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난 10월 27일 저녁 인권중심 사람 한터에서 행성인 회원교육이 있었습니다. ‘연대는 뭐고 왜 중요한 걸까?’란 제목으로 이경님이 2시간 반가량 강연을 해주셨는데요. 사실 저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30분 정도 늦었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조별로 자리를 채우고 계시더군요.

 

어디 앉을지 우왕좌왕 하다 빈자리를 찾아 앉으니 곧 바로 한 단어가 귓가에 꽂혔습니다. 바로 ‘단결’이었는데요. 정확히는 ‘연대에 대해 생각나는 단어 작성하기’에서 한 참여자 분이 적은 단어가 단결이었습니다. 그 분은 영어 단어인 solidarity(연대)에 ‘단결’이란 뜻도 있다며 비슷한 이해관계를 갖고 결속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연대와 단결을 연결 지어 설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관계인데요. 현실에서는 연대와 단결이 종종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하거나 인권에 있어 누군가가 후순위로 밀려날 때가 그렇습니다. 또는 연대라는 이름 아래에서 목소리가 좀 더 큰 사람들이 자신에게 덜 불편한 방향으로 운동을 끌고 갈 때 힘없는 사람들은 뒤처지고 결국 연대로부터 소외당하고 단절되기도 합니다.

 

 이경님은 강연에서 그러한 단절이 반복될 때 단결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요. 돌이켜 보면 저 역시 연대라는 틀 안에 묶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단순히 함께 하는 걸 넘어, 여러 차이 속에서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고 동시에 힘을 모아내는 진정한 의미의 연대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단서는 다름 아닌 행성인의 지난 20년의 변화와 실천에 있었습니다.

 

 

 먼저 20주년 활동보고서에 실린 ‘행성인의 원칙’(1998년 제정)을 보면 명시적인 표현을 넘어 모든 원칙에 연대의 의미가 폭넓게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원칙은 2015년 ‘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약속’으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성별, 나이 등 단체 내부의 다양한 차이점을 발견하고 때로는 관련된 문제에 봉착하면서 원칙이라는 선언을 넘어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과 제도를 고민한 결과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2017년, 지금 행성인에게 있어 ‘연대’는 조직의 비전과 가치, 미션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저항하고 행동”하며 “평등한 공동체를 일구는” 내가 속한 곳과 나 자신의 변화를 포함한 사회의 변화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행성인이 생각하는 연대입니다.

 

 

 

 실제로 강의에서 들은 행성인의 지난 20년은 연대를 빼고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1996년과 97년 노동개악 저지 투쟁이 한창이던 시기, 부부가 회사를 다니면 여성이 해고당하던 시기, 신문에는 동성애자가 채용되면 해고사유로 충분하다는 인사 책임자의 말이 실리던 시기, 성적 보수주의와 성별 규범에 약자들이 억압받던 시기에 행성인은 사회를 바꾸는 거대한 투쟁에 성소수자 역시 함께 한다는 주장하며 무지개깃발을 들고 연대했습니다. 이라크 전쟁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전평화를 내걸고 소수자와 약자를 억압하는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육우당의 죽음 이후 청소년 성소수자를 고민하며 예비교사와 함께 하는 워크샵을 진행하고 일군의 교사들과 만나면서 ‘이게 문제니까 이렇게 하라’는 것이 연대가 아니라 차별받는 입장에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연대라는 점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HIV/AIDS 감염인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별도의 팀을 만들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이자 성소수자인 회원과 만나며 여러 가지 차별을 한 몸에 지닐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논의하며 연대라는 이름 안에 묶이거나 가려진 다양한 차별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2010년을 넘어서도 행성인의 연대는 계속 되었습니다. 반값등록금과 FTA반대집회, 2011년 퀴어버스와 서울학생인권조례까지. 쌍차에도 강정마을에도, 유성에도 행성인은 함께 했습니다. 2012년에는 행성인 회원이 노동자대회에서 선언문을 읽으러 무대에 올라갔습니다. 민주노총 안에도 성소수자가 있고 성소수자도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린 촛불집회에서도 행성인은 무지개깃발과 함께 자리했고 사회를 바꾸는 현장에, 현실에 성소수자가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연대에 대한 행성인의 고민은 수많은 연대의 대상과 시간만큼 변화하고 또한 성장해왔습니다.

 

 강의 말미에 이경님은 연대란 “배제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함께 책임지기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모두를 바꾸는 연대에 대한 행성인의, 그리고 우리의 고민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누구와 그리고 왜 연대해야 할까라는 고민, 가치와 실천에 대한 고민은 항상 이어져야 합니다. 당위적인 연대, 거래와 같은 연대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나의 고통을 모두의 고통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각자도생을 넘어서는 연대만이 앞선 물음, 서로를 존중하며 차이 속에서의 모두의 힘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연대를 통한 승리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하여 혼자 능력을 갖춘다 하여 우리 앞에 놓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느냐고 한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연대는 각자의 고립만큼이나 제한된 시야를 넓혀 줍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정체성의 주장과 존중은 권리의 상충이 아닌 권리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고 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와 장소가 없는, 사회 바깥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에 대한 환대를 통해 우리의 연대는 보다 촘촘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만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이 세계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연대는 뭐고 왜 중요한 걸까?’에 대해 정해진 답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날의 교육에서 행성인의 지난 20년을 통해 “스스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한 과정이 행성인의 연대였음을, 바로 나와 모두를 변화시키기 위한 연대 속에서 지금의 행성인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번 교육뿐만 아니라 더 많은 기회와 공간에서 보다 많은 회원 분들이 앞으로 다가올 행성인의 20년을 함께 만들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당일 강연하느라 고생하신 이경님, 그리고 사회 보느라 고생한 유결과 속기를 해주신 병권님, 교육 준비에 고생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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