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세이어 달

집단 우울증


  나는 십대. 청소년. 미성년자. 아직은 어리다는 말을 뒤집어쓰고 헛짓거리를 할 수 있는 나이. 물론 지극히 주관적 생각이라 주변 사람들은 속 터져 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열아홉이라는 말에는 무슨 저주라도 붙어있는지. 반복해서 말하듯 주위에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라곤 없다. 청소년 네 명 중에 한 명은 자살시도를 해 본적이 있대. 누군가 우울해지라고 급식에 약을 탄 것도 아닐진대, 우리는 집단 우울증이라도 걸린 듯 되묻는다. 그 뿐이 안 돼? 네 명중 셋쯤은 될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모인 넷, 다들 시도를 해봤다는 그 한 명을 자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네 명의 친구들이 모이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아. 그들이 친하지 않다는 것을 그 사이를 떠나온 이제야 깨닫다니. 희선, 지현, 수민. 나를 제외한 그 친구 셋의 이름을 되새겨본다. 하나같이 너무 무기력해. 본명도, 여기 쓴 가명도 한 없이 무기력하게 발음 될 뿐이다. 본인들이 우울해서 일까. 그러고보면 넷이 함께했던 시간은 우울의 시간에 불과했다. 우리 넷이 있다 보면, 누가 먼저 자살할지 경기하는 거 같아. 내 입에서 내뱉어진 그 말에 웃은 사람은 한 사람 뿐. 나와 나머지 둘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모이면 모일 수 록 우울감은 배가 되어만 가고, 서로의 관계는 뒤틀려만 갔다. 내가 발걸음을 떼었을 때, 유일하게 웃었던 수민은 내게 말했다. 애초에 이 관계가 3년 가까이 이어져 온 게 신기한 일이라고. 너로 이어져 있었을 뿐, 네가 아니었다면 재작년에 벌써 잊혀질 인연이었다고. 

  

  트위터는 하나의 페르소나. 트위터 속의 나는 나의 일부, 조금은 과장된, 약간은 연극적인, 하나의 캐릭터일 뿐, 실제 나와 동일 시 하기엔 너무도 먼 존재. 우스갯소리로 던진 말에 리트윗이 2000이 넘었고, 그게 친구 지현의 계정에까지 보였나보다. 트윗의 내용을 말한 게 잘못이었겠지. 지현은 내 계정을 구경했고, 화를 냈고, 인간관계로서의 단절을 선언했다. 나를 받아주지 못하는 사람과 인연을 유지하고자 애쓸 수는 없지. 나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수민과 희선에게 앞으로 넷이 볼 일은 없으리라고 통보했다. 쿨한 척 하지 마, 병신아. 그 한마디에 나는 지현과의 일들을 되새겨야 했지만 언제나 결과는 같았다. 그리고 수민은 말했다. 언젠가는 그럴 거 같았어. 사실, 앞으로 넷이 볼 일 없다고 해서 별 영향은 없을 거 같아. 그냥, 희선이랑 너랑 셋이서 라도 보면 좋겠어. 평소처럼. 언제부터 지현은 이 들에게서 멀어졌는가. 사실 지현이와는 좀 어색해. 희선의 말이 덧붙여졌을 때, 나는 지현을 또 다시 생각했다. 지현, 우리가 떠나고 나면 지현에게는 누가 남지. 지현의 약한 몸과, 그로인해 신경질적이 된 성격과, 남들과는 다른 취미생활을 떠올린다. 남들이 지현을 붙잡으라 할 때는 싫더니, 다들 떠난다니 마음에 걸린다.


  그러고 보면 넷은 참 달라. 쉼 없이 남자가 꼬이는 희선. 남자는 꼬이는 데 받아주지 않는 지현. 연애하고 싶어하지만 하지 못하는 수민. 여자를 좋아하는 나. 서브컬쳐라는 말 자체도 모르는 희선, 서브컬쳐 계에서 활동하는 지현. 만화는 많이 보지만 서브컬쳐는 잘 모르는 수민. 서브컬쳐 계의 생리는 잘 알지만 만화는 보지 않는 나. 사근사근 친절하고 인기 있는 희선. 몸이 약하고 신경질적이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지현. 순수하고 약간 멍한 편인 수민. 꼬인 나. 관계가 이어져 온 게 신기하다는 말이 붙을 정도로 달랐던 넷. 넷을 묶어주던 건 내가 아닌 각자의 우울 아니었을까. 그리고 집단 우울증이 증폭될수록 우리는 서로의 관계가 꼬이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우리의 우울과는 관계없는 듯 보이는 이유로 넷의 관계는 깨지게 됐지만, 각자마다 서로 맺혀있는 그 인간관계 사이를 방황하며 자신의 우울을 긁어모으는 것은 아직까지도 다르지 않다. 언젠가는 방황도 멈추고 인간관계도 정리되겠지. 아직도 넷이 모여 발산하던 그 우울과 지현과의 시간과 그녀가 가진 외로움 속을 헤메며,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더라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렛세이어 불

