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세이어 빨강



  낡은 집에는 먼지가 더 빨리 쌓이는 것만 같다. 수치화된 사실도 아니고, 관련 연구가 진행된 적도 없고, 내 지인 중 하나는 그럴 리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기까지 했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낡은 집의 창문이, 그 집의 오래된 거울이, 그 집의 텔레비전 화면이 더 뿌옇고, 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런 집에서 먼지는 얹혀 지내는 백수 삼촌처럼 불편하게 집안 곳곳에 들러붙어 있다.
 
  어렸던 나는 스무 살이 되면 당연히 독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트콤 논스톱에 나오는 것처럼 예쁜 가구가 있는 원룸에서 아침에는 모닝커피를 마시며, 변신하는 세일러문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아름다워 질 거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달콤한 날들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뭐 그런, 장밋빛 청춘에 대한 막연한 망상을 했었다. 놀랍게도 독립하는데 드는 비용은 단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스무 살이 되어 내가 살게 된 집은 기대와 완전히 정반대의 다세대 주택을 개조한 코딱지만 한 사글셋방이었다.

  반지하도 아닌데 퀴퀴한 냄새가 났고, 창문틀에 쌓인 시커먼 찌꺼기들은 이 집의 나이를 짐작게 했다. 방음도 전혀 되지 않아 옆방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다 알 수 있었고, 작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은 방 구석진 곳까지는 닿지 못했다. 그 집, 그 방에서 나는 생애 첫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의 시작은 간단했다. 너를 한 시도 내 곁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가 없어, 라고 말하는 10살 많던 그 여자에게 나라는 존재가 정말 필요해 보였을 뿐이다. 절실히 나를 원하는 것만 같아서,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만 같아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받는 것만 같았다. 재활용 센터에서 헐값에 금성 냉장고를 데려오고, 마트에서 천 원, 이천 원짜리 수저와 밥공기를 샀다. 욕실에는 칫솔이 두 개 내걸렸다. 밥을 차려서는 작은 상에 둘러앉아 낄낄대며 밥을 먹기도 했다. 연인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마모된 칫솔모가 잇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는 변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며 울부짖었고, 내 휴대폰의 통화내역과 문자사서함을 뒤졌다. 아니라고 해명도 했고, 악을 쓰며 화도 냈지만,그녀는 듣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는 현관문 밖에 자물쇠를 달았다. 내가 도망갈까 봐 무섭다며 ‘너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어’라고 말했다. 밤새 싸우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채로 나는 천천히 닫히는 현관문을 보았다. 쾅,

  밖은 이미 봄이었다. 스물한 살 나의 봄이, 안이 아닌 밖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낡고 뿌연 창문께로 햇빛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먼지들이 춤을 췄다. 지난밤 격렬하게 밀고 당기던 몸싸움에서 생긴 언니와 나의 껍질들이, 한때 몸을 섞었던 싸구려 이불의 보풀들이, 낡아빠진 냉장고의 징징거림을 타고 나풀나풀 군무를 이루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하얗고 가벼운 것들은 햇살을 타고 파랗기만 밖으로, 밖으로 도망치려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먼지들은 창문에 벽에 가로막혀 계속 방구석에서 맴돌았다. 빙글, 빙글, 빙그르르.

  그로부터 얼마 뒤, 정말 미안했어, 라는 말을 끝으로 겨우 그녀와 헤어질 수 있었다. 그녀는 낡은 집을 떠나면서 옷가지도, 낡은 칫솔도, 숟가락도, 젓가락도 모조리 챙겨나갔다. 방구석에는 먼지만 요란했다. 괴로웠던 시간 이편의 행복했던 시간까지, 목구멍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던 악과 달콤한 말들이 먼지마다 묻어 있었다. 자물쇠가 달려 있던 현관문이 요란한 소리를 냈고, 그 틈으로 밀려들어온 봄바람을 타고 먼지들이 소용돌이쳤다. 빙글, 빙글, 빙그르르.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지끈, 하는 소리가 나는 것처럼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뜨거운 것을 참지 못하고, 나는 비로소 울었다.
 먼지 묻은 얼굴을 눈물이 훑고 지나갔다.



렛세이어 주황
낭만, 여유



  나에게는 입으로 몇 번이고 곱씹게 하는, 곱씹으면서 느껴지는 맛을 깊이 음미하게 만드는 단어들이 몇 개 있다. ‘탐닉’이라는 단어가 그렇고 ‘고즈넉’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그 중 이번 주제를 생각해보며 떠오른 두 가지의 낱말이 있는데 하나는 ‘낭만’이요 둘은 ‘여유’다.

