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데리다 - 화행 이론, 어쨌거나




  "그래서 그냥 내버려 뒀던 말이에요?"
  "내가 그러지 말라고 그랬거든. 나중에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이잖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게 아니거든. 입으로는 바뀌겠다고, 바뀐다고 하지. 하지만 돌아서서는 결국 속내를 드러내고 마는 게 사람인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냥 그렇게 풀어주고 말았잖아?"
  "어디에요?"
  "뭐가?"
  "그 놈 사는 데가 어디냐고요?"
  "얘가? 왜 너도 가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받은 대로 그대로 돌려주는 일 따위를 하려는 거거든 당장 그만 둬. 그게 결국 그토록 엄청나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던, 끔찍한 참사들의 초심이었던 걸 모르는 거니?"
  "상관없어요, 그 놈 사는 데가 어디에요?"
  "앉아."
  "아니요, 무슨 이상한 짓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 놈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그 놈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래요. 조용히… 그냥 조용히 몇 마디 해주려고 그런다고요. 다른 건 없어요, 우리 형이… 우리 형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걸, 그 놈이 그렇게 해치려고 했던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전 생애를 걸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은 것뿐이라고요. 어디에요, 그 놈?"
  "그러지 마. 다 끝난 일이야. 데리다 오빠가 잘 이야기했어. 나도 속상하고 걱정도 되지만, 데리다 오빠를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거 아니지만,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앉아, 그만해."
  "얘네 들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냐?"
  "몰라. 오늘따라 늦네. 내가 자세한 건 말 안 하고 오늘 중요한 이야기 할 게 있으니까 꼭 오라고 그랬는데."
  "쓸데없는 이야기한 건 아니지?"
  "아니야, 오빠. 내가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인 줄 알아? 잎새야, 너도 아무런 이야기하지 않았지?"
  "우리 그렇게 바보 아니에요. 나중에 오빠가 해요. 오빠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먼저 알아주지 못했던 게 미안했던 건 사실이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들만큼 오빠에게 가까운 사람은 없는데 우리들한테까지 그렇게 오랫동안 말 안 해줘서 섭섭한 것도 있었던 게 사실이거든요. 그러니까 나중에 오빠가 직접 말해요.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면 오빠도 마음의 준비가 되면요."
  "어디에요, 그 놈?"
  "용호는 못 오겠지?"
  "엄마가 와서 그렇게 끌고 가버렸으니 어디 쉽게 올 수 있겠어요? 집에 갇혀있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 정도 극성맞은 분이면 여기저기 상담 받는다고 끌고 다니지 않을까 싶어요."
  "이 동네죠? 어디가 되었든 그 놈 이 동네에 사는 건 맞죠?"
  "얘가 정말? 왜, 여기 돈암동 일대를 한 집 한 집 모두 문 두드리고 다닐 셈인 거야? 그래서 내가 트랜스젠더 게이인데, 우리 게이 오빠를 테러한 놈을 찾으러 다니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떠벌리고 다닐 셈인 거냐고?"
  "그만하고 앉아. 됐어, 그만해."
  "성준이 얘는 또 왜 안 오는 거야? 이것도 은근 소심해서는… 어떻게 그렇게 소심한 애가 유부남들만 그렇게 만나고 다니는 건지 몰라?"
  "걔가 유부남만 만나는 게 아니겠지. 유부남들이 작고 예쁘장한 걔를 이 놈 저 놈 탐냈던 거라고 말하는 게 옳은 건지도 모르지. 바보처럼 그건, 결혼하고 자식까지 있는 현실을 무릅쓰는 그 마음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어버렸던 걸 테고."
  "그래, 맞아. 걔는 마음이 여려서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거야. 억지로 결혼까지 해서 애까지 낳았는데, 내 사랑이 길을 잃었네, 어쩌네,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 아마 그 놈을 안아주지 않고는 못 배겼을 걸? 그렇지, 그런 놈이지, 안성준."
  "말해줘요, 말해달라고요! 아무 짓도 안 할게요, 말해요, 말해달라고요!"
  "쟤가 점점… 상태가 심각하네, 쟤."
  "그만 안 하냐!"
  "형! 형이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요? 언제나 형은 내 마음 같은 건 상관없었잖아요, 내가 여자로 태어나서… 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 거잖아요!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형은 한 번도 날 쳐다본 적도 없었어요. 나 같은 건 상대로도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던 거라고요!"
  "민수야, 그만해."
