뒤적거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건, 위에 적힌 문장 그 자체다.

어릴 때 아버지의 폭력을 당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고 그것이 사랑으로 바뀐다?

글쎄.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전혀 해당 안 되는 말이다. 아빠는 엄마에게 잦은 폭력을 휘두른 적이 없다. 가끔 엄마가 회식 자리에서 술 마시고 들어오실 때 워낙 주정을 부려서 아빠가 몇 번 때리신 것 빼고는. 그리고 나는 엄마의 과한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차라리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사실 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엄마에게 미움을 받고 있달까.

어릴 때부터 그래서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만, 엄마는 틈만 나면 나의 모든 것을 흠잡거나 시비를 걸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곤 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엄마에게 맞고 살았다. 엄마는 손이든 발이든 동원해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했는데,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너는 어쩜 그렇게 네 아빠랑 쏙 빼닮았니? 얼굴도 똑같이 생겨, 성격도 똑같고. 난 네가 아빠와 닮아서 싫어!”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내가 아빠 판박이인 건 맞지만, 그것이 엄마가 휘두르는 폭력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아빠를 닮은 건 선천적으로 타고난 건데 그게 죄라도 되는 것처럼 내뱉는 엄마가 싫었다.

 

물론 아빠가 엄마에게 여러 가지로 상처를 많이 주고 또 힘들게 했었다. 머리는 좋지만 워낙 신경질적인데다 예민하고, 그러면서도 성격이 불같아 남에게 무시당하는 걸 싫어하는 아빠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런데 딸마저 아빠랑 닮았다는 소리를 듣질 않나, 아빠의 성미를 그대로 닮지를 않나, 하다못해 아빠보다 한 술 더 뜨지를 않나

 

지금도 나와 엄마의 사이는 보스와 비서같다. 엄마가 보스고 내가 비서. 그만큼 엄마는 여장부 기질이 강하다. 아니 그냥 지독하다고 해야지 뭐. 엄마 앞에만 서면 굶주린 호랑이 앞에 서 있는 깡마른 나그네가 되어버리는 나의 신세. 이거 무슨 갑을 관계도 아니고....

 

차라리 엄마에게 받았어야 할 사랑을 아빠에게서 더 많이 받았으니, 저 말대로라면 나는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엄마와 사이가 안 좋은데 어째서 동성을 더 좋아하는가?

 

레즈비언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는 오해 중 하나는, ‘레즈비언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이성을 두려워하고, 동성을 가까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완전히 반대다. 오히려 같은 여자인 엄마에게 상처를 받았으니 동성을 두려워해야 하고, 아빠와 더 사이가 좋았으니 이성을 가까이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시 말해 레즈비언 성향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꼭 비례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뿐, 그것이 곧 개인의 성적 지향을 결정하는 건 아님을 기억하길 바란다.

 

 

 

분홍

날 위해줬던 너와의

 

 평소와 같은 상담 시간이었다. 월요일 8교시 자습시간, 다른 친구들은 모두 반에 남아서 자습을 하는데 나 혼자만이 슬쩍 교실을 빠져나온다. 조용한 복도를 홀로 걷는 그 발자국 소리가, 복도의 한 가운데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선생님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서둘러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1층 복도 끝자락에 있는 상담실의 문을 조용히 연다. 이미 상담선생님께서는 상담실에 도착해계셨다. 조용한 복도에서의 무게를 상담실 문 앞에서 바로 던져 내려놓았다. 선생님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안녕하세요, 하고 평소와 같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눈 일주일간의 이야기. 저번 주 상담 시간엔, 그 전 주의 상담시간엔 그 이야기 속에 특별함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엄마께서 평소와, 저번 주나 그 전 주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 주의 엄마께선 많이 울었다. 우울해했다. 할머니를 포기하고자 했다. 그동안 안고 계시던 것을 내게 털어놓았다. 그래서 나 또한 엄마를 따라 울었다. 우울해했다. 엄마가 그 어깨에 올려놓은 짐을 나눠받고자 했다. 어쩌면 그 무게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웠을 지도 모르면서,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억지로 짊어지려고 했다. 그 날 상담 시간에, 나는 많이 울었다.

 

 상담실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놀란 표정의 친구였다. 그 친구의 눈동자에 비춰지는 내 모습은 색도 어둡고 자세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내 얼굴이 어떨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눈 뜨기가 힘들었다. 그 사이에 눈이 부운 것이 확실했다. 볼이 따가웠다. 마른 눈물에 건조해진 탓이니라. 거울이 없어 확실히 확인한 건 아니었지만, 내 얼굴은 정말 엄청났을 것이다. 그렇기에 친구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놀랐겠지.

 친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을 돌려 바라본 시계는 이미 석식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자신도 석식을 놓칠 수도 있는 건데 지금까지 나를 기다려준 친구에 고마움이 마음을 채웠다. 간질간질한 볼을 가볍게 긁으며 친구를 향해 웃었다. 친구가 나를 따라 웃으며 빨리 석식 먹으러 가자고 재촉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과 평소와 다름없는 친구의 목소리가 날 안심시켰다. 석식을 먹는 도중에도, 친구는 특별히 내게 상담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한 거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그저 그날 그 친구의 반에서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들만 늘어놨을 뿐이었다.

 

그 카페 안 갈래? 오늘은 이 언니가 쏠게.”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친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타이밍 좋게도 바로 야자 시작 10분 전임을 알리는 예비종이 울렸다. 나는 가만히 그 친구를 바라봤다. ‘그 카페라는 건 아마도 교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카페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카페는, 나와 친구가 야자를 쨌을 때마다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 1학년 말에는 6시부터 10시까지 꼬박 꼬박 출근 도장을 찍던. 하지만 야자 째고 그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것도 시험 기간이 아니었을 때의 이야기로, 그날은 시험이 몇 주 남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대답이 없자 친구가 싫으면 관현악실 내려가 있을까?’ 라고 묻는다. , 이 친구는 지금 날 걱정해주고 있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카페로 가자, 쿠폰 써야지.”

 

 주머니에 쑤셔 넣어두었던 지갑 속의 쿠폰 하나를 떠올린다. 하도 많이 가다보니 이미 도장 20개를 다 채운 두 번째 쿠폰이었다. 친구가 웃는다. 다른 날에는 스킨십이라곤 질색을 하는 그 친구가, 내 손을 붙잡고 달렸다. 선생님들한테 들키기 전에, 빨리 가자고.

 문을 열고 들어간 카페에서, 알바생 언니가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나는 퉁퉁 부운 눈과 뻑뻑한 볼로, 친구의 손을 꼭 붙들며 따라 웃었다. 야자 시작종이 저 멀리서 들리는 듯 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웹진 '랑'은 퀴어 에세이 블로그 LETSSAY의 글들을 기고받아 연재합니다. LETSSAY 블로그에서 더 많은 에세이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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