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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김비 장편소설 연재]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프롤로그 - Cafe, 데리다

by 행성인 2014. 11. 11.

長篇小說

 金 飛

 

 

그녀인 나와,나의 그에게 

 

 

 

0. 프롤로그-카페, 데리다

 

 

 “그런 건, 좀 유치하지 않아?”   

 “그렇긴 해.” 

 “뭐가, 그래? 매번 술 먹고 서로 들어주지도 않는 말들, 목소리 높여 떠들다가 돌아가면 그게 좋으니?” 

 “잎새 누나 말이 맞긴 하지. 들어주는 사람은 없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착각하면서 말이야. 그러고 나중에 물어보면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여간 또 삐딱하다, 저거.” 

 “상우 형이야말로 또야? , 매번 용호가 무슨 말만 하면 쟤한테 시비거는 거, 알아? 혹시 용호한테 관심 있어? 박쥐네 뭐네 바이섹슈얼이라고 매번 시비 걸면서, 그건 항상 쟤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단 이야기잖아?” 

 “난 사양할게요.” 

 “저게? 나도 아니올시다야, 인마! 내가 밑지는 짓을 왜 하고 앉았어? 난 저렇게 덩치 커다랗고 근육질인 놈, 별로야. 게다가 아무리 마음을 줘도, 결국 저 놈은 나한테 반만 주고 말 거 아냐? 이게 무슨 손해 보는 짓거리냐고?” 

 “무슨 계산이 그래? 앞뒤도 없고 아래 위도 없이 너는 둘로 나뉜 거면 무조건 반이냐?” 

 “그래, 사람 마음이 어떻게 반일 수가 있어? 허허. 누가 됐든 만날 때마다 백이겠지.”  

 “형은 반이라도 그 마음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나 있어요? 혼자서 다 줬다고 생각하면서 헤어지면 피해자인 척 죽겠네 아프네 여기저기 까발리고 다니다가, 또 다른 사람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희희낙락이면서그러니까 형이 줬다고 믿는 그 전부가, 상대방이 준 반만큼의 크기나 되기는 하는 거냐고요?” 

 “상대방도 그냥 상대방이 아니고, 애들매번 저 형이 철부지라고 무조건 깔아뭉개고 보는 그 애들 마음의 반이지, 그것도.” 

 “저게? , 민수! 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너나 가만 있어, 이 아저씨야.” 

 “아야야왜 데리다 형은 매번 나만 갖고 그래? 내가 쟤들한테 시달리는 거, 보잖아? 형이라도 내 편을 들어줘야하는 거 아냐?” 

 “무슨 오비 와이비 조기 축구 하냐?” 

 “그래, 그래내가 생각하기에도 상우 선배는 매번 자기가 먼저 시작하더라. 선배가 쿡 찌르니까 쟤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달려드는 거잖아?” 

 “현아, 너마저 그럴래?” 

 “에이, 오랜만에 다 같이 모여 밤새도록 마시기로 한 건데, 분위기 망치지 말자는 거죠, 나는.” 

 “유진이는 없잖아?” 

 “걔야 뭐, 모임 안 나온 지 한참이니까. 잎새 너는 그래도 가끔 보지?” 

 “, 가끔요.” 

 “잘 지낸대?” 

 “그냥 조용히.” 

 “시간이 그만큼 흘렀잖아요?” 

 “근데 왜 하필 27년 후야? 10년 후도 아니고, 20년 후도 아니고, 그렇다고 15년이나 25년도 아니고.” 

 “하여간, 저 형 특이해. 그러니까 돈 많이 주는 직장 때려치우고 이 동네 후미진 데서 이런 카페나 하고 앉았지.” 

 “27년 후면잎새 넌 몇 살이냐?” 

 “? 예순 셋인가? 그럼 상우 오빠는 예순 일곱인 거야?” 

 “그렇지, 형은 몇이요? 칠십이요?” 

 “민수랑 용호가 제일 젊겠네. 그래봐야 오십 대겠지만.”   

 “그냥생각해보자고. 문학 모임이다, 뭐다, 우리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가까이 지냈다면 지낸 건데, 이런 얘기는 의식적으로 좀 피했던 것 같아서.” 

 “진지 빠는 얘기는 재미없잖아?” 

 “그래, 넌 유부남 꺼 빠는 게 재밌겠지.” 

 “!” 

 “, 안성준! 너 쟤 한 번 걷어 차! 이번엔 그럴 만 했어, 너 이 자식 나이 먹어 꼭 그러고 싶냐? 이러니 쥐어 박히지, 이러니 무시당하지! 걷어 차, 이건 모두에게 폭력적이고 모욕적이다, 걷어 차! 여러 대 차 버려!” 

 “아야야, !” 

