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

 

 

 

계절이 바뀌는 것만큼 매번 경험하면서도 신기한 것이 있을까요. 옷깃을 여미게 하던 추위는 어느새 멀어지고 벚꽃이 흩날리는가 싶더니 굵은 빗줄기와 세찬 바람이 늦깎이로 봄을 시샘합니다.

 

저에게 오늘은 참 뜻깊은 날입니다. 2014년 제가 행성인에 첫 발걸음을 디딘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딘가 어렴풋이 들어본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이름들. 전부터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해 힘써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빠른 속도로 나아져 왔음을 느꼈습니다. 그런 부채감을 안고 나도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행성인의 문을 두드린 지 2년이 되었습니다.

 

누가 쳐다보기라도 할까, 눈이나 마주치지 않을까 싶어 어쩌다 종로3가역 근처를 우연히 지나갈 때면 바닥만 쳐다보고 가던 벽장 시절, 알고 지내던 형의 손을 잡고 낙원동 극장에서 관람했던 ‘종로의 기적’, 영화 속 활동가들을 실제로 보면서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 설레던 기억. 어느덧 이들은 친숙한 얼굴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이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길목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책으로, 글로, 사진으로 그리고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들을 갈구했습니다. 그동안 쌓여있던 행성인의 활동사진들을 고르고 골라 혼자 기획한 2015년 퀴어 퍼레이드 행성인 부스의 ‘저항과 연대의 사진전’은 단체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가장 마음껏 드러낸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2016년 2월에 열린 정기총회에서 20주년 아카이빙 팀장으로 인준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호기심과 단체에 대한 애정으로 활동을 해왔다면, 이제는 운동의 역사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일을 좀 더 체계적이고 심도 깊게 해보려고 합니다. 인권재단사람 2016 정기공모사업 ‘인권프로젝트  온’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행성인의 ‘성소수자 운동사 구술 아카이브’는 성소수자 운동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의 생생한 기록을 모아 역사자료를 구축하는 사업으로써, 2017년 행성인 20주년 아카이빙 사업의 훌륭한 반석이 될 것입니다. 올 상반기 안으로는 단체 내부의 기록관리 시스템도 구축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들은 행성인에 발걸음을 처음 한 날을 기억하십니까? 가입서를 볼펜으로 적어내려가고 홈페이지에서 가입신청 버튼을 누르던 마음을 떠올려 볼 수 있나요? 떨리는 마음으로 성소수자 운동을 써내려간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것들을 모아내는 작업을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행성인 20주년 아카이빙 사업에 관심이 있는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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