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데리다 - 그리워하며, 환대를

 

 


  "여보세요? 아닙니다. 잘못 거셨어요. 아니에요, 전화 잘 못 거신 것 같습니다."
  "사장님 계십니까?"
  "예, 무슨 일이신데요?"
  "여기 가게를 내놓았다고 해서 찾아왔는데요."
  "아닌데요, 저희는 가게 내놓은 적 없습니다."
  "사장님이세요? 아닌데, 건물 주인에게 아직 이야기를 못 들으신 건가요? 아, 아닌가? 박 사장이 아직 이야기를 하질 않은 건가? 이거 미안합니다, 어쨌든 나중에 확인을 하고 다시 한 번 오지요. 실례했습니다."
  "뭐예요, 가게 내 놨어요?"
  "아니, 아니야."
  "근데 저 사람은 뭐야?"
  "모르겠어. 웬일이야, 내가 한 동안 모이지 말자고 문자 보냈는데 못 받았어?"
  "오지 말라고 하면 오지 말아야하는 곳인 거야, 여기? 치사하게 왜 그래요? 뭐 그런 일 가지고 다들 모이지도 못하게 하고. 다들 순순히 오지 않겠다고 그래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상우 오빠 정도면 그냥 잠자코 알겠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걔도 뭐 별 수 있냐? 걘 더군다나 공무원이잖아? 괜히 이상한 소문나고 그러면 곤란하겠지."
  "핑계지, 뭐. 곤란하긴 뭐가 곤란해? 공무원이면 그나마 우리들 중에 제일 안정적인 거지."
  "안정적인 직장이라서 더 불안하겠지. 안정적이란 건 그걸 놓쳐 버릴까봐 더 불안하다는 말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여기가 무슨 신촌이나 종로 한 복판도 아니고, 대학로라고 이름 붙이기도 힘든 돈암동 끄트머리 주택가에 붙어있는 손바닥만 한 가게에, 소문이 나면 무슨 소문이 나고, 또 그 소문이 퍼져봤자 얼마나 퍼지겠느냐고? 다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맨날 입으로만 진실이네 정의네 떠들어도, 실은 그 발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할 것들이라 그렇지."
  "내가 싫어서 그래. 이제는 이런 일들로 주변 사람들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뭐 마실래?"
  "오빠는 항상 그게 문제야. 뭘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살아요? 힘들고 지친 게 어디 정작 당사자인 오빠만큼 힘들고 지친대? 오빠가 만날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며 전전긍긍하는 오빠 남동생이, 오빠가 생각하는 반만큼이나 오빠 생각하면서 살고 있기나 한대냐고요?"
  "……."
  "자기 가족이 동성애자라는 게 탄로날까봐 쉬쉬하고,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라는 말이 누구 앞길이나 막는 그런 말들이라고나 생각해버리고. 정작 우리들 당사자들도 그렇잖아. 세상 사람들한테 그건 틀린 거다, 당신들이 틀려 처먹은 거다 소리치지는 못할망정, 정작 우리들 자신이 그렇게 믿어버리고 말잖아? 우리가 우리 스스로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있는 거잖아?"
  "아직이냐?"
  "뭐가요?"
  "아직 정리가 안 된 거냐고?"
  "무슨 정리요? 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넌 지금 네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 사랑이라고 말해놓고 실은 그게 진짜 사랑일까 봐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진실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건 진실이 아닐 거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누구는 평생 한 번도 해보기 쉽지 않은 진실 된 사랑을 잠시나마 온 마음을 다해 느껴봤으면서, 잠깐 힘들고 서로 틀어졌다고 해서 기다렸다는 듯이 그걸 내동댕이쳐 자기 스스로를 또 다시 고립시키고 합리화시키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그게 바로 네 이야기인 거잖아?"
  "아유, 우리 오빠 너무 오버하시네. 아니에요, 절대… 절대 아니야."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 그래야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다니는 네 모습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거겠지. 그깟 동성애자가 운영하는 카페라는 소문이 뭔데, 동성애자들이 우글거리며 모여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따위가 뭔데 갑자기 그 많던 손님들이 한꺼번에 끊겨버리다니, 단지 장마 기간이 시작되어 그럴 거야, 너무 갑작스럽게 폭염이 심해서 그럴 거야, 그렇게 믿고 싶은 내 마음이랑 똑같은 거겠지, 어차피."
