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데리다 - 세계, 호출하는




"비가 오면 이소라가 생각나지 않아?" 

  "나 같아도 좀 섭섭했겠는데, 뭘." 

  "누나, 누나. 비오면 이소라 노래 생각나지 않느냐고? '제발' 부르면서 울먹이는 그 언니 모습이 아직도 선해. ‘이소라의 프로포즈’할 때, 그 때 그 언니 그 노래 부르면서 자꾸 눈물 나서 못 하겠다고 무대에서 여러 번 내려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되었던 적 있었잖아. 기억 나?" 

  "그래,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사람은 아직 잘 모르니까. 이성애자니까 자기도 모르는 편견이 숨어있을 수도 있고, 유진이는 학교 선생이고 그 사람은 아직 직장도 없다면서? 그러면 자격지심까지 더해졌을 수도 있지." 

  "그건 말 그대로 자격지심 아니에요? 그런 걸 가진 사람이 잘못인 거지, 그것까지 헤아려야한다는 건 좀 그래요. 그 쪽이 우리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왜 우리가 그쪽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거냐고요? 그건 공평하지 않아요." 

  "용호, 쟤 또 까칠하게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 어려서 세상 빡빡하게 살아가는 일이 가장 옳은 일이라고 생각할 때지. 내가 어떻게든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내 생각이 가장 옳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때. 어려, 아직 어려." 

  "형이야말로 어른스럽지 못한 거죠. 틀린 건 틀렸다,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 먼저 나서서 그런 이야기들을 해줘야 어른 대접을 받을만하지 않은 거냐고요? 어떤 애들이 비겁하고 숨어살기 급급한 그런 어른들을 바라보며 살고 싶냐고요? 아이들을 마주보고 가르칠 자신이 없으면 뒷모습이라도 떳떳해야죠. 안 그래요?"  

  "이소라 말이야, 그 때 왜 그렇게 울었을까?" 

  "이 년, 너 자꾸 헛소리 할래? 지금 심각한 이야기하는데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난 비겁하게는 안 살 거예요." 

  "그래서 넌 바이냐? 그게 그렇게 떳떳한 거야?" 

  "부끄러울 건 뭐 있어요? 이성애자입네 하면서 장난이라는 핑계로 동성애자들 추행하고 다니는 인간들이나, 동성애자입네 말하면서 이성에게 끌리는 마음을 슬쩍 뒤로 감추는 그런 비겁함이나, 최소한 그런 인간들보다는 난 떳떳하다고요." 

  "그건 신념의 문제지. 스스로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지켜나가는 신념의 문제라고 생각해야하는 거지, 그걸 비겁하다고 매도할 건 아니지 않냐?" 

  "그건 신념이 아니라 고집이나 아집이죠. 신념은 자기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시작된 믿음이 신념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가르침 받거나 훈련 받거나 인도되는 건, 그건 신념이 아니죠. 있는 그대로 모든 걸 믿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신념은 아니죠. 아무리 그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도덕이니 선이니, 희망이니 구원이니 그런 것과 맞닿아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흔들림이나 혼란을 무시한다면 그건 또 다른 폭력적 이데올로기죠." 

  "그만, 그만! 너희들은 만나기만 하면 그러냐?" 

  "저 쪼그만 게 자꾸 버릇없게 굴잖아요? 저 놈 중학생 때, 처음 봤을 때부터 저 놈은 원래 저랬어요." 

  "저 이제 작지 않아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생각도 할 만큼 하고 산다고요. 형이 매번 나를 무시하니까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잖아요?" 

  "맞아요, 형은 나이 먹은 걸 너무 권력화 하는 경향이 있어요. 지나온 그 시간들의 크기를 알긴 알겠는데, 인간이 꼭 시간에 비례해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형은 데리다 형하고 세 살 밖에 차이 안 나는데, 생각하는 거 보면 적어도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잖아요?" 

  "저거까지 정말?"  

  "이소라는 가끔 그 때 그 일을 생각할까? 그 때 흘렸던 눈물 말이야. 그 큰 무대에서 울 수밖에 없었던 그 때 그 마음 말이야." 

  "형, 얘 집에 보네. 이건 다들 이야기하는데, 왜 자꾸 헛소리를 찍찍하고 앉았어? 혼자 헛소리를 할 거면 저기 다른 테이블에 가 앉아 창밖이나 보고 중얼거리던가, 왜 여기에 턱을 디밀고 꼬박꼬박 듣지도 않는 이야기를 떠벌리는 거냐고! 안성준, 너 저리 안 가!" 

