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9. 산 - 괴물, and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확신도 없고, 자신도 없고, 제 존재마저 잃어버린 나에게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런 너에게, 미래는 없다고.
종말은 미래가 아닌가, 죽음이 현재라면 큰일 아닌가. 나만 살아남고, 우리만 살아남기를 꿈꾸는 미래는 온전히 미래인가. 현재를 사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면, 미래 따위 없어도 그만 아닌가. 확신이나 자신이 없어도 살고 있다면 이미 존재 아닌가 말이다. 나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하는 그들의 미래를 신뢰하지 않는다.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그들 앞에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그거 하나다. 미래를 믿는 그들을 믿지 않는 것.
고백하자면, 그럼에도 나는 두려웠다. 확신이나 자신이 없는 내가 이상하지 않았는데, 손가락질 한 번으로 나는 괴생명체가 된 기분이었다. 미래도 없고, 시간도 잃어버린 괴생명체. 그러면 나는 어디를 떠다녀야하나, 누구를 잡아먹어야하나. 괴물이라니 나는 또 어디가 어떻게 자랄 셈이지. 뿔이 달리거나 꼬리가 나게 되면 나는 그런 나를 어떤 표정으로 맞아야하는 거지. 이미 나버린 뿔이나 꼬리를 붙들고서, 나는 어떤 감정을 떠올려야하는 거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괴물인 나를 들킬까, 내 뿔이나 꼬리를 어쩌지 못하는 나를 들킬까, 계속 도망치는 것은.
그녀는 오늘 여동생이 찾아왔다고 했다. 가족을 버렸다고 말했으면서, 휴대폰 건너편에서 그녀는 오래도록 가족 이야기를 했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가족을 버렸다고 했는데, 그녀는 가족을 말하며 여러 번 한숨을 쉬었다.
나는 꽤 실망스러웠다. 내가 믿고 사랑했던 건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녀였는데, 그건 비겁하고 비굴한 그녀였다. 뿔이 달리고 꼬리가 달렸어도, 확신이나 자신이 없는 미래가 없더라도 언제나 당당했던 그녀의 용기를 사랑했던 건데, 용기를 뒤집어 쓴 그녀라니 맥이 빠졌다. 도무지 지워지지 않던 질투심 위에 포개져 그건 더 무겁게 나를 내리눌렀다.
“자나?”
대답을 하지도 않았는데, 문이 열렸다. 침대에 누운 나를 보자 엄마의 낯빛은 금세 어두워졌다. 그녀는 더 이상 나에게 미래에 관해 말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그런 그녀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약은 먹었니?”
물었으면 대답을 들어야지, 들을 생각도 않고 그녀는 서랍을 열어 약봉지를 꺼냈다. 약을 뜯으면서 물병을 집어 들었다.
“약은 거르지 마라. 의사 선생님이 지금 네가 이 정도로 좋아진 것도 다 이 약 덕분이라고 그러시더라. 거기 약이 특히 우울증 환자들에게 잘 듣는다더라.”
미래를 확신하는 말들, 거짓일 수밖에 없는 거짓들.
“거기 두고 가요.”
“왜, 지금 먹지?”
“두고 가라고요!”
손바닥 위에 알약 다섯 개를 들고서 그녀는 나를 봤다. 제일 작은 분홍색 알약 하나가 나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형… 만났다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듣기도 싫었고, 말하기도 싫었다. 가족이란 전단지 위에 모여 앉은 글자들 같은 게 아닌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생명들 중에 우연히 한 전단지 위에 찍힌 서로 다른 모양 다른 크기의 기호들.
“형이 뭐라 그래도 신경 쓰지 마라. 걔는 너랑 워낙 다른 애니까 그러는 거다. 올 가을에 결혼 한다고… 그 여자 소개시켜 준다고 데려 온다더라. 그날… 그래서 왔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가족들에게 ‘소개’가 아니라 자신에게도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그녀에게 보여주는 ‘확인’이었을 것이다. 예비 와이프에게 우울증으로 오래 시달리는 동생을 무어라 설명했을지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그랬다. 그는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도 자신과 다르게 성적이 형편없는 나를 두고 아이큐 140이 넘는 영재성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친구들에게 자랑했고, 아버지의 별거는 교수님인 엄마와 사업을 하는 아버지가 외국 출장이 잦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대학 동기들에게는 서른 평 남짓의 외곽의 아파트를 육십 평대의 바닷가 초고층 아파트로 소개했고, 여자들에게는 자신이 아이비리그의 입학 원서를 받고도 한국에서 공부하기를 선택한 자긍심 강한 재원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의 현재는 미래를 위해 언제든 마음껏 가공되거나 변형되었다. 반드시 이루게 될 미래이니, 그 꿈을 꾸었던 건 사실이니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고 합리화했다. 자신에게는 언제나 미래가 있다고.
“형이 혹시 무슨 부탁을 하거들랑 형을 위해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해주고.”
‘미래를 위해선가요?’라고 되묻듯이 나는 그녀를 노려봤다.
“그리고… 내일 아버지가 잠깐 보자시는데… 괜찮지?”
