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2. 새 - 나, 나 아닌
나는, 내가 아니다. 사람들은 나를 가리키며 내 이름을 불렀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다. 거기에 나는 있었고 사람들은 나를 불렀지만, 대답한 건 나 아닌 나. 다른 이름이니, 그건 내가 아니라고 나는 말해야한다. 여기에 있으면서 여기에 있지 않고, 언제나 없는 나를 찾아 여기에 있지 않은 나를 불러내야하는 것. 나 아닌 나로 나를 부르는 것.
“왜 자꾸 말을 빙빙 돌리세요? 그러니까 지금 내 정체성에 의문을 재기하시는 거잖아요? 당신이 어떻게 트랜스젠더냐, 수술까지 해놓고 여전히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 건 도대체 무슨 정신 상태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잖아요, 지금?”
그래서 나는 내가 내 이름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사는 이 사회는 인정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만 인정한 내 이름. 기껏해야 분명해진 모호함이겠지만, 그건 세상에 태어나 내가 가진 제일 큰 안심(安心)이었다.
“우리 좀 솔직하죠? 신생 잡지사가 지금 나에 관해 쓰고 싶은 건 사람들 시선이나 잡아 끌자는 그 목적인 거 아닌가요? 그래서 어떻게든 어그로 좀 끌고, 이슈 좀 타고, 아주 싼 가격에 홍보 효과 톡톡히 좀 보겠다는 생각 아니냐고요?”
사람들은 항상 확신을 얻고 싶어 했다. 머뭇거리면 틀린 것, 망설이면 틀린 것, 말하지 못하면 틀린 것, 확신이 없다면 틀린 것.
“정체성이요? 허 참… 이보세요, 그럼 당신들 정체성에 관한 글은 왜 적어본 적 없는 건데요? 그 잘나고 잘난 이성애 비퀴어 정체성에 관해 왜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건데요? 그렇게 당당하고 확신에 넘치는 그 정체성이 얼마나 대단한 글빨을 줄줄 쏟아내는지 어디 한 번 적어보라고요! 우리한테 우리 정체성에 관해 말해야한다고 하는 그 자체가, 당신들은 그럴 필요 없다는 확신에 근거한 거 아닌가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뭐 이런…”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내 고집을 무너뜨렸던 건 그 신생 잡지사의 기자가 보여준 공감이었다. 낭시의 철학 서적에 담긴 구절을 들먹이며, 정체성으로부터 시작되는 관계가 아니라 관계로부터 형성되는 정체성에 관해, 그 속에 선 인간의 나약함에 관해 그는 깊은 공감을 보여주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는 가만히 듣고 곱씹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받아줄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보세요, 선생님! 이렇게 없던 일로 할 거면… 사람을 이렇게 헛걸음하게 하려면 미리… 여, 여보…”
끊긴 전화 번호 위에 나는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건조한 기계음이 사람 대신 전화를 받았다. 다시 또 끊고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기계 음성은 더 차분해졌다. 메시지 창을 띄워 욕지거리를 적어 내려가다가 손가락이 떨려 자꾸 엉뚱한 글자가 찍혔다.
“으유, 썅!”
전화 통화를 듣고 있던 옆 좌석 승객은 성소수자니 트랜스젠더니 하는 말들이 불편했는지, 연신 헛기침을 뱉었다.
“왜요, 트랜스 처음 보세요? 사진이라도 찍어 드려요?”
누구라도 들이받을 내 기세에 눌려 볼을 부풀린 중년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 출구로 향하며 끌끌 혀를 찼는데, 그들이 원하는 바로 그 ‘미친년’이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아이, 씨발. 나는 재빨리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이름을 불렀던 나 아닌 나를 불러냈다. 가장 가볍고 사사롭고 건들거리는 나를 불러내, 열이 오른 내 목덜미를 내가 쓰다듬었다. ‘됐어, 왜 이래 새삼스럽게? 뭐 한두 번이니? 그거 일일이 다 신경 쓰면, 대갈빡 터져나간다. 됐어, 트랜스도 나잇값은 해야지. 나만 생각해, 나만 생각해, 나만. 그래, 거기까지… 이제 그마아아안! 이런 태클에 놀아나면 트랜스 인생이 부끄럽지, 암, 암! 그마아아안!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노땅 변신 트랜스! 이제 그마아아안!’