  "그런 거… 아니에요."
  "솔직하자, 우리. 너나 나나 우리는 솔직해질 수 있잖아? 이렇게 너무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 따위도 신물이 날 지경인데, 우리들 서로에게 우리들 자신에게는 솔직해야하는 거 아니니?"
  "……."
  "……."
  "미안… 해요, 오빠."
  "나한테 미안할 거 없어. 너 자신에게 미안해해야지. 네 그 가식적인 감정의 껍데기들 때문에 훼손되어버린, 그 동안 너에게 다가왔다가 버려진 그 마음들에 미안해해야지."
  "나는 그냥… 그저 억지로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그 사람들을 못 믿었거나, 그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생각 같은 건 없었다고요. 그래요, 이기적이긴 하죠.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나를 먼저 내밀어 납득시키려고 하고… 무조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하고… 네, 이기적이긴 해요.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수용하고 헤아려야하고, 혼란스러울 땐 기다리고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까지 읽어주지 못한다고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사랑 따위는 없는 거라고 말해버리는… 네, 정말 끔찍이도 이기적이기는 하네요. 하지만요, 하지만 말예요."
  "……."
  "그래요, 애초부터 사랑을 할 자격조차 난 없었던 거였죠.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에게 사랑을 말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조차도 나는 되어있지 않았던 거겠죠. 알아요, 오빠가 하고 싶은 이야기 뭔지, 알고 있어요. 근데 그거 알아요? 사랑이란 거… 사랑이란 거 말예요. 어떻게 해도… 어떻게 해도 불리하게 되잖아요? 아무리 잘해보려고 해도, 아무리 다른 길을 선택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언제나 구덩이에 빠지는 건 나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인 게…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빠지면 좀 어때?"
  "하지만… 하지만, 그건……."
  "또 다시 네가 빠진 구덩이를 알고 있느냐고 묻고 싶은 거냐? 거기가 얼마나 어둡고 혹독한 덴 줄 알고 있기나 한 거냐, 따지고 싶은 거야?"
  "……."
  "꼭 그렇게 비교를 하고 싶냐, 그거? 그렇게 해서라도 제일 깊고 새카만 구덩이에 빠져있는 스스로를 확인하고 싶은 거야, 너는? 그럼 네 말이 맞네. 넌 사랑을 할 게 아니라, 그 구덩이를 혼자서 올라오는 법을 먼저 깨우쳐야하는 거네.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남들은 모르는 새카만 암흑 속에서 버둥거리면서, 그렇게 사랑이라는 걸 하지도 못하는 너를 확인하고 나니까 좋으냐? 꾸역꾸역 그렇게 스스로를 그 속에 밀어 넣으니까 좋아?"
  "오빠는 몰라요." 
  "그래, 나는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동성애자일 거고, 아무리 그래도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앞으로도 끝까지 여기서 이렇게 이 가게를 지키고 있을 거라는 거. 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라는 거. 그리고 너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네가 말하는 그 구덩이 속에 있을 텐데 그러면 넌 뭘 지킬래? 그렇게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그렇게 칙칙하고 어두운 삶인 게 네 인생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면서 네가 지키고 싶은 건 뭔데?"
  "……."
  "어이, 장사 안 할 겁니까? 이거 분위기가 왜 이래요? 데리다 형, 정말 오랜만이네. 잘 지내고 있는 거예요? 어, 잎새도 와 있었네? 근데 다들 왜 이래? 사람이 들어왔으면 반갑게 맞아줘야지. 불청객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반갑게 맞아주는 게 기본 아닌가?"
  "……."
  "어서 와라, 유진아. 앉아."
  "뭐야, 왜들이래? 환대를 바라는 내가 욕심인 거야, 이거?"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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