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잎새 - 진심, 페티시즘 혹은 




  나의 사랑에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랬다. 내게 사랑은 언제나 감정 이전에 생각이 먼저였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앞에 두고 나는 언제부턴가 생각하고 다시 또 생각해야했다. 

  아마도 오래 전에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키가 작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반장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나는 겁도 없이 그에게 다가가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 아이였던 내가 남자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으니 망설이거나 당혹스러워할 법도 했을 텐데,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에게 찾아가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털어놓았다. 어쩌면 나는 남자 혹은 여자라는 생각 이전에 생전 처음 느껴본 '떨림'이라는 감정에 온통 나를 빼앗겨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나는 내가 남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건지도. 

  또래 아이들의 싸움을 중재하거나 학급회의를 주제하면서도 언제나 논리적이고 명쾌한 언변으로 여자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그 아이는, 나의 고백을 듣고는 내 멱살을 붙들고 화장실 건물 뒤로 끌고 가 마구 주먹질을 해댔다. 그의 작은 손에 얼굴이 피범벅이 되고 입술이 퉁퉁 부어 아팠으면서도, 내가 그렇게 울었던 건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나의 감정이, 그를 그토록 완벽하게 변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도 슬펐다. 내 마음 속에 소중하게 간직한 그 사람이, 바로 나의 감정으로 인해 그렇게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다는 깨달음. 나의 사랑이나 애정은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가 닿지 못하고 그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은 어리고 순수했던 마음을 단번에 유린하는 충격이었다. 

  그래서 내겐 사랑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망설이고 주춤거리는 것은, 나를 지키는 일이었고 또한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었던 것 같다. 사랑을 버린 것을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것과, 나의 존재와, 나의 고독은, 모두 다른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일식이나 월식처럼 그것이 이따금씩 같은 일직선으로 늘어섰다가 다시 자신의 궤도를 그리며 멀어져가는 것일 뿐, 처음부터 그건 결코 맞닿거나 함께할 수 없는 다른 우주 속의 공전이었다. 

  손을 내려 봤다. 크고 뭉툭한 손이었다. 거친 일이라도 하면서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 손은 유독 거칠고 두터웠다. 아무리 열심히 씻고 크림을 발라도 흉터처럼 내 두 손은 변하지 않았다. 수술이나 호르몬 치료 같은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손, 그래서 언제나 사람들 앞에 감추기 급급했던 못생기고 투박한 손. 

  사람들에게 그런 손을 내미는 것은 그래서 확인이었다. 네가 만나고 있는 나는 그런 흉터를 지닌 사람이란다, 너를 만나고 있는 나는 그런 흉터를 잊지 말아야하는 거란다. 사랑은 그렇게 그에게, 또 나에게 거추장스럽고 복잡한 절차였다. 


  그런데 그는 왜 내 손을 잡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다못해 확인하고 생각해야할 감정조차, 나는 그 사람에겐 갖지 못했다. 사람이 참 선하게 생겼구나, 커다란 덩치기는 했지만 두 눈에서 비추는 순박함이 내게 있을지도 모르는 모성적 감성을 자극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의 손에 먼저 눈이 갔던 건 볼썽사나운 자학의 습성이었고, 하다못해 그를 확인하고 나를 확인시키려는 생각도 없이 그저 호기심이었다. 얄팍한 생각으로 그의 손을 끌어다가 내 손 위에 얹었던 것뿐이었는데. 

  내 손을 잡던 느낌은 어땠을까. 나무토막처럼 만져져 영락없이 오랜만에 만난 동성 친구의 것처럼 느껴졌을 텐데. 그는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한참이나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어설프게 그러쥔 것이 아니라 꼭 움켜쥔 손마디가 너무도 단단해서 아플 지경이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더 커다란 그의 손 안에서 내 손은 자그마한 애들 것처럼 이리저리 만져지고 있었고. 


  그렇다면 그건 그저, 남들과는 다른 페티시적 취향일 뿐인가? 