  시골에서 밤을 지내본 적이 있는가 모르겠다. 명절에도 조부님 댁이 서울에 있어 “내려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올라가야”하는 우리는 딱히 찾아갈 만한 시골이 없다. 그나마 외할머니 형제들이 딸들이 많아 서로 왕래가 잦아서 천안에 있는 목천이나 서산에 계시는 이모할머니 댁을 종종 가곤 했다.

  서산이나 목천이나 시골에서의 밤 풍경은 비슷하다. 깜깜하고 앞이 보이질 않는다. 너무 감사하게도 그러기에 하늘에 박혀있는 별들이 보인다. 분명하고도 빈틈없이 빛나는 별들을 자세히 보다 보면 이내 반짝 반짝거리는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별이 주는 안정감을 얻는다.

  여름의 시골에서의 밤은 좀 더 특별한 울림이 가득하다. 그건 바로 개구리들의 공명소리다. 마루에 모기장을 치고 여름이래도 서늘한 시골의 밤공기를 막으려 얇은 요를 하나 덮고 한가로이 눕는다. 그렇게 말소리 없는 고요함을 개굴개굴- 거리는 소리가 깨버리고 만다. 개구리가 들려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들기 전까지도 개굴이라는 그들만의 언어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를 끊임없이 궁금해 한다.

  밤하늘 속엔 낭만이, 잠을 청하던 마루 위엔 여유가 있었다.


  요즘 나의 낭만과 여유는 하늘에 있다. 필리핀에서 몇 년간 살았던 나는 필리핀의 하늘을 참 좋아했다. 특히 하얀 모래 사장 위의 에메랄드 빛 바다와 바다가 끝나는 지점부터 다시 펼쳐지는 청명한 하늘은 몇 시간을 바라보고 있어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해가 지면서 노을이 하늘을 어지럽혀 놓으면 이카루스를 이해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마음속 작은 나비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언제 그 나비가 마음속을 살랑거리며 날아다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황홀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 '눈 앞에 마치 그림처럼'.

  그렇게 ‘하늘 바라보기’는 한국에 와서도 나의 하루 중 습관이 되었다. 바쁜 일상으로 모든 게 휙휙 지나갈 때마다 잊지 않고 마치 숙제와도 같이 의무적으로라도 하늘을 쳐다본다. 그럼 이내 나는 다시금 낭만과 여유를 마음에 품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네 번째 이야기 속에 싹을 틔운 '꽃'은 빠르게 돌아가기만 하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를 낭만, 여유와 이어주는 또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
  우리 엄마는 실용성 없는 선물을 싫어한다. 그래서 꽃 선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딸의 6학년 졸업식에도 근래 본인이 받았던 비누 꽃다발을 먼지만 털어내고 가져갈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념일이나 우울한 날에는 꽃 선물을 기다린다. 우리 애인도 역시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았다. 꽃 향기를 꽃 냄새라고 표현했고 예쁜지도 모르겠고 오히려 촌스럽다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꽃다발은 사치라고 했던 우리 애인에게 그냥 갑자기 수국 꽃다발을 선물했다. 굉장히 좋아했다. 유리병에 옮겨 놓고 매일 볼 정도로 행복해했고 그 이후로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  잠시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선물하는 꽃은 단순히 꽃이 아니라는 것이다. 꽃의 모양을 하고 꽃 향기를 그윽이 풍기는 낭만을 다른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는 것과 같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1의 구절은 모두가 다 익숙할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꽃은 그렇다. 자세히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삶도 그렇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린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정말 많이 보긴 하는데 너무 빨리 달린 탓인지 머리 속에선 그들의 윤곽조차도 희미하게 그려진다. 지치고 피곤해진다. 너무 열심히 달려만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이 러닝머신같이 느껴질 때가 온다. 그러면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어렵사리 찾은 여유를 통해 주위를 둘러보게 되면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뭘 놓치고 살아왔는지, 어린 왕자가 사랑했던 장미와도 같은 존재를 널려있는 장미 넝쿨과 바꾸진 않았는지가 보이게 된다. 그렇게 길가의 꽃들이 눈에 보이는 순간, 우리는 삶의 여유를 보게 되는 것이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게 되면 그 여유가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지는 것이다.

