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산 - 그래, come 




  생각해보니, 그 때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사진 속에 나는 하나 같이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나는 그 때의 내가 겁에 질려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려, 열두 살의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제일 큰 미소를 보여주었다. 엄마의 말대로 항상 어깨를 활짝 편 채 걸었고, 선생님의 질문에 제일 먼저 손을 들어 대답했다. 답을 모르더라도, 일단 먼저 손부터 들고 생각했다. 맞고 틀리고는 나중 일이었다. 무기력하게 가만히 앉아있는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하여 준비물들을 두 개 씩 챙겼고, 착한 학생이 되려고 언제나 선생님의 곁에 가까이 있었다. 그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게 되는 일이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두려웠다. 행복하지 않은 내가 탄로날까봐, 집에선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게 될까봐, 나는 몹시도 두려웠었다. 억지로 지은 미소 때문에 턱 밑이 아렸고 눈두덩이 뻐근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래야한다고 믿었다. 힘들고 괴로운 나를 들키게 되면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게 될까봐, 나는 웃고있는 예쁜 얼굴을 연습하며, 언제나 제일 먼저 교문으로 들어섰다. 

  가을 운동회가 있던 날, 나는 그 날도 좋은 친구, 착한 학생이 되기 위하여 공굴리기든 매스게임이든 집단체조든, 있는 힘을 다 해 작은 몸을 열심히 움직였다. 가족들이 아무도 운동회에 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누구에게도 시무룩하거나 슬픈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흙 먼지에 범벅이 되면서도 나는 끝까지 환한 미소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무조건 괜찮다고 말했고,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 날의 운동회가 끝나고 나면, 나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 무엇이든 잘 하는 멋진 친구, 착하고 예쁜 모범생이 되어야만 했다.  

  백 미터 출발선 앞에 섰을 때, 나는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그런데도 까마득히 보이는 결승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 옆에 섰던 놈은 슬쩍 선 너머로 발을 내놓았다가 호루라기를 부는 선생님의 발길질에 채여 물러섰고, 나는 그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불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괜히 발이 큰 놈이 결승선에 먼저 가 닿는 건 아닐까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사춘기에 접어들어 고추에 털이 나기 시작한 놈의 유독 기다란 다리가 부럽기도 했지만, 그러나 나는 내 집념만으로 그 모든 아이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일등상은 겨우 노트 다섯 권이었지만, 팔목에 찍힌 보라색 도장을 엄마 앞에 내밀며 '멋지다, 우리 아들!'하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반드시 들어야했다. 

  삑삑, 삑삑. 트랙을 가로질러 갔던 소리가 다시 되돌아왔다. 반짝거리는 제복을 입은 군악대의 음악 소리가 둥둥 가을 하늘을 채웠고, 응원으로 갈라진 아이들의 목소리가 구호처럼 울려 퍼졌다. 마침내 그가 들고있던 화약총을 머리 위로 올렸다. 내 곁에 섰던 비겁한 놈은 선생님의 눈을 피해 또 다시 하얀 선 너머로 발을 들이밀었다. 다리가 긴 놈의 종아리가 불룩해졌다. 모두들 잔뜩 몸을 낮췄고 나도 그들을 따라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보이지도 않는 결승선을 향해 두 눈을 부릅떴다. 가슴 속에서 심장이 주먹질했다. 정수리가 뜨거워졌다. 순간 세상의 소리가 지워지는가 싶더니, '빡!' 소리가 터졌다. 

  나는 있는 힘을 다 해 몸을 내밀었다. 힘껏 두 다리를 움직였다. 파박파박 먼지를 일으키며 달음질쳤고, 친구 놈의 말대로 이를 앙 물고 턱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모가지를 길게 빼며 있는 힘껏 흙바닥을 찼다. 앙 물었던 턱 밑이 내달리는 몸짓으로 덜거덕거렸다. 씩씩거리는 놈들의 숨소리가 곁에서 오르내렸다. 지면 안 된다, 절대 지지 않는다! 호흡이 턱 밑에 들어찼고, 내 숨소리가 귓속을 왕왕 울렸다. 절대 지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 절대! 온 몸의 힘줄을 곤두세우며 장딴지에 힘을 준 채 눈을 부릅떴는데, 하늘이 보였다. 


  빨간 하늘이었다. 으깨어진 복숭아처럼 연분홍의. 


  어스름 저녁노을이 번졌거나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들이 비췄던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제와 똑같은 파란 하늘이었는데, 호흡이 가빠진 내 허약한 두 눈이 세상의 색을 잃어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빨개진 하늘을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뿐이었는데, 달음박질을 하던 두 다리가 조금씩 느려졌다. 몽정이라도 한 듯 몸속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듯 싶더니 나는 그대로 트랙의 중간 즈음에 멈춰서고 말았다. 아마도 육십 미터 근처였을 것이다. 

  응원석에서 고함소리와 웃음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따라 뛰던 담임이 빨리 뛰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얼굴은 하늘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그렇게 서서 멀어져가는 다른 아이들의 등짝만 바라보고 있었다. 터질듯 움직이는 그들의 엉덩이를 세었고, 한 놈씩 점이 되어 결승선으로 뛰어드는 몸짓을 봤다. 주저앉기도 했고 쓰러지기도 했으며, 두 팔을 높이 올려 환호하기도 했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 트랙 위에 멈춰 서서 그들의 몸짓을 샅샅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 

  참지 못한 선생님이 트랙 안으로 뛰어 들었고 왜 뛰지 않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왜 뛰어야하는지조차도 나는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갑자기 슬퍼졌다. 울컥거리며 눈물이 치미는 두 눈을 팔뚝으로 쓸어내리는데, 깔깔거리며 웃는 놈들의 얼굴이 나를 보며 지나갔다. 선생님이 내 목덜미를 부여잡아 끌어내렸고, 나는 트랙에서 끌려 내려오고 난 후에도 한참을 구석에 혼자 서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 날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내게 이제 엄마와 둘이 살아야할 테니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물론 그 때에도 아무도 내게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고, 나도 결국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다. 


