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산 - 괜찮아, 동그랗지 않아도 




  나는 비어 있었다. 구멍이 난 봉지, 찢겨진 상자, 깨진 유리창.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는 오래도록 텅 비었다. 구멍이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비어있는 나를 채우려고만 했고, 새어나가는 것들 때문에 불안하고 조바심 났다. 스물 네 시간 나를 지배하는 내 안에는 균열이 있었다. 비어있던 어딘가가 자주 손끝에 만져졌다. 볼록 튀어나온 것이거나 날카롭게 깨어진 것이거나. 너덜거리는 것이거나 지저분한 것이거나. 손끝에 만져지는 그것을 통해 내 삶이 빨려나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더욱 두려웠던 것은, 그 벌어진 틈이 자꾸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틈을 메우려는 몸부림이 무의미하다는 깨달음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완결된 구(球)가 아니었다. 그리다가 만, 곡선이었다.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모든 건 슬며시 새어나가 버리며, 아무리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구르려고 애를 써 봐도 절대 그들과 똑같이 구를 수 없었다. 반드시 엉뚱한 곳에 도착해 바보처럼 혼자 내동댕이쳐진 나 자신을 만날 수밖에 없는. 

  곁을 보았다. 벌거벗은 그녀는 이불 속에 잠들어 있었다. 문득 그녀의 곡선이 궁금했다. 어디서부터 얼마큼이나 끊어졌는지, 그 속으로 무엇이 새어나갔던 건지. 나처럼 똑같이 구르지 못하고 매번 엉뚱한 곳으로 돌아누워야 했다면, 그녀와 나는 어떻게 이렇게 같은 지점에서 만나 나란히 누울 수 있게 되었던 건지. 서로 맞닿은 비완결성의 오류는 어떤 의미였는지. 

  손을 들었다. 잡티가 엉겨있는 그녀의 볼에 손등을 가져다댔다. 잠 속에서 그녀가 숨을 들이 쉴 때마다 손등에 닿은 온기도 어디론가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부러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녀처럼 숨 쉬고 있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게. 

  "자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던 걸까? 눈을 떠보니 내 손등 아래서 숨을 쉬고 있던 그녀가 게슴츠레 나를 보고 있었다. 

  "아뇨, 그냥 흉내 내 봤어요. 그쪽 자는 거." 

  그녀가 웃었다. 나도 같이 웃었다. 

  "잘 잤어요?" 

  그렇다고 말하는 대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서 손을 떼려고 하자 그녀가 내 손을 붙들어 입김을 훅 불어넣었다. 아니다. 입김을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내 손의 온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내 손의 뜨거움이 그녀의 온 얼굴에 번지고 있었다. 

  "손이 크니까 참 좋네. 덕분에 내 손도 작아지고, 내 얼굴도 작아지고." 

  장난이라도 치듯 손을 쫙 펴서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댔다. 그녀의 얼굴은 길쭉하거나 네모났다기보다는 동그래서, 내 손의 손가락 끝을 이어그린 것 같았다. 

  "다르진… 않았어요?" 

  내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그녀가 웅웅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망설였다.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다. 내게는 분명 특별하고 다른 존재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어쩌면 그것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망설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르지 않았어요." 

  "다행이다." 

  내 손바닥 속에 훅 안도의 숨이 쏟아졌는데, 어찌나 뜨거운지 온통 물기로 엉겼다. 나에게도 다행이었다. 특별하고 다르다는 말이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으니, 오히려 그건 내게 더욱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를 끌어안았다. 내 품 속에서 그녀의 온기는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시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며 내 쪽으로 옮겨왔다. 완결되지 않아 서로 끊어진 채로, 혹은 구멍이 나거나 찢겨 너덜거리거나 깨져 텅 비어버린 채로, 우리는 그렇게 하나로 엉겼다. 서로가 동그랗게 이어진 곡선이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완결. 저마다 완벽하게 채워진 가득함이었다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을 충만.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을 듯했다. 비어지고 깨어진 미완의 완결성을. 


  우린 부산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그녀의 손을 잡을 때마다 그녀가 나를 빤히 올려봤는데, 나는 그 때마다 엉성하게 웃어주었다. 그녀의 두 눈 속엔 너무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지만 나는 장난스럽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그녀도 끊어진 곡선의 어딘가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그 속으로 새어나갔을 어떤 것, 그리고 신기하게 이어진 완벽한 미완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괜찮다.' 말하듯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녀가 말하지 않은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물론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괜찮다.' 

  손을 잡은 채 나란히 앉아 우리는 지하철 유리창 밖으로 지나가는 부산 도심의 풍경들을 함께 바라봤다.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분주한 일요일 오후의 서면 거리를 걸었고,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한 번 손의 크기를 재어보기도 했고, 아무 말 없이 그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녀의 표정은 유난히 우울해보였는데, 그 때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쥔 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 그녀는 나를 올려보았고, 내 눈을 보며 웃었다. '괜찮다'는 말처럼 들렸다. 자신이 어떤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더라도 지금은 괜찮다고. 또 한 번 그게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괜찮다.' 

