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세이어 달

애기 취급 하지마! 


  시간을 거슬러 9월 말, 야자 중간에 뛰쳐나온 세 인물, 나와 수민과 도경을 다시 무대에 세운다. 배경은 어두컴컴한 학교 운동장으로, 을씨년스러운 낡은 건물, 맨 꼭대기 층만 희멀겋게 불을 켜놓은 음침한 교사를 세우고, 닳아빠진 스탠드와 흙바닥 가득 먼지가 이는 운동장을 깐다. 나에게는 짤막한 반바지를 입히고, 수민에게는 하복셔츠, 도경에게는 얇은 가디건을 입힌다. 그렇게 무대가 갖춰지면 인물이 등장하고 대사가 읊어지기 마련, 오늘의 대사는 도경이 먼저 뱉도록 되어있다. 


  여잔데, 여자도 좋아는 하는데, 스킨십도 하고 싶은데 어떤 성적인 관계까지는 거부감이 든다면, 그걸 양성애자라고 할 수 있어? 


  새카만 하늘에는 흐르는 별과 구름 몇 점을 올린다. 아직 밝게 빛나지 않아 노르스름한 표면을 드러내는 달도 함께 비춰본다. 먼지 낀 스텐드, 제각각 드러눕거나 앉은 수민과 나와 도경의 얼굴에 부옇게 빛이 쏟아진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직 성애가 발달하지 않은 거 아닐까? 내가 입을 벌려 말한다. 


  너는 이성애자야? 


  글쎄. 난 잘 모르겠어. 


도경의 질문, 나의 답.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알고 있는 수민은 황급히 말을 막는다. 


  왜, 너 그 남자모델 좋아하잖아. 그 백발에 50살인 사람. 조지 젤라티인가? 그리고 너 도일도 좋아하고. 


  그럼 뭐 남자 좋아하나보지. 


내 대답은 엷게 흐른다. 수민이 일어나 어디론가 간다. 야, 어디가. 나 교실 좀 들렀다 올게. 수민이 사라지자 무대엔 도경과 나, 둘만 남는다. 


  너는 그럼 여자한테 끌린 적은 없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 왜, 성 정체성에 혼란이 와? 


  아냐.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왜 웃고 있담. 너 거짓말 하는 거 얼굴에 다 티나. 


  아니라니까. 


  됐어. 고민이나 하셔. 


다시 무대에 수민이 오르면 무대를 어둠으로 덮어버린다. 그리고 배경을 조금씩 고친다. 하늘은 더 어둡게, 달은 더 작고 밝게, 바닥은 녹색 방수페인트가 발린 미끄러운 바닥, 아파트 옥상을 배경으로 잡는다. 물탱크로 오르는 조그만 계단을 세우고 안전막을 그려 넣는다. 그리고 또다시 등장하는 수민과 도경, 나와 윤지. 소품으로 소주병과 맥주병을 늘어놓고, 음료수들을 쌓아놓는다. 얼굴이 빨개진 수민과 아직 멀쩡한 윤지가 문을 열고 사라진 후로 시간을 좀 더 돌리고, 나와 술 취한 도경을 물탱크 위로 올린다. 그리고 또 다시 도경의 대사. 


  나는, 여자도 좋아하더라. 몰랐는데 여자도 좋아해. 


  난 여자만 좋아해. 여자만 좋아하더라. 


  왜 난 여자도 좋아해? 왜 난 이래? 왜 사람들은 나한테 막 기대하고 그래? 너는 장녀가 어떤 느낌인지 알아? 


  사람들이 기대해서 힘들었어? 


  그럼 안 힘들어? 


  도경이 힘들었구나. 누가 도경이를 힘들게 했을까잉. 


도경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술에 취에 두서없이 흘러나오는 도경의 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뼈를 담고 있다. 


  너, 나 운다고 애기 취급하냐. 애기 취급 하지마! 