길의 양면


  벌어진 옷깃 새로 바람이 파고들어 목덜미를 괴롭혔다. 걷다보면 항상 그랬다. 나는 항상 바람이랑 맞부딪혔다. 낙엽이 발에 밟혀 바스러졌다. 부서진 낙엽 쪼가리들이 암갈색 벽돌들 틈 사이로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다. 이 시기는 항상 건조했다. 높은 아파트들 사이로 울긋불긋한 나무들이 들어서있었고 하늘은 파랗지만 무심해보였다. 그 아래 삭막한 주차장 아스팔트길을 나는 울긋불긋한 목덜미를 손으로 감싸고 걸었다. 얇은 신발 깔창을 사이에 두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길바닥은 그저 딱딱하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엄지발가락부터 발뒤꿈치까지 선연하게 느껴지는 그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을 온전히 느끼면서 걸었다.

 

  첫사랑이 여자라는 사실을 나는 무덤덤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때로는 전혀 아니기도 하였다. 모두 발붙이고 사는 땅덩어리 위에 나 혼자 바람이 빠져가는 풍선을 부여잡고 떠다니는 기분이기도 하였다. 시들거리고 위태롭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떠있어서, 어디로 떠서 흘러가던 간에 남들이 항상 나를 흘겨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것을 즐기다가도, 어떤 때에는 그것이 못내 부담스럽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붙잡고 있는 손아귀에 힘만 아득바득 주었다. 가끔은 손바닥에 손톱이 박혀 초라한 핏줄기도 흘러내렸다.

 

  그런 모든 내 생황은 언제나 방황이었다. 내 방황의 이유가 바로 나 자신인 것은, 모든 사춘기의 사람들도 그러하겠지만 출구 없는 미로에서 홀로 맴도는 슬픈 메아리였다. 나는 그래도 아닌 체 하려고, 애쓰는 척을 했다. 성정체성 때문에 방황하는, 뭔가 있어 보이는 청소년은 아니고 싶었다. 혼자 고독하고 세상의 걱정거리를 모두 껴안고 있는 그런 소녀는 아니고 싶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죄악이 분명 아니었고, 어떠한 근심걱정거리도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냥, 그저, 자연스러운 내 마음이어야 했다. 그래야 했지만 그러기가 힘들어서 나는 분명 방황했지만, 방황하고 싶지 않아서 방황하지 않은 체 하려 애썼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부끄럽게도, 아닌 체 하려고 애만 썼지 그 배출구가 오히려 내가 좋아했던 사람에게 향했던 것 같다. 오히려 힘들고 위태로워도, 함께 손잡고 걸어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홀로 강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보겠다고 더 나를, 다른 사람을 힘들게 했다. 그것은 오히려 더 나쁜 일이었다. 나는 아니어 보이려고 애썼지만, 결국 혼자 세 보이고 싶어 한 어린 애였다.

 

  그 방황은 좀 더 나중에 사그라지긴 하였다. 남들이 욕을 하면 나도 함께 욕하면서 치고 박고 싸웠고, 그냥 그저 마음 가는대로, 좋으면 좋다하고 싫으면 싫다고 하였다. 내 마음은 훨씬 편해졌고, 나는 그때 그 상황이 내가 겪은 방황으로써 성장한 나 자신인가 하였다. 방황은 힘들었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울 정도로 힘들기도 하였지만 모두 쓸데없는 눈물은 아니었다. 목덜미로 파고드는 바람도 나를 좀 더 생각하게 하였고 바스러지는 낙엽도 나를 좀 더 멈춰 서서 돌아보게 하였다.

