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데리다 - 유령들, 이방인의 




  "어, 나도 그 영화 봤는데? 너는 언제 봤어? 일요일, 일요일? 나는 그 전날이었는데. 에이 아깝네. 같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상우 형은 누구랑 봤어? 또 어떤 놈 꼬여다가 그런 영화를 봤니? 나름 또 수준 있다고 자랑하려고, 되지도 않게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런 어려운 영화 보러 끌고 간 거지?"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그 감독 얼마나 좋아하는데? 패드로 알모도바르.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나쁜 교육' 내가 그 감독 영화는 뭐든 다 찾아다 몇 번씩 보고 그러는데 넌 나를 어떻게 보고, 짜식이 말이야." 

  "에에에… 형 그거 전부 다른 애들이랑 봤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볼 때는, 같이 본 놈의 모든 것을 다 알아보려고 봤을 테고, '그녀에게' 볼 때에는 그 놈에게 그럴듯한 고백이라도 하려고 봤던 거겠지? '나쁜 교육'은 뭐니?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것들한테 얼마나 나쁜 걸 가르치겠다고 그걸 봤던 거니?" 

  "이게! 안성준, 너는 만날 내가 무슨 그 짓 못해서 환장한 놈처럼 이야기하는데, 너 때문에 인마 다들 나를 얼마나 이상하게 보는 줄 알아?"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그 짓이 이상해? 이상한 건 그 짓에 관심 없는 게 이상한 거지. 후!" 

  "누나는 애인이랑 아직도 첫날밤을 못 치렀어? 벌써 일 년 다 되어가지 않아? 그 누나 불감증 있는 거 아냐?" 

  "모르겠다, 불감증인지, 뭔지… 뭘 벗겨보고 만져봐야 불감증인지 아닌지 확인이라도 하지, 내가 걔 속살 한 번 들여다보는 게 소원이다. 하도 찔러서 양쪽 허벅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딱지가!" 

  "그래도 실망하지 마. 원래 그런 여자가 더 성적인 에너지가 큰 법이다? 현아 누나가 학교에서 책만 파서 모르는 모양인데, 꽁꽁 숨겨놓고 있는 사람일수록 성적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인 거라고." 

  "형이야말로 현아 누나를 잘 모르는 구나? 저 누나야말로 레즈비언계의 올때짜라고. 여자로 태어났지만 저 누나의 성적 욕구는 남자들 못지않거든. 그치 누나? 내 말이 맞지?" 

  "그럼 여자는 성적 욕구도 없는 줄 아냐? 사내놈들이야 잠시 잠깐 팔운동으로라도 해소할 수나 있지, 우리 여자들 몸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해소되는 일도 아니거든. 그러니 내가 더 죽지, 내가 못살지!" 

  "그럼 뭐 아무나 괜찮은 애 꼬여서 해소해. 누나가 그 누나랑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뭐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잖아?" 

  "그러고보면 저 자식은 참 편해! 야, 정용호. 너는 참 좋겠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전천후라서. 여자 랑도 되고 남자 랑도 되는 그런 놈이, 뭐 빨아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 우리들 모이는 데는 꼬박꼬박 빠지지도 않는지 몰라?"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사람 좋아서 여기 왔지, 내가 섹스하려고 여기 왔냐고요? 형, 형이야말로 왜 그렇게 삐딱해요? 지난 번에 날더러 삐딱하다고 그런 사람이 누구죠? 형 정말 나한테 관심 있어요?"  

  "이게 왜 번번이 헛소리야? 그게 왜 상관이 없니?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그러는 게, 그게 왜 상관이 없어?" 

  "나는 그냥 사람이 좋으니 사랑을 하는 거라고요.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래서 그 사람 몸을 만지고 싶고 안고 싶고 그런 건데, 형이 남자랑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걸 사람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 왜 다른 사람이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 건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냐고요?" 

  "놔둬, 놔둬! 만날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답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매번 하면 뭐해? 자유롭게 산대잖아? 얼마나 바람직해? 왜 만날 쟤만 잡아? 어리다고 무시하는 거야?" 

  "잡도리를 해야 하는 건 너야, 인마! 안성준, 너 아직도 그 유부남 꽁무니 따라다니는 거지?" 

  "따라다니기는 누가 따라다녀? 걔가 나 따라다니는 거라니깐?" 

  "지랄을 해라. 그래서 걔 생일날 떡 보따리 들고 걔네 집 앞까지 찾아갔냐? 그러다가 그 놈 마누라한테 걸리면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싸우려고?" 

  "필요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사랑을 쟁취하는데 그 정도 각오 없이 어떻게 내가 원하는 사랑을 해? 그 정도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지." 

  "문제는 매번 유부남이니까 문제지. 너는 매번 네 스스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잖아? 걔들이 그거 보통 약은 놈들인 줄 아니? 그러니까 자기 정체성 속이고 여자하고 결혼까지 해놓고 자기 즐길 건 다 즐기는 놈들 아니냐고, 그 놈들이! 근데 넌 무슨 수절하는 춘향이 마냥 매번 질질 끌려 다니며 목숨이라도 바칠 기세냔 말이지." 