도경이 손을 뿌리친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너도 하나 피울래, 담배를 건네자 도경이 손을 떨며 붙여주는 불을 받는다. 눈물이 가득 고인 도경의 눈. 나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운다. 


  뽀뽀해도 돼? 


  어? 


  뽀뽀해도 돼? 


  그러던가.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인지. 술 먹은 놈 놀린다 생각하고 적당히 받아넘긴다. 


  너, 취했어? 


비교적 깨끗한 도경의 음성. 취했느냐니, 당연한 질문. 인사불성 도경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취기는 오른다. 


  응 취했어. 


  내일 기억 안날만큼? 


  그 정도는 아니고. 알딸딸해. 


  그럼 입에는 못하겠네. 


도경의 입이 다가온다. 내 볼에 입을 맞추고는 얼굴을 붉힌다. 그러고는 또 소리 지르며 울고, 나는 도경을 달랜다. 




렛세이어 불

좀, 더, 아픈


  남는 학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에 맞추어 집어넣은 교양 과목은 들을 때마다 지루함밖에 찾을 수 가 없다. 칠판 모서리를 한참 응시하다가, 판서하는 교수님이 쥔 분필 끝의 흩날리는 분필가루를 눈으로 좇다가, 참 느리게 흘러가는 시계 초침을 따라 고개를 까닥이다가, 종래에는 늘 그렇듯이 손톱 끝을 쥐어뜯었다. 오른손 중지 끝은 언제나 굳은살이 깊게 박혀있다. 뜯어대는 굳은살은 까실하게 일어나기까지 해서 점점이 맺혀있는 피딱지와 더불어 항상 전쟁터였다. 내 앞니는 오늘도 거침없이 그 전쟁터에 뛰어들어 딱딱한 굳은살을 파고들었다. 


찌릿 하는 순간의 통증과 함께 굳은살의 일부가 떨어져 나왔다. 잘 뜯기지 않던 부분을 뜯어냈다는 쾌감과 동시에 흐르는 한자락 핏줄기를 보자니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문구용 커터 칼로 찔러대도 느낌조차 없던 굳은 살 아래에도, 빨간 피를 머금은 여린 살은 존재했다. 반달 모양으로 깊게 패인 생채기에 피가 계속 고였다. 손가락을 입에 넣어 혀로 감싸자 비릿한 철향이 풍겼다. 침 범벅이 된 손가락 끝은 더 이상 피는 나지 않았지만, 붉은 속살을 드러낸 생채기는 붉게 칠한 손톱보다 더 붉어보였다. 손가락 끝에 시침핀을 박아 넣은 듯 이물감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내 무료함은 조금 사라져서, 오히려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의 기분이 되었다. 


  몸의 상처는, 상처라기보다는 기분의 환기를 위한 유리창일지도 모른다. 투박한 커튼을 젖히고 딱딱하고 얇은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면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차가운 바람이 틈새로 파고드는, 그런 기분. 감각의 자극은 그것이 아픔일지라도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몸의 상처보다 오히려 견디기 힘든 것은 추억 속에 숨어있던 온갖 행복한 것들이다. 지나간 시간은 기억이 되고 행복은 추억이 된다. 이 짧은 시간 살아오면서, 온갖 것에 새겨진 추억들은 왜 이리 많은 것인지, 나는 이를 닦다가도, 양말을 신다가도, 자기 전 돌아누우면 보이는 허전한 옆자리에서도, 그리고 발길 가는 그 많은 장소들에서도 숨어있던 행복한 시간들에 상처받는다. 그러면 그것들은 몸이 아니라 보다 좀 더 깊은, 저 깊숙한 곳에 종이로 벤 듯한 가느다란 생채기를 내고 지나간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를 닦다보면 종종 칫솔 끄트머리를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혀뿌리 부근까지 슬금슬금 밀어 넣다보면 어느 순간 주체할 수 없이 올라오는 헛구역질에 꺽꺽거리고, 그럴 때면 내 첫사랑 이름 세 글자를 마음속으로 외다보면 거짓말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헛구역질은 말끔히 사라지고 평안해지는 것이다. 이 주문은 첫사랑을 짝사랑하던 중학교 때의 그 시간부터, 최근에는, 어제 밤 잠들기 전의 양치질까지, 지금도 계속 사라지지 않고 종종 그렇게 떠오른다. 그러면 그 오래 전의, 나는 이 닦다가 헛구역질이 날 때 네 이름 생각하면 헛구역질 안 나더라? 하고 너에게 말했던 그때를, 그리고 그 말에 정말? 하면서 살포시 웃어보이던 네 얼굴이 떠오르면서 또 잠깐, 욱신거린다. 


