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7. 새 - 사랑, 사람이라는 말의 오기(誤記)인
언젠가 편지에 글자를 잘못 쓴 적이 있었다. 나는 분명 ‘사람’이라고 썼는데, 편지를 받은 사람은 그걸 ‘사랑’으로 읽었다. 가령 ‘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라고 나는 썼는데, 그는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라고 이해했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지.’라고 썼는데, 그는 ‘사랑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지.’라고 받아들였다. ‘나도 사람이야.’라고 썼는데, 그는 ‘나도 사랑이야.’라는 고백을 닮은 말로 읽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내 엉망인 손 글씨 탓이었다. 한글의 ‘미음(ㅁ)’을 끊어서 쓰지 않고 한 번에 이어서 썼기 때문에, 조금만 성급하게 손을 움직이거나 흘려 쓰면 ‘사람’은 영락없이 ‘사랑’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편지를 받은 그는 내 손 글씨에 익숙했던 사람이었고, 그는 ‘사랑’이라고 보이는 모든 글씨들을 ‘사람’이라고 이해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사랑’으로 적힌 ‘사람’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당혹스러워 했을지 모르지만, 다행히 그와 나의 시간은 그런 오류를 바로잡을 만큼 충분히 넉넉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심인 ‘사랑’을 닮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잘못 쓰지 않은 ‘사랑’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그 ‘사람’을 떠올렸던 것은.
유진은 조금 당혹스러워 했다. 제일 먼저 너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다는 말에, 그는 어쩐지 망설이고 있었다. ‘망설였다’는 말조차 틀린 건지도 모르지만, 그는 어떤 생각을 뛰어넘으려는 듯 안간힘이었다.
“언제 오는데?”
“토요일에. 그러니까 토요일에 홍대에서 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너도 홍대 괜찮지?”
또 다시 여러 차례 생각을 뛰어넘은 침묵이 그와 나 사이에 스쳤다가 사라졌다.
“응, 다른 약속은 없어.”
“같이 만나서, 그냥 저녁 먹고 맥주 한 잔 하면 되는 거니까…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이번에는 내가 어떤 생각들을 열심히 뛰어넘었다. 그에게 가 닿기 위해, 오기되거나 오독되지 않고, 그때처럼 그의 마음에 먼저 가 닿기 위해.
“그래… 그러지, 뭐.”
대답을 하긴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말줄임표조차 필요 없는 한 문장이었는데, 그와 나 사이에 시간이 뭉쳐져 작은 말줄임표로 우리 앞에 똑, 똑, 똑, 떨어진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왜 가장 먼저 그가 떠올랐는지 생각했다. 단지 그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일까, 가족을 등진 내 삶에 그가 가족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잘못 씌어졌던 ‘사람’에 관해 생각한다. 혹시나, ‘사람’으로 잘못 적힌 ‘사랑’도 생각해 본다. 성급하고 서툴러 나는 또 어떤 글자들을 잘못 써내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원래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내 고치지 못한 손짓이 엉뚱한 걸 그리고 있었던 건 아닌지.
부산에서 새벽에 버스를 탔을 산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유진을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을 때, 그는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알겠다고 했다. 용인에서도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도 그는 말이 없었다. 나 역시 특별한 말을 할 수 없었던 건, 누군가에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남자를 소개시켜 준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몇 달 째 그가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을 신뢰하면서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잘못 쓰고 마는 내 습성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꼭 처가집 식구들한테 인사 가는 것 같네요.”
“무슨… 그냥 나하고는 가장 가까운 친구니까… 왜 그러잖아요? 특별한 사람이 생기면 가장 먼저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뭐 그런 거. 물론 나한테 친구는 친구 이상의 의미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자기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지도 몰라요. 그니까 편하게 봐요. 자기랑 동갑이니까 친구처럼 친해져도 좋고요.”
웃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버스 창에 비친 내 얼굴은 영락없이 찌그러졌다. 엉뚱한 불안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그의 손을 쓰다듬었지만, 사실 뜻 모를 나의 불안도 그의 손에 의지하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여러 번 어디 쯤 오느냐고 확인 문자가 왔다. 나도 여러 번 유진에게 어디쯤 가고 있다고 확인 문자를 보냈다. 모르긴 몰라도 세 사람이 같이 모인 자리는 분명 무던히도 어색하고 불편할 것이다. 여러 개의 장애물 앞에 선 주자처럼 나는 숨을 고른다. 그 사람 모르게 심호흡을 한다. 열심히 ‘사랑’을 쓰는 연습을 하면서, ‘사람’을 잘못 쓰지 않기를 바라면서.