  "모르지, 그건." 

  유진은 커피 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럼 뭐야? 그런 남자는 없었다고. 서른 여섯 내 평생 그런 남자는 세상에 없었어. 하룻밤 어떻게 해볼까, 입에 바른 소리로 다가왔던 놈들도 사람들 앞에서는 모르는 사람처럼 쭈뼛거리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세상에 없는 거라고 말해서는 곤란하지. 그건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향해 투덜거렸던 똑같은 이야기라고. 잊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착각'이라거나 '병증'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 앞에 소리를 질렀던 것은 언제나 나였다. 

  "잘 생각해봐, 진심일 수도 있잖아?" 

  "진심?" 

  그러나 진심이라는 그의 말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왜 웃어? 아닌 것 같애?" 

  "아니, 그게 아니라… 웃기잖아? 그런 거에 진심 어쩌고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슨 진심까지 가져다 붙이니? 고작 못생긴 손 만지작거렸다고 무슨 진심까지… 아유, 웃겨!" 

  그러나 그는 나를 따라 웃지 않았다. 더욱 굳어만 가는 그의 눈빛은 내 웃음 앞에 오히려 찡그린 것처럼 보였다. 

  "누나가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좀 실망스럽네." 

  어느새 내 얼굴에 번졌던 웃음도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나는 소외란 그런 거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이나 생각, 그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에 더 슬프고 안쓰러울 수밖에 없는 그런 거… 정작 자신이 소외당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소외를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만 손가락질하는, 그래서 더 안타깝고 속상한 그런 거 말이야." 

  미안한 건 아니었는데 마음이 좀 불편했다. 부끄러웠던 건 아니었는데 정수리가 뜨끈해지는 것이 좀 더웠다. 

  "잘 생각해봐. 누나가 지금까지 계속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거라면 그 동안 누나가 진심이 아니라고 가벼이 치부해버렸던 사람들 중에도, 소외된 진심들이 있었을 테니까. 누나가 그토록 혐오하고 싫어했던 바로 그 경멸과 편견을, 누나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저지르며 살아왔던 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날 미루었던 '조만간 한 번 보자.'는 약속을 지켰던 것이었고, '드라이브 시켜줄게.' 약속했던 그는 자신의 말대로 자동차를 몰고 나왔던 것뿐이었다. 돌풍과 폭우를 동반한 가을장마 탓에 하루 종일 비가 내려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그와 만나는 시간은 즐겁고 유쾌했는데, 지금은 어쩐지 좀 불편해졌다. 그 이유가 무언지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불편한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 갈래." 

  "어디 가? 더 있다가 가. 저녁 안 먹을 거야? 저녁 먹고 들어가. 내가 사줄게." 

  "다음에. 날씨 좋을 때, 다음에." 

  그는 대충 손을 들어보이고는 카페 문을 열고 나갔다. 열린 문틈으로 거세진 빗방울들이 앞 다투어 카페 문에 매달렸다. 그러고도 여러 번 스프링이 달린 문은 들고 나며 사선으로 뛰어드는 빗방울들을 안쪽으로 품어 안았다. 물론 건조했던 실내의 공기 탓에 검은 물 자국들은 금세 말라버렸고.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했던 남자들이 있었다. 그는 창원에 살던 사람이었다. 여자를 사귀어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트랜스젠더에게 느끼는 떨림이 달랐다고 말하는 그에 대해,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마구 비난했다. 저속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놈이라고 데리다 카페 식구들에게 침을 튀겨가며 말하면서도 나는 일말의 죄책감이나 부끄러움도 갖지 않았다. 그 후로도 그는 여러 번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기도 했고, 수화기에 대고 사랑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너무 오글거려 잠자코 듣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러 번 몸을 배배 꼬았고, 노래를 부르고 나서 그는 울먹이듯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물론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혀를 죽 내밀며 몸서리를 쳤었고. 