  양말을 신다가, 스타킹을 올리다가, 발을 씻다가 보게 되는 복사뼈 옆에는 새끼손가락 반 마디만 한 아몬드 모양의 흉터가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랜 시간 지나면서 희미해진 흉터지만, 네가 너무 좋았던 그 때에, 너랑 조금이라도 더 몸을 맞부딪치고 싶어서, 괜스레 툭툭 치며 장난을 걸다가, 또 그 장난을 받아 주던 내가 나를 잘못 밀쳐서 넘어지면서 벽돌에 찍혀서 피가 철철 났었던,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너랑 그렇게 장난치고 놀 수 있어서, 함께 웃을 수 있어서, 피나는 내 상처를 부여잡고 어떻게 하냐면서 잔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네 표정이 그 흉터가 담고 있는 시간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어서, 지금은 기억으로 밖에 더듬을 수 없는 그 시간에 마음속에 또 날카로운 종잇장이 스치게 된다. 


  내 몸 곳곳에, 내가 가진 물건들에, 내가 밟고 서 있는 그곳에, 나를 감싼 그 공기에, 지금은 상상으로밖에 떠올릴 수 없는 떠올리면 아련하고 따뜻해지는 그 시간들이 녹아있다. 그것들은 정신없이 지나가는 바쁜 일상과 치열한 지금에 파묻혀 보이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굳은 살 아래 숨어있던 여린 속살처럼 한자락 핏줄기와 함께 밀려온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쥐어뜯어 내는 손가락 끝의 그 작은 생채기보다 훨씬 가늘지만, 기다랗고, 좀 더, 조금 더 아픈 것 같은 기분이다. 


 


렛세이어 물

홍대 거리


  그녀와 나는 거리를 자주 걷고는 한다. 그녀의 하숙집 근처에서나, 아니면 혜화에서 연극을 보고 나서나. 요즘에도 날씨가 많이 춥지 않으면 그냥 걷는다. 아무 얘기나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공연이나, 요즘 공부하는 내용이나, 아니면 뭐, 그래 그냥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거리를 걷는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가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곳은 홍대. 정확히 말해서 홍대 거리만 걷는 게 아니라 홍대, 합정, 상수 그 일대를 걸어 다니면서 이야기한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처음가보는 골목길들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낯선 주택가들이 나오면 ‘어’하고 난감해하다가 돌아가는 길도 많다. 그리고 지독한 길치인 나는 분명 왔었던 곳이라는 건 기억하는데 이 지점과 저 지점을 연결하는 길목을 몰라서 항상 처음 가는 느낌을 받는 것도 있을 거다. 손을 꼭 잡고 걷거나, 팔짱을 끼거나, 그녀의 옷깃을 잡은 채로 졸졸 같이 걷다가 ‘여기는 어디야?’하고 물어봤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내 머리를 더 어지럽게 만든다.


  “여기는 어디야?”


  “홍대!”, 


  “여기는?”


  “합정이야.”


 “홍대”, “홍대”, “상수”, “합정”, “홍대!”