  "그만해, 오빠. 오늘 잎새 기분 안 좋아서 다들 모였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좀 조용히 잎새 이야기를 들어 줍시다, 응?" 

  "아, 이 자식들이 사람 열 받게 하잖아? 어린 것들이 똘똘 뭉쳐서는 바락바락 대드는 게 얼마나 사람 속을 긁냐고? 이쪽에는 무슨 아래 위도 없어야하는 거야, 뭐야? 저 봐, 저 봐! 저것들 또 한 마디 할 기세잖아?" 

  "됐어, 그만해! 이제 너희들 또 다시 한 마디 하면, 성준이 쟤가 아니라 너희를 내쫓아버릴 테니까, 알았어?" 

  "참 내, 내가 저것들 꼴 보기 싫어서 이 모임을 그만두던지 해야지 원." 

  "그래서, 아예 연락을 안 해?" 

  "아니에요, 하긴 하는데 서로 그 이야기는 안 하죠. 예전보다는 확실히 좀 서먹해지고 불편해진 것 같고." 

  "너는 어떤데? 네 마음은 어떤 거야?" 

  "난 좀 답답해요. 아무리 설명을 하고 또 해도 내 마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기자들이나 이쪽 사람들이나… 그 때처럼 마음이 답답하다는 게 싫어요. 그런 똑같은 기분을,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까지 느껴야한다는 게……." 

  "뭐야, 너는 그 남자를 좋아하긴 하는 거야, 뭐야?" 

  "좋아요, 좋긴 좋은데… 분명히 이전에 만났던 남자들과는 다른 느낌이었고, 온전히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맙고 그랬는데…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뭐야, 안 잤어?" 

  "형은 꼭 자야 되요?" 

  "그럼 자지도 않고 어떻게 사랑이 돼?" 

  "나. 나는 아직 못 잤다. 그렇지만 분명하다, 사랑." 

  "너는 걔가 불감증이라면서? 그래서 못 잔 거라면서? 그거랑 똑같나?" 

  "나도 사랑 맞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유진이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거고." 

  "넌, 유진이 걔랑 좀 엔간히 붙어 다녀. 아무리 게이하고 트랜스 사이라지만, 너희들 다른 사람들은 다 연인 사이라고 생각할 거 아냐? 같이 잠 만 안 잤지, 연인들 하는 거 다 하고 다녔을 거 아니냐고? 너희들 혹시 잠도 잔 거 아냐, 이거?" 

  "말을 해도 넌……." 

  "아야야, 형은 솔직히 쟤네들 수상하지 않아요? 난 수상해. 유진이 그 놈, 이쪽 보통 게이들하고는 좀 달라 보이는 게 사실이거든. 내가 수상하게 느껴질 정돈데, 쟤 남자친구는 얼마나 속이 썩었겠느냐고?" 

  "데리다 형, 이소라 노래 틀까?" 

  "믿어. 그 사람이 흔들린다고 너도 흔들리지 말고, 네 마음이 그렇다면 믿는 거야. 그 사람의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졌다면, 그 진심을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믿어. 믿는 거야." 

  "이소라 노래 중에도 믿음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거 틀까?" 

  "저 자식은 정말? 야! 너 집에 가!" 

  "그래요, 이소라 목소리 나도 듣고 싶네. 제가 틀까요?" 

  "그래, 네가 가서 틀어. 이소라 3집, 첫 번째 트랙." 

  "나는 '처음 느낌 그대로'!" 

  "이것들이 아주 잘들 노네." 

  "그래, 나도 이소라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정말 잘 어울리지, 그 목소리." 

  "그럼 오늘은 이소라 앨범을 죽 들으며 와인이나 한 잔 하자." 

  "오 예, 와인! 우리 데리다 형 최고!" 

  "어머머, 나 울어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이해해줘, 다들?" 

  "지랄을 한다, 지랄을."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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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31 01:12 신고 [Edit/Del] [Reply]
    빨리 다음화 보고싶어요~ 너무 재미있네요!
  2. 2015.11.18 01:13 신고 [Edit/Del] [Reply]
    뎃글 쓸수 있네?! 하...너무 재미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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