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10. 새 - 모르겠어, 행위 수행적 언어는
“모르겠어.”
그는 뒤로 걷고 있었고, 나는 앞으로 걸었다. 나는 그를 향해 다가갔지만, 그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나 우린 같은 쪽으로 걷는 중이었다.
“정말이야, 이젠 모르겠어. 왜, 모르면 안 되는 건가? 모를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계산을 했던 것도 아니고… 내가 손에 쥔 결과라는 게 틀릴 수도 있는 거잖아? 틀렸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고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그냥 틀린 채로 내버려두고서 다른 걸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거고.”
뒷걸음으로 걷는 그는 카메라를 들어 나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고 그는 나에게서 멀어지면서, 사진 속 나는 뭉개지지 않고 선명할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거부’라고 말하지. 난 아무것도 거부한 게 없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말아. 짧은 답을 듣고 싶은 거겠지, 그래야 정답인 것 같거든. 하지만 난 아무 것도 버리지 않았어. 어떤 거리감을 알게 됐고, 그 거리감이 내 삶을 위협하는 수준에 다다랐고, 그래서 나에게 지금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갈 방법을 택했던 거고. 내 기준으론 차라리 혁명이라고 해야 더 가깝지.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그 결정이, 그들의 계산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답이라 당혹스럽기도 하겠지만… 좋겠네, 그런 계산을 할 필요 없는 삶을 살 수 있어서.”
유진은 대꾸도 없이 다시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억지로라도 자신을 어딘가에 내려놓아야만 정체성이 지켜지고 혼란에서 벗어나는 거라는 말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어지러운 혼란인 거 아냐? 익숙해진다고? 시간이 해결한다고? 가능하지도 않은데 억지로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감당해야할 거리감은 두 배가 되어버리는 거잖아? 가속도가 붙은 공처럼 그건 내 쪽으로 밀려올 때마다 두 배의 무게로 나를 짓누를 텐데, 그게 정말 혼란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인 거냐고?”
만족스러운 컷이라도 잡아냈는지 카메라 화면을 보는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끊어진 인도의 턱 때문에 휘청거렸는데도 그는 뒷걸음으로 걷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 사람들은 지체 없이 묻지. 아니 그러면 수술은 왜 한 거야, 너도 한 쪽을 택해서 내려놓은 거 아니냐고? 그냥 태어난 대로 살지, 돈 들여 몸 고생해 수술은 도대체 왜 한 거냐고? 그거야말로 정말 바보 같은 질문 아냐? 내가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않고 치료를 결정하고 수술을 결정했을 거라고 믿는 거냐고? 제3자인 그들이 보는 눈과 생각이라는 게, 당사자인 내 생각과 고민보다 더 깊을 수 있다고 믿는 거야?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일 아냐? 제 몸이나 일상은 털끝만큼도 침해당하는 걸 견디지 못하면서, 타인의 삶을 두고 이러면 되느니 저러면 되느니… 이건 틀린 답, 저건 맞는 답… 불편해? 불편하니까 눈에 보이지도 말고 사라져달라고? 그런 인간도 인간이라고 당당하게 사는 이 사회를 견뎌야하는 게 얼마나 큰 불편함인지는 상상도 못하겠지?”
갑자기 화가 치밀어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인사동 거리 한 복판이었고, 사람들은 엇갈려서 제 갈 길을 갔다.
“내 불편함이 어디서 온 걸까, 그거부터 돌아봐야하는 거 아냐? 나는 왜 몰랐지, 뭐가 나를 편견 속에, 트라우마 속에 가뒀지? 내 눈앞에 살아있고, 그렇게 행복을 찾아가고, 자기만의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데… 난 왜 엉뚱하게도 불편함이지, 그런 생각이 먼저 아니냐고?”
뒤엉킨 인파가 내 어깨를 부딪혀왔다. 피하려는 몸짓도 모자랐고 피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한 가운데 우뚝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뒷걸음으로 멀어지는 유진만 바라봤다.
“근데… 말이야. 그 사람… 사실 그 사람에게도 그런 비슷한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어. 분명히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리감을… 알게 돼. 여기는 내가 있어야할 자리가 아닌 것 같은 그런… 혼란이라고 말해도 좋을… 그런 거리감이… 그럼, 사랑이란 건… 원래 정체성을 찾는 일과도 닮은 건가?”