  낭만, 여유.

​  여유가 있어야 낭만을 꿈꾸고 낭만을 꿈꾸는 자의 삶에선 여유가 존재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은 하늘과 들의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들의 세계인 '낭만'을 꿈꾸는 일조차 할 수가 없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눈 앞에 있는 흑백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데 왜 꿈조차 꾸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낭만,    낭만,    낭만.
여유,    여유,    여유.
 별들과 개구리들의 공명소리에 담긴 낭만이야기가 꼭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서 여유로 찾아오면 좋겠다.



렛세이어 노랑
순간을 잡아요.

 

  ‘후리지아 한 다발 1000원, 장미 한 다발 1500원’

   인파로 붐비던 토요일 오후의 녹사평, 날서린 바람도 봄의 예감으로 들뜬 얼굴들을 숨길 순 없었다. 장삿속 밝은 노인이 이미 트럭 가득 꽃을 싣고 와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었고, 아찔한 꽃내음에 걸음 멈추는 사람들로 거리는 한층 더 북새통이었다. 그 난리통 속에서 난 15분째 망설이고 있었다.

  꽃선물은 있는 힘껏 피해왔다. 꽃을 주는 행위가 간지럽고 상투적으로 느껴져서만은 아니었다. 꽃이 수여된 ‘순간’ 뒤에 그것이 무심히 책상에 던져질 모습, 맥없이 시들어가는 풍경, 쓸모없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광경을 생각하면 꽃을 선물로 결정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책이라면 먼지 쌓여도 그의 책장에 꽂혀 있을 것이며, 화장품이라면 최소한 내장을 비울 때까진 보관될 것이고, 상품권이라면 그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지만 꽃이라니. 그저 그 짧은 한순간을 위해? 그 찰나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꽃은 주는 나에게도 받을 그에게도, 영 무용한 사물이었다.

  꽃에 대해 심각히 숙고하게 된 계기는 어느 심리학 책이었다. ‘투사’라는 개념을 읽어가다 문득 왜 내가 유독 꽃이 방치되고 부패하고 버려지는 시간만 보고 있는 건지 의문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꽃집 앞에서 꽃을 고르는 설렘의 시간, 한껏 내음을 맡으며 그 누군가에게 향하는 기대의 시간, 마지막으로 그 꽃다발이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는 놀라움과 기쁨의 시간도 있는데 어째서 유난히 소멸의 시간에만 마음을 쓰고 있었을까.  

  언젠가 한 세미나에서 최초의 기억을 그려보라는 주문을 받은 적이 있다. 추측컨대 기억의 사실 여부를 떠나 뇌리에 각인된 한 장의 판화를 통해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는 감정을 알아보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흥미롭게 착수했던 회상은 다소의 스산함으로 끝났는데,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서 끄집어진 기억이 세 살 무렵의 내가 메마른 여름날 좁은 학고방의 나무 마루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한창 부모 손을 탈 어린아이가 어미도 없이 아비도 친구도 없이 홀로, 그 모습이 일상인 듯 덤덤히 놓여 있는 모습에서 그 시간을 견뎌나가기까지 아이인 내가 겪었을 외로움과 두려움이 서른의 나에게 사뭇 생생히 전해져, 한동안은 자주 멍하니 창밖의 볕을 바라보곤 했다.

  낙인과 같은 그 외로움과 두려움이 아마 꽃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불러왔으리라…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누구에게도 선뜻 꽃을 내밀기는 어려웠다. 머리와 마음의 거리는 멀고, 마음과 몸의 거리는 그보다 천 길은 더 멀다. 그렇지 않고서야 꽃을 사느냐 마느냐를 죽느냐 사느냐처럼 고민하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기.”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통통 뛰어오고 있는 그녀에게 손을 들여보였다.
  “많이 기다렸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녀가 말했다.
  “아니." 가려던 나는 깜빡한 듯, "아, 맞다.”
  어설프게 쭈뼛쭈뼛, 감춰뒀던 분홍빛 장미꽃다발을 내밀었다.
  “…!”

  놀라움으로 빛나는 그녀의 눈과 말을 잃은 그녀의 입이 세상을 정지시켰다. 잠시 멈춘 세상이 내게 말했다. 보라고. 순간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라고, 곧 사라지기에 더없이 소중하며 찬란한 것이라고. 그러니 필사적으로 너의 순간들을 잡으라고. 그곳에 너의 천국이 있다고.



