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 괴물, and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다.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는 나에게, 아무 것도 결정하거나 해내지 못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망설이지도 않고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런 너에게, 미래는 없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종말이나 죽음은 미래의 종언이 아니다. 종말은 기껏해야 이 우주 속 지구라는 별 하나에 해당하는 지극히 개별적인 시간의 이름일 뿐이다. 죽음은 그 지구라는 별 속에 수십 억 인구들 중 단 하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개인적 시간의 마지막 이름이다. 종말이나 죽음을 맞이한 그들을 제외하고, 또 다시 미래는 냉혹한 모습으로 시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미래는 한 개인에 의해서, 한 세계에 의해서 좌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곳에 내가 있든 없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미래는 변함없이 누군가를 어떤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나는 두렵고 무서웠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손가락질 한 번으로 나는 인간이 아닌 괴 생명체가 되어버린 듯했다. 미래가 없는 미지의 생물체, 시간을 잃어버린 어리석고 투미한 괴생물체. 마구 난도질되는 나의 미래를 들으면서 나는 겁에 질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필요 없는 건데, 그들이 떠벌린 것이 나의 미래는 아니었던 건데, 나는 바보처럼 자꾸 움츠러들고 말았다. 그들에게서 도망치고 나에게서 도망치며, 나는 언제나 제일 어둡고 축축한 구석에서 서성거리고만 있었다.

  그녀를 사랑했던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통의 인간들과는 다른 괴 생명체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미래가 없는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으면서도, 어디로도 도망치거나 숨어들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의 책을 찾았던 것은. 괴물이라거나 변종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오히려 더욱 가슴을 활짝 펴며 스스로의 현재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미래가 없다. 꿈이 없으며,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꾸 나를 옥죄어오는 현재가 느껴지지만, 이것이 나의 미래를 증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무엇으로든 미래 속에 있을 것이며, 얼굴을 바꾸며 다가온 미래가 두려워 벌벌 떨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 사랑으로 인해

  아픈 미래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녀는 오늘 여동생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가족을 버렸다고 말했으면서, 휴대폰 건너편에서 그녀는 오래도록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가족을 버렸다고 말했었는데, 그녀는 여동생 이야기를 하며 여러 번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실망스러웠다. 내가 믿고 사랑했던 것은 누구에게든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녀였는데,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괴물인 스스로의 모습을 떳떳하게 드러내면서도 미래가 없는 삶에 대한 그녀의 용기를 나는 사랑했던 건데, 믿고 있던 시간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도무지 지워지지 않던 질투심 위에 포개져 그건 더욱 아프게 만져졌다.

  "자니?"

  대답을 하지도 않았는데, 흔들린 문이 끼익 열렸다. 침대에 누운 나를 보자 엄마의 낯빛은 금세 어두워졌다. 그녀는 더 이상 내게 미래에 관해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녀가 오히려 싫었다.

  "약은 먹었니?"

  이번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익숙하게 서랍을 뒤져 약봉지를 꺼냈다. 약을 뜯으면서 책상 위에 물병을 집어 들었다.

  "약은 거르지 마라. 의사 선생님이 지금 네가 이 정도로 좋아진 것도 다 이 약 덕분이라고 그러시더라. 거기 약이 특히 우울증 환자들에게 상당히 잘 듣는대."

  거짓말이다, 모두 다 거짓말이다. 거짓으로 뭉쳐진 이 시간들을 나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거기 두고 가세요."

  ", 지금 먹지?"

  "두고 가세요!"

  미래를 말하지 못하는 그녀는 더 이상 채근하지 못했다. 그녀의 손바닥에 알약 다섯 개는 보는 것만으로도 역겹고 썼다. 제일 작은 분홍색 알약 하나는 번들거리는 놀림 같았다.

  "만났었다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듣기 싫었다. 말하기도 싫었다. 가족이란 전단지 위에나 존재하는 것일 뿐, 미래 따위 제멋대로 난도질하며 현재마저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바로 내 가족의 실체였다.

  "형이 뭐라 그래도 신경 쓰지 마라. 걔는 너랑 워낙 다른 애니까 그러는 거야. 너도 알지? 올 가을에 결혼할 여자를 소개시켜준다고 데리고 온다고 하더라고. 그날그래서 왔었어."

  그러나 그의 목적은 가족들에게 '소개'가 아니라 자신에게도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는 '확인'이었을 것이다. 예비 아내에게 우울증으로 오래도록 시달리고 있는 동생을 무어라 설명했을지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어렸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반에서 형편없는 내 성적을 두고 아이큐 140이 넘는 영재성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친구들에게 자랑했고, 아버지의 별거는 교수님인 엄마와 사업을 하는 아버지가 외국 출장이 잦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대학 동기들에게는 서른 평 남짓의 주공 아파트가 육십 평대의 주상복합이 되었고, 여자들에게는 자신이 아이비리그의 입학 원서를 받고도 한국에서 공부하기를 선택한 자긍심 강한 재원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현재는 미래를 위해 마음껏 가공되거나 변형되었다. 그에겐 그 모든 것들이 미래를 위한 치밀한 전략이거나 혹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합리화되었다.

  "형이 혹시 무슨 부탁을 하면 형을 위해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해주고."

  '미래를 위해선가요?' 라고 묻듯이 나는 그녀를 노려봤다.

  "그리고……."

  애써 내 눈길을 피하며 그녀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일아버지가 잠깐 보자고 하시는데괜찮지?"

  아니다, 괜찮지 않다. 절대, 절대 싫다. 그러나 내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어라 고갯짓이라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녀는 구토라도 끝낸 사람처럼 홀가분한 모습으로 일어섰다. 나는 그저 책상 위에 놓였던 알약들을 집어 와드득 뭉개버렸고.

