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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렛세이LETSSAY

[LETSSAY] 5월의 렛세이

by 행성인 2015. 5. 21.

렛세이어 빨강
피어오르다


 12살이었나, 그 해 내 달력은 한 인테리어회사에서 받은 것이었다. 모던한 분위기의 침실과 부엌이 매달 교차했다. 그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7월의 부엌이었다. 화이트 톤의 모던한 수납장과 아일랜드 식탁, 무광 스테인리스 후드와 4구짜리 가스오븐, 그곳에서 만드는 음식은 어디 레스토랑에 내어놓아도 뒤지지 않는 맛이 나올 것만 같았다.


 본격적으로 부엌에 들어간 것도 그 해였던 것 같다. 프라이팬 한 가득 달걀을 부쳐내서는 밥그릇에 올리고, 그 안에 볶음밥을 담아서 동그란 오므라이스를 만들기도 하고, 밀가루-계란물-빵가루를 차례로 묻힌 돈까스를 튀기기도 했고, 손에 하얀 밀가루를 잔뜩 묻히고 만두를 빚기도 했다. 전자렌지로만 쓰던 컨벡션오븐에 빵을 구워본 것도 그쯤이었다. 밀가루에 버터를 넣고, 설탕을 넣고, 당근을 잘게 썰어 넣어서 당근 케잌을 굽고,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슈를 만들기도 했다. 빨간 오븐 안에서 부풀어가는 빵을 보며, 내 마음도 빨갛게 부풀었다.

 신기하게도 우리 엄마는 요리하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부엌은 온전한 노동의 공간이었다. 내가 요리를 하는 것은 엄마에게 겨우 퇴근했는데 직장상사가 "난 남아서 일 좀 더 할게" 하는 것과 같은 꼴이었으리라. 엄마는 15년이 흐른 지금도 징글징글하다는 얼굴로 그 때를 이야기 한다. "누굴 닮았는지 원……." 엄마의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난 그 해 7월 달력의 부엌이 떠올라버린다. 몽글몽글한 햇살을 받으면서, 린넨 앞치마를 두르고, 조금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식탁에 앉은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나를 상상했던 12살의 내가 문득, 넌 그래서 지금 그런 부엌이 있는 집에 살고 있니? 라고 묻는 것만 같다.


 커다란 냄비에 파스타 면을 삶는 동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에 슬라이스한 마늘을 볶는다. 향신료 박스에서 건조 바질을 꺼내 팬에 넣어 향을 더한다. 순식간에 부엌은 초록빛으로 변한다. 냄비에서 올라오는 수증기 때문에 수채화폭처럼 향이 번져나가는 것만 같다. 감상할 시간은 없다. 냉장고 야채실에서 양상추와 토마토를 꺼내어 재빨리 손질해 샐러드 접시에 담아놓는다. 엊그제 만들어 놓은 마스카포네 치즈를 샐러드 위에 얹고, 견과류를 아무렇게나 뿌린다. 마침 면이 알맞게 익었다. 바질과 마늘향이 적절히 석인 팬에 물기를 뺀 면을 넣고 화이트 와인을 부어 조금 더 익힌다. 팬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저녁식사에 뭘 더 곁들일지 생각한다. 얼마 전에 샀던 로제와인? 아니면 지난주에 담가놓은 자몽청에 토닉워터를 섞어 자몽에이드를? 피클을 꺼내놓지 않았다는 걸 떠올리고는 투명한 유리병 안에 꽉 들어찬 콜리플라워를 내어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은 온갖 색깔로 꽉 찬다. 알리오 올리오는 완성되었고, 접시에 음식을 담아내는 나는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채 연신 분주하다.

 네가 요리하는 모습이 좋아. 내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언니가 말했다. 평일 저녁, 하루에 한 끼, 우리가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이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 대충 아무거나 꺼내놓고 먹는 그런 한 끼보다는 마주보고 앉아서 데이트하는 저녁상이길 바랐다. 언제나 언니는 맛있다고 말해주었다. 윤기 나는 블랙 올리브처럼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다. 그 눈으로 분주히, 정신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물을 틀었다 껐다, 가스 불을 켰다 껐다 하며, 냉장고 문이 몇 번이고 열리고 닫히면서 내 마음이 부풀어 가는 것도 보았을까.


 아쉽게도 나의 부엌은 7월 달력에 있던 그 부엌처럼 크지도 않고, 모던하지도 않은, 20대가 흔히 가질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12살의 내가 우리 집에 온다면 기뻐하지 않을까. 언니의 눈을 보고, 정말 다행이야, 하면서. 부엌칼을 처음 잡았던 그 작은 손으로 내 등을 토닥이면서 고생했어, 잘했어, 고마워, 라고 해주지 않을까.