유진은 더 이상 뒷걸음으로 걷지 않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앞이지만, 나로서는 뒷걸음으로 걸어야하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내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이렇게 말했다.
“또 다시 혁명을 하려나 보지. 이번에는 사랑이라는 혁명을 하려나 보다.”
그리고 그는 카메라 뷰 파인더에서 눈을 떼 나를 보며 웃었다. 갑자기 심장의 두근거림이 빨라졌다. 오직 그 한 사람에게만 진동하는 행위 수행적 언어의 힘이었다.
“오빠는 왜 그렇게 사람이 이기적이야? 왜 항상 오빠 생각만 해? 맨날 우리한테 우리 생각만 한다고 말하면서, 오빠도 결국 오빠 생각만 하는 거잖아?”
그녀는 나를 향해 나를 불렀지만, 나는 그곳에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나와 네 살 차이인 그녀가 맨 처음 부른 그 이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상관하지 말라고 했잖아? 외동딸이라고 그래. 그쪽 사람들한테 넌 남매 같은 건 없다고, 혼자서 태어나 귀하게 자랐다고 그렇게 말하면 될 거 아니냐고!”
“어떻게 없는 게 돼? 서류 떼어보면 다 나와 있는데 어떻게 없는 게 되는데!”
그러고 보면 문제는 언제나 기록이었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그 의미를 잃어버려 엉뚱한 곳에 도착한 서로 다른 호명과 대답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령처럼 우리 주위를 떠 도는 말들. 더 이상 그 쓸모를 잃어버렸는데도 결코 포기하지 못하고 부르고 또 불러 다시 여기에 끌어내 사람을 가두는 말의 유령들.
“죽었다고 해, 그럼. 사망 신고라도 하라고. 그것까지 내가 해야 돼? 내가 내 사망 신고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너를 위해서? 아니면 나를 이렇게 낳아 놓고 내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아빠나, 반대로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인정하고서 나를 버려버린 엄마를 위해서,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게 내 사망 신고인 거냐고!”
“누가 그러래? 그래서 논의를 하자는 거잖아? 상견례가 코앞인데, 빚더미에 쫓겨 다니는 아빠라는 인간은 찾을 수도 없지, 자기 미래를 찾겠다고 미국으로 가버린 엄마는 논문 제출 시기랑 겹쳐서 시간이 없다고 하지… 하나 뿐인 오빠는 이런 꼴로 살고 있으니 내가 나 혼자 상견례를 해야 할 판인데 소리를 안 지르게 생겼냐고!”
기어이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울고 있는 동생의 등을 말없이 봤다. 오빠일 수도 언니일 수도 없겠지만, 닮은 피를 지닌 동질감 때문인지 우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엄마는 요즘 시대에 무슨 그런 걸 하느냐고 되레 큰 소리라고. 촌스럽게 아직도 그런 걸 하는 집이 있느냐고… 마치 자기는 미국 사람 다 된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말문이 막혀서 뭐라고 대꾸를 못 하겠더라. 우리 엄마가 이런 촌스러운 짓들은 하지 않는 거래요, 그렇게 시댁 식구들한테 말할 수는 없는 거잖아! 돈이라도 주고 사람을 사야할 판이라고. 난 그런 거 싫어, 난 그건 안 할 거라고!”
그녀가 불렀던 게 나였든 내가 아니든, 나는 그녀에게 무엇으로든 위로가 되고 싶었다. 유령이 되지 않은 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언제쯤 나는 사람이 되는 걸까?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일부러 계속 목소리를 높였는데, 자꾸 목이 잠겼다.
“오빠가 그냥 하루만… 그날 하루만 남자로 살아주면 안 돼? 그 사람들은 어차피 오빠에 대해서는 몰라. 그런 쪽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고. 오빠가 쓴 책 같은 거, 들여다보지도 않는 사람들이야. 나도 오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했고.”
내 쪽으로 고개를 든 그녀의 두 눈은 지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오빠가 하루만… 머리도 평범한 남자처럼 조금 더 다듬고, 남자들 양복도 입고… 하루만 정상적인 모습으로 행동해주면… 나를 위해서… 하나 뿐인 여동생을 위해서… 흑흑… 하나 밖에 없는… 하나 밖에.”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겠다는 다짐도, 하지 않겠다는 고집도 나는 보여주지 못했다. 어차피 나는 거기에 없었고, 모두들 없기를 바랐고, 지워지거나 삭제된 채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한 쓸모를 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지도,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지도 못했다. 그저 오래도록 엉엉 울고 있는 등을 봤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나도 그렇게 울었고, 그때마다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를 나도 간절히 원했다. 내 이름이 무엇이든, 내가 거기에 있든 없든.