  "내가 속이 편해서 가만히 있었던 건 줄 알아요? 그래,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냥 곁에서 지켜주기만 하자. 그 사람이 힘들 때, 남자든 여자든 그런 것 상관없이 그 사람이 날 필요로 하고 곁에 있기를 원할 때, 그 때 멋진 모습으로 형 앞에 나타나주자, 형에게 진정한 내 마음을 보여주자! 오지도 않을 그런 날들을 상상하면서, 내가 얼마나 참혹하고 바보처럼 느껴졌던 건지 알고 있느냐고요!"
  "……."
  "빨리 대요, 그 놈이 어디에 사는지 대라고요! 내가 그 놈한테 사랑이 어떤 건지,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어떤 건지 알고나 있느냐고 물어볼 테니까, 그 놈이 어떤 대답을 하는지 듣고야말 테니까 빨리 알려달라고요!"
  "휴, 상우 오빠는 왜 안 오니? 이 오빠라도 있으면 욕이라도 해서 주저앉혔을 텐데, 이 오빠는 일 끝나면 만날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던 사람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코빼기도 안 보여?" 
  "다들 몰라요, 다들 내 마음 같은 건 상상도 못한다고요. 모두의 어깨엔 짐이 하나뿐이겠지만, 내 어깨에는 두 개가 올라와 있다고요! 모두들 남자니 여자니, 이성애자니 동성애자니 그거 하나만 생각하면 되는 일이지만, 나는 언제나 그 두 가지 모두에 시달려야하는 시간인 거라고요, 알고나 있어요? 모두들 알고 있기나 한 거냐고요! 빨리 알려줘요! 그 놈이 어디 있는지… 그 놈이 어디 사는지… 흑흑!"
  "맥주 마실래? 맥주라도 한 잔씩 하자."
  "그래요, 그럽시다. 휴!"
  "어, 성준이다! 넌 왜 이제야 나타나? 내가 중요하게 이야기할 거 있다고 했어, 안 했어?"
  "상우 오빠랑은 같이 안 오니? 같이 연락하고 오는 거 아니었어?"
  "뭐야, 얘는 또 왜 이래? 우리 지금 굉장히 복잡하고 머리 어지럽다. 쟤 엎어져서 우는 거 보이지? 웬만하게 심각한 일 아니면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중에. 오빠, 나부터 한 잔."
  "상우랑은 통화 안 했냐? 그 놈도 늦어서 너희들 같이 만나서 오는 줄 알았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아유, 그냥 술이나 마십시다. 머리 복잡해. 우리 오늘은 그냥 복잡한 이야기들 하지 말고, 그냥 술이나 한 잔 해요. 더러운 이 세상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진탕 마셔보자고요. 자요."
  "너도 한 잔 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또 그 유부남이랑 헤어진 거면 그냥 마시고 잊어버리고.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니? 그 사람이 진심으로 널 생각하는 사람이냐 아니냐, 그게 문제지. 마셔."
  "그래 마셔, 마셔!"
  "민수야, 너도 그만 일어나서 술 마셔. 그렇게 울고 그래봤자, 힘든 건 너 하나 아니니? 누가 네 마음을 몰라준다고 섭섭해 할 거 없어.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이니? 누가 누구를 이해하고 안다는 게 가능한 일이야? 모르니까, 몰라도 괜찮으니까 그냥 너의 삶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면 되는 거지, 뭘 이해하고 알아주기까지 바라니? 마셔, 어서 일어나서 마셔. 그만 울고." 
  "어리긴 어리구나. 울음이 그렇게 쉽게 터지는 걸 보면 확실히 어리긴 어려. 예쁘네, 우리 민수. 마셔, 어서."
  "오빠, 오빠가 좀 토닥여줘요. 너도 오빠 힘들게 하지 말고. 오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금 많이 힘드니까, 네가 말했던 것처럼 오빠 곁에서 든든하게 오빠를 지켜줘. 그게 사랑 아니니?"
  "결혼한데요."
  "……."
  "얜 또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뭐가? 뭐가 어떻다고?"
  "상우 형이요. 결혼한데요."
  "이게 무슨 소리야?"
  "박상우가 여자랑 결혼을 한다고요! 자기는 백 프로 게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던 그 인간이, 스물 갗 넘은 어린놈들 따먹고 다니던 그 인간이, 이제 와서 여자랑 결혼을 한다고요! 게이는 개뿔, 뒤로 호박 씨 까면서 몇 년 동안 결혼할 여자를 따로 만나면서, 여자랑 결혼 계획을 하고 있었다고요, 씨팔!"
  "……."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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