 후식으로는 커피를 마셔야겠다. 요란한 그라인더 사이로 몽글몽글한 원두의 향이 피어오를 것이다.



렛세이어 주황
너와 내가 만나는 공간


 내가 아직 어렸을 때, 항상 엄마가 저녁 준비를 거의 끝낼 때쯤 아빠가 퇴근을 하셨던 것이 기억에 있다. 좋은 냄새가 난다고 하면서 아빠가 웃어 보이시면 엄마도 행복하게 웃으셨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았나보다. 아마 그 기억 때문에, "결혼"이라는, 사람과 사람이 하나 되는 그 결합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쯤 나는 그것과 연관 지어 나의 부엌을 상상하게 됐고 항상 그 부엌에는 당연하게도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나의 부엌이 아닌, 내가 그녀를 위해, 또는 그녀가 나를 위해 맛있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공간. 나는 가끔 그녀에게 말하곤 한다. 훗날 언젠가 우리가 함께하기로 약속하게 되는 그 날이 올 그 때, 특별히도 부엌 식탁에서 보내는 저녁시간을 그리는 일을 말이다.

     그녀가 일을 나가고 없는 사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나 언어 공부를 할 것이다. 책도 읽고 영화나 연극을 보면서 그녀를 기다린다. 물론 실제로는 나도 직업을 가지길 희망하지만, 어느 한가로운 날이라고 늘 가정을 하게 된다. 그 날, 나의 낮 시간은 서정적이고도 감미롭고 따스하게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다가오면 그녀가 나와 ‘힐링’하는 시간, 저녁식사를 위해서 메뉴를 선정하고 장을 볼 것이다. 왠지 오늘은 기분을 내고 싶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름 모를 레드와인을 하나 추천 받겠지. 저녁식사를 향긋하게 풍미해줄 레드와인을 그녀가 사랑하는 메뉴, 스테이크와 곁들인다! 그녀가 나에게 또 한 번 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행복한 생각에 나는 즐거워질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요리하기 편한 그렇지만 그녀와 함께할 저녁식사에도 어울릴 옷으로 갈아입는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날이길 바래본다. 아직 어질러지지 않은 부엌. 물기 하나 없이 말끔히 정돈된 그곳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 왠지 입는 그 순간 사랑스러워지는 앞치마를 두르고선 분주히 프라이팬을 들었다 놨다, 야채와 고기를 손질하고 어떤 식기가 좋을지 어떤 와인 잔이 좋을지 고민에 고민을 하게 되겠지?

    그렇게 요리가 거의 막바지에 달하는 순간, 딸랑 하고 "다녀왔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왔다. 그러면 나는 잠깐 그녀를 바라보고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자기 왔어요~?"라고 답할 것이다. 들떠있는 나의 목소리와, 자상하고 기분 좋은 톤으로 그녀를 미소 짓게 하는 나의 존댓말은 따뜻한 온기로 그녀를 감싼다. 온 집안에 가득히 풍기는 스테이크 굽는 냄새와 소리, 구운 마늘 내음은 피곤하고 지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주겠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온 그녀가 지친 두 팔로 무겁게 그렇지만 온기를 담아 내 허리를 감싸고선 한마디, "아- 맛있겠다." 그럼 난 싱긋 미소 지으며 그녀를 향해 뒤돌아서 가볍게 입을 맞춘 후 그녀의 등을 밀어 방으로 보낼 것이다. 이내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내가, "옷 갈아입고 나와요" 라고 말한다. 그녀는 "네-"라고 대답한다.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 나는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식기를 깨끗이 씻어 말린 후 조심스럽게 준비한 스테이크와 곁들이는 요리들을 담을 것이다. 레드 와인은 그녀가 나오면 따야지. 어느 정도 뒷정리를 하고 예쁘게 차려진 식탁에 앉아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화장실에서 손을 닦는지 물소리가 나더니 이내 그치고 화장실 불을 끄는 소리가 적막을 깬다. 곧 그녀가 보이고 스테이크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이 가득인 얼굴로 "흐흐흐"하고 웃겠지. 그러면 나는 못 말린다고 말할 것이다.