   정말이지 집에 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 건 어떻게 홍대에서 합정으로 와서 돌아가지도 않고 계속 그 방향으로 걸어갔는데 또 홍대가 나오는 거냐는 거다. 그래서 그걸 또 물어보면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렇지,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덕분에 내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그 세 지점의 지도가 완성되질 않는다. 서로 포함관계에 있는 벤다이어그램처럼 그려졌다가, 또 달팽이관 같은 모양을 띄기도 하고. 복잡함에 어차피 틀린 모양이었을 지도를 지운다. 그래도 얼마 전에는 드디어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어떻게 홍대놀이터를 가는지는 익혔으니까 또 몇 개월 이렇게 돌아다니다가보면 몇 군데 또 알게 되겠지. 어차피 이 거리를 나 혼자 걸을 일은 잘 없을 거다. 그녀가 있으니까 이 넓은 거리를 헤매지 않고 쫄쫄 다닐 수 있다. 집에 갈 때쯤이 되면 안전하게 지하철역까지 어느 순간 걷고 있다. 


   그냥 거리를 걷기만 해도 좋다. 굳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비싼 카페에 들어가서 신기한 이름의 메뉴를 고른다거나. 거리를 걷는다. 이 단순한 행위. 은근히 스치는 두 손, 그리고 그러다가 깍지를 끼고,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려서 그녀의 얼굴을 본다. 가끔 그녀가 신는 워커와 내가 신는 단화는 원래도 있었던 키 차이를 더 벌어지게 해서 고개를 들어야 얼굴을 완전히 볼 수 있게 만드는데 같이 걷고 있다가 그녀의 턱선 끝에서부터 보이는 옆얼굴은 너무 두근거려서 작게 웃음 짓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린다. 

  

   우리가 우리 앞에 있는 거리들을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되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긴 시간, 약 2개월 동안, 서로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됐으니까 가능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서로의 부재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 부재가 끝난 이후로는 훨씬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한다. 서로 말을 한다. 그냥 참고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도 최대한 꺼내려고,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럼 거리는 서서히 더 좁아진다. 더 좁아질 것도 없던 것처럼 보이는 사이가 그래도 더 가까워진다. 


 


렛세이어 나무

너라서


  "다 그만둘래. 그냥 도망칠래. 다 놓고 도망가고 싶어. 응? 나 좀 살고 싶어 여보야." 그 날 내 입에서는 저런 말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어릴 때부터 워낙 힘들었지만, 더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의 선에 도달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가 집이기에 통화를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삼켰다. 울어도 내 눈물 닦아줄 이가 곁에 없고 혼자 또 아파야 하기에 그냥 삼키기만 하고 있을 무렵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수신 번호도 확인 하지 않은 채 받았다. 그녀였다.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그녀였다. "울었어?"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마치 잠겨있던 수도꼭지가 열리고 얕게 얼어있던 개울물에 돌을 던지기라도 한 듯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안 울려고 했는데... 여보 목소리 들으니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한참을 울었을까. 어느새 눈물이 멈추고 내 귓가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성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녀가 정말 간절히도 보고 싶었고, 그녀에게 되도 않는 억지를 부렸다. "두랄루민이랑 여보 바꿔주면 안 돼요? 여보랑 바꿔주세요, 네?" 고등학교 때 선물 받았던 곰인형과 그녀를 바꿔달라며 떼를 썼다. 말도 안 되는 텔레포트니, 공간이동이니 하며 헛소리를 할 정도로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녀를 안고 싶었다. 

 

  눈물이란 것이 참으로 신기하여 사람을 솔직하고 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녀를 만나며 참으로 많은 의미의 눈물을 보고 흘렸다. 그녀를 다시 만났던 그 자리에서 그녀의 눈물이 없었다면 난 용기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저 정말 그냥 친구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눈물을 흘렸기에 그저 그것을 가려주고 싶어서, 그녀를 달래주고 싶어서 용기 내어 안아줬던 나니까. 아무리 그녀가 미운 짓을 해도 울고 있을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어 돌아서고. 아파하는 그녀 앞에서 차마 눈물을 흘리지 못해 멀리까지 도망 나가서 혼자 울다 들어오고. 사람을 그렇게 약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 눈물은 아픈 만큼 성숙하게 만들어주었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의 가치를 알려주고 그 존재가 내가 살아가는 동안 하여금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는 지를 알려주었다. 