  "사랑하니까, 진심으로 사랑하니까 그런 거 다 상관없는 거 아냐? 이 놈 저 놈 만나고 다니는 형 같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을 알거든. 너무 잘 알고 있는 거거든." 

  "그래, 잘 해봐라. 나중에 여기 데리다 형처럼 이렇게 카페 하나 차려서, 지나가는 유부남들 모두 불러다가 네 그 잘난 사랑이라는 거 나누고 살면 되겠네. 여기 형도 애들 데려다가 어떻게 해 볼 요량으로 이 카페 이름을 데리다라고 지은 거 아냐? 데려다가 어떻게 해보려고 데리다……." 

  "형!" 

  "아이구야 무서비라! 뭐냐, 쟨 또?" 

  "히히히, 형 이제 죽었다. 민수 쟤 성질 건드리면 한 달은 가는데, 형 이제 골치 아프게 생겼어요. 히히히." 

  "우리 형을 그렇게 모독하지 말라고요! 그렇게 아무렇게나 말해도 좋을 그런 형인 줄 알아요, 우리 형이! 자크 데리다, 알제리 출신의 유대인 프랑스 철학자! 우리 형이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이자 사상가라고요!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요!"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잘못했네, 잘못했어. 쟤는 어떻게 된 놈이 데리다 형을 저렇게 목매며 좋아하냐고? 여자로 태어나 수술까지 해 힘들게 남자로 살기로 했으면서, 남자를 좋아하는 건 어떻게 복잡하게 꼬인 놈이냔 말이지."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모른다고 함부로 말하는 건 저기 바깥세상 인간들로 충분하다고요!" 

  "뭐야, 왜 또 싸움이야? 쟨 또 왜 저래?" 

  "휴, 모르겄소. 형이 좀 어떻게 좀 해보쇼. 형은 저런 팬이 있어서 좋겠어요. 아주 충성심이 대단하네, 대단해!" 

  "야, 유민수, 너도 그만하고 앉아. 너 그렇게 날 세우고 사는 것도 이제 그만 하라고. 뭐 그렇게 일일이 다 화내고 성질 피우고 그래야 돼? 이제 됐어, 그런 거 아니더라도 피곤한 거 많잖아? 우리끼리 그게 따질 일이야?" 

  "어험, 납득이 안 가니까 그러지, 납득이." 

  "너도 인마, 그만해. 매번 어린 애들 놀리는 재미 들린 거냐? 형이란 놈이 볼 때마다 그게 뭐야?" 

  "역시 우리 데리다 형이 이성적이야. 현실적이야. 근데 이상하게 저 형한테는 안 끌린단 말이지?" 

  "이 형은 유부남이 아니라서 안 끌리는 게지. 야야, 저기 민수 눈 봐라, 눈! 또 한바탕 난리 피우기 전에 입 다물어. 흠, 흠." 

  "하여간… 자, 이거나 먹고 쓸데없는 소리들 그만해. 그래서 잎새 너는 인터뷰는 안 한 거야?"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거라잖아요?"  

  "그러게 내가 좀 꾸미고 살라니깐. 너 가슴 수술도 안 했지? 얼굴이야 그렇다 쳐도 가슴 수술은 해야지, 그래야 사람들이 트랜스로 봐주기나 할 거 아니냐고?" 

  "그만하죠, 오빠. 또 이야기해야 돼?" 

  "아니, 요즘은 미모가 권력 아니냐, 권력! 그러니 돈 들이는 김에 같이 수술해서, 디씨도 좀 받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무슨 고집으로 보이지도 않는 데만 수술하고 마느냔 말이지. 그게 얼마나 비용 대비 효율이 없는 짓이냐고, 그게?"  

  "박상우 저 놈 쓸데없는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 인터뷰 안 했으면 뭐 했어? 여기 카페라도 오지, 그 날 손님도 별로 없었는데." 

  "누구 좀 만났어요." 

  "누구? 누구, 누구?"  

  "남자?" 

  "남자냐 여자냐가 왜 중요해? 그냥 사람 만난 거지." 

  "아니 그게 왜 안 중요해? 이성을 만나느냐, 동성을 만나느냐 그거 중요한 거 아니야? 물론 우리한테는 그 개념이 뒤집히기는 하겠지만." 

  "그래, 아무리 남자를 만났더라도 저 대쪽 같은 누나가 그 남자랑 뭘 했겠어? 그 남자랑 뽀뽀를 했겠어,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하고 돌아다녔겠어?" 

  "……." 

  "어, 쟤 봐라? 말 못 하네? 너 정말 무슨 짓을 하긴 한 거야?" 

  "아, 아니에요. 무슨 짓은 무슨… 그냥 만나서 영화보고… 차 마시고… 뭐 그랬어요."  

  "뭐 그런 거 뭐?" 

  "뭐가?" 

  "영화보고 차 마시고… 뭐 그랬다며? 뭐 그런 거 뭐했냐고?" 

  "아니라니까? 내가 뭘 해?" 

  "어 쟤 봐라? 이상하다, 쟤? 내가 알던 서잎새가 아닌데, 저건?" 

  "뭐야, 뭔데 그래? 말 해봐요, 누나?" 

  "말해봐라, 좀!" 

  "아니라니까 왜들 그래요, 자꾸?"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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