    알맞게 익혀 핏빛이 도는 스테이크 한 입을 우물거리며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그녀에게 말한다.
    "오늘은 이 곡을 듣는데 갑자기 콘트라베이스 소리를 찾고 싶은 거야. 그래서 엄청 집중하고 몇 번을 들었더니 하루 종일 흥얼거리게 되더라고. 자기랑 말하는데도 귓가에 울리는 거 같아. 마트에서도 계속 그래서 직원 아주머니가 기분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보고~ 아무튼 나중엔 막 짜증까지 나더라니까? 그만 좀 부르고 싶은데 계속 그러게 되니까!"

    따뜻한 적색을 뽐내는 와인 한 모금을 넘기고 그녀의 하루이야기가 시작된다.

    "미팅에 늦어서 헐레벌떡 올라갔는데, 글쎄 안경을 안 챙긴 거야. 그래서 다시 내려가려고 하는 순간 강대리가, “과장님!” 하기에 쳐다봤더니, "혹시 안경 찾으세요?" 하더라? 내가 멍하니 쳐다보니까 "팀장님 손에 힘껏 아주 땀나게 쥐고 계신데요?" 하더라고. 푸하하하- 나 저번에 너랑도 이런 적 있었던 거 같아, 그치“

    떨어져 있던 순간들도 함께 있었던 시간인 마냥 자연스레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그렇게 여유로운 저녁을 마치면 그녀가 뒷정리를 해준다. 나는 차와 간식을 준비하여 상에 차려놓고 그녀의 바쁜 뒷모습을 바라보겠지.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부엌. 은색으로도 빛나고 하얗고 까맣고. 차가운 색들로 뒤덮여 있지만 이 시간만큼은 그 어떤 색보다도 활기 있어지는 공간. 손에 묻은 물기를 닦고 이내 다시 식탁에 그녀가 앉는다. 우리는 또 한 번 입을 맞춘다.

    “앙, 마느 냅때나 너~”

    그녀가 장난스레 코를 잡고 손을 휘젓는다. 나는 그 말 할 줄 알았다며 메롱-하고 웃는다.

    미처 못 다한 이야기들로 서로의 하루 시간들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나의, 내가 그녀의 이야기 속에 녹아든다.

    그녀와 나의 하루 내음이 묻어나는 부엌.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온기가 묻어나는 공간. 그런 곳이 나의 부엌이 되기를 바래본다.



렛세이어 노랑
연애활동보고서 2화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연애활동보고서 1화'를 참조하시길.

  "얘 어디가 맘에 들었어요?"

  그따위 상투적 질문은 하지 말라 그토록 말했건만 C는 버젓이 저 질문을 초구로 던진다. 초록은 동색이라 과연 청개구리의 친구들답도다… 가자미 눈으로 C를 흘기는 나와 달리,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태연히 말한다.

  "음… 처음 보자마자 괜찮았던 거 같아요. 특히 안경 쓴 모습?“ 

  아하, 안경.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한 몇 번의 술자리에서도 그녀는 내 안경에 대해, 내 안경 쓴 모습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었다.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분위기 있어 보였다고. 느낌 있었다고. 급기야 언젠가는 짓궂게 이런 질문을 날리기도 했다.

  "안경 쓴 게 멋져 보인다는 거, 스스로도 알고 있죠?“

  그도 그럴 것이, 난 공적 자리가 아닌 이상 실내에 들어가면 핸드폰을 비롯하여 안경, 손목시계 등 몸에 동반하고 있던 악세사리들을 모두 꺼내놓거나 벗어놓는 버릇이 있는데, 유독 그녀와 처음 만났던 자리에선 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데이트 후 나의 버릇을 감지한 그녀, 그 날의 내 자태가 가히 수상쩍었던 모양이다.

  “멋지긴… 자기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거지.”

  심드렁한 대답과 달리 마음은 뜨끔했는데, 송이 송이 눈송이, 이러다 양송이만한 눈송이가 내리지 않을까 싶던 우리의 첫 만남 날, 눈 땜에 늦는다는 그녀를 기다리며 내가 행했던 실험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아마도 그녀가 기억하는 내 최초의 모습은 학구적 안경을 쓴 채 여유로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뭇 자연스런 자세였겠으나, 실상을 말하자면 그 자세는 그녀를 기다리는 20여 분 동안 내가 취했던 73가지의 자세 중 엄정한 숙고를 거쳐 선택된 단 하나의 자세였다. 창틀에 기대 하염없이 창밖을 보는 허세쩌는 자세, 다리를 한껏 왼쪽으로 꼰 교태어린 자세, 한 손에 책을 들고 안경을 치켜올리는 학자코스프레 자세… 그 모든 자세 속에서 안경이 빠진 적은 없으니, 난 안경이 내게 제법 잘 어울린단 사실을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풉... 저게 뭐가 멋있어요!"

