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5. 새 - 진심, 페티시즘 혹은
나에게 사랑은, 마음 이전에 생각이 먼저였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앞에 두고 나는 언제나 먼저 생각하고, 괜찮은가 다시 생각해야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 일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키가 작고 새 하얀 미소를 지닌 반장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다가가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 아이였던 내가 남자 아이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었으니, 게이인가 동성애자인가 어디선가 듣거나 보았던 그런 사람들에 나를 대입해 고민하는 시간이라도 있었을 텐데, 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그 아이에게 다가가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해버렸다. 나에게 뽀뽀해도 된다고. 내가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해도 된다고.
나는 언제나처럼 나에 관한 많은 걸 잊고 살았다. 그걸 몸이라거나 마음이라거나 성별이라거나 뭐가 됐든 나는 그 중에 어떤 건 까맣게 잊어버렸고 또 다른 걸 생생하게 인식한 채 그런 나로 자랐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하는 그런 나로, 금지된 나로.
또래 아이들의 싸움을 중재하거나 학급 회의를 이끌면서도 언제나 논리적이고 명쾌한 언변으로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 아이는, 내 고백을 듣고는 내 멱살을 끌고 화장실 건물 뒤로 끌고 가 마구 주먹질을 했다. 그의 작은 손에 피범벅이 되고 입술이 퉁퉁 부어 아팠으면서도, 내가 그렇게 울었던 건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의 감정이 무얼 가져오는지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에. 설레고 좋아했던 그 사람을, 내 마음이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알아버렸기에.
그래서 나에겐 몸이나 마음으로만 이루어진 사랑은 없다. 내 사랑과, 몸과, 마음이 모두 다른 원을 그리며 돌았다. 한 번도 겹쳐지거나 만나지 못하고, 제 갈 길만 갔다. 사랑을 버린 나를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진 않는다. 일식이나 월식처럼 그것들이 이따금 같은 일직선으로 늘어섰을 때에도 나는 곧 그것들이 어긋날 것임을 알았다. 그건 처음부터 결코 맞닿거나 함께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우주 속의 공전이었다.
내 손을, 내가 봤다. 크고 뭉툭한 손이었다. 거친 일이라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건 아닌데, 내 손은 유독 크고 거칠었다. 아무리 열심히 씻고 크림을 발라도 내 두 손은 흉터처럼 변하지 않았다. 수술이나 호르몬 치료 같은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손, 그래서 언제나 사람들 앞에 감추기 급급했던 못생기고 투박한 손.
누군가에게 그런 손을 내미는 일은 그래서 확인이었다. 당신이 만나는 지금 나는 그런 흉터를 지닌 사람이란다. 나를 만나는 것은 곧 그 흉터를 만나는 일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자기 연민이라거나 심리적 방어 기재라거나 뭐가 됐든 간에, 나에게 사랑은, 사랑이라고 불리는 몸이나 마음의 일직선은, 신비롭긴 했지만 두려움이기도 했고, 반가움이기도 했지만 비관이기도 했다.
“모르지, 그건.”
유진은 커피 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럼 넌 그게 뭐라고 생각해? 서른여섯 내 평생 그런 남자는 없었어. 하룻밤 어떻게 해볼까, 입에 바른 소릴 하며 다가왔던 치들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쭈뼛거리는 게 보통이었다고.”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세상에 없는 거라고 말해서는 곤란하지. 잊었어? 우리가 세상을 향해 매번 하던 말이었잖아?”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착각’이라거나 ‘병증’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 앞에 소리를 질렀던 건 언제나 내 쪽이었다.
“잘 생각해봐, 진심일 수도 있잖아?”
“진심?”
그러나 진심이란 말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생각의 접힌 자리가 간지러워진 느낌이었다.
“왜 웃어? 아니라고 장담하는 그 태도가 더 우스운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웃기잖아? 그런 거에 진심 어쩌고… 그냥 원 나잇 한 번 하자는 신호 같은 걸 수도 있는데, 고작 못생긴 손 만지작거렸다고 무슨 진심까지… 아유, 웃기다!”
그러나 그는 나를 따라 웃지 않았다. 굳어가는 그의 눈빛은 오히려 내 웃음 앞에 찡그린 것처럼 보였다.
“누나가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좀 실망스럽네. 나는 소외란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해. 나와 너를 구별 짓고 마는 간단한 그거 말고, 나와 나 사이에 거리감을 인식하지 못해서, 내 깊이를 내가 몰라서 알려고도 하지 않아서 끝내 가 닿지 못하는 그거… 나는 소외라는 것들 중에 그게 제일 안타까운 소외라고 생각해.”
미안한 건 아니었는데, 마음이 좀 불편했다. 부끄러웠던 건 아니었는데, 정수리가 뜨끈해지는 것이 좀 더웠다.
“잘 생각해봐. 누나가 지금까지 사람들을 만나며 계속 그런 식이었다면, 그 동안 누나가 진심이 아니라고 가벼이 치부해버렸던 사람들 중에도, 소외된 진심들이 있었을 테니까. 누나가 그토록 혐오하고 싫어했던 바로 그 경멸과 편견을, 누나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저지르며 살아왔던 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날 미루었던 ‘조만간 한 번 보자.’는 약속을 지켰던 것뿐이었고, ‘드라이브 시켜줄게.’ 약속했던 그는 자신의 말대로 자동차를 몰고 나왔을 뿐이었다. 돌풍과 폭우를 동반한 가을장마 탓에 하루 종일 비가 내려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항상 그와 만나는 시간은 즐겁고 유쾌했는데 지금은 좀 불편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일직선으로 나란히 선 것이 있었다.
“나, 갈게.”