렛세이어 초록
나는 지금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습니다.


   나는 지금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습니다.

  ​너무도 깊고도 어두워,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잠 말입니다. 커튼 너머 내리꽂히는 햇빛도, 조금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경기라도 일으킬 듯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알람소리도, 방 문틈 사이로 들리는 사람들의 웅성임도 나를 깨우지 못합니다. 내 무거운 잠을 치워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도 암울한 잠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습니다.
​  하루 종일 벗어날 수 없는 잠에 시달립니다.

 
   이불 속을 차갑게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커튼을 걷어 햇빛을 한껏 받아보았습니다. 모든 소리 나는 것들을 알람으로 총 동원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무겁고 집요한 잠은 내 호흡기를 깊숙이 파고 들어와 나를 질식시켜 쓰러트리고 맙니다. 나는 흐려져 가는, 아니 흐려진 의식 속에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립니다. 어떻게 해야 이 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요.


  ​몸을 일으켜도 머릿속 깊이 잠이 고여 있습니다. 호흡기를 통해 파고들었기 때문일까, 잠이 지나간 자리에는 온통 생채기가 남아 염증이 생겼습니다. 무거운 머리통과 쏟아져 나오는 콧물, 목을 긁는 기침과 가래와 끈적거리는 침, 팔뚝이며 다리에 남은 근육통. 잠이 온 몸울 훑고 지나간 까닭인지, 귓구멍 깊숙이며 관자놀이까지 아프거나 나른하거나 뜨겁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잠이란 그렇게도 무서운 것,나는 그 무서운 절망 속을 기어 다닙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말입니다.
 
 
   아, 비가 내립니다. 굵은 빗방울들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는 시끄러운 듯 하더니, 결국 단조로운 울림소리로 변하고 맙니다. 찬 공기가 저 너머에서 스며오는 군요. 또다시 눈이 감깁니다. 아니, 뜨인 적 없다고 해야 할까요? 무거운 잠은 또다시 나를 누르고,


​  나는 또다시
  잠이라는 이름의 무기력증과 우울에 몸을 맡긴 채
  호흡의 의지를 잃어갑니다.



렛세이어 파랑
아침잠



  “이번 주제는 뭐야?”
  “이번에는, 아, 잠이야! 이렇게 자는 잠.”
  “너랑 잠이랑은 뗄 수 없는 주제잖아.”
  얄밉게 웃는 네 모습에 가볍게 흘겨봤지만 부정까지는 할 수 없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밤잠은 없어도 아침잠에는 죽어도 항복하는 늦잠쟁이기 때문이다.
 
  밤잠은 정말 기가 막히게 없다. 사실 밤잠뿐만이 아니라 아침잠만 제외하면 오히려 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중학교 시절 게임 때문에 매일같이 2시간씩만 자던 때에도, 고등학생 때 새벽 3시, 4시에 자놓고서도 학교에 와서 다시 잠들 때까지는 절대로 졸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잠에서만큼은 예외라는 말이 맞다. 아침 8시 전에 일어나면 그 날은 하루가 피곤하다. 수면 시간과는 관계없이, 그러니까 12시에 자든, 새벽 5시에 자든, 8시까지만 잠을 잘 수 있으면 그걸로 피곤함은 작별인거다. 아예 밤을 새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별 수 없이 나가야하는 1교시 때문에 아침 6시부터 일어나는 목요일에는 하루 종일 넋이 반쯤 나가있다. 심지어는 애인과의 약속이 있는 날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한다. 일찍 만날수록 보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마음 같아서는 10시까지, 11시까지. 이렇게 만나 같이 점심을 먹고 싶은데, 내가 그녀에게 말하는 시간은 이번에야 말로 일찍 일어나겠다는 다짐을 해서 12시. 실제로는 1시. 이렇게 자꾸만 미뤄지게 된다. 그녀가 내 아침잠을 미워하는 이유다. 그래도 충분히 재워놓고 만나질 않으면 체력이 극도로 약해져버리는 걸 아니 이제는 그녀가 먼저 시간을 미뤄준다.
  아침형 인간인 그녀는 밤잠이 없는 것도, 아침잠이 많은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반대로 부엉이에 가까운 나는 정해진 시간에 벌떡 벌떡 잘 일어나는 그녀가 신기하다.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 먼저 잠드는 건 그녀 쪽이고, 그 후 이어지는 새벽 2,3시쯤의 자기 전 나의 인사. 아침을 먼저 맞이하는 것 역시 6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나는 그녀고, 그 후 8시에 졸음 가득한 답을 하는 건 나다. “잘 잤니?” 라는 물음에 오타 가득한 문자들을 잔뜩 보내놓고서 다시 기절하듯 8시 너머까지 자는 나를 보고 그녀는 내게서 잠냄새가 난다며 웃는다.
 

