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욜(동성애자인권연대)
모금 목표액을 볼 때마다 한숨부터 나옵니다. 이 금액이 가능해? 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기도 하고 올 초 재운이 있다고 이야기해 준 박법사 님의 신점이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기도 합니다.
갑자기 웬 쉼터? 성소수자 인권 현안도 너무 많은데?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릴 분이 많으실 겁니다. 저조차도 쉼터와 같은 청소년 기관은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갈 길이 너무 바빠 ‘쉼터’ 준비처럼 돈도 많이 들고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사업은 미뤄 두기 바빴습니다. 새로운 단체 하나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아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한편에선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위기’를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을지, 보다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늘 고민해 왔습니다. 2009년부터 다양한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나왔지만 그들은 ‘위기’와는 조금 멀어보였습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라는 문턱을 넘을 만큼 정보력도 뛰어났고 주변의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속된 말로 학교와 집에서도 잘 지내는 ‘모범생’ 청소년들 같았습니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별 탈 없이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터진 커밍아웃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학교 친구들 사이가 나빠지거나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 일시적으로 탈가정한 청소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런 사고(?)는 종종 일어났고 그때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들은 빈 방이 있는 집을 찾거나 설득해 다시 돌려보내거나 가끔 대안없이 이렇게 집을 나와도 되냐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정답은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취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을 뿐입니다.
2013년 5월 Queer Korean Alliance(http://www.queerkoreans.org)라는 홈페이지를 준비하고 있던 분들이 국제모금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 때 ‘성소수자 청소년 쉼터 마련’라는 모금 아이템이 처음으로 제안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몰랐던 저는 쉼터의 필요성만으로 기획서를 준비했고 한국에서 정말 쉼터 마련이 가능한지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이 때 만났던 섬돌향린교회, 열린문메트로폴리탄공동체교회, 차별없는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와 함께 무지개청소년세이프스페이스 프로젝트 기획단을 구성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위기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정책자료를 찾고 쉼터입소경험이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경험을 들으면서 이 사업은 정말 필요성만으로는 할 수 없는 ‘가시밭과 같은’ 험난한 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미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쉼터에서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오히려 2차 피해에 노출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경험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까짓 것 한번 준비해보자”라는 생각과 해외모금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보니 판단을 좀 쉽게 한 측면이 있습니다. 1억이 넘는 돈이 모여야 잘 수 있고 쉴 수 있는 집을 월세로라도 구할 수 있고 쉼터에서 24시간 근무할 수 있는 활동가를 충원할 수 있다는 계산법이 나왔습니다. 귀인이 나타나 1억 이상을 쾌척하지 않는 이상 십시일반 모금으로 쉼터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지금 제안하고 있는 것이 거리상담부터 시작된 단계별 설립계획입니다. 11월부터는 글로벌기빙재단을 통해 국제모금을 시작했습니다. 뉴욕 PFLAG API에서 활동하는 클라라윤(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부모)과 부산에서 열린 WCC(세계교회의날) 행사에 참여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목표달성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현재까지 $7,500 정도의 기부금액이 모였습니다.
무지개청소년세이프스페이스를 준비하며 안타까운 청소년 성소수자의 죽음을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말입니다. 저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었고 열린문메트로폴리탄공동체교회와 섬돌향린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던 20살 게이 청소년의 죽음은 모두를 슬픔에 빠뜨렸습니다. 보라매병원 추모예배시간에 들었던 흐느낌 소리가 여전히 귀에 울립니다. 그 죽음은 청소년 성소수자 쉼터 준비과정을 더욱 단단히 했습니다. 우리가 큰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 할 안전한 집 하나를 만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급하지만 급하지 않게 필요하지만 모두가 함께 만드는 그런 집 말이죠.
얼마 전 부천과 안산 지역에서 청소년 이동상담을 하는 움직이는 EXIT 활동가들이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찾았습니다. 꽤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거리에서 만나고 있고 쉼터를 연계해주거나 함께 생활하기도 하는 등 자신들의 소중한 활동경험을 나눠주었습니다. 거리에서 그냥 돗자리 깔아 논다고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거리상담활동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동상담버스를 함께 타고 시범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제안에도 흔쾌히 함께하자고 했습니다.
국제모금과 함께 국내모금도 시작되었습니다. 1단계 ‘거리상담’ 시점은 9월로 예정하고 있고 1년 운영기금 3천만원 모금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은 모금계획을 수립하고 주변 사람들 한 명 한 명 만날 때마다 후원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흔쾌히 꼭 필요한 일이라고 격려해주고 참여해줘서 매우 고맙습니다. 4월27일에는 첫 기부행사 바자회가 열립니다. 한 사람 당 10만원씩 300분이 모이면 거리상담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쉼터를 설립하기까지는 긴 호흡이 필요하겠지만, 2014년은 거리상담사업이 안정적이고 독립적으로 시작될 수 있게 준비할 예정입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무지개청소년세이프스페이스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안전한 무지개 집을 만드는 활동에 함께 동참해 주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이 속해있는 사진, 등산, 문학, 노래, 댄스, 음식만들기 등 소모임(동아리)에 작은 파티를 기획해보자고 제안할 수도 있고 자주 방문하는 온라인 사이트가 있다면 홍보글을 게시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모금에 동참하는 게 중요하겠죠.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거리상담, 더 나아가 쉼터 만드는 일을 꼭 성공시키고 싶습니다. 당분간 계속 될 ‘무지개 청소년 세이프 스페이스 후원 제안!‘ 용기를 가지고 말을 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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