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25. 새 - 적의(敵意), 여기
그래야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그런 적은 없다. 아마도 나는 나를 구덩이로 밀어 넣은 보이지 않는 힘이 일말의 여지없이 ‘적의(敵意)’라고 믿었을 것이다. 깊이 빠진 나를 구해내기 위해 어떤 손이든 나를 움켜쥘 수밖에 없을 텐데, 놓으라고, 그건 폭력이라고 버둥거리며 스스로 더 깊이 매몰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온전히 선의뿐이었나? 나를 구하려는 그 손이 내 몸을 찌르고, 나를 아프게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몰아넣을 때, 그러면 그 때 내 온 몸을 지배했던 고통은 가짜인가? 고통을 느낀 자로서의 내 감정과 통증은 의미 없이 얄팍하기만 한가? 구원이나 치유가 고통일 수밖에 없단 정의는, 고통은 곧 구원이고 치유란 명제와 등가물인가? 어떻게 다르고 왜 달라야하는지를 물을 때, 나를 구하겠다는 그 손은 어디에 있었나? 자연스럽게 제 주머니 속에 담겼을 그 손으로부터 절망을 읽는 나는 비관적이고 적의뿐인 사람인가?
오랜만에 만난 유진은 데리다 오빠에게 수다스럽게 자신의 일상을 털어놓았다. 도망치듯 그의 집에서 뛰쳐나온 나를 알기에 그 자리로부터 뛰쳐나올 수도 있었지만, 나를 움켜쥐려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고서 나는 그들 옆에 자리를 지켰다. 환대가 있느냐고 물었던 유진의 미소나 몸짓도 약간 과장된 채 였는데, 그 역시 환대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 환대는 뒤집힌 구덩이 같은 건 아닐까? 치밀하게 계산 되었을 플라스틱 의자의 좌판 위에서, 나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거렸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더 깊이 구덩이 속으로 밀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를 던져 넣은 사각의 침대만이 유일하게 평지인 것 같았다.
잠이 들지 않은 거라고 믿었는데, 부르르 몸을 떠는 휴대폰 소리에 눈을 떴다. 작은 화면 위에는 현아 언니의 이름이 떴다. 시계를 봤다. 새벽 한 시? 지금은 그 누구와도 아무런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자는 데 깨운 거 아니지? 지금 빨리 데리다 카페로 와 줄래?”
휴대폰을 던져 놓은 채 스피커폰을 켰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페에 불이 났어, 누가 불을 질렀대!”
흐릿한 잠 속에 억지로 잠겨 있다가 나는 솟구치듯 몸을 일으켰다. 화염에 휩싸이는 것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활활 타오르며 순식간에 모든 걸 잿더미로 만드는 것들이. 그 어떤 고민이나 망설임, 혹은 계산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그 뜨거운 것이.
용의자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밤에 내린 소나기 덕분에 불이 제대로 붙지 않아 카운터가 있던 입구 쪽만 태웠을 뿐이라고 했다. 뒤숭숭한 마음에 데리다 오빠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것도 천운이라고 했을 때, 나는 지난밤의 가짜 환대를 생각했다.
데리다 오빠는 며칠 전부터 조짐이 이상했다고 했다. 낡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들 몇이 뒷짐을 지고 가게 앞을 서성거리기도 했고, 뜬금없이 종교 홍보물이 무더기로 쌓여있기도 했고, 등산가방에 등산 스틱이 아닌 깃발을 꽂은 사람들이 가게 안을 들여다보다 가곤 했다고 했다. 어쩌면 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우연한 소나기처럼 우연한 불길이 하필 가게 앞에 붙어 번졌을 가능성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데리다 오빠가 말했을 때, 나는 끝까지 그가 붙들고 있는 그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흥분한 채 카페 안을 들어선 제복 차림의 경찰의 태도가 반가웠다. 골목의 CCTV를 확인 중이라고 했을 때, 데리다 오빠는 그에게도 온화한 눈빛으로 일말의 가능성을 말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먼저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거라고, 자신이 책임지고 범인을 잡아 벌을 받게 하겠다고 장담했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 자신이 직접 이 현장 앞에서 밤낮으로 감시를 하겠다고 했을 때, 데리다 오빠는 괜찮다고 그럴 필요 없다고 손을 저었다. 그러나 그는 아니라고, 혹시 불편이 될 수도 있으니 사복 차림으로 영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여기 카페를 지키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손을 젓다가 아주 잠깐 데리다 오빠가 그의 눈을 올려 보았다. 모자 밑으로 그와 눈을 맞추는 잠시 잠깐의 순간,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가 곧 경찰은 현장에 수습된 물품이라며 무언가를 수건에 싸 데리다 오빠에게 건넸다. 알겠다고 고맙다고 말하면서, 데리다 오빠는 모자 아래로 그와 다시 눈을 맞추었고, 가슴팍에 그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현아 언니도, 성준이도, 나도, 뭔가 싶은 어색함이 스쳐갔고, 경찰은 우리들 한 가운데 인사를 해 놓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다시 테이블에 앉아 가능성과 우연과 적의에 관해 말했고, 데리다 오빠는 카페 바깥에서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큰 키의 그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 가능성을 부인하고 말도 안 된다며 분개하는 와중에도, 데리다 오빠는 현장을 수습하고 정리하는 그를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캄캄하고 어두워도, 그 어떤 재난이나 구덩이 속이더라도, 누구든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특별한 가능성이었다.
