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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행성인 교육 <성소수자 억압의 원인은 무엇일까> 후기

by 행성인 2017. 11. 10.

수연(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




가입한지 1년 갓 넘은 신입회원인 나에게, 행성인의 2017 가을 연속 강의는 회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운동성, 내 삶의 단단함을 함께 찾아가고 질문할 수 있을 기회라고 생각하며 참여했다. 첫번째 강의인 나영 선생님의 <성소수자 억압의 원인>을 듣기 위해 미리 앉아 기다리는 회원들의 모습 속에서 행성인만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회원들 각자의 다른 결의 힘들이 전해졌다. 


이 강의를 들으러 가기전 나를 나답지 못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분열시키고 억압하고 파편화된 삶을 살게 했던 오랜 시간들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그 중 두 장면,

 

#1.내가 어렸을때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성소수자인 것이 밝혀졌고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모두가 나에게는 쉬쉬 했던 그 날을 기억한다. 본능적으로 그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고 곧 나에게도 벌어질 일일거라 예견했다.

 

#2. 대학에 가서 본 한편의 영화, 쿠바의 정치범이자 게이인 한 작가의 이야기 였는데 누우면 꽉 차는 작은 감옥 속에서 고통 받던 모습만이 기억에 남았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이해하기를 놓지 않던 따뜻한 손이었다. 하지만 그 온도와는 정반대로 마음과 몸짓을 가족과 사회가 인지하는 순간 낙인이 찍힌다.

 

어떤 곳에도 속하지 못할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두 장면을 흘려 보내지 못하고 가슴 어딘가에 묻어둔채 부정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시기를 돌파하기 위해 벌였던 싸움들은  때로 나를 내몰고 다그치며 구겨 넣었다.

 

페미니즘 그룹에 들어가고 나서야 내가 여성으로서 성소수자로서 노동자로서 억압받는 구조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함께 한 구성원들과 돌봄을 주고 받으며 내 자신을 긍정하는 힘이 자랐다. 그러나 다시 일상의 먹고사니즘만 정신없이 챙기면서 사회가 만든 반복에 상상력이 바닥나며 조각조각 났다. 임계점에 다다르고 나서야 나와 우리들의 곁에 설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한걸음부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나를 둘러싼 여러 억압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런 시기에 이 강의를 만났다. 강의를 통해 다시 읽은 억압의 구조는 편을 나누고 경합하고 경쟁하는 모습이 아닌 서로의 곁에 서고 곁을 내어 주고 함께  활동해야겠다는 결심을 서게 했다. 


<성소수자 억압의 원인> 강의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통치 권력들은 종교, 가족, 교육, 미디어, 정치등의 장치를 통해서 주류 질서를 수행하도록 만든다. 더불어 그것에 어긋나거나 비껴서있는 성적 역할을 가진 사람들을 억압하며 사회를 유지하고자 한다. 성적 억압은 결국 사회적 억압으로 이어져 인권, 시민권에서 배제하고 공공영역(고용, 의료, 주거, 교육등)에서 차별한다. 사회는 남성을(비장애인, 이성애자 백인 남성) 인간 기본으로 제시하며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정치 경제영역의 주체로, 인간 사회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해 낼 수 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그 이외의 범주로서 여성, 장애인, 유색인, 성소수자, 이주민들은 가시화 되지 않으며 주체적일 수 없는 존재, 보호받고 의존적인 존재로 대상화 된다. 또한 노동력을 재생산 하기 위한 이성애적인 결합을 위해 섹슈얼리티를 통제한다. 남성을 남성답게, 여성을 여성답게 강제하는 이분법의 틀을 만들고 그 틀을 벗어나는 사람들을 배제시키고 차별하는 방식으로 이성애적 결합을 주류 질서로 만든다. 

 

그로 인한 폭력의 사건들이 수많은 역사속에서 재현되어왔다. 마녀 사냥,노예 사냥, 레즈비언 교정 강간, 전쟁과 민족의 소유물로서의 여성, 선물로 거래되는 여성, 육체적으로 성적으로 근육질이어야 하고 늑대 아니면 보호자로서 상징되는 남성다움을. 모든 종교의 근본주의자들은 자연의 질서라는 이름으로 이 세계의 주류 질서에 복무한다. 신(남성) 국가(남성) 가족(남성)으로 상징되고 여성은 그에 순종하고 보조하는 역할들로 한정된다.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들의 재생산 노동은 학교와 보육시설, 임금노동으로 옮겨 간다. 그에 따라 생기는 혼돈과 갈등의 원인을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 성소수자의 인권을 말하는 자들에게 전가한다. 교육은 이들이 나쁜 존재라는 정보를 반복적으로 생산하고 세뇌한다. 억압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빨갱이가 되지 않으려고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으려고 정상으로 규정된 성적 질서를 수행하기 위해 자신을 억지로 맞추고 검열하고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다. 


97년 IMF를 겪은 이후 20년,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다양한 시민들이 등장했다. 페미니즘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그러나 이런와중에 누가 더 본질인가 근본인가 라는 무의미한 질문으로 서로를 나누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싸우게 되면 같은 논리로 보수 우익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 오직 서로를 소모하고 소진할 뿐이다. 지금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대에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연결고리로 받아 들이고 서로를 끊임없이 두드리고 배우며 우리를 억압하는 큰 구조를 향해 함께 싸워야 한다. 

 

성소수자의 수많은 개성들은 그 싸움에 새로운 색깔을 입힐 것이고 각자가 가진 고유함을 서로 다른 세계로 확장시키는 물결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