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잎새 - 나, 나 아닌 




  나는, 내가 아니다. 


  "왜 말을 빙빙 돌리세요? 

  사람들은 나를 가리키며 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나는 거기에 있었고 사람들은 나를 불렀는데, 대답을 한 건 내가 아니었다. 이제야 더듬거리며 나는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아닌 다른 이름을 부르고, 나는 그것이 내가 아닌 나라고 말해야한다. 존재하고 있는 것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고, 존재하지 않는 이름을 부르며 존재하는 이름을 지워야하는 것. 여기에 있으면서 여기에 있지 않고, 언제나 없는 나를 찾아 여기에 있지 않은 나를 기억하는 것. 

  그 때,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었던 27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곳에 없을 것이며 또한 그럼에도 여전히 그곳에 있는 나를 찾아야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손으로 나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세상은 인정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내가 선택한 이름. 여전히 모호하고 흐릿한 이름이겠지만, 그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갖게 된 최초의 안심(安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상품가치가 없다는 거잖아요? 그냥 솔직하게 말하세요, 당신이 무슨 트랜스젠더냐, 수술까지 해놓고 여전히 남자 옷 입고 다니는 건 무슨 미친 짓이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잖아요,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불안이라거나 혼란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나는 그들이 틀렸다고 말해야한다. 탄생이 아슬아슬한 줄 위로 밀쳐진 거라면, 나는 이제야 비로소 기다란 막대 하나를 건네받은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말이 안 되는 건 그 쪽이에요,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걸 알면서 인터뷰를 요청했던 것도 그쪽이잖아요? 근데 이제 와서 여자 옷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해달라는 둥 화장을 좀 진하게 해달라는 둥 그게 말이 되냐고요, 그게!" 

  그들은 언제나 그렇게 확신을 얻고 싶어 했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거라면, 모두 틀린 거라고 말했다. 

  "정체성이요? 아니 그깟 옷 쪼가리가 정체성이에요? 그럼 기자 분은 자기가 지금 여자 옷 입으면 여자로 정체성이 바뀌는 거예요? 남자로 태어난 나를 알고 있고, 그래서 남자 옷이 더 잘 어울리니 남자 옷을 입고 사는 것뿐인데, 그렇다고 내 정체성이 달라지는 거냐고요!" 

  확신을 할 수 없다면 그들은 최소한 확신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모호한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그래도 끝까지 선언을 듣고 싶어 했다. 

  "헷갈리고 있는 건 지금 그쪽이라고요! 혼란이고 혼돈이고 지금 그 쪽이 헛발질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내 고집을 무너뜨렸던 것은 기자가 보여준 공감이었다. 낭시의 철학 서적에 있는 구절들을 들먹이며, 존재한다는 것의 바깥에서 바라보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그는 말했었다. 

  "이보세요, 기자님! 그러면 진작 연락을 하셨어야죠. 사람을 이렇게 헛걸음하게 해도 되는 거냐고요! 내가 지금 내 책 홍보나 하자고 이러고 있는 건 줄 아냐고요! 장 기자님, 장 기자님!" 

  매몰차게 끊어진 번호 위에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건조한 기계음이 기자 대신 전화를 받았다. 다시 또 끊고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기계의 목소리는 더욱 차분해졌다. 메시지 창을 띄워 욕지거리를 적어 내려가다가 손가락이 떨려 자꾸 엉뚱한 글자가 찍혔다. 다시 지우고 또 쓰는데도 여지없이 손가락은 미끄러졌다. 

  "으유, 썅!" 

  곁에서 전화 통화를 듣고 있던 초로의 남자 승객은 성소수자니 트랜스젠더니 하는 말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헛기침을 뱉었다. 

  "왜요, 왜 쳐다보세요?" 