  헤어질 시간은 고속으로 우리 앞에 달려왔다. 헤어진다고 우리의 시간이 끝나는 것은 아닐 텐데, 그녀의 손을 놓기가 싫었다. 그래서 자꾸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그녀도 그 때마다 내 얼굴을 마주보았다. 시내버스가 터미널에 다다르고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버스가 승강장에 다가왔고 문을 열어 사람들을 태우는데도, 그녀는 내 곁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잡은 손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그녀는 노래라도 부를 듯했다. 

  "갈게요." 

  그녀가 말했다. 

  "다음 주에 봐요." 

  내가 말했다. 그녀가 커다랗게 숨을 내쉬더니, 내 품에 꼭 안겼다. 어색하고 신기한 떨림이 쏟아지듯 온 몸에 번져갔다. 좌석에 앉아서 그녀가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었고 나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천천히 버스가 움직였고 그녀는 다시 또 손을 흔들었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아, 참! 사랑한다고 말해야하는데. 그제야 하지 못했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 못한 말 때문에 흔들고 있는 내 손은 조급해졌는데,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다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의 생각 속 말은 들을 수 없었지만 이번에도 그건 '괜찮다'는 말처럼 들렸다. 물론 이번에도 역시 내 생각이 틀렸더라도, 나는 단연코 '괜찮다.' 


  삶이라는 시간에게 칭찬이라도 받은 듯했다. 삶이라는 것이 지금 내게 손을 내밀고 있는 거라면, 그 느낌은 따스하고 부드럽거나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울 것 같았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다가 아버지와 살고 있는 네 살 위의 형을 만났다. 형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하고 아버지가 돈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두 사람은 가족이나 동업자였고 투자자이자 부자지간이었다. 건물 모퉁이에서 담뱃불을 입에 물고 있던 그는 나를 보자 대뜸 소리를 질렀다. 왜 밤늦게 다니느냐, 엄마를 집에 혼자 내버려두지 말라지 않았느냐, 이제는 네가 엄마를 보살펴야할 나이가 아니냐, 질문도 충고도 아닌 그의 말은 서로 다른 높낮이로 내 앞에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알지 못한다. 그의 물음에는 해답이 없었다. 언제나 내가 하는 말은 틀린 답이었다. 볼썽사납게 고개만 숙이고 있는 내 어깨 위로 그녀의 목소리가 슬그머니 포개졌다. '괜찮다. 괜찮다.' 멀리 어디선가 그녀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직장은 구했느냐고 그는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직업 교육원에 등록은 했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건 ‘아니’라는 대답이 아니라 ‘아직’이라는 대답이었는데, 그는 길을 가로막은 불량배처럼 건들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엉뚱한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니면 정신 병원에 처넣어버리겠다고 말하는 그의 속삭임은 언제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항상 위압적이었던 그의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는데, 오늘은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사는 게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엄마는 널 자유롭게 키운다고 그렇게 내버려뒀는지 모르지만, 나나 아버지 같았으면 너 그렇게 가만히 안 둬. 그게 너를 위한 거냐? 그래서 네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올 해 안으로 직장 잡지 못하고 이 대로면 너 원양어선 태워서 바다로 내쫓아버릴 테니까! 알아들어!" 

  그래,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다. 형이라는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아버지와 형에게 붙들려 머리가 깎여 철원의 군부대로 끌려갔던 때에도 그랬다. 몸부림을 치는 나를 짓누르며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한 일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물론 나는 얼마 되지 않는 군 복무 기간 동안, 자학과 우울감에 짓눌려 정신과와 각종 캠프를 들락거리다가 현역 복무 불가 판정을 받아 공익으로 간신히 복무를 마쳐야했다. 그것은 내게 당연히 또 다른 낙인이 되었고. 

  "산다는 거, 그건 싸워서 내 걸로 만드는 거야. 어떻게든 다른 놈들을 짓밟고 올라서서, 있는 힘을 다 해 몸부림을 쳐야만 간신히 내 손 안에 들어오는 게… 그게 성공이고 삶이라는 거라고! 알겠냐고, 이 자식아!" 

  주먹질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치열하고 필사적으로 살아. 하루하루를 투쟁하듯 싸워내라고!" 

  투사 같은 몸짓으로 그는 어깨를 활짝 펴며 내 곁을 지나쳐갔다. 반듯한 양복을 입은 그의 뒷모습은 번쩍거리는 갑옷이라도 두른 것 같았다. 힘차게 손을 뻗어 택시를 잡아타는 몸짓은 진군을 외치는 장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투사의 삶을 살지 못해도, 그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성공적인 삶이라는 것을 거머쥐지 못하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싶었다. 여전히 내 삶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깨져 나가고 있거나 단발의 파열음으로 찢겨나가고 있더라도, 오늘은 모든 것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다. 


오늘 만큼은 그 모든 것들이, 나는 '괜찮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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