  "약은 먹었니?" 

  늙어버린 그녀가 내게 물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녀 앞에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다. 

  "네, 먹었어요." 

  거짓말이었다. 그녀에게 건네받는 약을 먹지 않은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나고 있었다. 그녀는 달리기를 끝내지 못했던 나 때문에 여러 의사들을 찾아갔다. 물론 달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달리기를 완주하지 못한 이후로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학교에 가더라도 수업을 듣지 않았으며, 수업을 듣더라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나는 갑자기 눈물을 쏟으며 엉엉 울고 말았다. 중학교 삼 년과 고등학교 삼 년을 마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녀는 출근하는 길에 나를 깨워 학교에 데리고 갔으며, 퇴근하는 길에 학교까지 찾아와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그녀가 내미는 밥을 '열심히' 먹고 방으로 들어와 잠을 잤다. 잠이 오지 않으면 자위를 했다. 그 때 내게 유일하게 살아있던 것은 발기한 성기뿐이었다. 

  '대학교에 가면 괜찮아 질 거야.' 그녀가 말했다.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것들이 나를 변화시켜줄 거라고, 그녀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건 자유란다, 그건 즐거움이란다. 그녀가 말하는 자유와 즐거움을 나는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그래서 대학 시절의 동기들은 나를 가리키며, 즐겁다, 자유롭다,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나보다 더 커진 채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은 소름 돋는 공포였다. 그 놈을 밀어내고 나를 찾기 위해 칼을 들었던 건 오랜만에 느껴보는 생의 의지였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자살 시도라고 말했다. 

  스무 살이 넘어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겪어야하는 우울은 사춘기 시절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 때에는 모두들 시간이 해결해줄 거다 말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시간의 힘을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내가 병에 걸린 것이라고 말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데리고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점점 침울해졌다. 

  "어디 가니?" 

  걱정과 불안이 뒤엉켜 그녀의 목소리는 축축했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미안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때 달리기를 끝까지 하지 못해서 미안했기 때문에. 

  "어디 가는 거야?" 

  "서울에요." 

  "친구 만나?" 

  그러나 그녀는 친구가 없는 나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단지 그녀의 바람일 뿐이었다. 

  "언제 오니?"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현관문을 나서는데 그녀가 슬리퍼도 신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우산은 가지고 가니? 비 온다는데… 약도 가지고 가는 거지? 자기 전에 전화할 거고?" 

  모두 그녀의 바람들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그렇게 내게 듣고 싶은 말이나 바람들을 길게 나열해놓고 있었다. 나는 문을 닫고 긴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는 문 안 쪽에서 닫힌 문을 바라보고만 있을 것이다. 올해로 벌써, 19년 째였다. 


  기차는 너무 느렸다. 서울과 부산을 세 시간 만에 주파하는 고속 열차라고 하는데, 승강장에 들어오는 그것은 그래서 그런지 더욱 느리게 보였다. 기차에 올라 창 쪽에 앉아 책을 폈다.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 담겨있는 지식이나 말들을 이해하고 싶거나, 그것으로 어떤 깨우침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책은 나에게 단지 피난처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있으면 모두가 걱정을 했지만, 책상 위에 책을 펴놓고 숨어있으면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미안해서 시작한 책 읽기였지만 지금은 책이 없으면 어쩐지 불안했다. 책을 들고 있는 것은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지금은 나에게 '출입금지.' 

  "네, 누나. 지금 기차타고 가고 있어요."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같은 곳으로 도망친 누군가를 만나는 것 같았다. 갇힌 사람들이 갇힌 이야기를 같이 하면서 같이 함께하는 가치. 

  "괜찮아요, 찾아가 보죠, 뭐. 서울엔 오랜만이기는 하지만 찾아가 볼게요." 

  모두가 다른 이유였겠지만 비슷한 모양의 것을 들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았다. 

  "네? 아… 그래요?" 

  그러나 휴대폰 건너편에서 그녀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급하게 문제가 생겨서 오늘 약속을 취소해야겠다는 이야기였다. 

  "하는 수 없죠.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냥… 그냥 다녀오죠, 뭐." 

  그녀의 아이디는 '참 좋다'였다. 무엇이 그리도 좋았던 건지, 아니면 그녀의 삶에 좋았던 것이 하나도 없어서 억지로 무작정 좋다 말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아이디를 볼 때마다 '참 좋다'는 세 글자가, 나는 참 좋았다. 

  "괜찮아요. 네, 그럼 다음에 봬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창밖을 봤다. 기차는 벌써 대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돌아가기에도 계속 끝까지 가기에도 망설여지는 어정쩡한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물론 망설이고 주춤거리는 사이 이미 기차는 천안아산 역을 지나 다음 역이 광명이라고 알려주었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나는 조금씩 어디론가 다가가고 있었다. 이토록 속도를 높여 달리는 초고속 세계를 살기에 나도 내 생각도 너무 느렸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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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30 23:46 [Edit/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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