  녀석들은 그녀의 답변에 예상 그대로의 야유를 ‘내게’ 보낸다. (답은 그녀가 했는데…) 멋쩍어 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녀석들과 함께 웃는다. 이런, 아무래도 오늘은 그녀와 녀석들이 내게 합공을 할 태세다. 그런데 C, 참 고마운 질문을 한다.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요?"


  순간 붉어지는 그녀의 얼굴. 반면에 입가에 떠오르는 내 득의양양한 미소.

  반격의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왔다. 우리의 시작에 대해선, 내가 그녀보다 할 말이 많으니까.



렛세이어 초록
무서운 무관심


새로 다니기 시작한 학교는 산 중턱에 지어져 오르막을 한창 올라야 한다. 한 10분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봐야 반층 쯤 더 계단으로 올라가야 본 건물이 나오고, 거기서 세 층 더 올라나가면 강의동, 그러고 5층 더 올라가야 주강의실이 나타난다. 원체 걸음이 느리고 굼뜬 나로서는 15분 넘게 잡아먹는 길고 긴 여정이 달갑지는 않다. 하나 다행인 게 있다면 예전처럼 계단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거 하나이지 않을까.

급식실이 1층에 있는 중학교에서 성장기를 보낸 덕에 예전처럼 계단을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정말 맹렬하게 뛰어야했으니, 마지막 세네칸 쯤 뛰어내리는 일이야 예사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는 꼭 난간을 붙잡고 한발 한발 층계에 발을 딛으며 계단에 대한 공포를 억누르려 노력했다. 아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 짧은 서러움은 열 두어살 먹을 때 까지 남아 나를 계단앞에만 멍청하고 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선천적 약시였다고 했나, 황달로 들어간 인큐베이터의 조명 조절이 잘못되었다고 했나. 어쨌든 나는 밥먹고 똥만 싸던 고깃덩어리 일 때부터 눈이 좋지 않았다. 조금 자라서 걷고 말하기 시작했지만 눈이 좋지 않다는 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나야 남의 눈알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니 당연히 희뿌연 세상이 당연하다 여겼겠고, 주변 사람들도 조그만 애가 이리저리 부딛히거나 글자를 못읽거나 하는 일 정도야 어리니까, 한 마디로 정리했으니. 지금이야 겨우 기어다니는 애기들도 어린이집에 간다지만, 내 또래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는 애들도 종종 있을 만큼 유아들이 이리저리 내맡겨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일하시던 어머니는 만 세살이 되지 않은 나를 어린이 집에 보내셨다. 어머니 근무처에서 위탁을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어린이집이라지만 내 기억에 유치원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시설이 더 낙후했다는 것? 흐릿한 기억을 더듬자면, 신발장 앞 이리저리 어지러운 그림이 붙어있는 미닫이문이 가장 먼저 있었다. 그 문을 열고 오른쪽을 보면 위로 높게 뻗어있는 나무계단. 한 칸 한 칸 칸마다 조그만 발자국 스티커가 붙여져있다. 계단을 다 오르면 보이는 건 불투명한 유리창이 끼워진 미닫이문이다. 그 문을 열면, 만 세살이 되지 않은 내가 텔레토비 뚜비 인형의 머리꼭지를 물고 울고 있다. 내 인생 최초의 억울한 기억, 아직까지도 서러움이 어려 아무 일 아님을 앎에도 괜히 눈을 붉히게 만드는 그 기억이 방 안 가득 머물러있다.

눈이 보이지 않고 또래에 비해 발육이 느릴 뿐더러 나이까지 어린 나는 어디서나 부적응아. 도수가 아주 높은 안경을 쓰고 대학생이 됐음에도 키가 자라고 있는 중이지만, 이제는 어딜 봐도 왜소한 어린 아이가 아니지만, 나는 아직도 어디서나 부적응자. 그 원인, 내 특성에 타인에 대한 병적인 무관심과 타인과의 접점이 불필요한 취미생활 등을 우겨넣은 그 일. 어린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슬프던 그 사소한 일.