“윤후산입니다.”
“차유진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예… 저도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서로 악수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어쩐지 아슬아슬했다. 어색함을 들킬까 유진은 황급히 앞 서 걸었고, 버릇처럼 내 손을 꼭 붙든 산은 어쩐지 오늘은 내게 매달린 모양새였다. 주차장 골목을 지나 상수동 골목 안 카페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우리는 어색한 말들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건 산과 유진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산이 내게 건네는 말이거나 유진이 내게 건네는 말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거나 들었고, 나도 그 둘의 이야기를 모두 들으며 또 그들의 모든 말들에 안간힘을 쓰며 답하고 있었다. 이상하고, 위태로웠다.
“어떻게 만나시게 되셨어요?”
“아, 예… 제가 이 사람 책을 봤습니다. 그래서 블로그에 가끔 글도 남겼고요. 그 날은 우연히 만난 거고요.”
“네가 그 동료 선생님 결혼식에만 안 갔어도 우린 못 만났겠지.”
“저도 서울에 약속이 있어 올라왔는데, 그게 어긋났거든요. 유진 씨는 어떻게 이 사람을 만났나요?”
유진과 나는 그제야 서로를 봤다. 너무 먼 시간인데다가 어색한 긴장 속에 있어선지 우린 허겁지겁이었다.
“십 년 됐나?”
“넘었지.”
“그렇게 됐나, 벌써?”
“그럼! 그게 나 레인보우 통신 모임 막 들어갔을 땐데.”
“그 때 누나 처음 봤을 때, 참 웃겼는데.”
“너는 그때만 해도 상큼했지.”
“군대에서 막 제대했을 때, 그때 다시 봤으니까.”
“아유, 얼마나 귀엽던지.”
엉뚱하게도 우린 산이 건넨 질문으로 둘 만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산의 얼굴이 굳어간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황급히 유진의 말을 가로질러 그에게로 향했다.
“그때 그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 문학 모임에서 만났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 문학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고…”
“아, 데리다?”
“그래, 그때 다들 만난 거잖아? 그래도 우리 모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고루 모여 있어서 모임이 좀 알찬 편이었지. 여전히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중학생도 있었지 않아?”
“응. 걔가 지금은 스물다섯이지. 상우 오빠가 걔 바이 섹슈얼이라고 얼마나 구박하는데? 헤테로한테 못 한 분풀이를 걔한테 하는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몰라?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모임 나오는 거 보면 기특해.”
“다른 트랜스들도 있지 않았어? 걔는 에프투엠이었지?”
“응, 게다가 게이. 걔는 두 배로 힘들 거야, 아마.”
그와 나의 이야기는 다시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옆에 앉은 산은 목이 타는지 마실 줄 모르는 맥주를 연신 들이켰다. 나는 다시 유진과의 대화를 가로질러 그에게 말했다.
“우리 문학 모임 이야기예요. 데리다라고. 지금은 거기 모임 창립 멤버가 아예 카페를 차려서 데리다 카페가 실제로 있어요. 데리다, 자크 데리다. 프랑스 철학자요. 사람들 데려다가 이상한 짓 하는 데 아니고… 풋.”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하여간 상우 오빠는 애들 속을 못 긁어서 안 달이라니깐? 민수가 데리다 오빠 특별하게 생각하는 거 알면서, 걔한테 안 지겠다고 데리다 오빠 깎아 내리느라 카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사람들 데려다가 이상한 짓 하는 데라고…”
“풋!”
유진이 입에 머금었던 맥주를 뿜었다. 테이블 위를 넘어 산의 옷자락에 튄 거품 줄기 끝에 굳은 얼굴이 있었다.
“아…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유진이 황급히 냅킨으로 닦아냈지만, 굳은 그의 얼굴은 더욱 달아올랐다. 말문을 닫아버린 채 그는 다시 술잔을 들었다. 단번에 비워진 술잔을 다시 채워 달라고 청하며, 종업원에게 손을 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어떤 말을 꺼냈다가도 또 다시 두 사람만의 수다로 이어질까 잔뜩 경계하는 바람에 뻔하디 뻔한 몇 마디만 중얼거리고는 그만이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의 만남이니 즐겁고 유쾌할 것이란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니 둘이 되어야한다고 믿지만, 때로 그 둘은 하나만도 못한 형편없는 것이기도 했다. 헤어질 때까지 우리는 딱히 기억에 남을 만 한 이야기를 주고받지도 못했고, 최소한 처음 만난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도 못했다.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유진은 서둘러 자리를 떴고, 그는 더 이상 내 손을 잡지도 않고 사람들 속을 먼저 파고 들었다.