“어디 가? 저녁 안 먹을 거야? 저녁 먹고 들어가. 내가 살게.”
“다음에. 날씨 좋을 때, 다음에.”
그는 장난처럼 손을 들어 보이고는 카페 문을 열고 나섰다. 열린 문틈으로 빗방울들이 앞 다퉈 카페 문에 매달렸다. 그러고도 여러 번 스프링이 달린 문은 들고 나며 사선으로 뛰어드는 빗방울을 안 쪽으로 품어 안았다. 물론 건조했던 실내의 공기 탓에 물 자국들은 금세 말라버렸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창원에 살던 사람이었다. 여자를 사귀어본 적 있기는 하지만 트랜스젠더에게 느끼는 떨림이 달랐다고 말하는 그에 대해, 나는 사람들 앞에서 조롱하며 그를 비난했다. 저속한 호기심에 불과한 게 아니면 그게 뭐겠느냐고 데리다 카페 식구들에게 이죽거리면서도 나는 일말의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조차 떠올릴 줄 몰랐다. 그 후로도 그는 여러 번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기도 했고, 수화기에 대고 사랑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너무 오글거려 잠자코 듣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러 번 몸을 배배 꼬았고, 또 데리다 식구들한테 이야깃거리 하나 생겼다고 킥킥댄 게 전부였다. 노래를 끝까지 다 부르고 나서 그는 울먹이듯 사랑한다고 말했고, 물론 나는 전화를 끊고서 혀를 죽 내밀며 몸서리를 치고 말았다.
순천에 살던 또 다른 남자는 술이 잔뜩 취한 목소리로 자신은 자신과 꼭 닮은 아이와 사우나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이미 두어 달 가량 연애의 감정으로 만나며 이번엔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구나 설레었던 나는, 둔기로 얻어맞은 것만 같은 충격에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 당신의 꿈을 이루어 줄 수 없는 나 따위에게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냐고, 나는 악악 비명만 질러댔다.
그는 다음 날 그 멀리서 집까지 찾아오기도 했고 밤새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기도 했다.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 했고 메일을 보내고 또 보내면서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오래도록 자신이 지켜왔던 꿈까지 뒤흔들 정도로, 나를 향한 사랑의 감정은 그렇게 진심이었노라고.
물론 나는 그때에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떠벌리는’ 남자들의 한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야유했다. 짓밟힌 내 감정의 선뜩함은 고함치며 까발렸으면서도, 사랑과 현실 앞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그들의 마음 같은 건 헤아리려 들지 않았다.
‘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도 매일 내게 전화했다. 전화를 해서 특이할 것 없는 자신의 일상을 세세히 말해주었다. 우울증 때문에 오래도록 고생했는데, 이번에 다시 직업 교육원에 등록해 강의를 들을 생각이라고 했고, 자신이 그동안 만났던 여자들에 관해서도 말해주었다. 관계나 책임의 두려움에 관해 말하면서도 좋은 사람 곁에 같이 있고 싶다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내비췄다. 스물아홉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고, 그 흔한 대학교 졸업장 대신 오래도록 정신과 치료를 받은 병력 증명서뿐인 그런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했다.
너무도 조심스럽고 가뭇없이 떨리는 목소리여서 나약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의 마음이나 생각을 먼저 떠올리지 않고, 그쪽 건너편에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려고 하면서. 이번에는 나의 삶처럼 그렇게 소외되는 진심이 여기 이쪽에도 그쪽에도 없기를 바라면서.
어느새 새벽이 하품처럼 몰려왔다. 전화를 끊으면서 그는 ‘잘 자요.’ 말했다. 그러나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진심이란 불이 아니라 물인가, 내 기억은 깨끗이 씻겨 뽀송뽀송 말라가고 있었다.
“어서 와요, 많이 피곤했죠?”
부산행 버스에서 내려서는 내게 다가와 그는 가방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 손을 끌어 잡았다. 나와 같은 버스에 탔던 승객들이 흘끔거리며 지나갔고 그들의 짐을 꺼내주던 버스 기사가 의미 없는 헛기침을 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더 힘을 주어 그는 내 손을 붙잡았고 터미널 대합실을 나와 같이 나란히 걸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양산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니 분명 면식이 있는 사람들을 마주칠 텐데, 그는 관심도 없는 듯했다. 그들이 보기엔 남자처럼 보이는 누군가와 손을 잡고 가는 자신을 기억할 텐데, 그는 한 사람만 바라보는 눈을 가진 것 같았다. 양산에 내려 중심가에 자리한 음식점에 들어가서도 그는 내게 맛이 괜찮으냐고 물었을 뿐, 건너편 탁자에 우리를 흘끔거리던 사람들의 불편한 기색 같은 것 신경 쓰지 않았다. 공단이 많은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걸으면서도, 가족들과 아이들이 모여 앉은 토요일 오후의 양산 천변에 앉아서도, 그는 오직 나만 생각하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사랑이란 어떤 걸까. 사랑이란 원래 집착의 다른 이름이기도 할 텐데,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지켜내고 그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그 마음은 분명 집착일 텐데,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그토록 깊은 뿌리를 내렸던 걸까.
나는 쉴 새 없이 말하는 그를 본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 관해 말하는 그를 본다. 잔잔한 미소만 입가에 머금은 채 오직 나만 바라보는 그를 본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오늘 오래도록 그를 보았구나.
내 얼굴에 둥실 뜬 미소를 보았는지, 그의 미소가 허물어져 대책 없는 웃음으로 터진다. 어느새 나도 그를 따라 웃는다. 겹쳐지지 않고, 어긋나지 않고, 오늘 우리는 일직선으로 나란했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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