  당장이라도 싸움을 벌일 듯 목소리를 높이는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만치 앞자리에 가 앉으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며 그는 끌끌 혀를 찼다. 확신을 움켜쥐고 사는 사람들, 믿음에 매달려 비굴하게 애원할 필요가 없는 인간들.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눈을 돌렸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모호한 계절이 그나마 나를 위로하듯 뒤섞인 색으로 지나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어딘데?" 

  "종로." 

  "종로, 어디?" 

  "광화문이네, 종로 아니고." 

  "아까는 종로라며?" 

  "걷고 있어, 무작정." 

  "청승이다, 참!" 

  "청승이긴, 지랄이지." 

  푹, 한숨이 토해졌다. 언제나 후회는 약속이라도 한듯 밀려왔다. 마개가 터지듯 감정이 끓어오르면 언제부턴가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병이다, 이거. 그치?" 

  "왜 그러냐, 정말?" 

  "그래도 욕은 안 했어. 괜히 옆에 앉은 아저씨랑 싸우고 경찰서에 끌려가지도 않았고. 그래도 장족의 발전을 했네." 

  발전이라고 말해놓고 낯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괜히 나는 사람들이 없는 골목 안으로 꼬불꼬불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마흔이 내일 모랜데 그게 발전이야? 환갑 때까지 그러려고?" 

  "알아, 안다고." 

  "이젠 그냥 허허 웃어도 되잖아? 뭐 그렇게 일일이 따지고 쫓아다니고 그래?" 

  "그래, 알아. 안다고!" 

  "누나, 또 목소리 높아지는 거 알아?" 

  그러고 보니 어느새 또 다시 무언가 치밀고 있었다. 수술을 하고 난 이후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졌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씩 나는 발가벗겨진 환멸 속에 서 있었다. 

  걷기를 그만두고 나는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의자에 앉아 일상적인 거리 풍경을 두리번거렸다. 흘끔거리는 사람들은 부러 모른 채하고 그저 멀리 봤다. 

  "알았어, 알았다고. 나와. 수다나 떨자." 

  "안 돼. 나 오늘 동료 선생님 결혼식 있어." 

  "넌 게이가 무슨 이성애자들 결혼식에는 그렇게 열심히 찾아다니니? 너 남자랑 결혼할 때에도 그 사람들 부조금 들고 찾아온다니?" 

  "이성애자고 동성애자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냥 축하해주고 싶어서 가는 거지." 

  유진은 언제나 그렇게 이성적이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처음 느낀 감정은 분명 설렘이었다. 그에게는 내게 없던 잔잔함과 평온함이 있었다. 숲 속 고요한 호숫가처럼 그의 곁에 있으면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고. 

  "이따 결혼식 갔다가 좀 늦게는 괜찮은데… 그 때 보려면 보고." 

  "됐어! 결혼식 가서 이성애자들 축하나 많이 해주셔. 오지랖하고는. 끊어!"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는데 딩동 메시지가 왔다. '미안해'였다. 다시 딩동 '다음 주에 안면도 쪽으로 사진이나 찍으러 가자. 내가 드라이브 시켜줄게.' 잔잔한 호수가 건네 온 말. 그 속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본 것처럼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다시 딩동. 괜찮다고 답장을 해주려고 휴대폰을 들여다봤는데, 그것은 유진이 아니었다. 

  '서울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무작정 걸었는데, 힘드네요. 사람이나 자동차들은 너무 많고. 약속이 펑크나 갈 곳을 잃어 정류장에 앉아 있습니다.' 

  휴대폰을 들어 찍었을 머쓱한 그의 얼굴 너머로 좀 전에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왔던 정류장의 간판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보니 사진 속처럼 허탈한 표정의 그가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작은 휴대폰 속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는 어깨가 보였다. 어색하게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나는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구겨졌던 휴지처럼 그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어디로도 갈 곳이 없었고 그래서 길을 잃어버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린 그곳에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어정쩡하게 손을 들고 고개를 숙이면서. 어쨌든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니, 이상하고 신기한 엇갈림이었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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