  같이 잠을 자고 맞이하게 되는 아침에는 먼저 그녀의 시간에 따라서 일찍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내 비몽사몽이 옮았는지 곧 나도 그녀도 다시 잠들어 버린다. 해가 중천에 떠올라도 침대에서 데굴거리며 졸다가 햇살을 쐬다가, 잠냄새가 조금 가실 때에 하루의 계획을 짜고, 결국 점심 먹을 즈음이 돼서야 몸을 일으킨다. 아침잠 없는 그녀도 같이 늦잠을 자고난 날이면 개운하다며 평소보다 더 쌩쌩하다. 그래, 이게 다 아침잠의 효과라니까. 아침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아먹더라도 나는 내 식대로 아침에는 기필코 더 자겠다며 내일 또다시 이불과 물아일체가 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침이 막막하다.




렛세이어 남색
Le Sommeil



  검푸른 벽지는 흰 침대보를 더욱 희게 보이게 한다. 뒤엉킨 침대보를 금빛 머리빗을 띄우고 물결친다. 이곳은 매춘부의 방이다. 노란 화병에 잠긴 연약한 꽃망울들이 죽어가는 숨을 뱉고 있다. 조용하다. 벌거벗은 두 여인의 숨소리만이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금발을 가진 하얀 여자는 어두운 검은머리의 여자에게 안겨 자고 있다. 검은 여자의 무거워 보이는 다리는 하얀 여자의 골반에 걸쳐져 하얀 여자를 얽매고 있다. 하얀 여자가 그 다리를 가는 손가락으로 매만지고 있지 않았다면 하얀 여자가 괴로워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잠을 위해 고요한 곳에서 두 여자는 하나로 얽혀 그들만의 공간을 만든다. 잠은 그들을 보호하는 장막으로 내려앉는다.

  나를 부끄러운 관음쟁이로 만들던 여인의 나체는 이제 교양인의 지식이다. 야한 잡지마냥 몰래 몰래 들춰 보았던 낡은 화집 대신 나는 두꺼운 미술사 서적을 넘겨보고 있다. 누군가의 힐난을 걱정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들춰보던 호기심은 없어졌다. 나는 이 나부들의 정체를, 화가를, 제작년도를 필사적으로 외울 뿐이다. 기계적인 책장 넘김에도, 그럼에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음울한 방 안에서도 몸을 하나로 뒤얽고 잠든 행복한 두 여인이다.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기던 당시에도 불구하고 쿠르베가 그들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여인의 나부 그림을 교양이라 말하며 욕망을 채우던 음흉한 인간의 요구덕분이었으리라. 어두운 갈색머리의 여성이 남성과 같은 강인한 역할을 하고 금발머리의 연약한 여인이 여성 역할을 한다는 19세기 레즈비언 문학의 요소가 그려졌다는 각주를 읽고는 사랑에 역할이나 나누는 미개한 인간들이라고 혀를 찼다가, 언제부터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지식인의 여부를 따지는 척도가 된 것인지, 스스로의 생각에 다시금 놀라고는 하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역할놀이가 틀린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두 여자 아이가 하는 소꿉놀이와 내가 너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연애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나물이라고 볶던 풀뿌리를 내던지고, 현관이랍시고 그어놓은 금을 밟고 퇴근하는 아이에게 다녀오셨어요, 하며 안기는 어린아이와 서로의 살 냄새를 맡으며 안겨드는 내가 다른가, 다르지 않다. 거기에는 수준도 놀이의 여부도 따질 것이 없다. 모두 함께 있다는 위안에 잠기며 서로의 품을 찾는다. 서로의 역할이 너와 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품속에서의 안식을 좇는 눈 먼 장님이다. 펜을 든 채 빠지던 잡생각에, 다시금 시계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책장을 넘겼다. 가려지는 책장에 보이는 잠든 두 여인은 그럼에도 너무나 편안해 보여 나는 끝까지 그 표정에서 눈을 뜨지 못했다.