바깥놀이를 하러 나가는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눈이 보이지 않던 나는 계단에서 넘어지는 일이 잦았고,층계 칸칸마다 붙여진 발바닥 스티커에 발을 맞춰 내려가면 넘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날도 평소처럼 한 칸 한 칸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이 캄캄해지고 나는 층계 중간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밀었기 때문이다. 내 뒤에 있었던 건 덩치가 큰 남자애. 내 울음소리를 듣고 방안에 남아있던 선생님이 달려나왔다. 저 애 왜 저러니? 선생님이 그 애에게 물었다. 얘가 계단에 가만히 서있어가지구 앞서서 가려다……. 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선생님은 그 남자애를 내려보내고 나를 방 안에 앉혔다. 그 때 까지도 울음이 그치지 않은 나는 서럽게 앉아 선생님이 달래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내려온 건 왜 혼자 넘어져놓고 우냐는 타박. 선생님은 나를 방에 두고 문을 닫고 나갔다. 넘어져서 아프고 남자애의 거짓말에 억울하고 바깥놀이를 나가지 못해 서러웠다. 입에 무언가 물어야 울음이 그치고 진정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주변을 살피다 손에 들린 건 뚜비 인형. 뚜비 꼭지를 물고 한참을 울었다. 선생님은 그 날 저녁 우리집에 전화를 했다. 바쁜 엄마는 어린이집에 뚜비인형을 새로 사 두고, 내게 나나 인형을 주며 말했다. 꼭지가 물고 싶으면 이거 물으렴. 나는 억울했다. 울음을 그치고 싶었던 거 뿐인데…….

그 뒤로는 꼭 사람 한 무리가 지나간 다음에야 뒤따라갔고, 최대한 또래들이 붐비는 곳에 접근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남은 건 계단에 대한 공포와 병적으로 타인에게 무관심한 성격, 그리고 잊히지 않는 서러움 뿐. 내게는 기억이 남아있지 않지만 엄마말을 듣기로는 그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잘 대해주지 않았고, 위탁 업체가 옮겨졌다 했다. 그래서 나는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 어린이집은 내가 부정적인 것 만 잔뜩 안겨준 채 아직도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간판만 바꿔 단 채. 초등학교 때 까지 그 앞을 지나며 그 어린이집을 욕하고는 했다는 기억을 되새겨 본다.



렛세이어 파랑
지다.


  밤새 벚꽃이 만발했다. 주말에 비가 내렸지만, 봄비답게 부슬부슬 내려서 꽃잎이 모두 떨어지는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봄비를 맞지 않고 피었을 때보다 더 맑고, 생기 있었다. 그런데 하얗게 피어난 벚꽃이 거리를 장식했는데도, 봄다운 산뜻함은 없었다. 우중충하게 내려앉은 회색빛의 하늘은 이깟 벚꽃들 쯤이야 금세 짓뭉갤 수 있다, 하고 자신하고 있었다. 아무리 예쁘게 찍어 봐도 하늘빛깔에 못 이겨 죽어버리는 벚꽃 잎들을 보면, 그 으스댐이 헛된 말은 아니었음을 나는 짐작한다.


   그래서인가. 봄이 찾아왔는데도 뭔가에 대한 설렘이 없다. 작년에는 내 나이에 새롭게 맞이한 2라는 숫자를 환호하며 봄을 즐겼는데 이번 해의 봄은 하늘색 마냥 같이 축축하게 내리 앉는다. 고작 1년이 만들어낸 차이치고 엄청나다. 문득 나는 벌써 이십대라는 것에 적응을 해버렸는지 묻는다. ‘고작 1년’ 사이에 나는 그 많은 것들에 익숙해져버렸나. 괜스레 설레서 다니던 대학교라는 것도, 하나하나 만들어가던 시간표도, 학교 앞 식당을 고르는 재미도. 뿐만이 아니라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에도 익숙해졌나보다. 벚꽃이 산뜻하지 않아 낯설었던 것은 그 끝물을 먼저 보았기 때문일 거다. 이번 주가 지나고, 이 글이 올라올 즈음이면 이미 모두 져버리고 없겠구나. 퍼릇하게 돋아난 새싹들과 퇴물처럼 남아있는 벚꽃이 한데 뒤섞여 있을 거다. 이번 해를 맞이하며 나도 모르게 가지게 됐던 어떤 다짐들이, 낡아빠진 이상이 돼서 그렇게 현실과 뒤엉키고 결국에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짓이겨 지는 모습이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가끔 예전에 썼던 글들을 읽고는 한다. 고등학교 때 쓴 글에는 대학에 가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희망이 잔뜩 묻어나있다. 나는 오픈 게이가 되고 싶었고, 내 정체성이 자랑스러웠고 사실은 가슴이 벅찼다. 아무렇게나 삐죽빼죽 내달리는 글마저도 추억이 담겨있어서, 그리고 사실 숨김없이 나를 내보이는 것 같아서 지금 읽으면 부끄러우면서도 퍽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의 나는 언젠가부터 더 내 자신을 숨기고 싶어 했다. 막상 바라고 있었던 현실과 마주하자 그곳은 내가 원래 속해있었던 곳보다 더욱 폐쇄적인 곳이었다는 걸, 그리고 녹록치 않은 곳이었다는 것을 점점 깨달았나보다. 글이 네모나졌다. 부자연스럽고, 감정을 숨기고 싶어 했고 나 자신을 합리화 하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이상은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아직 질겨서 지금도 나는 여기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당연해져버린 끈이기에 사실은 그 끈을 놓고 지금 나와 내 곁에 있어주는 그녀만 있어도 괜찮아, 하고 안이한 생각을 한다. 어차피 내가 이렇게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고 현실에 몸을 그만 누이기를 욕망했다. 이중적이다. 강하게 말을 하곤 했던 나는 이제 불확실함에 고개를 휘젓는다.


