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안녕하세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에서 활동하는 길벗입니다. 9월도 끝을 달리며 저물어갑니다. 추분이 지나며 차츰 낮의 길이도 짧아지고 있네요. 이제 곧 추석이지요? 오늘도 그렇고 낮은 여전히 덥지만 해가 지고 나면 급히 추워지는 요즘입니다. 일교차가 큰 탓인지 쿨럭이며 소리 짓는 기침들이 주변에 한둘 고개를 쳐듭니다. 무심코 찾아오는 감기가 무서운 계절이네요.
저의 작년 이맘때가 문득 생각납니다. 마음이 지쳐 몸져누웠던 때, 벽장 속 냉기 가득한 심연에 스스로를 가둬놓고는 저의 정체성에 대해 번뇌를 거듭하고 밤의 고독을 곱씹던 때였습니다. 제 영육에도 감기가 심하게 든 것이지요.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 우연히 만난 게 행성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저 나와 진정 함께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를 갖고 있고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무작정 문을 두드렸지요. 하지만 누군가를 필요로 했으면서도 이미 굳게 질러놓은 마음의 빗장을 저는 쉽사리 풀지 못했고, 뭣 모르고 시작한 활동은 부담스럽게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행성인에서의 참여는 마음이라는 작은 연못에 작은 돌이 하나둘 던져지는 것 같았습니다. 파문이 조금씩 일었지요.
특히 이번 20주년 응원파티에서는 그것이 더욱 둔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20주년 응원파티에 기획단으로 참여하면서 응원파티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부터 함께 했습니다. 저는 그리 참여적이지 못했지만(반성을 하게 되네요..) 기획단분들과 응원파티를 위해 각자가 일상을 쪼개가며 수차례 만나고, 응원파티에 고유한 색을 입혀갔습니다. 그렇게 그 형체가 조금씩 드러났고 마침내 파티를 맞았지요. 그곳에서 만난 연대단위 사람들, 제게 동지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인 활동가들이 주는 감명과, 함께한 현장에서 얻었던 그 무언가는 마음속에 아로새겨진듯 합니다. 행성인의 20주년을 연대단위들과 함께 하며 연대를 공고히 다지고 축하하고 응원하는 그 자리는 개인적으로 제게는 행성인이 진정 어떤 역사를 갖고 있고, 무엇을 지향하는지 묵시적으로 알려주는 자리 같았습니다. 특히 저는 ‘웃음’에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응원파티에서 우리들이 한결같이 짓고 있었던 웃음 말입니다. 차별과 혐오 속에 급급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웃음이란 사치스럽고 나이브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활동하고 연대하는 동안에는 종종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웃으며 시대의 폭력에 맞설 용기를 얻고, 나아가 언젠가 우리가 진정 다함께 웃을 날이 올 것임을 믿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명랑성이 곧 사회를 바꿀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껏 스무고개를 지나온 행성인이 앞으로의 스무고개도 그 웃음을 잃지 않고 저항과 투쟁의 발걸음 더욱 세차게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20주년을 축하하고 응원하며 저도 그 발걸음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쭉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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