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놀(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전국퀴어모여라)
어느 모임이든 철도에 관한 화제가 나오면, “음 그건 말이지…”라며 돌연 나타나는, 안녕하십니까. Lenor(레놀)이라고 합니다. 닉네임은 레노아라는 라틴어원의 섬유유연제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지만, 모두가 저를 타이레놀의 레놀이라고 불러주시더라고요. 지금은 저를 기억하기 쉽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수식어를 붙여주신 것 같아 무척 기쁩니다. 저는 현재 우리나라의 중심(=곧 퀴어의 중심이 될) 대전에서 살고 있구요, 전퀴모 대전지부(?)에 거점을 두고 소소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저를 소개하면, 철도와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가끔 멋진 레즈비언분들을 보면 눈이 초롱초롱해지기에, ‘게즈비언’과 같은 맥락으로 ‘레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답니다. 한때는 ‘철도’와 ‘남자’라는 최상의 조합인 열차승무원에게 사랑에 빠져 2년간 가슴앓이 했던 영화 같은 사연의 주인공이기도 하답니다.
저는 행성인 후원을 진작에 하고 있었지만, 서울에서 하는 큰 행사에만 참석하는 식으로 자주 얼굴을 보이지는 못했었어요. 하지만 갈증은 전국퀴어모여라가 생기면서 시원하게 해소되었습니다. 의욕은 넘쳤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던 저에게, 전퀴모 활동은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활동이었기에 무척 기뻤어요. 가뜩이나 열차를 타고 돌아다니는걸 좋아하는 저에게 전국적인 퀴어활동이라니. 와우. 타이틀만 보아도 딱 제가 속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지금은 제가 할 줄 아는 게 많이 없어서 아직 전퀴모분들께 많이 배우고 있지만, 언젠가 성장해서 당당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작년 2016년은 저에게 뜻 깊은 한 해였어요. 전퀴모 대전에서 ‘대전산책’이라는 프로그램과 퀴어영화 ‘불온한당신’ 상영회를 주최했거든요. 당시 퀴어퍼레이드 직후에 진행하기도 했고, 대전에서 처음 진행한 행사여서 많은 분들이 자리해 주셨어요. 처음엔 우리끼리 수고했으니 술이라도 먹자고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일이 커져서 40여명 규모의 행사가 되어 있더라고요. 하지만 행사에 방문하신 많은 분들과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며 대전모임의 축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저 혼자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날 자리하신 많은 분들이 지역의 연대활동을 갈망하고 계셨고, 이런 형태의 모임을 목말라하고 계셨더라고요. 퀴어는 수도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전국 곳곳에 산다는 것을, 제가 대전에서 열심히 활동을 해야 할 이유와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대전은 지리적으로 교통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에 이를 잘 살리면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포괄하는 지역 퀴어들의 좋은 활동무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지역별 퀴어 인구조사 같은걸 해보고싶네요. 장기적으로 데이터를 모으다 보면 앞으로 어떤 형태로, 어떤 동선으로 활동을 하게 될지 커다란 전국지도가 나올 것 같은데, 생각만 해도 두근거려요.
지난 모임에서 갓 만들어진 대학 퀴어동아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싶고 알고 싶지만, 신생동아리이고 인권지식에 대한 경험자도 없으며 데이터도 없기에 인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저 역시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나부터 우리 인권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전에서는 아직 독자적인 스터디나 독서모임 등을 하기에 제한이 따르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주변에 바로 공유하고 추진하는걸 좋아하거든요. 그렇지만 막상 저 자신조차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주춤하는게 아닌가 해요. 좀 더 궁리를 해보아야겠지만 지역에서 인권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덤으로 지역대학동아리들이랑 연대도 하고요.
누군가 바꾸려 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행동하는 성소수자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처럼. 이 말이 대전, 그리고 다른 지역에도 적용돼서 전국의 퀴어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연대하고, 그로 인해 모든 퀴어들이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달려봅시다!
대전에 오세요~ 저를 만나고 싶다면.
대전에 오세요~ 저를 만나고 싶지 않더라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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