 

  지금 발 멈추고 서서 뒤를 바라보면 얼룩지고 파이고 갈라진 길이지만 나는 저 뒤에 서서 이리저리 휩쓸리던 때 보다는 좀 더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나는 지금도 목덜미를, 팔목을 파고들어 에워싸는 바람이 시리고 뜨거운 햇빛에 몸이 달구어지고 딱딱한 길바닥이 아프다. 방황은 끝이 없다. 그리고 끝이 없을 것 같다. 없어서도 안 되는 것 같다. 좀더, 앞길은 좀 더 나아지겠지, 그렇게 믿으면서 그냥 오늘도 발끝으로 낙엽을 바스러뜨린다.




렛세이어 물

나는 계속 돌거야


 나풀거리는 한복의 치맛자락이 결국 떨어지고, 그러니까 바람에 부풀려 풍성하게 부푼 치맛자락이 가라앉는 것. 방황이라고 했을 때 머리를 스치는 이미지다. 윤이 반지르르 나는 비단치마가 부드러운 선을 만들며 아래로 툭 떨어질 때, 느껴지는 무언의 아쉬움. 앞의 상태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느껴지는 허무함의 크기는 크다. 허무함은 방황을 아주 오래도록 질질 끌게 만든다. 무겁게 축 쳐진 치마를 다시금 띄우기 위해서는 또다시 몸을 비틀고 움직여야 하는데, 허무는 사람 몸 또한 무겁게 만들어서 다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 한다. 


   그 방황이 나는 너무도 두렵다. 다시 일어나지 못할 지도 몰라. 아마 끝까지 무너져버리고 말거야. ‘잠시’ 쉬는 것이 영원이 되어 버릴까봐 두려워. 부풀어서 바람 속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었는데 곧장 움직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될까봐 두려워서 차라리 채찍을 만들었다. 팽이를 끊임없이 돌리기 위해 만든 것처럼 내가 끊임없이 돌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선이다. 내가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선이 채찍이었다. 맹렬하게 내리친다. 그 선을 넘어가면 나는 분명 재건 불가능으로 망가져 내릴 거라고, 스스로 강박한다. 그중 분명한 선이란 흡연이다. 즉 방황과 방황하지 않음의 가장 마지막 선이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히 건강이 나빠져서 안 필 거예요~,의 수준이 아니다. 뭐야, 별 거 아니잖아, 라고 할 수도 있다만 그것은 절벽에 매달렸을 때, 안전끈을 잘라내는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해석된다. 나는 한 번 도는 걸 멈추면 걷잡을 수 없이 주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워. 흡연, 무단 외박, 무차별적 섹스, 마약, 자살, 살해, 즐거움으로의 도피. 연달아 이어지는 검고 퇴폐적인 이미지들. 그 안에서 벽에 기댄 채로 넋나간듯 웃고 있는 나, 비단자락이 축 쳐져버린 것처럼.

 

   분명 언젠가 중간에 멈추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것은 하고 있던 것들을 완전히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해야한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다만 체력을 보충하고 치맛자락을 탁탁 털고 다시금 멋지게 돌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머리는 아는데, 가슴은 두려움에 푹 젖어서 멈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선에 몸이 닿기도 전에 몸을 움츠린다. 가끔은 제자리에서 도는 발레리나라는 생각을 한다. 방황은 안 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 가족과 그녀가 채찍의 주인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버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나의 방황은 그들이 채찍, 나와 닿는 끈을 버려버리는 계기다. 


   중간고사가 가까워져서 인지 스트레스는 극에 닿아, 조그만 것들에도 이런 식의 사고가 금새 차올라 온몸을 뒤덮어버린다. 선을 넘지 않으려는 극도의 긴장은 거품 형태로 온몸을 바글바글 점령한다, 그렇게 생각된다. 그럴 때면 가슴에 진 응어리를 쳐내는 여인네들처럼 잠시 동안 가슴팍에 손을 올려둔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모두 괜찮아질 거예요.’ 억지로 누군가를 끌어낸다. 그녀는 어느 연극에 나온 대사를 내가 좋아하는 발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로 읽어준다. 그래, 그래. 나는 계속 돌아갈 수 있어. 치마는 여전히 풍성한 바람을 머금고 하늘을 나른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모두 괜찮아질 거예요.


