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얼마 전 여러 대학 내에서 이상한 포스터가 벽 한 쪽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에이즈로 인해 매년 1000여명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1번부터 12번까지 에이즈와 동성애 대해 나름 여러 그래프를 인용하며 열심히 설명 해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얼마나 어떻게 에이즈에 걸리는지부터 시작해서 백인 남성 동성애자들의 28%가 천 명 이상의 성관계 파트너 수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더군요.

 

처음 이 포스터가 타 학교에서 발견되고 그에 대한 반박 대자보를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내놓는 것을 보고 ‘얘네 또 이러네’ 라는 신사적인 방관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어떤 혐오 세력이 또 구닥다리 에이즈 프레임을 갖다 써서 이번엔 그래도 정성스럽게 칼라 프린트를 하고 직접 발품을 팔아 학교에 포스터를 붙이는구나 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포스터가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 캠퍼스 내에 붙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스탠스는 능동적으로 급격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교내 성소수자 동아리의 한 운영진으로써 빠른 시일 내에 반박문을 써야 했고 마침 제가 활동하고 있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내 HIV/AIDS 인권팀의 도움을 받아 대자보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생각보다 참 무지하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고, 성소수자를 향한 HIV/AIDS에 대한 관점을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그들을 위한 대자보를 쓰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우리들을 위한 대자보를 짧게나마 써볼까 합니다.

 

우선 에이즈 혐오에 반박하기 앞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남성 동성애자와 HIV/AIDS의 상관관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애써 혐오 세력들의 자료가 너무 부풀려졌다고 비난하면서 불명확한 자료들을 가지고 추측을 하거나, 여성 동성애자들의 경우 감염률이 거의 0에 가깝다는 이야기로 성소수자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부인합니다. 당연히 이성 간의 성관계를 통해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지만, 확실히 남성 간의 성관계에서 감염 노출이 더 취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을 인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성 동성애자들이 HIV/AIDS 고위험군이라고 해서 그들을 차별할 권리가 생기지 않을뿐더러, 동성애자들이 모두 위험하다는 혐오 프레임을 씌울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인정할 점은 인정하고 넘어가야 내부적으로도 다음 단계의 문제들을 논의할 수 있고, 질병 때문에 받는 혐오와 차별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혐오주장에 반박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HIV/AIDS에 취약한 지 설명해주는 그래프와 수치들이 아니라 HIV/AIDS에 대한 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확한 정보 습득, 정부의 예방책과 지원 정책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반박하는 과정에 모든 감염인을 일반화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일반화란 모든 감염인이 지속적인 관리를 받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 추측하는 것을 말합니다. HIV/AIDS 기본 상식 중에 하나가 HIV와 에이즈는 다른 것이라고 구분 짓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HIV 감염인이 꼭 에이즈환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더불어 바이러스 감염 초기에 관리를 잘 한다면 에이즈가 발병되지 않을뿐더러 비감염인과 다르지 않은 수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다는 맥락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분 짓기 식의 논리는 건강한 감염인과 아픈 에이즈 환자를 암묵적으로 나누게 되는 것이고 전체적인 담론에서 아픈 환자들이 배제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특히 칵테일 요법이 생기고 나서는 ‘HIV/AIDS는 만성질환’이다 라는 인식이 점점 퍼지게 되었는데, ‘건강한 질병’의 프레임으로만 접근한다면 HIV 감염 이후 건강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질병당사자들이 ‘잘못됐다’ 라는 뉘앙스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반박하는 과정에 한 면만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모든 면을 다 보여주고 포용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반박하는 본인이 HIV/AIDS와 질병 당사자들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생각보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지 않은 듯 합니다. 질병 관련 혐오 프레임을 너무 자주 마주하다 보니 ‘또 에이즈야’ 하는 반응을 보이기 쉽습니다. 이는 그만큼 신경을 덜 써도 됨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더 많이 공부하고 지식을 습득해야 반박할 때도 유용하고 자신에게도 쓸모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질병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HIV/AIDS 관련 이슈에 시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저도 교내 반박 대자보를 작성하기 전에는 몇몇 대표적이고 피상적인 정보만 알았을 뿐 요즘 공중보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10대 감염인에 대한 정보도, 대략적인 수치에 대한 것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쓰면서 또 느낀 점은 질병 자체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HIV/AIDS 감염인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혐오세력이 질병에 대해 비난을 쏟아 부을 때 결국 상처를 받는 건 당사자들일 것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반박할 때 그들이 놓인 상황과 마음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이렇게 혐오 포스터에 대응하면서 반박할 때 주의했던 점들을 몇 가지 적어보았습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성소수자와 HIV/AIDS의 현실적인 관계를 부정하지 않는 것, ‘건강한 감염인’ 담론 아래 아픈 에이즈 환자를 배제하지 않는 것, 그리고 질병과 당사자들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 정도로 추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최근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에서 발간한 <행성인 회원을 위한 HIV/AIDS 가이드북>을 추천해드리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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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한양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하이퀴어> 반박 대자보

 

<그릇된 정보는 그릇된 결과를 부른다>

 

안녕하십니까? 한양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하이퀴어>입니다. 2015년 12월 11일 오전 HIV/AIDS 관련 포스터가 교내 복지관에 붙었다는 제보를 들었습니다. 포스터에는 성소수자를 비하하려는 목적이 다분한 자료들이 가득 차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기회를 통해 HIV/AIDS에 관한 잘못된 정보들을 바로잡아 한양대학교 학우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2015년 현재, 한국사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HIV/AIDS는 더 이상 죽음의 질병이 아닙니다. HIV 보균자에서 에이즈의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는 이 휴지기를 늘리고 병의 진행을 훨씬 억제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관리를 한다면 30년 이상 살 수 있고 참고로 한국인 최초의 HIV 감염자는 현재 28년째 살아있습니다.