   푹 숙여서 화면만 바라보던 나는 다시 고개를 든다. 눈앞의 작은 사각 창들을 지나서는 여전히 잿빛의 낡은 아파트와, 안개인지 스모그인지에 가려진 산과, 하늘이 보인다.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나날이 말수는 줄어들고 그러는 쪽이 편하다고 여겨본다. 이런 침묵에는 벚꽃보다는 우중충한 하늘이 더 잘 어울린다고 스스로를 위안해보기도 한다. 모두 익숙해져버린 것에 대한 변명이다.


  언젠가는 말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기약 없는 소원을 빌었다.



렛세이어 남색
변질된 놀이


엄마, 계단이 너무 많아요, 나는 힘들어서 올라가기 싫어요. 입술이 밉살스럽게 튀어나오자 엄마는 가위 바위 보를 하자고 했다. 가위는 두 칸, 바위는 한 칸, 보는 다섯 칸을 올라가는 거야. 나는 이겨서 계속, 계속 올라가고 싶었다. 나는 엄마 손을 노려보았다. 엄마를 이기려고 1초, 2초씩 늦게 냈지만 엄마는 내 부정행위를 제지하지 않았다. 어느새 계단 꼭대기에 있었다. 엄마, 계단이 너무 짧아요, 한 번 더 해요. 또 떼를 쓰는 아이에게 엄마는 다시 돌아와 계단을 내려가며 또 하자고 약속해 주었다.


그리고 그 때 그 계단보다 훨씬 더 높고 훨씬 더 긴 계단이었다. 찾아오는 이에게 휴양지가 되고 싶어 하는 공원이었지만 울창한 삼림의 푸름만큼이나 계단의 규모도 엄청난 것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이 여행이 달갑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 옆에 선 내 가슴께에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부푼 시커먼 고무 풍선하나가 꽉 틀어막고 있었다. 그것은 뜨겁고 위협적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녀에게 처음의 설렘과 호기심보다는, 딱딱한 관절을 가진 인형을 우악스럽게 비틀려는 심술만이 가득했다. 내 감정은 내 선택이 아니기에 나는 수반되는 책임과, 앞으로 느낄 선택의 이유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피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런 내 태도와 우리의 관계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바뀔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 같았다. 곧 터질 풍선을 껴안은 나는 연인보다는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태도로 여행에 동행했다. 나는 그녀를 이름이 아니라 엄마라고 불렀다. 그리고 여행은, 둘만 있는 카페 안의 답답한 공간이 아니었기에 나는 눈을 잡아끄는 수많은 것들에 관심을 돌리며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그녀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와의 시간이 아니라 나와 여행지의 공간과의 관계에 그녀가 곁들여진 시간이었다. 한없이 치사한 도망자의 태도로 나는 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보다도 더 위협적으로 보이는 계단 앞에서, 나는 또 다시 도망가고 싶었다.

어린 나와 젊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 가위바위보하자, 나는 그녀에게 말했지만 그녀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계단이 있고 내가 있고 엄마가 있었다. 이전에도 종종 하자고 말했기에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하고 주먹을 살짝 쥐어보였다. 그리고 내심, 내가 간단한 유흥거리를 제공한 것에 기뻐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가위바위보에 약했다. 비단 가위바위보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에 취약했다. 끝말잇기도, 가위바위보도, 술자리의 벌칙에서도 그녀가 이기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내가 지는 일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옛날처럼 엄마가 내 반칙을 눈감아주지 않아도, 하는 한 칸, 두 칸, 다섯 칸, 두 칸, 다섯 칸, 계속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은 정말 길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녀와 나는 크게 외치지 않으면 서로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 차이를 두고 계단에 서있게 되었다. 적막한 공원에는 내가 외치는 가위바위보, 소리만이 들렸다. 그녀도 꽤 이겼지만 내가 보자기를 내어 연속으로 이긴 탓에 벌어진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어느 새 나는 열 칸도 채 남지 않은 계단 층수를 등 뒤에 두고 있었고, 그녀는 한참 아래에 있었다.