 


렛세이어 나무

운명


  고작 21년 살면서 뭐 많으면 얼마나 많은 인연을 가졌겠냐 하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점이 있었다. 만나야 할 사람은 아무리 만나기 싫어서 발악을 하고 싸우고 화를 내도 결국 만나게 되어있고, 애초에 내 인연이 아니었던 사람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절실히 느끼고 깨닫게 해준 건 지금의 그녀였다. 거리 때문에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 만나려 해도 우연이라도 마주칠 일 없으리라 생각하며 없이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나였다. 그러나 그녀는 만날 수밖에 없었고 그 후에도 많은 고비를 넘기며 내 곁에 있는 그녀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은 해줄 수 없지만, ‘언제까지’란 기약이 필요 없도록 사랑할게" 처음 맞았던 그녀와의 기념일에 했던 말이다. 그때의 난 정말 그럴 수 있을 줄 알았고, 그러겠다 다짐했지만 나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우리는 어렸고, 너무나 달랐다. 절대 만날 수 없을 것이라 다시 그녀를 보게 된다면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3월의 어느 슬픈 날이었다. 대학 입시라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거리 다음으로 컸던 장애물을 각자 넘은 뒤에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의 근황이 궁금했지만, 그녀에게 상처를 줬던 사실이 미안해 연락이 반갑지만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반갑지만 반가워할 수 없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 그렇게 연락을 주고 받던 어느 날, 친한 오빠가 나의 곁을 떠나갔다. 나와 비슷한 병을 앓고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졌던 그가 이 험난한 세상에서 떠나갔다. 그의 부재를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나는 지인으로부터 또 다른 검은 소식을 받았다. 나와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꼭 다시 만나겠다고 약속을 했던 사람이었기에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의 머나먼 여행길을 배웅 해야 하는 것이 맞는 지 아닌지. 그런데 나의 그녀에게서 이곳 근처에 와야 할 일이 생겼다고. 그녀와 이리저리 맞추다 보니, 같은 사람이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었다. 그저 혼자 가기 불편한 자리였는데 아는 사람이 온다고 하니 그런 컨디션에도 가게 되었던 거였는데, 가니까 아는 사람들 투성이였다. 울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고, 그녀의 손을 잡고 시간을 보내고, 그땐 내가 왜 그러는 지 몰랐다. 그냥 그러고 싶었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로 가득 찬 이틀을 보냈다.


  우리는 그 후 다시 만남을 약속하고 다시 만나고 있다. 그녀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나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고, 비 운명론자였다. 하지만 그녀를 그곳에서 다시 만나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운명을 믿는다. 세상에 인연은 존재하고 하늘이 맺어주는 짝은 존재하는 것 같다. 영화 '하이힐'에는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교회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지욱이 이런 말을 한다. "잊으셨겠죠. 너무 많으니까. 다 돌보지 못하고 잊은 사람도 있겠죠. 신의 등 뒤에 있는 사람들." 그 분이 우리를 잊으셨는 지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지는 알 수 없다. 허나, 한 가지. 사람마다 제 짝을 지어준 것만큼은 정해진 사실인 것 같다. 수 차례 싸우고 수 차례 헤어지고, 그러다 보니 지치고. 그럴 때마다 "이건 아니야."를 반복하면서도 "그래도 너야."를 반복하는 우리. 올해 우리가 다시 만났던 곳을 찾았을 때 나는 그곳에서 짧은 말만을 남기고 돌아왔다.

"다시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요. 언니. 그곳에선 아프지 말아요.”




렛세이어 돌

 

 요즘들어 학교에서 하는 일이라곤 자는 것 밖에 없더라. 이렇게까지 자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피로가 쌓이기라도 한 걸까. 어쩌면 한 번 자기 시작한 것이 몸에 습관으로 자리잡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뭐가 어찌되었든 간에, 글쎄, 학교에서 이렇게 잠만 자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게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책상 위에 몸을 뉘인다. 눈이 뻑뻑하니 아려오고, 바람의 스침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도무지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무겁고 어질어질 하는 것이 도무지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아 도무지 몸을 제대로 세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자야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언젠가 나의 어머니가 내 머릿맡에서 동화책을 읽어주시던 그 어린날처럼, 선생님의 목소리는 마치 그 어린 날의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내게 다가왔다. 마이크를 쓰시는 선생님일 수록 더더욱 그랬다. 교실에 그 목소리가 울려 뒤에 앉은 아이들에게까지 잘 들리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솜같이 변한 뇌 속에 목소리를 울려 더 깊은 잠의 수렁 속으로 데려가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뺨을 차가운 책상 위에, 아니, 이제는 이미 뜨끈미지근하게 변해버린 책상 위에 꼭 붙이고 그 목소리에 집중한다. 무슨 말을 하시는 것인지, 그 수업내용이 무엇인지 듣기라도 하려고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이미 뇌가 아니라 솜이 자리잡고 있는 내 머리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언어로써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한 외계어로 들을 뿐이다.


