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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행성인 활동가 편지

[활동가 편지] 필리핀 이야기 1.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by 행성인 2017. 3. 14.

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보고싶은 행성인 회원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멀리 필리핀에서 인사드립니다. 작년 5월에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필리핀 마닐라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하여 어느덧 10개월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민자로서 이곳 생활은 여러가지로 어렵습니다. 항상 무더운날씨, 모기, 그리고 대도시의 스모그 등 환경적으로 어려운 것이 많네요.  이곳의 대중교통은 지상 경전철인데요. 차막힘이 없어서 그나마 편리하지만, 지프니(트럭버스)와 트라이시클(오토바이)은 너무도 작아서 몸을 접어야만 탈 수 있습니다. 시내는 가까운 거리도 몇시간씩 걸려야 갈 수 있지요.

 

따갈로그어와 음식은 외국인으로서 역시 힘듭니다.  따갈로그어는 어순이 우리말과 완전 반대로 배치되어 왜 필리핀 사람들이 다른 외국인보다 한국어가 힘든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어학 프로그램을 찾지 못해 유튜브로 자율 학습을 하고 있는데 시장과 같은 곳에서 제가 어눌한 말을 하면 현지인들이 무척 반가워합니다. 이곳에는 배추와 무가 있어서 김치를 담궈 먹고 있는데 조금씩 노하우가 늘고 있습니다. 무더워서 물김치도 만들고, 갓김치, 깍두기도 담가 먹고 있습니다. 현지 음식은 지금도 잘 못먹어 남편에게 구박 아닌 구박(?)을 받고 있어 노력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곳에 오자마자 남편과 MCC 성소수자 교회를 찾아가 약 3개월을 다녔는데요. 아주 작은 공동체이지만 소속감보다는 소외감이 들어서 그만두고 새로운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Migrante International 이라는 이주 노동자 인권 단체에 남편과 매주 금요일 자원봉사를 다녔는데 이곳도 더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낯선 나라, 낯선 사회에서의 이민 생활은 제 자신이 이방인, 아웃사이더, 소수자 그리고 에일리언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민국과 같은 관공서, 병원에서 조금 강력하게 문의 하거나 컴플레인 하면 이제까지 영어로 잘 대화하다가 갑자기 따갈로그어로 말을 바꾸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데, 저는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네요. 그런 저는 이곳에서 소수자이고 약자여서 파워가 없는 존재이지요. 이런 느낌을 가질 수록 너무 힘겹습니다.

 

올해는 이 고통스러운 수도 마닐라에서 벗어나, 남편의 고향 마을이 있는 민다나오섬 (한국 정부는 위험 지역으로 분류하여 여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 수리가오시로 이사를 갈 예정입니다. 그곳은 인터넷을 할 수 없지만 자연 환경이 좋습니다. 작은 농장에서 일을 하고 한국 후원 단체와 연결하여 지역 아동 센터 (방과후학교) 와 가정 방문 간호를 꿈꾸며 <레인보우 센터>라는 이름으로 센터를 건설해 보려고 해요.

 

저는 이곳에서 한국의 촛불 집회와 JTBC뉴스를 인터넷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행성인 활동 소식을 페이스북으로 챙겨봅니다. 저의 친정인 행성인과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멋있는 아우들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정치적으로 열이 받으면 페북에 18원짜리 욕도 퍼부을 수 있어서 시원합니다.

 

힘든 이민 생활이지만, 나에게 가장 힘을 주는 것은 행성인의 활동입니다. 지난번 친한 회원을 통해 보내준 책을 읽고 버튼을 달고, 우리집을 레인보우로 도배하면서 큰 힘을 받습니다.

 

끝으로 탄핵을 축하합니다. 여러분이 너무도 보고싶네요.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보냅니다. 성소수자 차별없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함께 마음 모아 걸어가요. 저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행성인과 함께 합니다.

 

늘 언제나 내 마음 속에 머무는 이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이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