나를 생각하면, 내가 사라진다. 온 힘을 다 해 나를 찾으려고 하면, 나는 어디론가 산산이 흩어져 소멸해버리고 만다. 기억하려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을 망각했고,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더 많은 시간이 끌려 나왔다. 움켜쥐려는 나는 그곳에 없고, 반투명의 서성거리는 나만 시시각각 내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서로 다른 이유로 그렇게 울다가, 서로 다른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은.
“아니에요, 맞아요. 동생 말처럼 내가 이기적인 것 같기는 해요. 최소한 가족들을 비난할 수 없을 만큼은… 내가 이기적인 게 맞는 것 같기는 해요.”
잔해처럼 떠밀려온 기억 때문에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채 주저앉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산이었다. 유진과의 만남 이후로 의무감처럼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주고받던 그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반가웠다. 가능하다면 어루만져달라고 휴대폰 속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가족이란 건…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분명 거기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나를 찌르고, 모든 걸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악몽처럼 떠올라 나를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그게 가족인 것 같아요.”
휴대폰 속에서 ‘버려요, 왜 못 버려요?’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모르는 사람의 손이라도 어루만진 것처럼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그게… 그게… 음… 뭐, 가족이니까… 그런가 봐요. 아무리 수십 번 수백 번 그러겠다고, 버렸다고 말해도… 그렇게 되지 않잖아요? 그게… 잘 안 돼요. 왜 안 되는지 모르겠는데… 도저히 나는 잘…”
‘착한 척’이란 그의 말이 돌팔매처럼 날아왔다. 그에게 바랐던 위로도 아니었고, 건조하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 기대했던 단어도 아니었다.
“아뇨, 착한 척이 아니라… 이건 그렇게 말할 게 아니지 않아요?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거… 좀 듣기 그래요.”
‘가족들이 나를 생각할 줄 모르는데, 내가 왜 가족을 생각해야하죠?’ 휴대폰 속 그의 음성은 쩌렁쩌렁 울렸다. ‘가족 따위가 뭔데, 내가 그 인간들의 마음을 헤아려야하는 거냐고요? 그 인간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데, 내가 왜 그들의 기분이나 감정 따위 생각해야 하느냐고요!’ 한꺼번에 쏟아내는 그의 말들은 차라리 비명이었다.
“자… 잠깐… 잠깐요. 지금… 지금은 통화하면 안 될 것 같네요.”
나는 최대한 침착한 나를 흉내 내며 그에게 말했다. ‘왜요, 왜 지금 말하면 안 되는데요?’ 다시 그렇게 묻고 있는 그의 말투는 영락없이 시비조였다.
“이만… 끊을게요. 나중에 통화해요.”
황급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내몰린 구석 어딘가에서 한 번 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휴대폰은 다시 울렸다. 이번엔 혹시나 ‘통화’일까, 간절한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요? 왜 지금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요? 내 말이 틀렸어요? 그 따위 가족이 뭐요, 가족이 뭐요!”
홀로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목소리를 나는 황급히 다시 내려놓았다. 시끄럽게 휴대폰은 거듭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배를 가르듯 휴대폰 배터리를 빼고 나서도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를 서성거렸다. 내 몸을 내가 쓰다듬어 온기를 찾았지만, 도무지 어디에서도 따스함이 만져지지 않았다. 간절히 손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나는 부스러지거나 태워져 없는 것만 같았다. 소통할 수 없던 사람들의 손짓으로 잔뜩 구겨지거나 찢겨지면서.
나는 대답하지 않는 세계가,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도 두렵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무지개문화읽기 > [김비 장편소설 연재]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2. 데리다 - 패밀리, 가족 혹은 (0) | 2015.02.24 |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1. 산 - 파르마콘, 시간의 (0) | 2015.02.15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9. 산 - 괴물, and (0) | 2015.02.01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8. 데리다 - 세계, 호출하는 (2) | 2015.01.11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7. 새 - 사랑, 사람이라는 말의 오기(誤記)인 (0) | 2014.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