"일어나자."


 눈이 완전히 감기고, 내 뺨에 닿아 있는 책상이 딱딱한 책상이 아닌, 폭신한 베개로 변한 바로 직후, 저 멀리서 커다란 소리가 들린다. 쾅! 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 떨고 벌떡 몸을 일으킨다. 내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덩달아 놀라서 나를 슬쩍 바라보고, 저 멀리 교탁 앞에 서 계시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괜히 머쓱해져 마른 세수를 한다. 거의 벗겨질 듯 걸쳐져 있던 안경이 내 손에 걸려 결국에는 툭,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꽤나 큰 소리였기에 주위 친구들의 시선이 더욱 날카롭게 내게 와 꽂혔다. 왠지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에 열이 올랐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떨어진 안경을 주워 끼고 마치 자지 않았던 것 마냥 샤프를 손에 쥐고 수업에 집중하는 '척' 한다. 날 향했던 선생님의 시선이 다시 칠판으로 돌아갔다.


 그제서야 숨이 터져나왔다. 아주 갑작스럽게 꿈에서부터 현실로 끌어당겨지는 바람에 놀란 심장이 여전히 큰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쿵, 쿵, 쿵. 심장이 입 밖으로 뛰쳐나오려다가 목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길게 숨을 내뱉으며 책상 위로 다시 늘어졌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고,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눈이 뻑뻑하니 시렸다. 다음 교시는 그냥 입실을 해버릴까,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면서 뻑뻑한 시선으로 새까만 글씨가 나열된 하얀 칠판을 바라보았다. 옆에 앉은 친구는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열심히 공책 위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도로 책상 위에 엎드려서 축, 늘어졌다. 이번에는 안경까지 벗어버리고. 앞에서 수업하시는 선생님께 너무 죄송한 일이지만, 선생님께서 나를 깨운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축축 늘어지는 몸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곤하고 피로해서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그냥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어차피 일어나 있어봐야 눈꺼풀은 내 의지와 다르게 아래로 향하고, 솜으로 가득 찬 머리는 수업 내용을 이해하질 못하니 차라리 자버리는 것이 더욱 이득 아니겠는가. 숨을 길게 내쉬자 책상에 부딛혀 그 온기가 고스란히 내 뺨에 닿았다. 축 늘어진 몸에 남은 아주 조금의 힘 마저 놓아버린다. 눈꺼풀이 닫혀감과 동시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야자시간도 사실, 수업 중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심했으면 더 심했을까. 자도 자도 더 졸린 느낌에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피곤에 쩔어서 몸 어디가 잘 못 된 것 같은 안 좋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 학교 야자는 그렇게 빡센 편은 아니라서, 출석 체크만 하고 나면 야자 감독 선생님께서 돌아다니시거나 교실에 들어오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니 출석 체크만 끝내고 나면 마음껏 잘 수 있다. 감기려는 눈을 가까스로 견디면서 내 이름을 부르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기계적으로 손을 들었다 내린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시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그 자리에 쓰러져 책상 위에 몸을 뉘였다. 딱딱한 책상일 뿐인데도 어쩐지 굉장히 포근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몸이 편하도록 잘 자세를 잡고 눈을 감아버린다. 조용한 교실에 따뜻한 공기가 좋지 않았던 기분을 살살 어루만진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조금 둔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잠들어 가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샤프심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웹진 랑은 퀴어 에세이 블로그 LETSSAY의 글들을 기고받아 연재합니다. LETSSAY 블로그에서 더 많은 에세이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달, 불, 물, 나무, 돌 다섯 레세이어들의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LETSSAY란? 각양각색의 다섯 명의 여성 성소수자의 솔직담백한 퀴어 생활 에세이입니다. "Let's say"와 레즈비언 에세이(Lesbian Essay)라는 의미처럼 여러분과 공감할 수 있는 퀴어풀한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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