  나의 그녀는 내 삶에서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리게 한 사람이다. 동시에 내 눈물을 가장 많이 멈추게 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눈물은 감정의 가장 최고선의 희노애락을 모두 담고 모두 표현하는 보석인 셈이다. 나에게서 슬픔의 눈물도, 기쁨의 눈물도 모두 흐르게 하는 그녀야말로 내 인생의 보석이 아닐까 한다. 어린 시절 누군가 내게 자기는 눈물샘과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 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 그 누구보다 솔직하고 자기 감정에 충실한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게 눈물샘과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 전부겠지. 어느 날 나의 글을 보고 누군가 그랬다.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전부가 되는 것이 두렵다고. 그녀와 같아지는 것이 겁이 난다고. 잃고 난 뒤가 무섭다고. 사랑은 원래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이가 만나서 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고,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함께 할 수 있기에 사랑이고 순간의 달콤함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고 기회비용을 따지지 않게 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 같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만이 흐르도록 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한다.




렛세이어 돌

난 잘 모르겠다.


  지금 나는 상담을 받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받을 테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상담을 받아봐야 나도 잘 알 수 없는 내 상태가 완전히 나아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을 거고, 변하지 않는 상태로 앞으로를 살아갈 것이며, 이렇듯 변하는 것은 조금도 없음에도 상담을 받는 이유는, 상담을 받음으로서 나의 이런 상태가 조금이라도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 될 것이다. 그래, 지금 나는 상담을 받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을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상담을 받는 이유는 그저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함이다.

 

 내가 처음 상담을 권유받은 것은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가장 친했던 친구와 크게 싸우고 난 후였다. 한창 싸움이 심화되던 때, 나는 엄마께 이 문제를 어떡하면 좋겠냐고 자주 여쭙고는 했다. 그러나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고, 나는 싸우는 도중에도 이상할 정도의 감정 기복으로 친구를 대하다가 결국 나와 그 친구는 완전히 틀어지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신기하게도 나는 금방 또 다시 행복한 아이로 돌아왔고, 그러다가 엄마께 왼 손목의 상처를 들켰다. 친구랑 한창 싸우던 때 내가 충동적으로 만든 상처였다.


 조금의 변명을 해보자면, 아마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손목의 상처는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처였다. 그 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더 감정기복이 심했는데, 친구랑 싸운 것으로 며칠을 내리 울다가도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은 해도 심각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친구한테서 다시는 얼굴도 보지 말고 연락도 하지 말자는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금요일 수업이 일찍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문자고 뭐고 그냥 집으로 간다는 사실이, 이제 주말 내내 쉰다는 사실이 너무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부르며 하교했다. 친구에게 답장은 물결과 하트까지 찍어 보내며 '그래, 알았어~♥'하고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웬 미친년인가, 싶지만 그 때는 정말이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주말이 다 지나고 학교에 도착했을 때서야 나는 굉장히 속상해했고, 절망했고, 슬퍼했다. 그러다 그 날 저녁에 그냥 충동적으로 손목을 그었다.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의미라면 조금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분이 상당히 좋았는데, 갑자기 그렇게 곤두박질 치니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를 본 엄마께서 내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 한 얘기는, 조울증인 것 같은데 정신과 가볼래? 였다.


 그 때는 내가 싫다고 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몇 개월이 지나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나서, 나는 지금껏 2년간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다.


 자해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강렬하게 죽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예요. 그냥, 그냥 어느샌가 나는 그러고 있어요.