유리창에 입을 붙이고 헉헉대는 내가 우스꽝스러웠는지, 뒷자리에 승객이 웃음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입을 크게 벌려 유리창 위에 커다랗게 입술 자국을 찍었다.
“그래서 어딘데?”
“종로.”
“종로, 어디?”
“광화문이네, 종로 아니고.”
“아까는 종로라며?”
“걷고 있어, 무작정.”
“청승이다, 참!”
“청승이긴… 마흔이 코앞인데도 어쩌지 못하는 성질머리지.”
“잘 아네?”
“아무래도 병이다, 이거. 그치? 난 그 수술을 받을 게 아니라, 딴 수술을 받았어야 하나봐. 아유, 지긋지긋해… 병원, 수술.”
“왜 그러냐, 정말?”
“그래도 욕은 안 했어. 했나? 아냐, 안 했다… 썼다가 지웠어. 못 보냈지. 흐흐흐… 괜히 옆에 앉은 아저씨랑 싸우고 경찰서에 끌려가지도 않았고… 그래도 장족의 발전을 했네.”
발전이라고 말해 놓고 낯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내 두 발은 저절로 사람 없는 골목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마흔이 내일 모랜데, 그게 발전이냐? 환갑 때까지 그러려고?”
“알아, 안다고.”
“이젠 그냥 허허 웃어도 되잖아? 뭐 그렇게 일일이 따지고 쫓아다니고 그래?”
“그래, 알아. 안다고!”
“누나, 또 목소리 높아지는 거 알아?”
그건 좀 복잡한 기분이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내성적이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수술까지 끝낸 나는 완전히 다른 나였다. 그저 감정에 솔직해진 거고 자신감을 얻은 거라고 믿었는데, 이따금 나는 발가벗겨진 환멸 속에 남겨졌다. 자신감과 민폐 짓은 한 뼘 차이였고, 용기와 지랄은 서로 들러붙은 것 같았다.
“알았어, 알았다고. 나와. 수다나 떨자.”
“안 돼. 나 오늘 동료 선생님 결혼식 있어.”
“넌 게이가 무슨 이성애자들 결혼식에는 그렇게 열심히 찾아다니니? 너 남자랑 결혼할 때도 그 사람들 축의금 들고 찾아온다니?”
“이성애자고 동성애자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냥 축하해주고 싶어서 가는 거지.”
유진은 항상 그렇게 이성적이었다.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앞과 뒤를 따져 가장 적절한 제 자리를 찾는 그가 신기했고 부러웠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동성애자라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처음 느꼈던 설렘은. 내게 없던 그 잔잔함과 평온함을 나누고 싶던 마음은.
“이따 결혼식 갔다가 좀 늦게는 괜찮은데… 그때 보려면 보고.”
“됐어! 결혼식 가서 이성애자들 축하나 많이 해주셔. 오지랖하고는. 끊어!”
전화를 끊고 정류장 의자에 털썩 앉는데,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안해.’였다. 다시 딩동. ‘다음 주에 안면도 쪽으로 사진이나 찍으러 가자. 같이 드라이브도 하고.’ 피식 웃음이 샜다. 이렇게 무너져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다시 딩동. 알았다고 답장을 해주려고 휴대폰을 들여다봤는데, 유진이 아니었다.
‘서울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무작정 걸었는데, 힘드네요. 사람이나 자동차들은 너무 많고, 약속이 펑크나 갈 곳을 잃어 정류장에 앉아 있습니다.’
휴대폰을 들어 찍었을 머쓱한 그의 얼굴 너머로 좀 전에 내가 건넜던 횡단보도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 도로 건너편을 보니 사진 속처럼 허탈한 표정의 그가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작은 휴대폰 속에 파묻혀 한숨을 쉬는 어깨가 보였다. 고개를 드는 그와 어색하게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나는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구겨졌던 휴지처럼 그도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어디로도 갈 곳이 없다고 믿었는데, 그 역시 갈 곳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는데, 우린 그곳에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상하고 신기한 엇갈림이었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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