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안녕하세요. 간간히 얼굴을 비추던 오렌지라고 합니다.
작년 송년회에서 임신사실을 말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규리(:귤.태명)를 낳았네요. 작년만해도, 규리는 하리보보다 작았을텐데, 지금 50cm가 넘는걸 보면 신기해요.
운이 좋아 진통도 아프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편하게 낳았어요. 회복도 빠른 편이고요. 다만 육아는 좀 힘드네요. 아기를 낳고도 멀쩡하던 관절들이 찌그러진 페트병 같다고나 할까.
작년 겨울,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하고 집에서 나오고, 알바를 그만두게 되면서 미혼모 시설에 입소했었어요. 원래 입소하려면 대기해야 했지만, 먼저 입소해있던 친구가 도움을 줘서 그나마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었죠.
그럼에도 임신 기간은 좀 힘들었어요. 임신-출산의 과정 자체도 너무 힘든데, 복지는 답답하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느껴졌으니까요.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마을버스에서,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도 많았고요.
거기다 청소년 미혼모라서 아무리 아기를 제가 낳았어도 규리의 친권을 행사할 수 없어 출생신고나 입원 동의를 할 수 없을 땐 화가 나고 답답했어요.
그동안 답답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아주 많았어요. 기회가 된다면 미혼모부에 대해서도 운동해 보고 싶네요. 사람들의 인식과 제도를 바꾸고 싶어요.
아무튼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면 규리와 이 시설을 퇴소해서 아기아빠랑 셋이서 살 예정이라는 거예요. 걱정이 되지만 기대도 많이 해요. 몇 년 전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가족의 형태라서 아직까지도 얼떨떨해요. 잘 살 수 있을 거에요!
지금은 신생아라서 무리지만, 규리가 조금만 더 크면 같이 사무실에도 놀러갈 거에요. 이번 행성인 인권캠프를 못가서 너무 아쉬웠는데, 몇 년 지나면 규리랑 남편이랑 같이 갈 수 있겠죠?(아니면 혼자 와버린다던지!) 그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규리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규리가 앞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인권감수성 높은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면 해요. 함께 활동도 하고 싶은데, 욕심인 걸까요?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앞으로 같이 걸어갈 길에 무지개가 피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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