 그 말을 상담 선생님 앞에서 꺼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지. 말하는 당시에 나는 유쾌하게 웃고 있었고, 오해하지 마시라고 손을 내저었으며,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그래, 내가 이 얘기를 꺼내기 힘들었던 이유는 상담 선생님께 나의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거나 나의 얘기를 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게 나의 이 한 마디로 인하여 선생님께서 나를 굉장히 심각한 상태에 있는 아이로 생각하실까 괜히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 또한 그렇게 '오해'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다. 내가 자해를 한 건, 해 온 건, 그것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하게, 정말로 단순하게 마치 어릴 때부터 손톱을 물어뜯어온 사람들처럼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말을 꺼냈을 때의 선생님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어색한 얼굴. 선생님이 당황하신 것은 내가 습관적으로 자해를 한다는 사실보다도 열심히 '오해'를 풀기 위해 변명하려 애를 쓰는 모습에서였던 것 같다. 보통 아이들의 상담이었다면 자신이 무엇때문에 힘들고, 그래서 이러한 행동을 하며, 저러한 감정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나눔으로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보자는 식으로 흘러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남들이 내게 문제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에게는 그다지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으며, 딱히 해결해야 할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나의 생각을 어필하려 노력했고, 그로인해 선생님께서 당황하신 것일 터였다.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의 해결을 원하지 않는 아이가 상담에 나와 있었으니. 그리고 더욱 우스운 것은, 그 상담은 내가 자원해서 받은 상담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독특한 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미 주변 인물들에게 너무 많이 들어온 탓도 있지만, 객관적인 잣대를 가져다가 내 스스로를 돌아보면, 아무리 봐도 그 잣대에 딱 맞지는 않는다. 어딘가 휘어져 있거나, 뒤틀려 있다. 안다. 누구보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상처에 굉장히 무감하다.


 생물시간에 혈액형 검사 실험을 할 때 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바늘을 손가락에 찔렀다. 손목이 뻐근하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며 미루다가 실내화 주머니 하나 드는 것조차 힘들어 지기도 했다. 피곤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 입술에는 헤르페스가 돋았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하철에서 남자들이랑 부딛히면 헛구역질을 했다.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손톱으로 손목을 긁었다.


 우리 엄마를 모두 이해할 수 있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상담 시간에 엄마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났다.


 이것들은 모두 나의 상처들이겠지, 상담 선생님이나 내 몸의 상태가 내게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상처들이 아프지 않았다. 바늘이 찔린 손가락과 뻐근한 손목은 물론, 헤르페스가 돋은 내 입술과 헛구역질 하는 위와 내 손목은 물론 따끔했지만, 그것 뿐이었다. 나는 그 상처들에 그다지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분명히 상처들이었지만, 나는 조금도 상처받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묻는 것이 익숙하다.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사태를 크게 벌리고 싶지도 않으니 그냥 나 혼자 이해하고 납득해서 묻어버리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묻어서, 잊어버린다. 우리 엄마는 나보다 더 안쓰러운 사람이니까, 그 친구가 그동안 나한테 맞춰주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냥, 그렇게.


 그럼, ㅡ씨의 상처는 어떻게 해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했지만, 글쎄, 지금에서야 나는 그 말을 한 상담 선생님에게 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


"난 그다지 그 상처들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아요. 도대체 나한테 뭘 어떻게 하라는 거죠?"

하고.


 난 도대체 조금도 심각하지 않은, 아주 작은 까진 살결에 불과한 내 상처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웹진 랑은 퀴어 에세이 블로그 LETSSAY의 글들을 기고받아 연재합니다. LETSSAY 블로그에서 더 많은 에세이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달, 불, 물, 나무, 돌 다섯 레세이어들의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LETSSAY란? 각양각색의 다섯 명의 여성 성소수자의 솔직담백한 퀴어 생활 에세이입니다. "Let's say"와 레즈비언 에세이(Lesbian Essay)라는 의미처럼 여러분과 공감할 수 있는 퀴어풀한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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