그의 마음을 나는 이해했다. 아니, 이해해야한다고 다짐했다. 아마도 그는 대중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는 유명 동성애자 연예인의 과장된 몸짓만을 상상하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무도 평범한 남자로 게다가 자신의 여자 친구인 나와 스스럼없이 추억을 주고받는 그가 불편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질투’라는 폄하된 이름으로 치환된 감정은 어쩌면 사랑만큼이나 지독한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의 눈에 나는 유진과는 더욱 편안하고 즐거웠고, 오히려 자신에게는 의무감처럼 말을 건네는 사람처럼 보였을 테니 더더욱.
솔직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가장 난해하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해답은 간단하게 마련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유진을 처음 만났던 때부터, 왜 그가 나에게 가족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되었던 건지 그 모든 걸 샅샅이 말해주었다.
그날도 비가 왔는데, 의사에게서 내가 원하는 성전환 치료와 수술을 받을 수 없단 선고를 들었던 날이었다. 내가 수술이나 치료를 받을 만큼 충분히 여성적이지 않으니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의사는 말했다. 여성적이라니 남성적이라니 아무리 뒤집고 또 뒤집어도 살고 싶다고 자신 앞에 선 한 사람을 설득하기에는 너무 무가치한 말이었는데, 의사는 끝내 간호사까지 대동해 소리를 지르는 나를 진료실 밖으로 끌어냈다.
혼란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럼에도 한 쪽 방향의 길로 들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를 썼고, 결국 그 길 속에 삶을 찾을 수 없어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의사의 말은 기이하고 기괴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괜찮으니까, 그 길을 쭈우욱 따라가다가 어서 죽어.’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날 병원 바깥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뒤집힌 시간의 물결에 휘말려 나는 온통 흠뻑 젖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눈물에 나는 바다 한 가운데 무기력하게 이리저리 떠밀리는 벌레 한 마리같았다. 제 힘으로는 결국 탈피할 수 없어 버둥거리는 죽음을 기다려야하는 무기력한 삶, 한 마리.
바로 그때 온 몸을 때리던 빗줄기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폭우로 변해버린 빗소리와 천둥소리는 더욱 요란했는데, 내 머리 위에만 해가 비춘 듯 비가 멈췄다. 고개를 들었는데 길 건너편 쇼 윈도우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내 머리 위로, 우산을 받친 사람이 보였다. 자신은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오래도록 말없이 내 머리 위에 우산을 받쳐주던 사람. 잘못 쓰거나 적을 필요 없이 침묵으로 내 찢긴 마음을 위로하던 단 한 사람. 그가 바로 유진이었다.
“그래서요?”
버스에서 뛰어내린 그는 도망치듯 걸었다. 그를 놓칠까 내가 먼저 쫓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요?”
“아뇨, 걔는… 그 사람은 그냥 그런 존재라고요. 나한테는 그렇게 가족 같은 존재라서… 불편하거나 그런 생각을 가질 필요 없는…”
“가족은 아니잖아요?”
“맞죠, 가족은 아니긴 한데…”
틀렸다, 잘못 썼다. 나는 다시 한 번 잘못 쓰고 만 나를 깨달았을 뿐이었다.
“비가 왔다면서요?”
“네?”
“그날요, 그날도 비가 왔다면서요?”
“……”
“그럼 우리처럼 그럴 수도 있었던 거잖아요?” “아뇨, 그건 아니죠. 자기가 이해를 못할 수도 있는데… 유진이하고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는 사이라고요.”
“왜 그런데요?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거라면서요? 정체성이요, 그거요. 갇히지 말아야 하는 거라면서요, 아니에요?”
그들에게만 어렵고 나에겐 쉬운 줄 알았는데, 그들은 어리석고 나에게는 현명함뿐인 줄 알았는데, 그 순간 나는 어떤 말도 떠올릴 수 없었다. 펜을 고쳐 잡거나, 열심히 연습해 다시 쓸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중에… 나중에 연락해요. 오늘은 그냥 내려 갈게요.”
막막한 어둠 속으로 그는 있는 힘껏 내달렸다. 택시에 올라타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엔 표정이 없었다. 그를 태운 택시가 점 하나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두드러기처럼 온 몸을 간질였다. 다시 또 누군가 내 머리 위에 우산을 받쳐주지 않을까 위를 올려봤지만, 그나마 몇 개 되지 않던 별 빛도 오늘은 연무 너머에서 흐릿하고 힘이 없었다. 해답을 찾았다고 믿었던, 나를 닮았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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