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 파르마콘, 시간의

 

 

 

 

  변하지 않는 것이란 말이 싫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불멸의 모습으로 나를 내려 보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그녀의 한탄이 혐오스러웠다.

  변화는 반드시 존재해야한다. 설령 내가 수십 년 동안 우울이라는 덫에 갇혀 '변하지 않는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며 그렇게 정체하여 썩어가게 되더라도, 꿈틀거리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을 그 변화는 분명히 그곳에 존재해야한다. 나는 그저 기웃거리는 낙오자에 불과하더라도, 탈피한 것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 아름다운 광경은 분명히 여기 이 현실 속에 실재해야하는 것이다. 미래를 믿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에게도 미래는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듯, 반드시 변하고야마는 탈피는 거기 허물을 찢으며 세상에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배신감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은 변해놓고 변하지 않을 거라 말하고 있는 그녀의 말이 너무도 허무하고 절망스러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 차올랐다. 나를 둘러싼 이 세계가 너무도 슬퍼서, 끝내 변하지 못하고 이대로 어딘가에 곤두박질치고 말 어떤 탄생이 너무도 안쓰러워서.

  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내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또 다시 피를 뒤집어쓴 아들의 몸뚱이를 발견할까봐 마음을 졸이고 있을 것이다. 간절히 내가 달라지기를 바라면서 여전히 똑같은 나를 떠올리는 그녀와, 이토록 변화를 갈구하면서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정체되어있는 나는, 어쩌면 그녀가 이야기했던 변하지 않는 현실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내버려두라고 소리를 질렀다. 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문 밖에서 애처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다시 또 그런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곳에 붙박아 놓아버리는 이율배반적인 외침. 변하라고 말해놓고 변하지 못하도록 붙들며, 지워버리라 말해놓고 선뜩하게 되살리는 악몽.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은 싫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반복해왔던 똑같은 몸짓이었다. 커터 칼을 들고 손목을 긋는 것도 싫었다. 그것도 여전히 조금도 변화하지 못한 옛날 내 모습 그대로였다. 약을 먹거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도 싫었다. 죽음으로 오히려 더욱 선명해질 삶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 또한 내가 바라는 완벽히 변화된 세계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엉엉 울기만 한다. 이 세계가 싫어서, 이런 세계 속에 생존하는 내가 싫어서. 너무도 간절히 무슨 짓이든 하고 싶은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내가 싫어서. 여기에 있는 것은, 또 다시 제 자리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는 나 혼자여서.

 

  우연은 혐오스럽다. 무방비상태로 맞닥뜨리는 시간의 선고는 그래서 더욱 끔찍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저 무기력하게 다가온 시간 앞에 벌벌 떨고 있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것을 '인연'이라고 미화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모든 시간들이 역겹다. 질질 끌려가듯 수동적인 몸짓이 되는 수밖에 없는 시간의 교차.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털어놓으며, 혹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 밖에 할 줄 모르면서 함께 해야 하는 어색하고 낯선 동행.

  가족이라는 이름은 결국 그것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비슷한 유전자 조직, 거울을 보듯 닮은 생김새, 그도 아니면 기질이나 성격이 닮은 사람들의 무리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놓은 것은, 혼자서 생존하지 못하는 인간 종족을 위한 영리한 시간의 매듭일 뿐이다. 친구나 연인이라는 이름보다 더욱 단단하게, 가능하면 그 어떤 시간이나 세대의 왜곡으로도 뒤틀리지 않는 의미를 부여해야만, 그것은 가장 신성한 생의 전언이 될 테니 말이다.

  형에게 무슨 전화를 받았는지 엄마는 벌써 여러 날 째 전전긍긍이었다. 분명히 그가 바란 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불가능한 어떤 것이었을 텐데, 그렇다면 그녀는 단호히 거부해야한다. 자책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멍하니 소파에 앉아 머리를 움켜쥐고 있어야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계산하면서 여러 번 한숨을 쉬었다. 모르는 곳에 전화를 넣으면서 수차례 머리를 조아렸고 울먹이듯 입을 감싸 쥐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그 모든 것들을 거역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그 모든 현실들을 떨치고 일어나 반역의 몸짓을 시간에게 똑똑히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우연에 무릎 꿇지 말고 물밀듯 다가오는 시간의 힘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도, 비명으로 몸부림으로 거역하기를 바란다. 반드시 무자비한 힘으로 짓누르게 될 운명, 우연, 혹은 인연. 그것들은 어차피 잔인하고 폭력적인 시간의 횡포였으니, 이제 그만 그 모든 것들을 떨치고 일어나 지금이라도 그녀의 삶을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간절히, 너무나도 간절히.