  자자, 네가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눅눅한 이불 냄새와 열린 창틈에서 들어오는 후덥지근한 바람 냄새를 맡으며 이유모를 푹신함에 빠져들었다. 졸린 눈으로 천장 벽지의 무늬를 세었다. 안아줘. 칭얼거림이 섞인 목소리에 다가온 팔이 그 품으로 안았다. 나는 다리 한 짝을 들어서 딱딱한 골반 위에 얹었다. 이불 냄새와 함께 매운 치약 냄새가 느껴졌다. 보드랍고 곱실거리는 머리칼이 뺨을 간질였다. 자자, 잠은 너와 나를 위한 세계이다.




렛세이어 보라
바람의 팔할은 먼지요 황사니



 ‘바람의 팔할은 먼지요 황사니 내 눈엔 너의 모습이.......’

  인기 락밴드 크라잉넛이 부른 ‘지독한 노래’에 나오는 가사 중 일부. 나는 이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따뜻하다고 여기는 ‘바람’의 8할은 먼지이며 황사일 뿐이다. 그런 바람을 사람들은 왜 좋아할까. 친구여, 그런 존재를 만나면 도망할지어다.

  ‘바람’은 화려한 외투 속에 더러운 먼지와 황사를 품고 있다. 정말이지 꼴불견이다. 겉으로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사실은 추접한 모습을 가지고 있질 않던가. 마음 같아선 저 가식의 옷을 확 벗겨버리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비웃기를 원했다. 하지만 바람은 얼마나 교묘하던지 더러움은 제대로 감추고 깨끗함만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겉만 보고 좋아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아, 저거 참 좋은 녀석일세.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하니 말이야.”

  ​나는 ‘바람’의 속내를 알고 나서부터는 절대 말 한 마디도 섞지 않았다. 그걸 가까이 하면 할수록 폐 속 깊이 먼지뭉치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혹시라도 내가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 하면 뭐가 그리 두려운지 내 앞에서 감정의 황사를 마구 뿌려댔다. 덕분에 내 몸에는 온통 모래들이 붙었다. 그놈의 모래들을 빼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저 녀석은 왜 나한테만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자기는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왜 나는 안 된다는 거냐고?


 ​ 결국 ‘바람’과 안 좋게 헤어진 뒤, 한동안 힘들었다. 오랫동안 그 녀석이 내게 준 먼지와 황사가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빼내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녀석이 정말 지독한 녀석이라고 생각해버렸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그 녀석에 대해 알쏭달쏭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처음에 그 녀석은 나에게 따뜻함으로 다가와 머물더니 친해지자마자 나를 먼지떨이로 만들지를 않나, 심지어 내가 뭐만 하면 황사로 얼굴을 가격해버리질 않나.... 겉으로 보기엔 참 멀쩡해보였는데. 정말 이상한 녀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는 학교 후배를 만나서 즐겁게 대화하고 있었다. 나는 후배에게 ‘바람’을 만났던 이야기를 해줬다. 사람들은 그 녀석의 깨끗하고 친절한 모습만 알고 있지, 나에게 보여줬던 모습을 모르고 있다는 얘기까지 했다. 바람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후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언니, 그 녀석 왠지...... 소시오패스(Sociopath) 같은데?”

 ​  후배도 예전에 ‘바람’과 비슷한 행동을 하던 녀석을 만난 적이 있다며, 그런 녀석과 있으면 정신만 상하게 되니 아예 상종을 안 하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그랬다. 알고 보니 바람이 내게 보여준 그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가식이었고, 모두 사람을 이용해먹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였다. 다시 말해, ‘산들바람’으로 내게 다가온 그녀는 바로 ‘먼지’요 ‘황사’였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싸주고, 힘겨운 세상 속에서 일으켜 세워준 ‘바람’이 사실 나에게 해로움을 주는 ‘먼지’요 ‘황사’였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했다. 더 이상 그녀를 내 기억 속에서 쓸어버리지 않으면 나는 그녀가 남기고 간 먼지 속에 영영 묻히고 말 테니.



렛세이어 분홍
피곤하다



  "잠이 최고예요. 적어도 자는 동안 꿈은 꿀 수 있으니까요."