 

에이즈가 죽음의 질병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유지되는 것은 질병이 처음 발견되어 질병의 원인규명이나 치료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던 80년대 질병의 이미지가 고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 감염인 수가 매우 적으며, 공중보건 체계가 잘 정립되어 있고, HIV/AIDS에 대한 질병관리가 엄격히 수행되고 있기 때문에 HIV/AIDS 당사자가 되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며 건강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 단체는 “죽음의 질병”이라는 이미지를 활용하고 이들이 유포하는 에이즈에 대한 낙인으로 HIV/AIDS 감염인의 삶을 위협합니다. 한국의 HIV/AIDS 감염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에이즈 관련 합병증이 아니라, 자살입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동성애를 공격하는 도구로 에이즈를 활용하는 배경에는 뿌리 깊은 낙인이 놓여있습니다. 이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오는 다양한 근거들과 마찬가지로 에이즈를 이용한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은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의 낡은 논리를 그대로 수입한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해당 포스터의 12번 항목에 기재된 어이없는 수치 자료들은 학술적인 자료라기보다 남성 동성애자들을 겨냥한 ‘사이비’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비판하기 어려운 대상인 여성 동성애자들에 대한 자료는 거의 배제되어 있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붙인 포스터 6번 항목에는 남성 동성애자 10명당 1명은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이고 일반인인 에이즈에 걸릴 확률보다 180배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자료의 첫 번째 문제는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동성애자 인구를 과소 산출했다는 점입니다. 정부의 통계자료나 서울대학교의 연구결과에서는 한국의 HIV/AIDS 감염인의 수와 이들의 감염경로(동성간 성접촉에 의한 것인지, 이성간 성접촉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보여줄 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감염확률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국내 정보의 제한 때문에 성적 지향과 관련된 포스터 대부분의 자료가 해외 자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보수단체들은 자의적으로 국내 동성애자의 인구수를 추정해, 이를 기준삼아 동성애자의 감염확률과 이성애자의 감염확률을 계산하여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삼습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도 정확히 알 수 없는 한국의 동성애자 수를 이들은 어떻게 계산 했을까요? 저 방식으로 역계산을 하면 국내 남성 동성애자의 수가 터무니없이 적게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질병의 사회적 맥락이나 역학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동성애자를 공격하는 도구로 에이즈를 악의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질병관리본부의 2013년 HIV/AIDS 관리지침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HIV/AIDS의 주된 감염 경로는 성접촉으로, 59.9%가 이성간 성접촉을 통해, 39.2%가 동성간 성접촉을 통해 HIV/AIDS에 감염되었다고 보고하며, 감염인의 90%이상이 남성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보수단체가 추정하듯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한국의 경우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남성이HIV/AIDS에 취약한 집단에 해당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동성애자를 공격하기 위해 에이즈를 활용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자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도 남성 성소수자의 HIV 감염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적받는데, 성소수자의 낙인이 강한 사회일수록 성소수자의 삶 자체를 취약하게 만들고, 음지로 내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정 질병에 대한 취약성이 그에 해당하는 인구집단을 차별하거나, 비난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유엔에서는 남성 동성애자와 남성과 성관계 맺는 남성이 에이즈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원인에 대해 동성애를 범죄화하고 사회적 차별과 낙인, 폭력에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남성 성소수자가 HIV/AIDS에 취약하다면, 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이들이 HIV/AIDS 예방과 치료에 적절히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지, 이를 이유로 ‘에이즈 예방 캠페인’이라는 명목 하에 성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최근 HIV/AIDS의 뜨거운 감자는 만 15세에서 19세 사이의 청소년의 HIV/AIDS 감염 문제입니다. HIV/AIDS 감염인 인구가 저연령화 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로 HIV/AIDS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함께 고민하고,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문제입니다. 청소년의 HIV/AIDS 감염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 동성애에 대한 근거없는 혐오논리를 설파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HIV/AIDS 예방을 위한 적절한 성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고 불과 어제였던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만행은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낙인과 차별에 시달리는 HIV/AIDS 환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칩니다. 이 포스터를 통해 제대로 된 인식이 잡힐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통렬히 느끼는 바입니다. 이 글을 읽고 한양대학교 학우분들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알아가셨으면 합니다. 저들의 논리는 사랑도, 예방법도, 단순한 정보 제공도 아닌 명백한 혐오이자 차별선동 행위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성소수자와 HIV/AIDS 환자에 대한 혐오가 학우분들 내에서 공론화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양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하이퀴어>

 

(참고•인용 문헌: ‘LGBT 상담 컨퍼런스’ 자료집 / http://lgbtpride.tistory.com/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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