아니다, 괜찮지 않다. 절대, 그럴 수 없고 그러기 싫다. 그러나 내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구토라도 끝낸 것처럼 그녀는 홀가분한 모습으로 일어섰고, 나는 책상 위에 놓였던 알약들을 와드득 뭉개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아버지는 전략적인 사람이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모든 걸 내맡긴 사람이었다. 지금 하는 모든 일들, 모든 생각, 모든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였고, 현재는 미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스물네 시간짜리 도구였다. 그러면 아버지가 살게 될 삶은 현재의 삶인가, 미래의 삶인가. 도구의 삶일 것은 확실했다.
지갑은 그가 들고 있었는데, 그는 돈을 내게 내밀며 커피를 주문해오라고 시켰다. 그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는 여러 가지 복잡한 단서들을 붙이며 그걸 내가 기억하게 했다. 그저 ‘커피’라거나 ‘아메리카노’라거나, 혹은 대게의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아무거나’라고 말할 수 있음에도, 그는 언제나 내게 ‘시럽이 아닌 덩어리로 된 커피용 설탕을 넣어서’라거나, ‘크림을 올리지 말고 젓지 않은 채로’ 따위의 단서들을 달면서, 내가 점원과 한 마디라도 더 하도록 유도했다.
그는 그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 만나기를 꺼리고 자신의 요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의 소통 불가능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점원에게 주문한 커피를 제대로 시키는지 나를 감시하는 그의 눈빛이 느껴졌을 때,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였다.
“왜 각설탕을 넣어달라고 하지 않았어?”
볼펜 한 자루 같은 설탕 봉지를 들고 있으니 아버지는 두 눈을 번뜩였다.
“여긴 그런 거 없대요.”
“커피 설탕이 없는 커피숍이 어디 있어? 왜 그런 게 없느냐고 묻지도 못했지?”
그는 힐난하는 말투로 설탕의 허리를 꺾었다.
“나이가 몇 개냐, 응? 그래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 이십 대 때는 젊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곧 서른인데 그거 하나 제대로 따질 줄 몰라 어디에 쓰냐?”
다시 또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들. 나는 침묵하는 채로 설탕의 허리를 들어 내 커피 속에 탈탈 털었다.
“다른 놈들은 어미애비가 뒷바라지를 못해줘 주저앉고 만다는데, 너라는 놈은 이렇게 적극적인 애비가 있는데도 만날 그 모양 그 꼴이냐?”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을 닮은 플라스틱 막대를 들어 커피를 휘저으며,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모든 언어가 들려지고 이해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언어 아닌 단발의 소음을 내지르는 인간을 볼 때, 제일 선명하게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너희 형을 봐라. 얼마나 약삭빠르게 제 할 일 찾아 자기 몫을 챙기며 사냐고? 같은 피를 타고 태어났으면서 네가 너희 형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 그게 다 네 의지가 없어 그런 거 아니냐고?”
나도 처음엔 모든 게 내 탓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젠 속지 않는다. 어차피 무시해도 좋을 소음들, 기호들. 그들은 미래에 살고 있고 나는 현재에 살아있으니, 우리의 전략은 절대 같을 수 없다. 들여다보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만큼, 억 만 광년 떨어진 우주에 어느 별처럼 그들과 나는 그렇게 다른 궤도를 그려야 한다는 것만,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빚까지 내서 너희 형한테 몇 억씩 투자할 수 있었던 건, 너희 형이 나한테 보여준 그 성공에 대한 집념 때문인 거라고. 게다가 돈 많은 집안 여자까지 자기편으로 만들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솜씨 좀 봐라. 근데 넌 이게 무슨 꼴이냐? 이렇게 지극정성 혼신의 힘을 다하는 애비가 버티고 있는데, 사내자식이 이 꼴이 이게 뭐냐고? 나 원 참 창피해서…”
어떤 목마름 때문인지 그는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큼큼 헛기침을 했고, 의미도 없이 한 숨을 쉬며 무르팍을 탁탁 쳤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자식을 지켜보는 아비의 몸짓을, 나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 속에 저장해 놓았다. 그건 수십 년 동안 그들이 말했던 나의 미래 속에 끊임없이 재생될 똑같은 몸짓이었다.
그는 나에게 가족 망신시키지 말고 형이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오는 날,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했다. 돈은 대 줄 테니 걱정 말고 한 일 주일 어디서 처박혀 있다가 돌아오라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수치였던 것이다. 또 하나의 뜨거운 감정이 끓어올라 나를 짓눌렀지만, 나는 오직 ‘지금’만 생각하며 구겨진 나를 어루만졌다. 쓰레기를 버리듯 그는 나를 내버려두고 카페를 나갔고, 나는 상기된 얼굴로 사라져가는 그의 등짝만 봤다. 내 앞에 놓였던 커피를 나도 단번에 들이켰고, 큼큼 헛기침을 했다. 여러 번에 나누어 한숨을 내 쉬었고, 내 무르팍을 탁탁 쳤다. 나지막이 숨을 고르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먼 데를 바라보기도 했고.
나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그들이,
참으로 부끄럽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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