  순천에 살던 또 다른 남자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자신은 자신을 꼭 닮은 아이와 사우나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이미 두어 달 가량 연애의 감정으로 만나며 이 번 만큼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구나 설레었던 나는,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 당신의 꿈을 이루어줄 수 없는 나 따위에게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다음 날 그 멀리서 집까지 찾아오기도 했고 밤새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기도 했다.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했고 메일을 보내고 또 보내면서 내게 용서를 구했다. 오래도록 자신이 지켜왔던 꿈까지 뒤흔들 정도로, 나를 향한 사랑의 감정은 그렇게 진심이었노라고. 

  물론 나는 그 때에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떠벌리는' 남자들의 한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야유했다. 짓밟힌 내 감정의 선뜩함은 고함치며 까발렸으면서도, 사랑과 현실 앞에 고민하고 망설였을 그들의 마음 같은 건 헤아리려 들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 따위 집착이 진심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도 매일 내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해서 특이할 것 없는 자신의 일상을 세세히 말해주었다. 우울증 때문에 오래도록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 다시 직업 교육원에 동록을 해 강의를 들을 생각이라고 말했고, 자신이 그 동안 만났던 여자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관계나 책임의 두려움에 관해 말하면서도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내비췄다. 서른이 될 때까지 아무 것도 이루어놓은 것이 없고, 그 흔한 대학교 졸업장 대신 오래도록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 병력을 가지고 있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했다. 

  너무도 조심스럽고 가뭇없이 떨리는 목소리여서 그는 어쩐지 나약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의 마음이나 생각을 먼저 떠올리지 않고, 그의 이야기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면서. 페티시즘이라고 치부해버린 어떤 집착이 아니라 그가 전하려는 진심을 읽으려고 애를 쓰면서. 이번에는 나의 삶처럼 그렇게 소외되는 진심이 없기를 바라면서. 

  어느새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전화를 끊으면서 그는 '잘 자요.' 말했다. 그러나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진심이란 것이 어떤 물인지, 내 기억은 깨끗이 씻겨 뽀송뽀송 말라가고 있었다. 


  "어서 와요, 많이 피곤했죠?" 

  버스에서 내려서는 내게 다가와 그는 가방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망설임도 없이 내 손을 끌어 잡았다. 나와 같이 버스에서 내렸던 승객들이 흘끔거리며 지나갔고 그들의 짐을 꺼내주던 버스 운전사가 헛기침을 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더욱 힘을 주어 그는 내 손을 붙잡았고 터미널 대합실을 나와 함께 나란히 걸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양산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니 분명히 면식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아무런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엔 남자처럼 보이는 누군가와 손을 잡고 가는 자신을 기억할 텐데, 그는 나 한 사람만 바라보는 눈을 가진 듯했다. 양산에 내려서 시내 한 복판의 식당에 들어가서도 그는 내게 물을 떠주며 음식이 괜찮으냐고 물었을 뿐, 건너편 탁자에서 우리들을 흘끔거리던 사람들의 불편한 기색 같은 것 관심 밖이었다. 공단이 많은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시내를 걸으면서도, 사람들이 순박하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가족들과 아이들이 모여 앉은 토요일 오후의 양산 천변에 앉아서도, 그는 나만 생각하고 또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다른 사람들처럼 그에게도 사랑이란 집착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나는 자꾸 낯설어졌다.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것이었으면서도 자꾸 설명하지 못하는 난해함들이 머릿속에 가득찼다. 그토록 증오하고 혐오하던 페티시즘에 매달려 있던 건 나였고, 사랑이라는 진심만을 생각하고 있던 건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는 쉴 새 없이 즐겁게 말하는 그의 눈을 바라본다. 어지럽게 뒤엉킨 생각들을 내려놓고, 생전 처음 조심스럽게 그를 따라 나를 그려본다. 어떤 가공된 집착이나 생각도 없이 나는 마음껏 어긋나고 흔들리며 이리저리 흩어진다. 흩어지며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나 

  단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진심의 문양이었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