불타버린 카페 입구 수리를 완료하는 자리에 우리들을 불러 모았을 때, 우린 ‘불난 집에 대박’이라는 낡고 낡은 위로를 준비한 게 전부였다. 세심하고 철저한 사람인 데리다 오빠가 화재보험을 들었더랬고, 그 보험금으로 카페 인테리어를 다시 하는데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말끔하게 정돈된 카페 입구는 아닌 게 아니라 불운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멋지게 완성되었고, 공사를 하는 김에 분위기도 같이 바꿨다는 매장 안은 훨씬 더 근사해보였다. 위로보다는 오히려 축하를 주고받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 데리다 오빠가 덧붙여 털어놓은 이야기는 놀랍고 또 놀라웠다. 놀랄 필요도 없는 일이고 놀라서도 안 되는 일인지 모르지만, 누구도 놀라움 자체를 부인할 방법은 준비되지 못한 채였다. ‘너희들은 영양제 먹잖아? 나는 좀 쎈 영양제를 먹어야하는 것뿐인 거지, 다를 건 없어.’ 라고 말했을 때, 성준이 구겨지듯 웃었고, 민수의 눈치를 봤다.
“그래서, 이십 칠년이었던 거야? 그때 말이야, 우리 늙어서 뭐하고 있을지 생각해보자고 했을 때… 그래서 이십칠 년이었어? 겨우 칠십이 목표였냐? 칠십이 뭐야, 팔십 구십까지는 살아야지. 피엘로 무병장수… 아니 유병장수 한 기록을 남기라고, 알겠어?”
상우 오빠의 다그침은 미안함이 뒤엉킨 과장이었겠지만, 모두의 눈빛은 간절했다. 누구의 병이라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그동안 제일 가까운 우리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 구덩이를 알 것 같아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게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깊이에 어떤 꼴로 처박힌 채라도, 일말의 가능성을 놓지 않겠다는 그 다짐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뭔데?”
“뭔데, 또?”
“나… 좋은 사람 생겼어.”
“억!”
정말 그건 성준이 커피 잔을 들다가 놓치며 낸 실제 육성이었다. 민수의 눈치조차 봐야한다는 것도 잃은 채, 모두들 좀 전의 소식보다 더 놀라 눈이 커졌다. 몸은 반쯤 일으킨 채였다.
“경찰, 맞지! 우와, 맞지!”
비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소리를 질러 놓고, 현아 언니는 몸을 들썩이며 좋아했다.
“사실… 되짚어 보면, 현아 네 덕분이기도 해. 네가 예전에 잎새한테 사랑에 관해 말했을 때… 나도 정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거든. 그래, 우리가 원하는 건 지금의 사랑이지, 그때의 사랑은 아니니까. 나는 지금 그때의 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나를 포기할 이유는 없으니까. 지금에 맞는… 여기에 맞는 사랑을 하면 그뿐이니까.”
“우와! 형! 대박!”
“우와, 완전 축하해, 형!”
“용호한테도 알려야 돼, 전화해, 문자해! 우와 대박!”
“근데 경찰? 무슨 경찰인데?”
“있어, 경찰. 여기… 지켜 준다는 경찰. 데리다 오빠… 지켜 준다고 했던 경찰.”
진정할 새도 없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걱정과 안도가 그토록 가까이 달라붙은 줄 몰랐는데, 깊고 깊은 숨을 토해내며 몸이 떨려왔다. 어디에도 있구나, 그럴 수 없다고 가능하지 않다고 믿었던 어디에도 그건.
민수가 책상을 치며 엎어졌을 때, 그제야 비로소 우리의 들뜬 마음들이 추슬러졌다. 문을 두드리듯,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묻는 듯 민수는 악을 쓰듯 울며 테이블을 치고 또 쳤다.
데리다 오빠가 조용히 민수 곁으로 가 앉았다. 민수의 머리를 쓰다듬고,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민수의 작은 어깨를 어루만지고 끌어안았다. 그를 뿌리치지도 못했고 문 밖으로 뛰쳐나가지도 못했지만, 민수는 문을 두드리듯 테이블을 치는 그 손짓은 멈췄다. 2인용 그네 위에 나란히 탄 것처럼 끌어안은 민수의 몸을 가만히 흔들면서, 데리다 오빠는 처음으로 남자 대 남자로 몸과 몸을 맞대 민수에게 사과하는 것 같았다.
“같이 보자. 다 같이 보자. 네가 가장 덜 아픈 지점에서… 그 근처에서 같이 보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나는 미안해 할테니까… 그래도 괜찮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같이 보고, 같이 가자.”
민수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고개도 끄덕이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남자 대 남자로 서로 몸을 맞대어 본 그들은 아마 알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주고받는 마음도 사랑도 이전에는 가질 줄 몰랐다는 것.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들 모두가 민수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상우 오빠도 성준의 어깨를 끌어안았고, 현아 언니도 내 어깨를 끌어안았고, 그런 우리가 한 번씩만 더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자, 우리는 모두 끌어안은 서로가 되었다.
우리를 살게하는 사랑이나 삶이란 건 비현실의 영역인 모양이구나, 마법같은 것이구나. 나는 그 동안 여러 겹으로 나를 둘러쌌던 것들을 생각했다. 구덩이가 됐든 벽이 됐든 소용돌이가 됐든 바다가 됐든, 나를 꽁꽁 둘러맨 것들을 비현실의 눈으로 하나씩 들춰보았다. ‘정말 마법 같았네.’ 어디에든 있고 어디에도 없을 내 생의 우주적 부딪힘들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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