높은 곳에 있어서 바람이 시원했다. 나는 쉬지 않고 계속 외쳤던 가위바위보, 하는 소리를 멈추었다. 그러자 그녀도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았고, 나도 그런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는 위에 있었고 그녀는 아래에 있었다. 다시 손을 높이 들면서 가위-, 하고 외치려던 나는 잠시 멈추었다가, 손을 내리고 그대로 등을 돌려서 남은 계단을 마저 올라갔다. 계단 위에는 딱히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볼 수 없었다. 그보다는 내 심장이 도둑질이라도 하다 걸린 것처럼 쿵쾅거리는 탓에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높은 곳의 바람은 시원했지만 동시에 서늘했다. 한순간의 묘한 해방감은 게임의 규칙을 깨뜨린 탓인지 그녀에게서 벗어난 탓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즐거웠던 이유는 엄마를 이겨서가 아닌 것 같았다. 짧은 해방감 뒤에 나는 등 뒤에 무언가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버리고 온 무시무시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호흡은 없고 소리도 없고 시야도 없었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쉬지 않고 그녀에게 뛰어 내려갔다. 그녀는 아까 서있던 그 자리에 계속 그대로 서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숨을 골랐다. 위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보고 왔어, 그렇게 말하지만 그녀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표정은 알지 못한다. 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왔다고 말했지만 무엇이 있는지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마저 올라가자고 말했다. 더 이상 가위바위보는 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어린 나와 젊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그녀도 나도, 아무도 계단을 내려오면서 또 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렛세이어 보라
고독을 달래준 따스한 공간


부엌은 나의 고독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중학교 때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24평 주택에 살았는데, 마당을 제외하고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실내가 늘 어두웠다. 특히 부엌은 제일 구석에 있는데다 북쪽을 향하고 있어서,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웠다. 겨울은 물론이고 여름에도 습하고 추운 곳이라 웬만해선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오빠의 과자 심부름을 위해선 억지로 들어가야 했다.

 처음엔 억지로 들어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부엌에 들어가게 됐다. 어릴 적 학교에서 실컷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어주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누군가가 없어 홀로 눈물을 흘리곤 했다. 방에서 혼자 울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상 오빠와 방을 함께 써야 하는 처지인지라 마음껏 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어두컴컴한 곳으로 들어가 울곤 했다. 그렇다고 울기만 한 건 아니었다. 엄마가 찬장에 넣어둔 과자를 꺼내서 먹기도 했다. 물론 오빠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먹어야 한다. 과자를 먹은 걸 들키는 그날은 오빠에게 맞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빠는 내가 과자를 먹으면 ‘넌 돼지야’ 라며 심한 욕과 매를 퍼붓곤 했다. 뚱뚱한 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살 터울밖에 안 되는 그 인간에게 노예만도 못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니ㅡ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도 오빠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 일을 알고도 외면한 엄마와 아빠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름만 가족일 뿐이지, 내게는 남남이나 다름없다. 어차피 나의 아픔을 위로받지 못할 바에야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부엌에 혼자 들어가 있는 시간이 유달리 많았던 것 같다.

 
 아파트로 이사를 간 지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나는 부엌에 가지 않는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온갖 쓸데없는 빛이 마음껏 쉴 자리를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훤히 뚫린 부엌 대신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이 생겼다. 어째서 나는 어두운 방만 갖게 되는지 궁금했지만, 그 방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나만의 공간이었다. 부엌을 대신해 나의 고독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니까.

 지금은 가족과 떨어져 자취를 하고 있다. 완전한 독립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왜냐면 어린 시절엔 떨어져 있었던 부엌과 방이 온전히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빛이 들어와도 예전엔 느낄 수 없었던 따스함이 느껴지고, 가끔 비오는 날 어두컴컴해져도 고독을 달래주는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부엌이 내게 준 ‘어둠’은 위로와 따스함, 부드러움 그 자체였다. ‘어둠’은 내게 안락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오히려 ‘어둠’ 속에 있을 때 더 따뜻함을 느꼈다. 누가 ‘어둠’을 가리켜 사악하고 나쁜 것이라 했던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엔 쉽게 돌아볼 수 없는 내면의 상처와 아픔을 돌아보고 위로하며 성찰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힘들고 슬픈 일을 만나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렛세이어 분홍
위를 막은 유리천장과 고소공포증


 “엄마, 저 성우 되고 싶어요.”