  마릴린 먼로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그 말은 분명히 슬프지만, 지극히 현실에 기초한 사실이다. 적어도 꿈을 꿀 수 있다는 점에서 잠이란 확실히 훌륭하다. 단지 우리가 기억해내지 못할 뿐, 우리의 뇌는 우리가 수면을 취하는 동안 다채로운 꿈을 꾸게 해주니까.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황이든, 차별 없이 동등하게 꿈을 보여주는 것은 이 세상에 잠이 유일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또, 그렇게 말했다. '잠을 자면 꿈을 꿀 수 있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고등학교 3학년 반의 친구들은 모두 잠과 꿈을 선택하기보다 꿈을 이루기를 택했다. 꿈은 꾸지도 않았는데,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고 싶은 대학교, 가고 싶은 학과, 그것은 우리들에게 풀기 어려운 난센스 퀴즈로 다가왔다. 가고 싶은 대학교야 뻔하지, 누구나 알아주고 취업 잘 될 것 같은 그런 대학교. 가고 싶은 학과는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학과란 그저 성적에 맞춰서 가는 것일 뿐. 물론, 우리 학교만 해도 300명이 훌쩍 넘어가는 고등학생 3학년생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러할 터였다.

  "넌 어디 가고 싶은데?"
  "내가 지원하는 데가 다 내가 가고 싶은 데지, 뭐."
  "다들 그렇겠지……."

  사실은 별 관심도 없으면서 점심시간 내내 공부나 대학 얘기를 늘어놓는다. 마치 그것이 꼭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맛없는 급식을 먹는 둥, 마는 둥 입 안에 집어넣다가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종치기 30분 전까지 교실로 돌아가야 했다.

  시끄러운 복도에 비해서 교실은 고요했다. 책상 위에 고정된 시선이 내게로 향할까 벌벌 떨면서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내 앞자리에 앉은 애가 가진 디지털시계가 40분을 가리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회장이 앞에 나가 영어 듣기 파일을 재생시켰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중 몇 명의 아이들이 책상 위로 엎어졌다. 다음 교시가 화학이니까… 우린 문과니 화학은 필요 없다며 다음 교시까지 깨지 않고 잘 생각인 것 같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문장들이 귓가에서만 맴돈다. 잠이나 잘까, 하얀 문제집을 멍하니 내려다보면서 뻑뻑한 눈을 껌벅였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눈을 뜨니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여전히 멍한 시야로 시계를 본다. 수업 시작 10분 전, 영어 듣기 마지막 문항이 끝나는 안내 멘트가 들렸다. 책상 서랍을 대충 뒤져서 화학책을 꺼낸다. 괜히 피곤했다. 영어 듣기 시작과 동시에 엎드린 아이들은 역시나 일어나지 않았다. 멍했던 시야가 또렷해진다. 그 잠깐 잤다고 정신이 멀쩡해졌다. 밥 먹고 바로 엎드려서 그런지 속은 조금 불편했지만. 누가 창문을 열어놨는지 시원한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제법 뜨거워진 햇살이 닿는 어깨가 뜨끈했다. 잠자기에는 더 없이 쾌적한 날씨였다.

  오늘 7교시는 자습이고, 8교시도 자습이고. 석식을 먹고 나면 또 4시간 동안 자습이다. 괜히 지쳐서 몸을 축 늘어뜨린다. 엎드린 채로 미동조차 하지 않는 애들을 보면서 나도 그냥 잠이나 잘까 싶었지만 조금 자고 일어났다고 쌩쌩해진 정신에 잠도 오지 않는다. 스피커에서 수업 종소리가 울린다. 영어 듣기가 끝나기 무섭게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던 아이들은 선생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다고 수다를 멈추지 않는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어쩐지 멀게 느껴졌다.

  자습 때, 프랑스어… 단어 외우고, 문법도… 다시 봐야지.

  뻑뻑한 눈을 껌벅이고 저 교실 구석에서 들려오는 대학 얘기를 엿들으며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과라도 정해져 있어, 하고 쓸 데도 없고 멋지지도 않은 우월감, 또는 안도감에 젖는다. 불어불문학과 나와서 넌 뭘 하고 싶은데? 하는 질문에는 다른 애들과 다를 것 없이 대답도 못 할 거면서. 그래도 나는 가고 싶은 학과라도 있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졸리지는 않지만 몸이 한 없이 가라앉았다. 고개에 힘을 빼니 툭, 하고 책상에 이마가 추락했다.

 아, 잠이나 자고 싶다.
 멍하니,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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