 “난 말이야, 그때에도 어디서든 우리 같은 사람들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퀴어든 아니든 무조건 웃는 얼굴로 만날 수 있는 게 우리였으면 싶어. ‘, 사는 거 정말 엿 같네.’ 싶을 때,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가도 괜찮은, 조금은 무례하거나 허물어져도 괜찮은 그런 우리가그때에도 계속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어. 뭐 혼자고 외롭고 돈 없고그런 게 두렵진 않아. 두렵다면, 누가 무너뜨리기 전에 나 스스로 무너져버리는 그거겠지.” 

 “누나 학교에서 다른 시간 강사들이랑 한다는 그 시위는 아직 안 끝난 거야?” 

 “끝날 수가 있니? 돈이 지배하는 세상과의 싸움인데.” 

 “나는 자유라는 말을 아직도 생각해요. 중학교 때 생각했던 자유와, 스무 살 때 바라고 원했던 자유와, 지금의 자유가 다르긴 한 것 같은데생각해보면 자유롭다는 게 뭘까 그 고민을 계속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나이와는 상관없이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물처럼 흘러가면서요.” 

 “늙어서도 지금처럼 그렇게 멋대로 살겠다니, 너도 참.” 

 “형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아요?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형 같은 사람 대놓고 폐기처분 대상이라고요. 권위주의에, 꼰대 짓에퀴어라는 거 빼면 형이야 말로 참.” 

 “이게 또?” 

 “자유로워지고 싶다, 자유로워져야 한다그 의무감 속에 바로 책임이 숨어있는 거라고, 가라타니 고진 아저씨가 말했지.” 

 “맞아, 뇌의 선택과 우리가 인식하는 선택 사이에는 시간차가 있대. 자유가 뭔지 우린 결국 알 수 없는 건지 모르지만, 그 고민으로부터 언제든 배울 수 있다면 충분히 쓸모 있지. 선택이든 선택일 수 없든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닌가 보네. 생각해보면 나도 내가 왜 결혼한 남자들한테만 끌렸던 건지는 잘 모르겠거든.” 

 “지금 그거하고는 맥락이 다른 얘기 같은데?” 

 “그럼 넌 환갑이 넘어서도 결혼한 남자들만 쫓아다닐 거란 말이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난 사람이 살아가는데 제일 중요한 건 어쨌거나 사랑이라고 생각해. 돈이고 사회 정의고 자유고 뭐고 난 별로. 만약 그때에도 나에게 어떤 열정 같은 게 남아있다면, 난 그게 사랑에 관한 거였으면 좋겠어.” 

 “특이해, 특이해집념이냐, 집착이냐? 그 때쯤엔 노망 아니냐, 그건?” 

 “뭐래도 좋아. 나한테 이번 생은 사랑이니까. 그거만큼 나에게 깊이 다가온 건 없었으니까, 나한텐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거라고 믿어.” 

 “잠깐만요.” 

 “뭐야, 잎새 넌 이 새벽에 누가 연락을 하는 거야?” 

 “아뇨, 디엠이 와서잠만요.” 

 “누군데? 남자야?” 

 “그렇겠지?” 

 “그렇겠지는 뭐야?” 

 “아직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 이름만 알아.” 

 “뭔데, 이름이?” 

 “! 후산이래. 글 올릴 때는 산이라고 쓰고.” 

 “뭐야, 남산? 북한산? 아니면 백두산?” 

 “어우, 정말 유치하다. 저런 아저씨가 좀 전에 데리다 형한테 유치하다고 한 거야?” 

 “잎새 누나, 어디 가?” 

 “잠깐만, 답장만 좀 하고 올게.” 

 “저거 뭐 있는 거 아냐?” 

 “그러면 우리 유치하지도 않고, 권위주의도 없으면서, 꼰대 짓도 하지 않으시는 민수, 너는? FTM 트랜스젠더 게이인 너도, 이십칠 년 후에는 고작 니가 좋아하는 데리다 형이랑 알콩달콩 잘 먹고 잘 사는 미래를 꿈꾸는 거냐?” 

 “왜 날 봐?” 

 “그럼 쟤가 누굴 보겠어? 이 상황에 레즈인 현아 누나를 보겠어, 유부남 좋아하는 나를 보겠어? 데리다 형은 참 똑똑하다가도, 가끔 한 번씩 멍청한 질문을 한단 말야?” 

 “아뇨.” 

 “……” 

 “그때에도지금과 똑같을 것 같아요. 나는 계속 기다리고기다리고또 그래도 계속 기다리면서…” 

 “미안, 미안답글을 좀 길게 다느라고아직 안 끝났지? 지금은 누구 차례야? 누가 이십칠 년 후에 다 늙은 자신에 관해 떠벌리고 있는 중인 거야?” 

 “형이랑 행복하게 사는 거난 꿈 꿀 자격도 없는 거겠죠. 형한테, 난 남자일 수 없는 거니까형이 선택하기 이전에, 형의 몸이형의 뇌가 이미 나를 거부하고 있을 테니까.” 

 “……” 

 “뭣들 하냐, 마셔! 마셔 들!” 

 

 

 

김비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