 

  아버지는 전략적인 사람이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모든 걸 내 맡긴 사람이었다. 그에겐 오직 미래뿐이었다. 미래를 준비하는 자만이 삶에서 성공하는 사람이라면서, 집착하듯 미래를 설파하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괴물을 보는 듯했다. 그는 현재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미래에 사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지갑은 그가 들고 있었는데, 그는 돈을 내게 내밀며 커피를 주문해오라고 시켰다. 그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여러 가지 복잡한 단서들을 붙이며 그것들을 내가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그저 '커피'라거나 '아메리카노', 혹은 대게의 다른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아무거나'라고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내게 '시럽이 아닌 덩어리로 된 커피용 설탕을 넣어서'라거나, '크림을 올리지 말고 젓지 않은 채로' 따위의 단서들을 달면서 내가 점원과 한 마디라도 더 하도록 유도했다.

  그는 그것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사람들과 만나기를 꺼리고 그들과 대화 한 마디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아들의 소통 불가능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점원에게 주문한 커피를 제대로 시키는지 나를 감시하고 있을 그의 눈빛이 느껴졌을 때, 말 수가 없는 나를 만들었을 지나온 내 삶은 어느 구석에 처박혀버린 것 같았다.

  언어를 더 잘 깨우친 자가 말을 잘 할 것이란 생각은 그저 선입견에 불과하지 않은가. 언어라는 기호의 한계와, 그 기호와 자기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바 사이의 간극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침묵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는 건데, 아버지는 언제나 나의 침묵을 '무능'이라거나 '결핍'이라고 일축해버렸다.

  "왜 각설탕을 넣어달라고 하지 않았어?"

  볼펜 한 자루 같은 설탕 봉지를 들고 앉으니 아버지는 두 눈을 번뜩이며 나에게 물었다.

  "여긴 그런 거 없대요."

  "커피 설탕이 없는 커피숍이 어디 있어? 왜 그런 게 없느냐고 묻지도 못했지?"

  그는 또 다시 힐난하는 말투가 되어 설탕의 허리를 꺾었다.

  "나이가 몇 개냐, ? 그래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 이십 대 때에는 젊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제 서른 줄에 들어서 그거 하나 제대로 따질 줄 몰라서 어디에 쓰느냐고?"

  또 다시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들. 나는 침묵하는 채로 꺾어진 설탕의 허리를 들어 내 커피 속에 탈탈 털어 넣었다.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 아버지가 너를 위해 뭐든 다 뒷바라지 해주겠다고 했잖아? 다른 놈들은 어미애비가 뒷바라지를 못해줘서 주저앉고 만다는데, 너라는 놈은 이렇게 적극적인 애비가 있는데도 만날 그 모양 그 꼴이냐, ?"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처럼 생긴 플라스틱 막대를 들어 커피를 휘저으며,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모든 언어가 들려지고 이해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언어란 때로는 잔인하고 쓸모없는 기호의 조합에 불과하다. 짐승의 울음처럼 본능의 한계를 벗어난 말들이란 과잉이며, 필연적으로 폭력적이 되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너희 형을 봐라, 얼마나 약삭빠르게 제 할 일 찾아 자기 몫을 챙기며 살고 있느냐고? 같은 피를 타고 태어났으면서 네가 너희 형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느냐고?"

  나도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인줄 알았다. 나의 다름이 세상의 다름에 의해 폭력적으로 유린되었을 때, 나는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 내가 어떤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속지 않는다. 그것은 어차피 간과해도 좋을 시끄러운 소리들, 의미 없는 기호들. 그들은 미래에 살고 있으며 나는 현재에 살고 있다. 그들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그들만의 망상이거나 공상일 뿐, 그들의 소통조차 결국 외계의 언어에 불과하다.

  "내가 빚까지 내서 너희 형한테 몇 억씩 투자할 수 있었던 건, 너희 형이 나한테 보여준 그 성공에 대한 집념 때문인 거라고. 게다가 돈 많은 집안 여자까지 자기편으로 만들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솜씨 봐라. 그런 너희 형에 비하면 너는 이게 무슨 꼴이냐, 인마! 이렇게 지극정성 혼신의 힘을 다하는 애비가 버티고 있는데, 사내자식이 이 꼴이 이게 뭐냐고? 나 원 참 창피해서……."

  어떤 목마름 때문인지 그는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의 수치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붉어지고 있는 그의 낯빛을 나는 구경하듯 바라봤다. 흘끔거리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그는 헛기침을 했고, 의미도 없이 한숨을 푹푹 쉬며 무르팍을 탁탁 내리쳤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자식을 지켜보는 아비저의 몸짓을, 나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샅샅이 기억 속에 저장해놓고 있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그들이 이야기했던 나의 미래 속에 끊임없이 재생되어온 몸짓이었다.

  그는 내게 가족 망신시키지 말고 형이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오는 날,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말했다. 돈은 대 줄 테니 걱정 말고 한 일 주일 어디서 처박혀 있다가 돌아오라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또 다시 온 몸이 떨리며 어떤 풍경이 떠올랐지만, 나는 오직 '지금'을 생각하며 뜨거운 감정을 집어 삼켰다. 쓰레기를 버리듯 그는 나를 내버려두고 커피숍을 나가버렸고,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의 등짝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내 앞에 놓였던 커피를 단번에 들이켰고, 큼큼 헛기침을 했다. 여러 번에 나누어 한숨을 내쉬었고, 떨고 있는 내 무르팍을 탁탁 쳤다. 나지막이 숨을 고르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먼 데를 바라보기도 했고.

 

  나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그들이,

  참으로 부끄럽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