 인생을 긴 계단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지금 어디까지 올라와 있는 걸까? 나이로 따진다고 해도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한 나는 그리 많이 오르지는 못했을 테고, ‘정신적으로 얼마나 성숙했는가.’로 따진다면 어쩌면 몇 단 뿐이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겁쟁이라서, 마치 고소공포증마냥 높은 곳이 무서워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을 거부해왔다. 그런 내가 그 어떤 기준을 들이댄다고, 많이 올라와 있을 리가 없었다.

 나의 머리 위에는 커다란 유리 천장이 있었다. 내 마음대로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건너편을 모두 비추면서도 결코 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이 단단하게 보이는 그런 유리 천장이었다. 나는 항상 그것과 그 너머로 펼쳐져 있는 수없이 많은 계단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로 달려가서, 그 유리로 된 천장을 깨보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그렇게 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주저앉았다. 계단에 엉덩이를 걸쳐 앉아 눈을 감았다. 위가 막혀 있는데 굳이 힘을 들여서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유리를 깨려 했다가 손이 다치면 어떡하지?’ 하고 겁을 집어먹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스스로 타협했기 때문이다. 나는 제자리에 앉아서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만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옆에 나타나 내 손을 붙잡고 끌어 올려준 것은 내 상담 선생님이었다.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나는 선생님께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당시의 나는 이미 1년 간 상담을 받다가 그만둔 후였고, 그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학교 상담실에서 한 심리검사 이벤트 때문이었다. 성격검사나 그림검사를 재밌어했던 나는 그 이벤트를 신청했고, 어쩌다가, 정말로 우연히 지금의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내 위에 존재하는 유리 천장을 내가 제대로 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 눈을 뜨게끔 유도했다. 봐, 저기 유리 천장이 있어. 가까이 가서 봐, 괜찮아. 하지만 정말 힘들면 무리 하지 않아도 돼. 사실 알고 보면 별거 아니야, 저 유리 천장은 아주 얇고, 넌 언제든지 저 너머로 올라갈 수 있어.

 정말로 괜찮아요?
 괜찮아.
 올라가기 무서워요.
 그러면 여기 더 앉아 있자. 같이 앉아 있자.
 올라갈 때는요? 그때도 같이 가줘요?

 실제로 그런 대화를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선생님이 웃을 때마다, 웃는 얼굴로 날 볼 때마다, 조용히 휴지를 내 손에 쥐어줄 때마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무섭지 않다고, 힘들면 좀 더 앉아 있다 가도 괜찮고, 앉아 있는 것이 더 힘들면 올라가는 것도 좋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옆에 있어 주겠다고.

 나는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랐다. 떨어지는 게 무섭다고, 저 유리 천장에 부딪히는 게 무섭다고 몇 번이고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바들바들 떨면서 망설이고 멈춰서면서도, 그래도 올라갔다.


 변화를 깨달았을 땐,

 유리 천장은 이미 깨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계단’의 가장 아래에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수없이 많은 계단들이, 유리 천장의 아래에서 봐왔던 것처럼 펼쳐져 있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더 이상 그것들이 두렵지 않았다. 한 칸은 내가 나를 직시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또 한 칸은 엄마 앞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당당히 말했을 때, 그 다음 한 칸은 내가 모아온 돈으로 성우 학원을 등록했을 때, 다시 또 한 칸은 졸업하고 나서 어떻게 할 지 계획을 짜며 현실을 들여다보며 올라섰다. 그 한 칸, 한 칸 올라서는 계단이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내 위에는 더 이상 유리 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님, 저 행복하게 살래요.”

 여전히 깨진 유리 천장의 잔해들이 내 근처에 흩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들도 사라지지 않을까? 아니, 분명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 유리 천장의 잔해들이 계속 남아 있으면 어떡하지, 또 다시 생기면 어떡하지, 하고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괜찮아, 무섭지 않아.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내게 그렇게 얘기해주고 계시니까.

 나는 이제 위로 올라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랑'은 퀴어 에세이 블로그 LETSSAY의 글들을 기고받아 연재합니다. LETSSAY 블로그에서 더 많은 에세이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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