 

  "여보세요?"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 목소리엔 바보처럼 울음이 묻었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 후로 여러 차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의 이름으로 먼저 전화벨이 울린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전화해줘서고마워요. 정말많이 기다렸어요. 자기에게 말하지 않은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아직 모두 다 말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어서나도 모르게 그랬어요. 절대절대 자기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에요."

  "시간이필요해요."

  휴대폰 건너편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시간이요? 무슨 시간이요?"

  "그냥좀 시간을 가져야할 것 같아요. 우리너무 성급하게 서로에게 다가갔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그러니까 서로 관계를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한 시간이란 끔찍하고 잔인한 것일 뿐, 저항으로 반드시 떨치고 일어서야하는 시위의 광장일 뿐.

  "무슨 시간이요? 내가 잘못했다고요, 내가 미안하다고요. 내가 사과하는 거잖아요? 내가 잘못했으니까내가 잘못한 걸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사과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무슨 시간이요?"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는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떠밀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녀의 침묵이 길어졌다.

  "미안해요, 내가 그런 거내가 그렇게 소리 지르고 함부로 이야기한 거미안하다고요. 그러면 되는 거 아니에요?"

  희미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 어떤 언어보다 또렷한 것이었다.

  "시간을 좀 가져요. 그게나을 것 같아요."

  "헤어지자는 거예요?"

  "서로조금 멀리 떨어져서 시간을 가져요."

  "헤어지자는 거냐고요? 나는 그렇게 모호한 말 몰라요. 헤어지면 헤어지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런 흐리멍덩한 말 나는 모른다고요! 헤어지자는 거예요?"

말이 아닌 침묵이 또 다시 말을 건네 왔.

  "말 해봐요, 그런 거예요? 정말정말 헤어지자는 거예요?"

  "둘 중에 하나라면지금은 그래요."

  탁 줄이 끊어진 것 같았다. 바람에 실려 겨우 몸을 일으켰던 무언가 몸부림을 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날개도 없이 무모하게 하늘로 올랐던 것이, 너무 먼 바람에 요동치더니 탁 끊어져버렸다. 끈이었다. 어딘가에 묶어놓았던 끈. 아무데도 가지 못하도록 붙들었던 속박의 끈인 동시에, 안전하게 언제든 돌아갈 곳을 마련해주며 불안을 지우던 끈.

  "진심이에요?"

  "지금 솔직한 내 마음을 말하라면그래요. 지금은 헤어져있고 싶네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거부해야한다. 원치 않게 다가온 그 모든 시간들을 단호히 거부해야만 한다. 그것에 기대어 움켜쥐고 있는 것은 허약하고 수동적인 몸짓에 불과하다. 있는 힘을 다 해 모든 힘을 끌어 모아 아니라고 외쳐야하는 것이다.

  "아니에요, 이건 아니라고요."

  "다음에다음에 다시 연락해요.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그 때 다시 봐요."

  "얼마나 오래요?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하는 거냐고요! 그깟 시간이 뭔데시간이 지나면 뭐가 달라지죠? 그깟 시간이 뭔데요, 시간이 뭘 할 수 있는데요!"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시간은 언제나 배신자였다. 사기꾼이었다. 어르듯 나를 달래던 시간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와 버렸다.

  "안되겠네요, 더 이상 통화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끊을 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러나 이미 그녀는 시간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혐오스런 얼굴을 한 시간의 너머로. 나는 또 다시 이렇게 시간에게 배신당한 채 버려졌고. 결코 거부할 수도 없으며 절대 변하지 않고 거슬러 올라가지도 못하는 시간. 여전히 똑같은 속도로 나를 앞으로만 떠밀고 있는 또 다른 잔인한 시간, 그 폭력적인 한가운데에서.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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